파시즘- 로버트 O. 팩스턴 지음, 손명희 옮김 / 교양인 / 2005년 1월


요새 나에게 주목받고 있는 신생출판사 가운데 하나가 "교양인"이다. 김두식의 "헌법의 풍경", 스콧 터로의 "극단의 형벌", 히틀러 평전으로 유명한 요아힘 페스트의 "히틀러 최후의 14일"(이 책은 출판사에서 보내주었다. 어떻게 알고... 감사) 그리고 로버트 O. 팩스턴의 "파시즘"이 그것이다. 지난 2004년부터 책을 내기 시작했는데, 현재 내가 알고 있기로는 모두 8종의 책을 낸 것으로 안다. 자세한 속사정은 알 수 없으나 나름대로 탄탄한(물질적 측면이 아니라 출판사를 꾸려나가기 위한 다른 역량-문화적 마인드, 필자 풀, 번역서의 경우엔 그걸 분별할 수 있는 식견 등) 역량이 돋보인다 할 수 있다.

그 가운데에도 로버트 O. 팩스턴의 "파시즘" 원제는 "The Anatomy of Fascism"으로 정확하게 말하자면 "파시즘의 해부" 정도가 될 수 있는, 이 책은 "교양인"에서 출간한 책 가운데 현재로서는 가장 두툼한 부피를 자랑하는 책이다. 전체 600여 쪽의 책 가운데 주석 부분과 기타 참조 부분(용어, 인명 찾아보기 등)이 100여쪽을 넘게 차지하고 있는 전문적인 학술서로 보아도 무방하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 이 책을 받았을 때, 읽는데 족히 일주일은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하루 동안 다 읽을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첫째. 내가 이 분야에 흥미가 많은 탓이고, 둘째. 필자와 역자, 그리고 편집자들의 수고 덕이겠지만 읽기 쉬웠다. 셋째. 게다가 재미있기까지 하다. 책값이 27,000원인데 10% 할인해서 24,300원인데 책값이 전혀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으면 나로서는 대성공을 거둔 셈이다.

전에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의 지인에게서 그런 말을 전해들은 적이 있는데(본인에게 직접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기억이 잘 안 난다. 한홍구 교수는 최근 국내 최초로 평화박물관을 개원해 몸소 재원을 마련하고, 운영하느라 무척 바쁘다.) 평화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전쟁에 대해 공부해야 하는데, 우리 사회엔 이 분야가 특히 취약해서 어렵다는 이야기였다. 이 말을 민주주의에 대입해 보면 민주주의를 제대로 하기 위해선 독재 체제(파시즘, 전체주의, 권위주의 등등)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말이 된다. 우스운 말이지만, 우린 해방 이전과 이후의 근대화 기간 동안 전쟁과 너무나도 가깝게 살아온 나머지 웬만한 전쟁 이야기엔 면역이 되어 있고, 해방 이전엔 일본 제국의 군국주의, 해방 이후엔 권위주의 독재, 군부 독재 시대를 거쳐온 탓에 독재 혹은 권위에 대해 지나치게 과민하거나 지나치게 관대한 측면 두 가지를 아울러 가지고 있다.

드 세르토의 표현을 빌자면 우리는 거대 도시의 마천루적인 시각과 더불어 그 밑을 걷고 있는 자의 시각이 혼재해 있는 것이다. 어떤 관점은 지나치게 원경으로, 어떤 관점은 지나치게 미시적으로 들어가고 있으므로 일반인들로서는 다소 곤혹스러울 수 있는 지경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머리말을 쓴 성공회대 조효제 교수의 다음과 같은 지적은 적절해 보인다.

"파시즘을 정확한 기술적 용어로 쓰지 않고 일종의 유행어로 안이하게 남발하는 것은 파시즘을 예방하기보다는 오히려 파시즘의 독성에 무감각해질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또 그럼으로써 '진짜' 파시즘이 출현하더라도 우리 모두가 이미 양치기 소년 증후군에 중독 되어 파시즘을 알아보지 못하게 될 우려도 있다. <본문 14-15쪽>"


팩스턴의 "파시즘"은 모두 8장의 구성으로 되어 있다. "1장. 운동하는 파시즘"은 파시즘의 기원부터 시작해서 주요 전략, 정치적 운동 방향 등에 대해 기술함으로써 파시즘의 정의를 시도한다. "2장. 파시즘의 탄생"은 말 그대로 파시즘이 탄생할 수 있었던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배경 등을 역사적으로 파악하고, 어떤 징후들이 나타나는가를 분석한다. "3장. 뿌리 내리기"에서는 파시즘의 준동이 유럽의 각국에서 어떤 형태로 출현했는가를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보여주고, 이탈리아, 독일 등과 달리 다른 유럽에서 파시즘이 실패한 사례들을 제시한다. "4장. 권력장악"에서는 유럽의 다른 지역에서 정권 탈취에 실패한 파시즘이 무솔리니와 히틀러는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던가를 보여준다. "5장. 권력행사"에서 팩스턴은 파시즘이 정권을 장악한 뒤 어떻게 내부 분열을 겪고, 그 가운데 지도자 중심의 권력 독점으로 기울게 되는지에 대해, "6장. 급진화인가 정상화인가"에서는 파시즘이 어떻게 홀로코스트를 자행하고, 파시즘의 어떤 요소들이 이런 급진화를 부추겼는지 살핀다. "7장. 다른 시대, 다른 장소의 파시즘"은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종말을 고한 듯 보이는 파시즘이 1945년 이후 유럽에서 어떤 형태로 잔존했는가? 이후에도 파시즘의 출현은 가능한가를 살핀다. 그리고 마지막 "8장. 파시즘이란 무엇인가"에서 다시 파시즘에 대한 정의를 내림으로써 현대 사회에 출현 가능한 파시즘을 예측해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팩스턴은 마치 법의학자가 시신과 대화를 나누듯 파시즘의 세세한 측면들을 들춰내면서도 냉정한 시선을 유지하기 위해 애쓴다. 그는 미국 출신의 학자임에도 미국에 존재하고 있는 파시즘적인 요소들에 대해서도 비판의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물론 당연한 말이겠지만 이 한 권의 책을 읽는다고 해서 '파시즘은 무엇이다'란 식으로 단정적인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다만 팩스턴이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째서 파시즘이 주요한 정치 이념으로 출현해 다시 정권 탈취, 권력 장악을 하도록 방치해선 안 되는지를 깨닫게 만드는 힘은 얻을 수 있다. 그 가운데 한 가지는 파시즘에 대한 기존의 고정 관념에 대한 것이다.

"사람들은 파시즘이 의미하는 바를 잘 안다고 생각한다. 모든 정치 형태 중 가장 강력한 시각적 호소력을 발휘하는 파시즘은 다른 무엇보다 먼저 다음과 같은 선명한 이미지로 나타난다. 무아경에 빠진 군중 앞에서 열변을 토하는 광신적 애국주의 선동정치의 모습,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젊은이들의 행진 장면, 악마로 둔갑한 소수자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특정 색깔의 셔츠를 입은 극렬분자들, 새벽녘의 갑작스런 가정 침입, 함락된 도시를 행진하는 규율 잡힌 병사들이 바로 그것이다. ...<중략>... 파시즘의 그러한 이미지는 오늘날까지도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데, 이는 파시즘 선전원들이 거둔 최후의 승리다. 또 그 이미지는 파시즘 지도자를 승인하고 용인한 국가에 핑계거리를 제공하고, 그 지도자를 도와준 개인, 단체, 제도로 향하는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역할을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파시즘 지도자와 국가, 그리고 파시스트당과 시민 사회의 상호작용을 탐구하는 훨씬 더 정교한 파시즘 모형이다.
환호하는 군중의 이미지는 몇몇 유럽 민족 내 민족들이 선천적으로 파시즘적 경향을 띠고 있으며, 그런 민족적 특성 때문에 파시즘에 열광적으로 반응한다는 가정에 힘을 실어준다. 이 가정으로부터 한 나라의 결함 있는 역사가 파시즘을 탄생시켰다는 겸손한 듯 오만한 믿음이 따라 나온다. 이러한 믿음은 쉽게 파시즘을 방광하는 국가들의 알리바이로 바뀔 수 있다. 즉, 자기네 나라에서는 그런 일이 발생할 리가 없다는 것이다." <본문 38-39쪽>

찰톤 헤스톤 주연의 영화로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엘 시드"는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 한 가지를 던져준다. 1492년 스페인은 이베리아 반도 내에서 모든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는데 성공한다. "레콩키스타"로 알려진 실지 회복 전쟁이 끝났을 때, 다시 기독교도 왕국이 된 스페인은 이교도에 대한 이전의 관용정책을 포기한다. 이전까지 종교적 자유 아래 기독교도 국왕인 스페인 왕에게 충성을 바쳤던 무어인들은 개종해야 했고, 개종한 무어인들은 '토르나디소스(tornadizos, 변절자)'란 불명예스러운 이름으로 불렸다. 이슬람과 기독교의 각축 속에서 살아남았던 유대인들에 대한 대규모 인종학살이 빚어진다. 1391년 세비야에서만 4,000여 명의 유대인이 불 속에 던져졌다. 레콩키스타를 종료한 스페인은 지리상의 발견 시대를 거치며 신대륙을 발견했다. 이때부터 축적되기 시작한 서구 유럽의 자본은 산업화와 도시화를 촉진시키는 밑거름이 되었고, 이들 사회가 새로운 격변을 맞이한 것은 1800년대 말부터 시작된 산업화와 도시화였다.

1900년에 이르러 18세기 계몽사상에 의한 과학 ․ 이성 ․ 진보의 힘은 유럽의 체제를 크게 바꿔놓았다. 산업화와 도시화에 의한 사회구조의 변화는 새로운 발명(증기기관, 내연기관, 무선통신, 사진, 영화 등), 철도와 기선의 출현(미 대륙 횡단철도, 유라시아 횡단 철도, 대양 운송)으로 인해 낡은 농업사회의 자급자족제도를 파괴하고, 도시로 유입된 다수의 노동자 계층을 생성시켰다. 농민에게는 전통적 생산수단을 현대화하도록 강요(문화적 재생산의 차단)했고, 인구의 이동성을 높여 도시의 거대화를 초래한다.

자유주의, 자유자본주의 모델은 그 물질적 장점으로 인해 정치적인 틀을 크게 변모시킨다. 언론, 상거래, 과학적 탐구의 자유, 노동의 유동성과 확대된 선거권에 기반한 민주적 자치(自治)에 대해 각성한(영국의 경우 1867년 도시소시민, 노동자, 1884년 광산노동자, 농민, 1918년 남성 보통선거, 1928년 보통선거 확립) 시대이다. 이 시기에 지구상의 인구는 1900년 당시 16억 3천만 명에서 2000년 무렵 60억으로 폭발적인 증가세(1820년대 영국 리즈, 버밍엄, 브래드퍼드는 각각 47%, 40%, 65%의 인구 증가)를 보였다. 산업화와 도시화, 새로운 기술의 출현은 대중들의 의식을 변화시켰고, 교육받은 중산층과 소수 기술노동자 계층의 출현으로 새로운 형태의 매스 미디어들(신문 - 1700년대부터 인쇄되어 구독되었던 소책자나 정보지로 출발, 18세기에 이르러 일간지가 일반화됨, 1840년대 대중잡지, 1920년대 라디오, 1940년대 TV)의 출현을 가속화시켰다.(1843년 영국 카툰 잡지 <펀치 Punch>, 사진의 출현, 포르노그라피가 사회적 문제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

당시 영국의 교육자이자 문화이론가였던 M. 아널드는 "대충 교육받은 다수가 아닌, 고도로 교육받은 소수가 항상 인류의 지식과 진실의 기관 역할을 해왔다. 말의 진정한 의미에서 지식과 진실은 결코 인류의 대다수가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란 말로 대중사회의 도래를 기존 사회 체제의 붕괴를 초래할 위험 요소로 보았다. 자유주의 사상가 J.S.밀과 A.토크빌은 대중사회가 확대된 민주주의(보통선거)에 의해 수적으로 증가한 (정치적으로 무지하고, 무관심한)대중을 오도하여 선출된 소수 개인의 의지에 따라 민주주의가 변질되는 것을 새로운 전제주의적 횡포로 생각했다.

"보수주의, 자유주의, 사회주의와 같은 '이즘'들은 정치가 교양인의 일이었던 시대에 처음 만들어져, 상대방의 감성과 이성에 호소하는 교육받은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끈질기고 학구적인 의회 토론을 거치면서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었다. 고전적인 '이즘'은 그 사상을 뒷받침하는 철학과 그 이즘들의 강령을 검토함으로써 설명하는 것이 아주 자연스럽다.
하지만 이와 대조적으로 파시즘은 대중 정치 시대에 급조된 새로운 고안물이었다. 파시즘은 세밀하게 연출된 의식과 감정이 가득실린 수사를 적절히 사용하여 사람들의 정서에 주로 호소했다." <본문 53쪽>


대중사회는 출현했으나 대중을 노동계급으로만 해석한 사회주의, 기존 질서에 대한 도전 세력으로 파악한 보수주의, 교육받은 시민들만을 정치 세력으로 인정한 자유주의 모두 대중을 정치권력의 파트너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인정하지 않았다. 대중은 분명한 정치세력이었으나 이들을 단지 무지몽매한 세력으로만 파악한 기존의 정치이념들이 놓친 공백의 틈새를 파고든 것이 바로 파시즘이었다. 파시즘은 대중을 인정치 않거나(보수주의, 자유주의) 반대로 대중이 지닌 보수성을 이해하지 못한(대중은 프롤레타리아트로서의 자의식과 더불어 기존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자 하는 보수성향을 함께 지녔다) 사회주의의 맹점을 파고들었다. 자유주의는 파시즘에 대항할 세력이 없었거나 세력, 대안을 조직화해내지 못했고(무능했고), 보수주의는 사회주의를 견제하기 위한 다른 정치 세력으로 파시즘을 선택했다.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의 하나는 자유주의 질서의 위기였다. 파시즘이 암실에서 나와 공적인 무대로 가장 쉽게 진출했던 곳은 기존 정부의 기능이 형편없거나 아예 전무했던 곳이었다. 파시즘에 대한 토론의 장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내용은 파시즘이 자유주의의 위기를 기반으로 삼아 번성했다는 사실이다. ...<중략>...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 유럽의 주요 국가들은 자유주의 정권이 확립돼 있었거나 자유주의 체제 확립으로 나아가던 중이었다. 자유주의 정권은 개인은 물론이요 집권당의 경쟁세력인 여러 정당에도 자유를 보장해주었으며, 시민들이 선거를 통해 정부 구성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도록 했다. 자유주의 정부는 또한 시민과 기업에 광범위한 자유를 허용했다. ...<중략>... 이런 유형의 자유주의 국가는 1차 세계대전 중에 사라졌다. 전면전을 수행하려면 정부의 강력한 조정과 규제가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전쟁은 끝났으나 자유주의 정부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전쟁 이후 밀어닥친 여러 갈등, 위기, 긴장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했다. 팩스턴은 이런 현상이 사상적 문제이기 보다는 위기에 처한 "통치의 기술" 문제라 말한다. "좋은 집안 출신의 교육을 잘 받은 사람들이 사회적 명성과 존경에 의지해서 선거에 계속 당선되어 나라를 다스리는 명망가의 지배" 자체가 문제였다는 것이다. 이제 정치가들은 좌우를 막론한 누구든 대중선거에 대처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보수주의, 자유주의 정치 거물들이 대중을 경멸하고 멸시하는 동안 파시스트들은 대중정치를 이용해 좌파에 대한 정치적 타격을 입힘과 동시에 기존 사회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노동계급을 장악하는) 능력을 보여 주었다.

오늘날 "파시즘"의 정권 장악엔 필연적으로 "대중의 동의"가 뒤따랐음을 지적하는 것이 일종의 유행처럼 되었다. 물론 이런 지적이 전적으로 틀린 것이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파시즘의 등장을 대중의 동의 탓으로 밀어 붙이려는 시도는 그 자체로 과거의 잘못과 오류를 반복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대중을 파시즘의 정치적 동반자로 부각하려는 시도, 그 자체가 궁극적으로는 과거 자유주의 엘리트 지식인들이 대중을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서만 움직이는, 무지몽매한 군중(mob)으로 되돌리려는 시도와 결합하면서 대중을 다시 정치로부터 소외시키게 되는 결과를 빚기 때문이다. 이런 시도들은 과거 박정희 유신 독재, 87년 대통령 선거의 패배의 책임(양 김의 득표가 노태우보다 훨씬 더 상회했음에도)을 대중에게 전가시킨다. 이들은 중요한 사실(fact)을 의도적으로 누락시키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1921년 10월 30일 로마진군을 결정한 무솔리니에게 정권을 넘겨준 것은 대중이 아니라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였다. 이탈리아 국왕은 파크타 총리가 제출한 계엄령에 서명하지 않음으로써 무솔리니에게 정권을 내어줄 결심을 내비쳤고, 실제로도 그렇게 했다. 상황을 결정지은 것은 파시즘 세력이 아니라, 무솔리니에 맞선다면 자신들의 권력이 위험에 처하리라는 보수주의자들의 두려움이었다. 로마진군은 오합지졸의 거리 행진에 불과했으나 효력을 발휘했고, 이탈리아 파시스트들의 성공은 곧바로 독일 나치스를 부추겼다. 히틀러는 1923년 뮌헨 폭동을 통해 보수주의자들이 정권을 헌납하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히틀러의 폭동은 간단하게 진압당하고 말았다. 정부 기능이 아직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보수주의자들은 아직 히틀러를 신뢰하지 못했다.

독일 좌파들은 히틀러가 앞으로도 이탈리아의 방식(쿠데타, 폭동)을 통해 정권 탈취를 노리리라고 방심하고 있었다(다시 내분에 휩싸였다). 히틀러는 쿠데타라는 불법적인 방식의 권력 탈취 기도가 성공하지 못하리란 것을 깨달았다. 히틀러는 합법적인 선거에 참여해 이전과 비교했을 때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다. 그러나 보수주의자들이 히틀러의 힘을 빌어 좌파 세력을 견제하려는 결정을 내리기에 미적거리는 동안 나치당의 인기는 다시 하락하고 있었다. 히틀러가 대중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적은 사실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이런 위기에서 히틀러를 구해준 것은 보수주의자 프란츠 폰 파펜이었다. 그는 정치 초년생인 히틀러를 명목뿐인 수상에 올려놓고, 자신이 부수상에 올라 실질적으로 권력을 장악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아직도 잘못 알려져 있는 경우가 많지만 독일의 유권자들은 나치당에게 과반수의 표를 준 적이 없다. 앞 장에서 보았듯이 1932년 7월 31일에 치러진 의회선거에서 나치당이 37.2%의 득표율을 획득하며 독일 의회에서 제1당의 위치를 차지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후 1932년 11월 6일 치러진 선거에서 지지율은 다시 33.1%로 하락했다. 히틀러가 독일 총리로 임명되어 전 독일을 지배하던 1933년 3월 6일에 치러진 의회선거에서 지지율은 상당히 올랐지만 아직은 미흡한 43.9%에 그쳤다. 나치 돌격대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독일인 2명 중 1명 이상이 나치당에게 반대표를 던진 것이다. 이탈리아 파시스트당은 1921년 5월 15일에 참가한 자유 의회 선거에서 535석 중 불과 35석을 얻는데 그쳤다."  <본문 225쪽>


데틀레프 포이케르트는 "나치시대의 일상사"를 통해 히틀러의 제3제국이 정치적 권력 장악 이후 문화적 헤게모니까지 장악해 대중의 일상까지 모두 손아귀에 넣기 위해 얼마나 대단한 노력을 기울였는지 잘 보여준다. 히틀러의 계획은 노동계급의 일상까지 파괴하고 있으나 동시에 히틀러와 나치의 문화정책의 의도가 대중의 교묘한 저항에 부딪쳐 어떻게 변질되고 좌절되었는지도 잘 묘파해준다. 대중은 히틀러의 문화정책을 교묘하게 비틀었는데, 예를 들어 모든 히틀러 유겐트가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상식과 달리 나치 이념을 전파하는 본래의 목적엔 전혀 관심없는 이들에 의해 장악되어 친교 집단으로 변질되었고, 거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히틀러 유겐트 조직에 반대하는 청소년들(일종의 반항집단화된 하위집단)의 저항을 받아 유겐트 제복을 입고 거리를 돌아다니기 어려운 지경에 처하기도 했다고 한다. 비록 이런 반항이 나치 체제 자체를 붕괴시키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진 못했지만, 최소한 나치 체제의 붕괴를 앞당기거나 대중이 무조건적인 동의를 보냈다는 편견은 시정되어야 한다.

우리에겐 최근의 사태를 맞이해 다시 중요해지고 있는 일본의 우경화의 연원에 대해 팩스턴의 다음과 같은 분석은 의미가 있을 듯 하다. 그는 1920년대 일본의 사례를 들어 일본의 파시즘은 "아래로부터의 파시즘"이 철저하게 탄압당한 반면, 파시즘의 일부를 모방한 위로부터의 파시즘이 존재해왔음을 지적한다.

"제국주의 일본이 파시즘을 모방하였으며 파시즘의 특징을 여럿 보이는 것이 사실이라 해도, 일본식 파시즘은 단일 대중 정당이나 대중 운동이 없는 상태에서 통치자들에 의해 실시되었으며 유럽식 파시즘의 영향을 받은 일본 지식인들을 무시하거나 억압했다. 마치 무솔리니와 히틀러를 타도한 결과로 유럽에서 파시즘이 확립된 것과도 같았다." <본문 446-447쪽>


일본제국의 군국주의 정권은 비록 파시즘 특유의 대중 동원 기술을 사용했지만, 지도자들과 경쟁을 벌일 만한 자생적 대중 운동이 형성되지 못했기에(나는 아직까지도 일본에 있어 진정한 의미의 시민 계급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현재에 이르는 시기까지 - 물론 전후 일본을 통치한 미국의 입장 때문에 철저한 전후 처리가 불가능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 일본의 정치질서는 비록 겉으로는 몇 차례 변동을 겪은 듯 보이지만 정치 권력 체계는 본질적으론 시민사회 혹은 대중사회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본다. 일본을 유럽의 파시즘과 본질적으로 다르게 만든 가장 큰 차이는 사상적으로 파시즘을 따른 것이기 보다 국가가 지원하는 대중 동원을 포함한 국가주의 군부 독재란 점이다. 즉, 유럽에서와 같이 명망있는 기존의 정치가들을 전복시킨 파시스트 세력이 존재한 것이 아니라 명망있는 기존 정치가들이 파시즘을 모방하였고, 그들이 전쟁을 치르고, 전쟁 이후 현재까지 일본에 현존하는 유일한 정치세력이란 것이다. 다시 말해 일본의 정치 세력은 메이지 유신 이후 제국주의 일본, 평화헌법의 일본에서 우경화로 나아가는 현재까지 마치 수백년을 이름을 바꿔가며 살아온 뱀파이어처럼 단 한 차례도 교체되지 않았다.

이제 우리 사회의 문제, 세계화가 진행된 현대 사회의 우리들에게 파시즘은 무엇이며,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는다. 팩스턴은 파시즘이 기존의 다른 정치 이념과 달리 강령이나 어떤 주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집단이기 보다는 권력 그 자체의 쟁취를 위한 것이었으며, 그들이 내세웠던 강령 역시 시시때때로 변화시켜왔음을 지적한다. 그런 까닭에 파시즘은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우며, 팩스턴이 내리는 파시즘의 정의가 비록 협소한 의미의 정의에 불과할지라도 결과적으로 파시즘적인 방식을 모방한 새로운 형태의 권위주의, 군부 독재, 급진화된 민족주의 정치 질서의 출현 자체를 긍정할 수는 없다. 팩스턴은 "파시즘을 제대로 인식하려면 셔츠 색깔을 보거나 20세기 초 반체제적인 국가주의적 생디칼리스트들이 내세운 구호의 메아리를 찾아볼 것이 아니라, 과거에 파시즘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파시즘의 단계를 제대로 파악하고 이해하면 위기에 직면한 정치적 교착상황에서 나타나는 불길한 경고 표지를 더 많이 읽어낼 수 있다. 이 때는 위협을 느낀 보수세력이 적법절차와 법의 지배를 포기할 태세를 갖추고 더 강한 동맹 세력을 찾아 헤매며, 국가주의적이고 인종주의적인 선동을 통해 대중의 지지를 얻고자 한다. 보수파들이 파시스트들의 정치적 테크닉을 빌리기 시작하고 파시스트들의 '결집된 열정'에 손을 내밀며 파시즘 추종 세력을 흡수하고자 할 때 파시스트들은 벌써 권력에 아주 가까이 접근한 것이다." <본문 458-459쪽>

여기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파시즘은 그 자체로도 위험하긴 하지만, 다른 정치 세력과 결합되지 못하고 고립되어 있는 상태로 존재할 때, 기존의 정치 세력이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 있는 동안엔 마치 휴면에 들어간 바이러스처럼 미미한 존재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들의 정치적 효용에 눈뜬 보수세력과 결합할 때, 파시즘은 가장 두려운 존재가 된다.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점은 바로 그 점이다. 더군다나 오랫동안 국가주의, 민족주의를 주창하던 군부독재와 기묘한 동거를 자청했던 우리 사회의 보수주의자들, 그들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

* "파시즘"은 매우 좋은 책이고, 부피에 주눅들지만 않는다면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 가운데 일반 독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단 한 군데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중간 몇 부분에 다소 어이없는 교정실수들이 보인다는 점은 옥의 티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 책의 180쪽 13번째 줄엔 "그러나 신당은 1931년 10월 선거에 단 하나의 의석도 없지 못했다."란 문장이 있는데, "얻지 못했다"가 맞을 것이다. 나중에 개정판이 나올 수 있을 만큼 이 책이 많이 팔리길 바란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이전버튼 1 이전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