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역사』 - 버나드 로 몽고메리 | 승영조 (옮긴이) | 책세상(2004)


개정증보판의 의미

이 책은 지난 1995년 두 권으로 분권되어 같은 출판사에서 출판된 적이 있다. 나는 구판을 가지고 있었는데 동생이 사학과에 진학하는 바람에 큰 맘 먹고 몇 권의 역사 관련 서적들을 동생에게 넘기면서 그 때 이 책도 함께 넘겼다. 예전에도 한 차례 이 책에 대해 리뷰를 쓴 적이 있었다. 당시엔 너무 짤막하게 썼기 때문에 아쉬움이 있어서 이번에 다시 한 번 리뷰를 쓰려고 결심하게 되었다. 어찌보면 같은 책에 대해 두 번의 리뷰를 하는 셈이다. 어떤 이는 왜 같은 책을 두 번 사는가? 혹은 출판사에서 무엇 때문에 개정증보판을 내는가?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때의 개정증보판은 중복출판과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이를 출판이란 맥락에서 간략하게 이야기해보자. 모든 책에는 판권이란 것이 있다. 여기에 보면 "판과 쇄"란 말이  나온다. 책을 만드는 일도 사람이 하는 일이므로 아무리 공을 들인다 하더라도 실수가 있을 수 있고, 경우에 따라 작가나 편집자가 수정보완할 필요를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열악한 출판환경에서 대개의 책들은 초판 이후를 기약할 수 없는 실정이다. 설령 인기가 좋아 초판이 모두 판매된다 하더라도 초판의 실수를 수정보완해서 다시 책을 만드는 건 상당한 비용이 들기 때문에 출판사들이 쉽사리 이런 작업에 나서지 못한다(성의있는 편집자가 출판되어 나온 책을 다시 교정해두거나 독자들이 읽다가 지적해 준 오식이 있더라도 개정판을 만들기 전엔 수정되지 못한다). 우리나라 출판 사정상 재판이라는 건 모 유명작가들의 장편 소설을 출판사를 바꿔 출판할 때나 하는 일처럼 되어 있다. 출판사에서 수정증보판을 만드는 건 독자들에 대한 일종의 리콜 서비스와 같은 것이지만 불행히도 우리에겐 이런 관행이 일반화되어 있지 못하다.

나는 전쟁의 역사 1995년 판 초판본과 개정판 1쇄를 가지고 있다. 개정판이 이전 판본과 다른 점은 일단 분권되었던 책이 하나로 묶여 더욱 두툼해졌다는 것이고, 하드 커버 양장본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물론 지질이나 기타 도판류들이 보다 많이 추가(일일이 대조는 해보지 않았지만, 이전 도판들보다 확실히 사이즈면에서 커졌다)되었고, 초판본에서 보이던 몇몇 오식들을 바로 잡았다. 그렇다고 개정판에 오식이 전혀 없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예를 들어 개정판 276쪽의 편집자 주에서 <롤랑의 노래>에 대한 설명 중 다음과 같은 대목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1100년경에 지어진 프랑스 최초의 서사시이자 최고.최대의 무훈시. 롤랑은 샤를마뉴의 이름이다." 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롤랑"은 "샤를마뉴 대제"와 별개의 인물이다. "롤랑의 노래"에 등장하는 롤랑은 샤를마뉴 대제가  이슬람교도들과 전쟁할 때 그의 군대에서 활약한 기사 롤랑을 의미한다. 간략하게 내용을 설명하자면 이슬람교도와의 전쟁 당시 그들과 내통했던 간신 가늘롱이 샤를마뉴 대제의 군대를 곤경에 빠뜨려 후퇴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데, 가장 위험한 임무인  후위 부대 지휘를 왕의 충성스런 신하 롤랑이 자원한다. 가늘롱은 이교도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 그를 위기에 빠뜨린다. 샤를마뉴는 그에게 뿔피리를 주어 위험에 빠지면 자신을 부르라고 말한다. 하지만 롤랑은 마지막 순간까지 왕을 생각해 뿔피리를 불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대신 뿔피리를 불어 되돌아온 샤를마뉴 대제에 의해 간신은 처벌당하지만 롤랑은 이미 죽었다는 내용이다. 롤랑이 실존인물인지는 정확치 않지만 샤를마뉴 대제와는 확실히 별개의 인물이다.

그러나 이런 지적들은 개정증보판이 지니고 있는 여러 미덕들에 비하면 대단한 것은 아니다. 이 책은 무려 1,038쪽에 이르는 두툼한 책이기 때문이다. 거의 금성판 국어대사전 특장판과 맞먹는 두께다. 가끔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만큼 무지막지한 번역과 편집자의 무뇌충적인 교정교열 작업으로 망가진 책들을 볼 수 있다. 그런 경우를 제외하면 솔직히 우리나라 띄어쓰기, 맞춤법은 국어학 박사라 하더라도 완벽하게 구사하기 어렵다(이 말은 믿어도 된다, 흐흐)는 문제가 있다. 개정판은 이전의 책에서 보다 확실히 오식이 줄었고(이전 책도 오식이 많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이 책의 장점인 풍부한 편집자주와 찾아보기, 지도와 도판, 참고문헌들이 충실하게 보강되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전쟁이 벌어졌던 현장의 지도를 부록으로 뒤에 좀더 큼지막한 그림으로 삽입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하여튼 나는 "책세상"이란 출판사와는 개인적으로 독자 이상의 관계를 맺어본 적이 없지만 "책세상"이란 출판사를 좋아한다. 좋아하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지만 그 중 하나는 이 출판사에서 새로운 번역으로 "니체 전집"과 "까뮈 전집"을 내고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책세상 문고"라는 문고본을 출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서가들 말고, 애독자들 중 많은 이들이 문고본의 필요성을 느끼며 일본의 "이와나미 문고"나 프랑스의 "디스커버리 총서" 시리즈와 같은 것들을 떠올리며  부러움을 금치 못하는 경우를 종종 보아왔다. 그러나 문고본은 관리 및 영업의 어려움 등으로 출판사들의 외면을 받아왔다. 출판사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건 당연하지만 출판이란 동시에 문화적 사명감이 필요한 사업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난 책세상 출판사가 이 둘 사이의 균형을 잘 유지하는 좋은 출판사로 생각한다. 게다가 책 값이나 올릴 요량으로 얇팍한 소설책을 하드커버 양장본으로 개정해 출판하는 곳들이 수두룩한 이 때 진짜배기 개정증보판을 내는 출판사는 또 얼마나 드문가?

이 책의 저자 버나드 로 몽고메리 (Bernard Law Montgomery) 는 어떤 사람인가?
만약 군대를 컴퓨터 게임 "FIFA2002"에서처럼 심리적 부담감 없이 고를 수 있는 거라면 난 단연 영국군을 내 팀으로 고르고 싶어 할 것이다. 물론 실제로 내가 좋아하는 축구팀은 독일팀이다. 내가 영국군을 좋아하는 이유는 축구에서 내가 독일 축구를 좋아하는 것과 흡사하다. 얼핏 보면 독일축구엔 브라질 축구처럼 빼어난 기교도, 프랑스나 네덜란드 축구처럼 토탈 사커니, 아트 사커니 하는 수식이 어울리지 않는다. 그네들 축구는 때로 무미건조할 만큼 덤덤하고, 재미없지만 축구의 정석 플레이, 기본에 충실한 축구를 한다. 축구장 전체를 골고루 사용하여 공격하고, 수비할 때도 특별히 허슬플레이를 한다기 보다는 공의 방향, 공격수의 움직임을 미리 예측하고 봉쇄하는 방식이다. 물론, 전쟁사를 살펴볼 때 영국군이라고 해서 어처구니없는 실수나 혐오스러운 실책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크게 보았을 때, 영국군은 모범생이나 천재의 그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종국에 가서는 모범생이나 천재들을 능가하는 성실함과 인내력으로 승리한다. 전사를 살펴보면 영국이 승리한 전투도 많지만 그네들이 패한 전투도 무척이나 많다. 그럼에도 영국군이 패배한 전쟁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결과를 나는 그런 힘에서 찾는다.


▶ 1942년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롬멜이 지휘하는 아프리카 군단과의 전투를 승리로 이끈 몽고메리 장군


굳이 몽고메리의 전쟁사를 살펴보지 않더라도 세계사에서 영국군 만큼 보병을 사랑한 군대도 드물 것이다. 그들이 "백년전쟁"에서 우세한 프랑스 기병을 패퇴시킨 것 역시 보병의 힘이었고, 제1차 세계대전에서도 영국 보병들은 우수했다. 군대의 기본이 보병이라면 그에 가장 충실한 군대 역시 영국군이다. 물론 여기엔 그네들이 인도와 인도네시아, 아프리카를 식민지화하면서 저지른 전쟁 범죄를 논외로 한 표현임을 전제로 해서 말이다. 우리에게 "몽고메리 장군"은 소위 "고집 센 몬티"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렇게 보인 까닭 중 상당수는 역시 미군을 중심으로 한 할리우드의 전쟁 영화들이 만들어 낸 것이기도 하다. 영화 "패튼대전차 군단"을 보면 패튼과 몽고메리가 시칠리아 점령 과정에서 서로 경쟁하는 과정이 잘 드러나 있는데 역시 미국적 시각에 의한 것이다. 물론 팔레르모를 먼저 점령한 건 패튼이었다. 하지만 롬멜이 지휘하던 독일 아프리카 군단을 시칠리아까지 밀어낸 건 몽고메리였고, 그때까지 미군은 아주 멀리 있었다.

장군으로서 몽고메리에게 가장 빛나는 경력은 롬멜의 탁월한 지휘에 압도당해 영국군이 연전연패를 거듭하던 북아프리카 전선의 승세를 일거에 뒤바꿔버린 엘 알라메인 전투의 승리일 것이다. 그는 1887년 영국 국교회 주교의 아들로 태어나 일평생 성서를 탐독하고 절대적 금주가였다. 철저한 빅토리아풍 교육을 받고 성장한 그이지만 왕립 샌드허스트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해서는 학우의 셔츠에 불을 지른 사건으로 학교 당국의 처벌을 받은 적도 있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서 큰 부상을 당해 빈사 상태에 이른 적도 있었다. 39세의 나이로 베티 카버와 결혼했으나 결혼 생활 10년 만에 아내가 벌레에 물린 상처로 전염병에 걸려 사망하자 평생 재혼하지 않았다. 몽고메리는 헌신적인 아버지였으나 군인으로 임지에 따라 이동해야 했기에 아들 데이비드를 교장 선생집에 맡겨 그 집에서 따뜻한 가정의 정믈 맛보게 하려 했고, 교장 선생에게도 특별히 그 점을 간곡히 당부했다고 한다.



▶ 롬멜에게 연전연패하며 사기가 바닥까지 떨어진 북아프리카 전선의 영국군 제8군 사령관으로 부임한 직후부터 그는 부하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군기를 엄정하게 다루면서 최종적인 승리를 거머쥘 엘 알라메인 전투에 이를 때까지 훈련에 훈련을 거듭했다.

그런 그가 북아프리카 전선의 제8군 사령관이 된 것은 1942년 8월 12일이었다. 그는 다혈질이었고, 가시돋친 말을 인정사정없이 내뱉는 수다스런 다변가요, 그 자신은 틀에 얽매이기 싫어하면서도 부하들에게는 사막 한 복판에서도 엄정한 군기와 군율에 따르도록 했던 장군이었다. 몽고메리는 무슨 일이든 자신이 결심한 대로 밀고 나가는 다부진 장군이었지만, 당시 54세였던 몽고메리로서는 처음으로 이렇게 중요한 임무를 맡는 것이었다. 그가 맡은 영국 제8군은 롬멜에게 1년 동안 연전연패한 만신창이 군대였고, 사기는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병사들은 롬멜이 지휘하는 한 독일군에게 이길 수 없다고 믿었고, 영국군 총사령부가 있던 이집트 카이로에서는 연일 전해지는 패전 소식에 기밀 서류를 불태우고, 피난 보따리를 꾸렸다. 몽고메리는 최전방에 부임하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 이후 제8군은 진지를 1m라도 적에게 넘겨주지 않는다. 각 부대는 현 위치에서 싸운다. 현위치가 당신들의 무덤이다."


그는 부하들에게 매우 엄격했고, 사막 한 복판에서도 참모들은 정시에 시작하는 식사 시간에 언제나 단정한 복장을 하고 나타나야 했다. 그는 부하들을 다시 훈련시켰고, 용기를 북돋았다. 병사들은 부드럽고 성격 좋은 장군 보다 혹독하게 대하더라도 전쟁에서 승리하게 해주는 장군을 더 좋아했다. 왜냐하면 전쟁은 축구가 아니기 때문에 패한 결과로 지불해야 할 것이 자신의 목숨이라는 걸 잘 알았기 때문이다. 몽고메리는 후방인 런던의 다우닝가 1번지로부터 연일 쏟아지는 반격 독촉에도 불구하고 병사들에게 더 많은 휴식과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섣부른 반격에 나서지 않았다. 정치적 압박으로부터 초연한 그는 점차 병사들의 인정을 받게 되었고, 결국 롬멜은 그가 파 놓은 함정으로 끌려들어가 패하고 말았다(물론, 밀리터리 매니아들은 늘 이런 문제를 가지고 상반된 의견을 내 놓는다). 그는 마치 삼국지의 육손처럼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독일군을 220km나 후퇴하게 만들었고, 결국 퇴니지에서 독일군의 항복을 받아 북아프리카에서의 전쟁을 끝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후 독일 내 영국 점령지의 사령관을 거쳐 영국군 참모총장, 나토의 유럽 연합군 최고사령부 부사령관을 지냈고, 참모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여러 권의 책을 냈고, 1976년 세상을 떠났다.

전쟁의 역사
"인류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란 표현은 진부한 만큼 진실이다. 나는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이때의 사람이란 말은 아마 "인류"라는 말로 대치할 수 있을 것이다. 즉, 한 개인으로서의 인간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크게 보아 인류의 본성도, 늑대나 개의 본성 만큼이나 변하지 않는 그들만의 본능을 지니고 있으리란 믿음이 그것이다. 만물의 영장으로서의 인류란 말에 대해 나는 눈곱만치도 신뢰를 보내지 않는다. 인류가 배움을 통해 무언가를 배운다면 문자 이래로 기록된 그 많은 비참한 죽음들이 번번이 재현될리 없지 않은가?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 200년의 아이들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고 한다.

"어느 시대나 정치, 실업계, 매스컴에서 권력을 쥔 자들은 계획하고 가르치고 하나의 방침을 교육해서 그대로 따라오는 '새로운 사람'을 만들려고 해왔다. 나치 독일이 그랬고, 내가 열 살 때 전쟁에 질 때까지의 일본도 그랬단다. 그러나 이런 국가는 주변 국가들을 비참하게 만들고는 결국 패망했어. 내가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런 틀에 박힌 인간과는 다른 홀로 설 줄 알지만 협력할 줄도 아는 진짜 '새로운 사람'이 되어주었으면 한다는 거다. 어떤 '미래'에서나 말이다."

우리나라는 늘상 전쟁의 위험 속에 살아온 탓인지  아니면 혹독한 군사독재 시절을 거쳐 온 반발 심리 때문인지 "전쟁사"에 대한 출판물이 그다지 많지 않은 편이다. 평화에 대한 염원과 필요성이 그 어떤 민족보다 클 것임에도 불구하고 늘상 전쟁의 공포 속에 놓여 있었던 탓에 아니, (군사)국가주의와 (극우)민족주의 아래 놓여 있었던 탓에 "반전평화"운동을 마치 덜 배운 어린 아이들,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들의 배부른 소리로 치부하려는 경향이 있다. 전쟁과 평화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음을 알지만, 알고 싶지 않은 아니, 외면하고 싶어 했다. 국내에 존 키건의 『세계전쟁사』를 비롯해 몇 권의 전쟁사가 번역 출판되거나 육사에서 펴낸 책이 있지만 대중적으로 널리 읽히지 않는 것, 간혹 읽더라도 밀리터리 매니아들의 취미 용도 이상이 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몽고메리의 『전쟁의 역사』는 우리가 구해 읽을 수 있는 전쟁사 관련 도서들 중 가장 대중적이고, 잘 만들어진 책이다. 아마도 그런 장점 때문에 이 책의 개정판까지 나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제2차 세계대전 초반 영국을 제외한 서유럽 전역을 석권한 나치 독일로부터 최후까지 저항하여 마침내 승리에 이른 영국이었지만 제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신화는 저물고 있었다. 영국군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던 몽고메리 장군의 숙적은 롬멜뿐만 아니라 아군 가운데에서도 있었으니 그가 바로 조지 패튼 장군이었다. 두 사람은 전쟁 막판까지 자존심을 건 치열한 경쟁으로 전공을 다투었다.

전쟁에 대한 역사서로서 이 책은 고대 전쟁으로부터 한국전쟁 이전까지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만약 그 뒤의 전쟁 사에 대한 책을 찾는다면 구태여 이 책을 읽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이 책은 20세기 들어 가장 엄혹했던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다루고 있고, 그 이후 벌어진 다른 전쟁들 역시 이들 세계대전의 결과에 기인하거나 그 이전의 체제들로 인해 빚어진 것들이다. 그러므로 이후의 전쟁들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싶다면 역시 이 책을 미리 읽어두는 것이 좋다. 이 책은 모두 7부 25장의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전쟁의 본질"은 전체의 서두 역할을 하고, "제2부 고대 전쟁"부터 "제6부 1815-1945년의 전쟁"까지는 이 책의 본문인 전쟁사에 해당한다. "제7부 불가해한 숙명"은 이 책의 에필로그격이다.

이 책의 어쩔 수 없는 한계 혹은 필자의 한계라 할 수 있는 아쉬움이 남는 부분은 이 책의 전체 분량과 주목한 부분에서 대체로 동양에 대한 언급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관점에서 보자면 너그럽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이 책의 저자인 몽고메리가 빅토리아 시대 말엽에 태어나 그가 교육받고 성장하여 보낸 인생의 전성기를 서구제국주의 전성기로부터 몰락기에 해당하는, 다시 말해 식민지 국가들의 독립과 해방 이전 시기를 보낸 인물이라는 사실에 주목해 주어야 한다. 게다가 오늘날에도 동양에 대한 서구의 인식은 미미하기 그지 없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이를 몽고메리 개인의 잘못으로만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시대적 한계를 생각해본다면 이 책에서 동양이 아주 무시당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전쟁사를 언급하는 부분에서 몽골과 중국, 일본 그리고 인도를 중심으로 다룰 수밖에 없는 것은 말이다. 그 나름대로는 중국의 손자나 몽골의 징기스칸, 한국의 이순신 등에 대하여 각별한 존경을 표한 셈이다.

몽고메리는 이 책의 661쪽에서 662쪽에 걸쳐 "조선에는 이순신이라는 뛰어난 장군이 있었다. 이순신 장군은 전략가, 전술가, 탁월한 자질을 지닌 지도자였을 뿐만 아니라 기계제작에도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중략>...일본 선원들은 용감하게 싸웠으나 이순신 장군의 철갑 전함(거북선)에는 저항할 수 없었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뭐 그렇더라도 여전히 불만은 남겠지만 전쟁사에 여러 페이지에 걸겨 많이 기록된다고 썩 좋은 일도 아니지 않나? 흐흐)

솔직히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이유는 앞서 언급한 여러 장점들에도 있지만 한 명의 직업 군인이 평생 전장을 거쳐 살아오며 경험하고 느낀 진솔한 전쟁관과 평화관이 이 책 곳곳에 묻어있기 때문이다. 물론 장군들이 쓴 전쟁회고록이나 제너럴십에 대해 군사평론가들이 말한 책은 이미 많이 있다. 그러나 많은 책들이 일종의 회고담에 그치거나  출세기, 실증적인 전사 검토에 그치는데 반해 이 책에는 우리가 전쟁을 배워야 하는 이유가 전쟁 그 자체를 효율적으로 좀 더 잘 치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평화롭게 살아갈 것인가를 배워야 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는 미덕이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매우 좋은 책이다.

몽고메리는 "전쟁의 본질"편에서 전쟁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전쟁은 왜 일어나는가? 더러는 전쟁이 문명의 소산이라고 말할 테고, 더러는 전쟁이 인간의 타고난 본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즉 합의를 도출할 다른 방법이 없을 때 항상 중재자 역할을 한 것은 다름 아닌 전쟁이었다는 것이다. 전쟁이 내린 판결은 정의보다 힘에 기초한 것이었다. <46쪽>

전쟁이란 경쟁 관계에 있는 정치 집단 간의 장기 무장 충돌을 의미한다. 전쟁에는 반란과 내란이 포함되며, 개인적인 폭동이나 폭력행위는 제외된다.<47쪽>"


그는 전쟁의 승자가 곧 정의라고 주장하지 않으며 그건 영국군도 마찬가지였음을 솔직히 인정한다. 우리는 최근 이라크 파병 문제와 관련해 스스로를 오랫동안 자유주의자로 자처하던 어떤 지식인이 국회의원이 된 뒤 "국가이성"에는 도덕을 물을 수 없다고 주장하며 파병을 두둔했던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서구에서 자유주의가 파탄난 것은 자유주의 덕목 자체가 파탄났기 때문이 아니라 자유주의자들이 너무나 손쉽게 보수화하는 경향을 보였기 때문이다). 몽고메리는 전쟁을 수행하는 국가를 단지 "정치 집단'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물론 우리의 생존 목적을 "국가와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고 믿는 이들에게는 불경스러운 일이겠지만, 그는 전쟁을 수행하는 국가에 대해 단지 정치집단으로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최근에 나온 "헌법의 풍경"이란 책에서 저자 김두식은 이렇게 말한다. 헌법의 기본권 정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정신에서 출발한다.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사상과 신앙, 표현의 자유는 인정되어야 한다. 권력자들이 "인정한다, 그러나"라며 필요에 따라 개인의 기본권을 규제하면 국가가 괴물로 돌변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면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지금 어떤 나라가 괴물이냐'라는 것이 아니다. 국가란 본디 언제든지 괴물로 변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이 중요하다"라고 말한다.

"서구 중세를 통틀어 일개 국가의 인력은 그다지 중시되지 않았다. 전투 때는 노예들이 소모품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14세기에 흑사병으로 알려진 일련의 전염병이 돌자, 인력이 귀해져 노예의 경제적 가치가 커지게 되었다. 그때부터 노예는 생명이 보호되어야 했고, 더 이상 소모품으로 사용될 수가 없었다. 현대에 있어서 한 국가가 전쟁을 치를 때 무장 병력 중 사병은 직업 육군이나 해군이나 공군이 아닌 민간인으로 채워진다. 그런데 민간인들은 결코 그러길 원치 않는다. 현대의 사병은 지난날의 노예나 용병들과는 딴판이다. 즉, 그들은 교육을 받았고, 사고할 수 있고, 식별할 수 있으며, 비판할 태세가 되어 있다.... 중략 ..... 현대전은 총력전이다. 또 몇 세기에 걸쳐 대단히 복잡해진 현대전은 한 국가의 활동과 존속 자체를 좌우할 정도여서, 과거와 달리 이제는 국가 전체의 사기가 중요해졌다. 그것은 필수적이다. 징용과 용병의 시대에는 국가적 전쟁에 종사하거나 전투를 하는 사람이 비교적 소수였다." <56-57쪽>


프랑스의 정치가 탈레랑은 "전쟁은 너무 심각한 일이라서 군인들에게 맡겨둘 수가 없다"고 말하지만 그와 같은 이유로 몽고메리는 "전쟁은 너무 심각한 일이라서 정치가들에게 맡겨둘 수가 없다"고 말한다. 물론 이때의 몽고메리가 말한 것은 군인과 정치가 모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뜻일 게다. 우리는 앞서 몽고메리가 말한 것을 기억해야 한다. 전쟁은 너무 심각한 일이기 때문에 군인과 정치가에게만 맡길 수 없다. 더군다나 현대의 전쟁은 총력전이기 때문에 더더욱 시민사회의 감시 아래 놓여야 한다.

몽고메리는 전쟁의 여러 이유 중 하나, 특히나 현대전에서 두드러진 특징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빈번한 전쟁에 대한 또 다른 근본적 이유로 집단에 소속하려는 인간의 뿌리 깊은 욕망을 들 수 있다. 한 사회 안에서 충성심이나 집단의 주체의식, 애국심과 같은 것이 발전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이웃 집단에 대해서는 배타적이고 적대적이게 된다. 라틴어 hostis가 '이방인'과 '적'을 동시에 뜻한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지상의 다양한 민족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남다른 문화에 강하게 집착하는 경향이 있으며, 그러한 문화와 군사제도는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다. <83쪽>


라틴어로 이방인과 적이 같은 단어로 표현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장군을 만나기는 동서양을 모두 통틀어 보더라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배타적인 마음, 조직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 민족주의, 국가주의, 국수주의가 바로 타인에 대한 잔학 행위로 나타났었음을 우리가 "전쟁의 역사"에서 교훈으로 얻을 수만 있다면 평화의 발명에 더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는 25장 "에필로그 - 평화라는 이상"에서 예레미야서를 인용하여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모두가 거짓을 행하며, 평화롭다, 평화롭다 하나 평화가 없도다"라고 말한다. 분명 문명은 진보했고, 지난 2000년 동안 모든 선량한 사람들이 마음속 깊숙이로부터 평화를 갈구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20세기에 이르러 역사상 가장 잔혹하고 가장 혼란스러운 시대를 경험했다. 우리는 국가간의 전면적인 야만 상태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 숱한 시간들을 전장에서 보내고 전쟁을 연구한 학자로서 몽고메리는 말한다.

"진정한 군인은 타인을 적으로 삼지 않고, 인간 내면의 야수를 적으로 삼는다. 한 군인으로서 나는 희망한다. 황금빛 노을이 지고 반목과 싸움을 잠재우는 소등 나팔소리가 울리는 그날이 오기를. 이윽고 찬란한 태양이 솟아오르며 세계 온 나라의 친선과 평화를 깨우는 기상나팔 울리는 그 시대가 오기를."


아무리 많은 숫자의 군대라 할지라도 항상 승리를 거둘 수 없으며, 국민들의 마음을 영원히 장악할 수도 없다고 말이다. 평화를 애호한 사람들은 자유와 정의를 위해 싸웠다. 자유와 정의가 없으면 겁 많고 노예화된 사람들에게 평화가 주어졌다 한들 그 평화는 지상의 지옥과 같았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화는 인간 내면의 야수와 싸워 얻은 평화이며, 만일 그 평화를 쟁취하고 유지한 미덕들이 상실된다면 평화는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평화는 실천이라는 미덕과 함께 해야만 지켜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세대는 20세기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평화를 발명해내야 하는 도덕적 책무를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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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한국전쟁 - 끝나지 않은 전쟁, 끝나야 할 전쟁』 - 박태균 / 책과함께 / 2005년


현재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로 있는 박태균 선생의 책 『한국전쟁 - 끝나지 않은 전쟁, 끝나야 할 전쟁』을 읽으며 처음 들었던 생각은 나와야 할 책이 나왔다는 것이다. 우리 역사를 이야기하며 수백 번에 이르는 외침을 이야기하지만, 한국사적으로가 아닌 국제사적으로 의미가 큰 전쟁이라 한다면 고구려와 수의 전쟁, 제1차 조일전쟁이라 할 수 있는 임진왜란, 그리고 현대에 들어와서는 한국전쟁이다. 현재에 와서는 어느 정도 ‘한국전쟁’이라고 정리되는 듯한데, 사실 한국전쟁만큼 많은 별칭으로 불린 전쟁도 많지 않을 것이다. 동란이나 사변이란 명칭은 어느 정도 관변화된 명칭이라 할 수 있고, 학문적으로 중립적이라 할 수 없기에 요사이는 대개 ‘한국전쟁’으로 정리되고 있다. 


사회학자 김동춘은 얼핏 보면 사변이나 동란보다는 가치중립적으로 보일 수 있는 명칭인 ‘6.25’에 대해 의미 있는 분석을 가하고 있는데(『전쟁과 사회』, 돌베게), ‘6.25’라는 개념 규정 속에는 이미 “상기하자 6.25 무찌르자 공산당”이란 구호로 집약되는, 즉 전쟁 책임자가 누구냐? 그것을 끊임없이 되새김질하도록 강제하는 요소가 잠재해 있다고 말한다. 그 결과 온 나라가 전쟁 개시 일자인 6.25를 기념하고, 서울 한복판에 전쟁기념관을 세워놓고 이를 (평화가 아닌) 기념하는 기이한 결과를 만들었다. 전쟁 개시일은 기억하고, 기념해도 휴전일을 기억하는 이들은 없는 심리 구조는 우리 사회를 늘 전시체제로 몰아가고, 전시체제 혹은 전시동원체제는 군부독재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모든 억압을 안보로 치환하여 합리적인 것으로 만들어내는 기이한 심리 구조를 만들어 낸다. 한국에서 태어난 모든 이들을 잠재적인 노이로제 환자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우리가 한국전쟁에 대해 고민해야 할 부분은 우선 이런 의식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나 자신의 심리구조는 이미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가를 먼저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책 제목에서도 드러나고 있듯 한국전쟁은 끝나지 않은 전쟁이다. 종전 협정이 아닌 휴전 협정이라는 정치현실만의 문제가 아니라 예전의 동국대 강정구 교수 파문에서도 알 수 있듯 한국전쟁은 현재 우리 사회, 남북한 모두에게 있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도 현재 진행형의 전쟁이며, 우리 사회의 지배질서를 구축한 이들의 마음속은 여전히 전시(戰時) 상황이다. 남북한의 지배계급들은 비록 이념적으로는 큰 편차를 보이지만, 분단 상황을 그들의 지배이데올로기를 공고하게 만드는 데 이용했다는 점을 놓고 보자면 분단의 주범까진 아니더라도 종범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박태균의 글들을 평소 여러 차례 접해왔고, 그의 입장을 대체로 알고 있는 편이므로 과감하게 입장 정리를 시도해보면 우선 박태균은 이념적으로 좌우를 막론하고 특정한 정치적 패러다임에 의존한 역사해석을 지양하는 편이다. 그것이 실질적으로 얼마나 중립적이고 가능한 일일까 의문을 품을 수 있지만, 최소한 나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는 나름대로 성공적인 편이다. 최소한 표면적으로라도 그러하기에 박태균의 『한국전쟁』을 놓고 불필요한, 소모적인 논쟁은 벌어지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두 번째, 박태균의 개인 이력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지만 그는 역사 대중화라는 쉽지 않은 일을 비교적 꾸준하게 진행해 온 학자다. 그는 <인물현대사>와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등의 방송 프로그램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그의 주 전공이라 할 수 있는 우리 근현대사의 묻혀버린 인물과 사건들을 재발견하는데 일조해 왔다. 이 책 『한국전쟁』 역시 그런 역사 대중화 작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것이다. 따라서 이 책에서 한국전쟁에 대한 기존의 학설을 뒤집는 새로운 주장이 제기되거나 하지는 않는다.


한국전쟁에 대한 여러 편견들을 빚어낸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개인적인 생각 중 하나는 지나치게 일국사적인 관점에서 한국전쟁에 접근하고 있다는 것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때 일국사적인 관점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전쟁이란, 그것도 세계 여러 나라가 참전하고,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전쟁을 동란이나 사변의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은 그 자체로 감정적이란 한계가 있으며, 객관적인 역사서술을 어렵게 만드는 한계로 작용한다. 그런 차원에서라면 강정구 교수의 접근 방식도 이런 혐의로부터 완전히(대체로 자유롭지만 일부는) 자유로울 수 없다. 또 한 가지는 전쟁을 바라보는 관점을 지나치게 협소하게 만들어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미국을 비롯한 러시아(당시 소련), 일본, 중국의 역학관계를 제대로 바라보기 어렵게 만든다. 한국전쟁에 대한 감정적 찌꺼기, 이념적 혼란을 거둬내고 바라본다면 한국전쟁은 기본적으로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 지배와 대소련 봉쇄 정책을 실행하기 위한 미국의 이해관계와 소련의 이해관계가 충돌하여 그 주된 전장을 한반도로 삼은 국제전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을 좀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미국의 서부개척의 역사가 완료된 이후 지속적으로 태평양 진출을 꾀한 미국의 동아시아  지배전략과 맞물려 있다. 미국은 태평양 진출의 교두보로 하와이를 병합하고, 필리핀을 식민화한 뒤 잠시 숨 고르기를 한다. 이때 미국은 유럽의 식민 헤게모니 대결이 결국 무력을 이용한 전쟁(제1차 세계대전)으로 발전하면서 사실상 세계 유일의 열강으로 떠오른다. 결국 미국은 일본과 아시아 패권을 놓고 태평양 전쟁을 치른 뒤 오키나와를 점령하고, 일본을 그들의 입맛에 맞도록 아메리카나이제이션하여 최종적인 경쟁에 승리를 거두게 된다. 한반도는 그 부수적인 결과물이었으며, 이는 소련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의 상황에서 미국과 소련이란 전쟁의 또 다른 당사자들이 실제로 한반도에 머물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를 잘 반증해준다. 그들에게 한반도는 정치, 전략적으로 그다지 의미 있는 공간은 아니었던 것이다.


한반도의 차원에서 한국전쟁은 물론 피할 수도 있는 전쟁이었고, 박태균 역시 그것이 가능했다고 생각하는 듯 보인다. 문제는 당시 남북한의 지도층이 국제정세를 읽는 식견이 부족했고, 분단 상황이 올 수도 있는 정세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한 측면(혹은 분단 체제가 오더라도 이것이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는)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낙관이 도리어 전쟁을 부추긴 측면이 있다는 것이 박태균의 견해이기도 하다. 한국전쟁은 남북한의 정치 질서가 비교적 안정되어가던 시기에 벌어졌으며, 북한의 남침으로 촉발되었든, 아니든 간에 한국전쟁의 본질 가운데 하나는 일제 식민 질서가 빚어낸 미완의 민족해방(이것을 이념적으로 이해하지 마시라. 그것이 남북한 모두의 현 단계 지배계급이 원하는 바다)을 완수하려 했던 전쟁이란 것이 본질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은 변함없다. 이 책의 특기할 점 가운데 하나는 북한의 의도가 애초에 제한전쟁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으나 전쟁이 너무 손쉽게 전개된 나머지 무리하게 확전했다고 보는 것이다. 이는 인천상륙작전 직후 남한과 미국에 의해 반복된다.


언젠가 맥아더에 대해 자세하게 다룰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대충 요사이 이야기되었던 맥아더 동상 철거 논란은 그의 공과와 상관없이 즉, 표면적인 이유와 상관없이 우리 사회의식 수준이 어느 정도까지 와 있으며 어느 부분이 한계인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실례라 할 수 있다. 보수를 흉보는 거야 너무 뻔 한 이야기가 될 테니 일부 진보세력의 맥아더 동상 철거 이슈화에 대해 약간의 흉을 보자. 우선 개인적으로 철거하자는 의견엔 동의하지만 그보다는 이전하자는 쪽이다. 그들이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지만 일단 그들의 주장대로 철거해버리는 일은 너무나 쉬운 일이기 때문이며, 마음의 총독부는 고스란히 둔 채, 외형상 존재하는 조선총독부 건물만 허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그보다는 훨씬 더 잔인한 방법을 주장한다. 예를 들어 조선총독부 건물을 포크레인으로 일거에 때려 부수는 이벤트 대신에 조선총독부 건물 밑바닥을 파내어 총독부 건물이 자체의 무게로 서서히 침강해 들어가는 방식 같은 것 말이다. 짧게는 한 100년, 길게는 1,000년에 걸쳐 서서히 침강해 경복궁 앞마당으로 가라앉히는 것이다. 건물 구조는 그대로인 채로 말이다. 그렇게 해서 건물은 그대로 온전하게 보존하고 우리는 지하에 묻힌 총독부 건물을 일제 강점기를 기억하는 박물관으로 사용하면 된다. 하지만 건물은 부서졌고, 친일진상규명은 온갖 잡소리들에 시달린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맥아더 동상 철거란 획기적인 시도는 그 뜻이야 십분 이해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네들도 그 일이 지금 당장 시도하여 가능한 일이라고 믿지는 않았다. 다만 균열을 주고자 했을 뿐이다. 그 덕분에 맥아더가 이 땅에 핵폭탄 26기를 투하하자는 과감한 주장을 했던 이라는 객관적인 사실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나. 우리 땅에서 맥아더 동상의 철거가 더 이상 이슈로 떠오르지 않는 날이 오길 희망한다. 그때쯤이면 그 동상이 거기 서 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나 우스워 보일 것이다.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누구도 관심 갖지 않는 상황이란 두 가지를 상정한다. 하나는 그것이 아무런 힘도 갖고 있지 않을 때이고 다른 하나는 그에 대한 반항이다. 지금 맥아더 동상이 자유공원에 여태 서 있는 까닭은 이 땅의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들의 사회의식이 아직 그 동상의 힘을 믿고 있기 때문이긴 하지만, 그 동상에 거기 서 있도록 하는 사람들의 차가운 무관심은 그에 대한 반항이기도 하다.


박태균은 38선 이북으로 북진이 전략적인 실패였다고 말한다. 우리는 얼마 전 인천 자유공원(개인적으로는 자유공원보다는 이전의 명칭이었던 만국공원이란 명칭을 좀더 선호하긴 하지만)의 맥아더 동상 철거 문제로 촉발된 일련의 논쟁들을 통해 우리는 박태균의 이 저서가 어떻게 논거로 응용되고 있는지 살필 수 있었다. 물론 박태균의 입장과 주장이 그로부터 처음 시작된 것은 아니다. 가깝게는 김동춘의 『전쟁과 사회』에서도 이미 한국전쟁에 대한 전통주의와 수정주의를 모두 비판하는 모습을 보였고, 역사학계도 일반적인 것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하나의 추세로 보인다. 그 자신도 여러 저서들로부터 도움을 얻었음을 밝히고 있다.


어떤 연구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은 아니고, 그만한 연구 토대가 구축된 뒤에 비로소 나타난다는 것은 당연한 상식이다. 이런 당연한 상식을 지금 반복하여 이야기하는 까닭은 최근 잇따라 전쟁 위기가 고조되면서 다시학문의 자유, 양심의 자유 보다 우선하는 이념적 잣대들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박태균의 『한국전쟁』은 매우 실증적인 외형을 갖추는 형식을 통해 이런 공격들로부터 나름대로 잘 빠져나가고 있다. 대중적인 시선을 유지하고 있는 드문 책이란 점에서 특히 돋보인다.


박태균의 『한국전쟁』이 이전의 연구들과 구분되는 가장 큰 차이점은 그가 한국전쟁의 책임을 외세에 의한 것으로만 치부하지 않는 점이다. 최근의 우리 모습을 보면 그의 이런 지적은 뼈아프긴 하지만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분단의 책임으로부터 우리들은 자유로운가. 우리는 최근의 과거사 청산 과정에서 벌어졌던 일련의 해프닝들을 통해 과거사가 결코 과거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깨우치고 있다. 역사는 과거에 묻힌 고리타분하고 퀴퀴한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의 우리 기억을 위해 벌이는 기억 투쟁의 장이다. 누군가 당신이 태어날 때부터 당신의 기억을 조작하려고 애쓰고 있다. 투쟁하지 않으면 당신의 기억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조작될 것이다. 눈을 감으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 것도 의심하지 않은 채 남이 시키는 대로만 살면 인생은 절대로 내 것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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