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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7.11 이문재 - 푸른 곰팡이


푸른 곰팡이


- 이문재



아름다운 산책은 우체국에 있었습니다

나에게서 그대에게로 편지는
사나흘을 혼자서 걸어가곤 했지요
그건 발효의 시간이었댔습니다
가는 편지와 받아 볼 편지는
우리들 사이에 푸른 강을 흐르게 했고요


그대가 가고 난 뒤

나는,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것 가운데
하나가 우체국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우체통을 굳이 빨간색으로 칠한 까닭도
그때 알았습니다.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기 위한 것이겠지요.


*


'시간'은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 혹은 '템푸스(Tempus)'로 구분될 수 있다. 크로노스는 객관, 물리적 의미의 시간이고, 카이로스는 주관, 감정적 의미의 시간, 다시 말해 시간을 감지하는 자신이 의미를 느끼는 절대적 시간이다.


아프리카의 스와힐리족들은 사사(sasa)와 자마니(zamani)라는 독특한 시간 관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들이 죽은 이를 기억하는 한, 죽은 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여전히 '사사'의 시간 속에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를 기억하는 이들마저 모두 죽어서 더이상 기억해줄 사람이 없을 때 망자는 비로소 영원한 침묵의 시간, 즉 자마니로 떠나게 된다.


이처럼 '크로노스의 시간'엔 인간의 의지가 개입할 수 없지만 '카이로스(템푸스)의 시간'은 죽음마저도 초월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시인 이문재의 표현을 빌자면 그건 아마도 '발효의 시간'일 것이다. 추억도 초고속으로 팔아먹는 세상을 경고하는 데 '빨간색 우체통'만한 것도 없으리라. 빠르게 살아서 빠르게 잊혀지던지 느리게 살아서 오래도록 기억되던지 그건 관계 속에서 생성되는 시간이다. 오래도록 곱씹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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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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