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 스타를 통해본 대중문화론 - 에드가 모랭 / 문예출판사(1992년)


 


에드가 모랭의 "스타 - 스타를 통해본 대중문화론"은 대학 다닐 때 리포트 제출 참고용 도서로 구입했었다. 책이 여직 깨끗한 것으로 보아 그 무렵 구입해 한 차례 읽고는 오랫동안 책꽂이에 꽂힌 채 다시 읽게 될 날을 기다려 왔던 모양이다. 얼마전에야 나는 이 책을 덮고 있던 오래된 비닐을 뜯어내고 새로 비닐 포장을 했다. 얼마전 원전 반대 어쩌구하면서 생태 이야기를 한참 떠들어댔는데 책을 비닐로 포장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뭐냐고 화낼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언젠가 나만의 용도로 이 책들을 재활용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서 그러하는 것이므로 널리 양해를 구한다. 에드가 모랭이 이 책을 처음 쓴 것이 1972년의 일이므로 현재의 관점에서 보자면 다소 낡은 스타들이 들먹여지는 감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이 오늘날까지 여전히 유의미한 까닭은 이 책에서 들먹여지는 스타들이 이미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학적인 의미에서, 대중문화적인 차원에서의 스타와 스타시스템은 여전히 온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처음엔 독설가로 널리 알려진 버나드 쇼의 "야만인은 나무와 돌로 된 우상을 숭배하고, 문명인은 살과 피로 된 우상을 숭배한다."는 글이 쓰여 있다. 이 문장은 에드가 모랭이 이 책을 통해 스타를 분석하는 두 가지 키워드를 잘 드러내고 있다. "스타 - 스타를 통해본 대중문화론"은 말 그대로 사회학적인 현상접근법을 이용해 스타의 출현과정과 배경, 스타 시스템이 대중과 대중문화에 끼치는 영향과 수용과정, 그리고 그 의미에 대해 면밀하게 살피고 있다. 물론 이 때의 면밀함이란 영미권 학자들의 그런 면밀함과는 다소 차이를 보인다. 에드가 모랭은 1921년 파리에서 태어난 그의 서술 방식이 가지고 있는 면밀함이란 사료에 입증해 조목조목 따지고 들어가는 실증적인 면밀함이라기 보다는 에세이적인, 다분히 직관적인 방식을 통하고 있다. 예를 들어 그는 "어떤 감독들은 자신의 스타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지만, 오랫동안 할리우드에서는 스타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그들에게 없었다. 스타의 탄생은 영화산업이 체험할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기쁜 사건이었다."란 식으로 스타의 탄생을 표현한다.




그런 점들이 이 책을 읽는 재미이다. 1926년 8월 23일 루돌프 발렌티노가 숨을 거둔 병원 앞에서 두 명의 여자가 자살한다. 그의 죽음은 스타 전성 시대의 절정을 알리는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할리우드가 산업적으로 부추긴 (고전적 의미에서의)스타 시스템은 마릴린 먼로를 마지막으로 종지부를 찍게 된다. 1950년대 중반에 이미 스타들은 - 말론 브랜도, 제임스 딘 등 -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들에 의한 스타 시스템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대공황기에 절정에 달했던 스타 시스템은 TV의 등장과 함께 보다 커다란 스펙타클에 자리를 내어주어야 했다. 사람들은 할리우드가 만들어낸 스타 보다는 좀더 친근한 스타를 원했다. 에드가 모랭은 할리우드와 스타시스템에 대해 정치적인 비판을 가하기 보다는 현상 자체에 주목하여 이를 분석하는 방식을 취한다. 그런 점은 이 책을 읽는 재미를 개인적으로 다소 반감시키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 책이 지닌 미덕이기도 하다.


스타는 근본적으로 착하며, 영화 속에서의 이 착함은 사생활에서도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된다. 스타는 자신의 팬들에 대해서 귀찮아해서도, 무관심해서도, 또 부주의해서도 안 된다. 스타는 항상 팬들을 도와야 한다; 스타는 그것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스타는 항상 모든 사람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스타는 권위와 용기 그리고 재치가 있다. 따라서 스타에게서 허물없고 애정어린 또 도덕적인 조언을 구하는 것이다. <본문 71쪽>


스타는 신이고, 관객은 스타를 그러한 존재로 만들어 낸다. 종종 스캔들이 발생한 스타들은 공인으로서 물의를 일으킨데 대해 죄송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어떤 평자들은 누가 그들에게 공인으로서의 지위를 허락했는가 시비를 건다.(거기엔 나 또한 포함되곤 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그들에 반대하든, 찬성하든 그들이 논의의 중심에 놓여지는 순간 이미 그들은 공인으로서의 지위를 획득한다. 만약 그것, 공인의 지위 획득은 오로지 대의민주주의적 표결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대중사회의 속성에 대한 평자들의 몰이해를 반영하는 것일 뿐이다. 1936년의 미 합중국 대통령 선거 때, 프랭크 카프라의 "디즈 씨 시내에 가다"를 본 팬들은 영화 속에서 훌륭한 정치적 태도를 나타낸 디즈 씨(게리 쿠퍼)를 선거에 출마시키려고 시도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오늘날엔 실제로 이런 일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 아놀드 슈왈츠제네거를 보라!


스타는 신(우상)이며, 어느날 인간을 위해 제조되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들이다. 동시에 그들은 상품이다. 스타는 자본으로서의 상품이며, 그들은 희소한 가치로 인정받는 다이아몬드와 같은 존재이므로 자본이라는 개념 자체와 혼동되고, 신용화폐의 가치를 부여받는다. 신이면서 동시에 사물인 스타.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적인 관점은 이 때 매우 유효하다. 스타는 신화(물신, 현신)이지만 단지 몽상이 아니라 힘이 있는 관념이다. 그러나 대중문화란 치열한 투쟁의 현장에서 스타는 종종 압도적인 스펙타클을 앞세워 위세를 드러내고 승리하는 듯 보이나 더이상 과거의 위세를 떨칠 수 없다. 해피엔드의 도그마는 점차 부정당하고 있으며, 영화가 현실의 내러티브를 닮아가는 동안 비극적이게도 스타들은 더이상 신적인 지위를 얻을 수 없다. 그럼에도 스타는 아직 일부의 대중들에겐 여전히 신적인 우상으로 떠받들어진다. 에드가 모랭은 스타의 영향은 청춘기 이전, 남성보다는 여성, 중간 사회 계층에 더 많이 잔존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에드가 모랭은 스타시스템과 스타를 분석하지만 이에 대해 특정한 정치적 의사를 최소한 표면적으로는 반영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문장을 통해 이미 많은 문제들을 제기하고 있다.


할리우드의 영화들은 서양을 모델로 한 일종의 국제화의 방향에서, 비부르주아적이고 전(前)공업적인 많은 민족문화에 효소로 작용하는 작품을 세계에 널리 퍼뜨린다. 어떤 혼합이 이루어질까? 다른 요구에 기초한, 즉 사회주의에서 생겨난 다른 문화는 그 영향과 싸울 수 있을까? 어떤 방식으로 싸울까? 우리는 아직 아무런 예측도 할 수 없다. <본분 193쪽>


과연 현재의 우리, 2005년의 우리는 저 예측에 대해 무어라 말할 수 있을까.

* 이 책에는 70여 장에 이르는 스타들의 도판이 담겨 있는데, 개인적으로 이 책의 85면에 있는 알랭 들롱의 사진(크리스티앙 자크의 1963년 작 <검은 튤립>의 스냅 사진)은 너무나 매력적이다.


** 에드가 모랭의 이 책에 기대어

"기호학으로 본 스타시스템의 변화(http://windshoes.khan.kr/612)"란 글을 발표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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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전쟁의 역사』 - 버나드 로 몽고메리 | 승영조 (옮긴이) | 책세상(2004)


개정증보판의 의미

이 책은 지난 1995년 두 권으로 분권되어 같은 출판사에서 출판된 적이 있다. 나는 구판을 가지고 있었는데 동생이 사학과에 진학하는 바람에 큰 맘 먹고 몇 권의 역사 관련 서적들을 동생에게 넘기면서 그 때 이 책도 함께 넘겼다. 예전에도 한 차례 이 책에 대해 리뷰를 쓴 적이 있었다. 당시엔 너무 짤막하게 썼기 때문에 아쉬움이 있어서 이번에 다시 한 번 리뷰를 쓰려고 결심하게 되었다. 어찌보면 같은 책에 대해 두 번의 리뷰를 하는 셈이다. 어떤 이는 왜 같은 책을 두 번 사는가? 혹은 출판사에서 무엇 때문에 개정증보판을 내는가?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때의 개정증보판은 중복출판과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이를 출판이란 맥락에서 간략하게 이야기해보자. 모든 책에는 판권이란 것이 있다. 여기에 보면 "판과 쇄"란 말이  나온다. 책을 만드는 일도 사람이 하는 일이므로 아무리 공을 들인다 하더라도 실수가 있을 수 있고, 경우에 따라 작가나 편집자가 수정보완할 필요를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열악한 출판환경에서 대개의 책들은 초판 이후를 기약할 수 없는 실정이다. 설령 인기가 좋아 초판이 모두 판매된다 하더라도 초판의 실수를 수정보완해서 다시 책을 만드는 건 상당한 비용이 들기 때문에 출판사들이 쉽사리 이런 작업에 나서지 못한다(성의있는 편집자가 출판되어 나온 책을 다시 교정해두거나 독자들이 읽다가 지적해 준 오식이 있더라도 개정판을 만들기 전엔 수정되지 못한다). 우리나라 출판 사정상 재판이라는 건 모 유명작가들의 장편 소설을 출판사를 바꿔 출판할 때나 하는 일처럼 되어 있다. 출판사에서 수정증보판을 만드는 건 독자들에 대한 일종의 리콜 서비스와 같은 것이지만 불행히도 우리에겐 이런 관행이 일반화되어 있지 못하다.

나는 전쟁의 역사 1995년 판 초판본과 개정판 1쇄를 가지고 있다. 개정판이 이전 판본과 다른 점은 일단 분권되었던 책이 하나로 묶여 더욱 두툼해졌다는 것이고, 하드 커버 양장본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물론 지질이나 기타 도판류들이 보다 많이 추가(일일이 대조는 해보지 않았지만, 이전 도판들보다 확실히 사이즈면에서 커졌다)되었고, 초판본에서 보이던 몇몇 오식들을 바로 잡았다. 그렇다고 개정판에 오식이 전혀 없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예를 들어 개정판 276쪽의 편집자 주에서 <롤랑의 노래>에 대한 설명 중 다음과 같은 대목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1100년경에 지어진 프랑스 최초의 서사시이자 최고.최대의 무훈시. 롤랑은 샤를마뉴의 이름이다." 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롤랑"은 "샤를마뉴 대제"와 별개의 인물이다. "롤랑의 노래"에 등장하는 롤랑은 샤를마뉴 대제가  이슬람교도들과 전쟁할 때 그의 군대에서 활약한 기사 롤랑을 의미한다. 간략하게 내용을 설명하자면 이슬람교도와의 전쟁 당시 그들과 내통했던 간신 가늘롱이 샤를마뉴 대제의 군대를 곤경에 빠뜨려 후퇴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데, 가장 위험한 임무인  후위 부대 지휘를 왕의 충성스런 신하 롤랑이 자원한다. 가늘롱은 이교도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 그를 위기에 빠뜨린다. 샤를마뉴는 그에게 뿔피리를 주어 위험에 빠지면 자신을 부르라고 말한다. 하지만 롤랑은 마지막 순간까지 왕을 생각해 뿔피리를 불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대신 뿔피리를 불어 되돌아온 샤를마뉴 대제에 의해 간신은 처벌당하지만 롤랑은 이미 죽었다는 내용이다. 롤랑이 실존인물인지는 정확치 않지만 샤를마뉴 대제와는 확실히 별개의 인물이다.

그러나 이런 지적들은 개정증보판이 지니고 있는 여러 미덕들에 비하면 대단한 것은 아니다. 이 책은 무려 1,038쪽에 이르는 두툼한 책이기 때문이다. 거의 금성판 국어대사전 특장판과 맞먹는 두께다. 가끔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만큼 무지막지한 번역과 편집자의 무뇌충적인 교정교열 작업으로 망가진 책들을 볼 수 있다. 그런 경우를 제외하면 솔직히 우리나라 띄어쓰기, 맞춤법은 국어학 박사라 하더라도 완벽하게 구사하기 어렵다(이 말은 믿어도 된다, 흐흐)는 문제가 있다. 개정판은 이전의 책에서 보다 확실히 오식이 줄었고(이전 책도 오식이 많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이 책의 장점인 풍부한 편집자주와 찾아보기, 지도와 도판, 참고문헌들이 충실하게 보강되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전쟁이 벌어졌던 현장의 지도를 부록으로 뒤에 좀더 큼지막한 그림으로 삽입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하여튼 나는 "책세상"이란 출판사와는 개인적으로 독자 이상의 관계를 맺어본 적이 없지만 "책세상"이란 출판사를 좋아한다. 좋아하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지만 그 중 하나는 이 출판사에서 새로운 번역으로 "니체 전집"과 "까뮈 전집"을 내고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책세상 문고"라는 문고본을 출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서가들 말고, 애독자들 중 많은 이들이 문고본의 필요성을 느끼며 일본의 "이와나미 문고"나 프랑스의 "디스커버리 총서" 시리즈와 같은 것들을 떠올리며  부러움을 금치 못하는 경우를 종종 보아왔다. 그러나 문고본은 관리 및 영업의 어려움 등으로 출판사들의 외면을 받아왔다. 출판사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건 당연하지만 출판이란 동시에 문화적 사명감이 필요한 사업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난 책세상 출판사가 이 둘 사이의 균형을 잘 유지하는 좋은 출판사로 생각한다. 게다가 책 값이나 올릴 요량으로 얇팍한 소설책을 하드커버 양장본으로 개정해 출판하는 곳들이 수두룩한 이 때 진짜배기 개정증보판을 내는 출판사는 또 얼마나 드문가?

이 책의 저자 버나드 로 몽고메리 (Bernard Law Montgomery) 는 어떤 사람인가?
만약 군대를 컴퓨터 게임 "FIFA2002"에서처럼 심리적 부담감 없이 고를 수 있는 거라면 난 단연 영국군을 내 팀으로 고르고 싶어 할 것이다. 물론 실제로 내가 좋아하는 축구팀은 독일팀이다. 내가 영국군을 좋아하는 이유는 축구에서 내가 독일 축구를 좋아하는 것과 흡사하다. 얼핏 보면 독일축구엔 브라질 축구처럼 빼어난 기교도, 프랑스나 네덜란드 축구처럼 토탈 사커니, 아트 사커니 하는 수식이 어울리지 않는다. 그네들 축구는 때로 무미건조할 만큼 덤덤하고, 재미없지만 축구의 정석 플레이, 기본에 충실한 축구를 한다. 축구장 전체를 골고루 사용하여 공격하고, 수비할 때도 특별히 허슬플레이를 한다기 보다는 공의 방향, 공격수의 움직임을 미리 예측하고 봉쇄하는 방식이다. 물론, 전쟁사를 살펴볼 때 영국군이라고 해서 어처구니없는 실수나 혐오스러운 실책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크게 보았을 때, 영국군은 모범생이나 천재의 그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종국에 가서는 모범생이나 천재들을 능가하는 성실함과 인내력으로 승리한다. 전사를 살펴보면 영국이 승리한 전투도 많지만 그네들이 패한 전투도 무척이나 많다. 그럼에도 영국군이 패배한 전쟁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결과를 나는 그런 힘에서 찾는다.


▶ 1942년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롬멜이 지휘하는 아프리카 군단과의 전투를 승리로 이끈 몽고메리 장군


굳이 몽고메리의 전쟁사를 살펴보지 않더라도 세계사에서 영국군 만큼 보병을 사랑한 군대도 드물 것이다. 그들이 "백년전쟁"에서 우세한 프랑스 기병을 패퇴시킨 것 역시 보병의 힘이었고, 제1차 세계대전에서도 영국 보병들은 우수했다. 군대의 기본이 보병이라면 그에 가장 충실한 군대 역시 영국군이다. 물론 여기엔 그네들이 인도와 인도네시아, 아프리카를 식민지화하면서 저지른 전쟁 범죄를 논외로 한 표현임을 전제로 해서 말이다. 우리에게 "몽고메리 장군"은 소위 "고집 센 몬티"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렇게 보인 까닭 중 상당수는 역시 미군을 중심으로 한 할리우드의 전쟁 영화들이 만들어 낸 것이기도 하다. 영화 "패튼대전차 군단"을 보면 패튼과 몽고메리가 시칠리아 점령 과정에서 서로 경쟁하는 과정이 잘 드러나 있는데 역시 미국적 시각에 의한 것이다. 물론 팔레르모를 먼저 점령한 건 패튼이었다. 하지만 롬멜이 지휘하던 독일 아프리카 군단을 시칠리아까지 밀어낸 건 몽고메리였고, 그때까지 미군은 아주 멀리 있었다.

장군으로서 몽고메리에게 가장 빛나는 경력은 롬멜의 탁월한 지휘에 압도당해 영국군이 연전연패를 거듭하던 북아프리카 전선의 승세를 일거에 뒤바꿔버린 엘 알라메인 전투의 승리일 것이다. 그는 1887년 영국 국교회 주교의 아들로 태어나 일평생 성서를 탐독하고 절대적 금주가였다. 철저한 빅토리아풍 교육을 받고 성장한 그이지만 왕립 샌드허스트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해서는 학우의 셔츠에 불을 지른 사건으로 학교 당국의 처벌을 받은 적도 있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서 큰 부상을 당해 빈사 상태에 이른 적도 있었다. 39세의 나이로 베티 카버와 결혼했으나 결혼 생활 10년 만에 아내가 벌레에 물린 상처로 전염병에 걸려 사망하자 평생 재혼하지 않았다. 몽고메리는 헌신적인 아버지였으나 군인으로 임지에 따라 이동해야 했기에 아들 데이비드를 교장 선생집에 맡겨 그 집에서 따뜻한 가정의 정믈 맛보게 하려 했고, 교장 선생에게도 특별히 그 점을 간곡히 당부했다고 한다.



▶ 롬멜에게 연전연패하며 사기가 바닥까지 떨어진 북아프리카 전선의 영국군 제8군 사령관으로 부임한 직후부터 그는 부하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군기를 엄정하게 다루면서 최종적인 승리를 거머쥘 엘 알라메인 전투에 이를 때까지 훈련에 훈련을 거듭했다.

그런 그가 북아프리카 전선의 제8군 사령관이 된 것은 1942년 8월 12일이었다. 그는 다혈질이었고, 가시돋친 말을 인정사정없이 내뱉는 수다스런 다변가요, 그 자신은 틀에 얽매이기 싫어하면서도 부하들에게는 사막 한 복판에서도 엄정한 군기와 군율에 따르도록 했던 장군이었다. 몽고메리는 무슨 일이든 자신이 결심한 대로 밀고 나가는 다부진 장군이었지만, 당시 54세였던 몽고메리로서는 처음으로 이렇게 중요한 임무를 맡는 것이었다. 그가 맡은 영국 제8군은 롬멜에게 1년 동안 연전연패한 만신창이 군대였고, 사기는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병사들은 롬멜이 지휘하는 한 독일군에게 이길 수 없다고 믿었고, 영국군 총사령부가 있던 이집트 카이로에서는 연일 전해지는 패전 소식에 기밀 서류를 불태우고, 피난 보따리를 꾸렸다. 몽고메리는 최전방에 부임하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 이후 제8군은 진지를 1m라도 적에게 넘겨주지 않는다. 각 부대는 현 위치에서 싸운다. 현위치가 당신들의 무덤이다."


그는 부하들에게 매우 엄격했고, 사막 한 복판에서도 참모들은 정시에 시작하는 식사 시간에 언제나 단정한 복장을 하고 나타나야 했다. 그는 부하들을 다시 훈련시켰고, 용기를 북돋았다. 병사들은 부드럽고 성격 좋은 장군 보다 혹독하게 대하더라도 전쟁에서 승리하게 해주는 장군을 더 좋아했다. 왜냐하면 전쟁은 축구가 아니기 때문에 패한 결과로 지불해야 할 것이 자신의 목숨이라는 걸 잘 알았기 때문이다. 몽고메리는 후방인 런던의 다우닝가 1번지로부터 연일 쏟아지는 반격 독촉에도 불구하고 병사들에게 더 많은 휴식과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섣부른 반격에 나서지 않았다. 정치적 압박으로부터 초연한 그는 점차 병사들의 인정을 받게 되었고, 결국 롬멜은 그가 파 놓은 함정으로 끌려들어가 패하고 말았다(물론, 밀리터리 매니아들은 늘 이런 문제를 가지고 상반된 의견을 내 놓는다). 그는 마치 삼국지의 육손처럼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독일군을 220km나 후퇴하게 만들었고, 결국 퇴니지에서 독일군의 항복을 받아 북아프리카에서의 전쟁을 끝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후 독일 내 영국 점령지의 사령관을 거쳐 영국군 참모총장, 나토의 유럽 연합군 최고사령부 부사령관을 지냈고, 참모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여러 권의 책을 냈고, 1976년 세상을 떠났다.

전쟁의 역사
"인류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란 표현은 진부한 만큼 진실이다. 나는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이때의 사람이란 말은 아마 "인류"라는 말로 대치할 수 있을 것이다. 즉, 한 개인으로서의 인간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크게 보아 인류의 본성도, 늑대나 개의 본성 만큼이나 변하지 않는 그들만의 본능을 지니고 있으리란 믿음이 그것이다. 만물의 영장으로서의 인류란 말에 대해 나는 눈곱만치도 신뢰를 보내지 않는다. 인류가 배움을 통해 무언가를 배운다면 문자 이래로 기록된 그 많은 비참한 죽음들이 번번이 재현될리 없지 않은가?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 200년의 아이들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고 한다.

"어느 시대나 정치, 실업계, 매스컴에서 권력을 쥔 자들은 계획하고 가르치고 하나의 방침을 교육해서 그대로 따라오는 '새로운 사람'을 만들려고 해왔다. 나치 독일이 그랬고, 내가 열 살 때 전쟁에 질 때까지의 일본도 그랬단다. 그러나 이런 국가는 주변 국가들을 비참하게 만들고는 결국 패망했어. 내가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런 틀에 박힌 인간과는 다른 홀로 설 줄 알지만 협력할 줄도 아는 진짜 '새로운 사람'이 되어주었으면 한다는 거다. 어떤 '미래'에서나 말이다."

우리나라는 늘상 전쟁의 위험 속에 살아온 탓인지  아니면 혹독한 군사독재 시절을 거쳐 온 반발 심리 때문인지 "전쟁사"에 대한 출판물이 그다지 많지 않은 편이다. 평화에 대한 염원과 필요성이 그 어떤 민족보다 클 것임에도 불구하고 늘상 전쟁의 공포 속에 놓여 있었던 탓에 아니, (군사)국가주의와 (극우)민족주의 아래 놓여 있었던 탓에 "반전평화"운동을 마치 덜 배운 어린 아이들,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들의 배부른 소리로 치부하려는 경향이 있다. 전쟁과 평화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음을 알지만, 알고 싶지 않은 아니, 외면하고 싶어 했다. 국내에 존 키건의 『세계전쟁사』를 비롯해 몇 권의 전쟁사가 번역 출판되거나 육사에서 펴낸 책이 있지만 대중적으로 널리 읽히지 않는 것, 간혹 읽더라도 밀리터리 매니아들의 취미 용도 이상이 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몽고메리의 『전쟁의 역사』는 우리가 구해 읽을 수 있는 전쟁사 관련 도서들 중 가장 대중적이고, 잘 만들어진 책이다. 아마도 그런 장점 때문에 이 책의 개정판까지 나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제2차 세계대전 초반 영국을 제외한 서유럽 전역을 석권한 나치 독일로부터 최후까지 저항하여 마침내 승리에 이른 영국이었지만 제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신화는 저물고 있었다. 영국군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던 몽고메리 장군의 숙적은 롬멜뿐만 아니라 아군 가운데에서도 있었으니 그가 바로 조지 패튼 장군이었다. 두 사람은 전쟁 막판까지 자존심을 건 치열한 경쟁으로 전공을 다투었다.

전쟁에 대한 역사서로서 이 책은 고대 전쟁으로부터 한국전쟁 이전까지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만약 그 뒤의 전쟁 사에 대한 책을 찾는다면 구태여 이 책을 읽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이 책은 20세기 들어 가장 엄혹했던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다루고 있고, 그 이후 벌어진 다른 전쟁들 역시 이들 세계대전의 결과에 기인하거나 그 이전의 체제들로 인해 빚어진 것들이다. 그러므로 이후의 전쟁들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싶다면 역시 이 책을 미리 읽어두는 것이 좋다. 이 책은 모두 7부 25장의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전쟁의 본질"은 전체의 서두 역할을 하고, "제2부 고대 전쟁"부터 "제6부 1815-1945년의 전쟁"까지는 이 책의 본문인 전쟁사에 해당한다. "제7부 불가해한 숙명"은 이 책의 에필로그격이다.

이 책의 어쩔 수 없는 한계 혹은 필자의 한계라 할 수 있는 아쉬움이 남는 부분은 이 책의 전체 분량과 주목한 부분에서 대체로 동양에 대한 언급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관점에서 보자면 너그럽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이 책의 저자인 몽고메리가 빅토리아 시대 말엽에 태어나 그가 교육받고 성장하여 보낸 인생의 전성기를 서구제국주의 전성기로부터 몰락기에 해당하는, 다시 말해 식민지 국가들의 독립과 해방 이전 시기를 보낸 인물이라는 사실에 주목해 주어야 한다. 게다가 오늘날에도 동양에 대한 서구의 인식은 미미하기 그지 없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이를 몽고메리 개인의 잘못으로만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시대적 한계를 생각해본다면 이 책에서 동양이 아주 무시당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전쟁사를 언급하는 부분에서 몽골과 중국, 일본 그리고 인도를 중심으로 다룰 수밖에 없는 것은 말이다. 그 나름대로는 중국의 손자나 몽골의 징기스칸, 한국의 이순신 등에 대하여 각별한 존경을 표한 셈이다.

몽고메리는 이 책의 661쪽에서 662쪽에 걸쳐 "조선에는 이순신이라는 뛰어난 장군이 있었다. 이순신 장군은 전략가, 전술가, 탁월한 자질을 지닌 지도자였을 뿐만 아니라 기계제작에도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중략>...일본 선원들은 용감하게 싸웠으나 이순신 장군의 철갑 전함(거북선)에는 저항할 수 없었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뭐 그렇더라도 여전히 불만은 남겠지만 전쟁사에 여러 페이지에 걸겨 많이 기록된다고 썩 좋은 일도 아니지 않나? 흐흐)

솔직히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이유는 앞서 언급한 여러 장점들에도 있지만 한 명의 직업 군인이 평생 전장을 거쳐 살아오며 경험하고 느낀 진솔한 전쟁관과 평화관이 이 책 곳곳에 묻어있기 때문이다. 물론 장군들이 쓴 전쟁회고록이나 제너럴십에 대해 군사평론가들이 말한 책은 이미 많이 있다. 그러나 많은 책들이 일종의 회고담에 그치거나  출세기, 실증적인 전사 검토에 그치는데 반해 이 책에는 우리가 전쟁을 배워야 하는 이유가 전쟁 그 자체를 효율적으로 좀 더 잘 치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평화롭게 살아갈 것인가를 배워야 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는 미덕이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매우 좋은 책이다.

몽고메리는 "전쟁의 본질"편에서 전쟁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전쟁은 왜 일어나는가? 더러는 전쟁이 문명의 소산이라고 말할 테고, 더러는 전쟁이 인간의 타고난 본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즉 합의를 도출할 다른 방법이 없을 때 항상 중재자 역할을 한 것은 다름 아닌 전쟁이었다는 것이다. 전쟁이 내린 판결은 정의보다 힘에 기초한 것이었다. <46쪽>

전쟁이란 경쟁 관계에 있는 정치 집단 간의 장기 무장 충돌을 의미한다. 전쟁에는 반란과 내란이 포함되며, 개인적인 폭동이나 폭력행위는 제외된다.<47쪽>"


그는 전쟁의 승자가 곧 정의라고 주장하지 않으며 그건 영국군도 마찬가지였음을 솔직히 인정한다. 우리는 최근 이라크 파병 문제와 관련해 스스로를 오랫동안 자유주의자로 자처하던 어떤 지식인이 국회의원이 된 뒤 "국가이성"에는 도덕을 물을 수 없다고 주장하며 파병을 두둔했던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서구에서 자유주의가 파탄난 것은 자유주의 덕목 자체가 파탄났기 때문이 아니라 자유주의자들이 너무나 손쉽게 보수화하는 경향을 보였기 때문이다). 몽고메리는 전쟁을 수행하는 국가를 단지 "정치 집단'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물론 우리의 생존 목적을 "국가와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고 믿는 이들에게는 불경스러운 일이겠지만, 그는 전쟁을 수행하는 국가에 대해 단지 정치집단으로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최근에 나온 "헌법의 풍경"이란 책에서 저자 김두식은 이렇게 말한다. 헌법의 기본권 정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정신에서 출발한다.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사상과 신앙, 표현의 자유는 인정되어야 한다. 권력자들이 "인정한다, 그러나"라며 필요에 따라 개인의 기본권을 규제하면 국가가 괴물로 돌변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면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지금 어떤 나라가 괴물이냐'라는 것이 아니다. 국가란 본디 언제든지 괴물로 변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이 중요하다"라고 말한다.

"서구 중세를 통틀어 일개 국가의 인력은 그다지 중시되지 않았다. 전투 때는 노예들이 소모품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14세기에 흑사병으로 알려진 일련의 전염병이 돌자, 인력이 귀해져 노예의 경제적 가치가 커지게 되었다. 그때부터 노예는 생명이 보호되어야 했고, 더 이상 소모품으로 사용될 수가 없었다. 현대에 있어서 한 국가가 전쟁을 치를 때 무장 병력 중 사병은 직업 육군이나 해군이나 공군이 아닌 민간인으로 채워진다. 그런데 민간인들은 결코 그러길 원치 않는다. 현대의 사병은 지난날의 노예나 용병들과는 딴판이다. 즉, 그들은 교육을 받았고, 사고할 수 있고, 식별할 수 있으며, 비판할 태세가 되어 있다.... 중략 ..... 현대전은 총력전이다. 또 몇 세기에 걸쳐 대단히 복잡해진 현대전은 한 국가의 활동과 존속 자체를 좌우할 정도여서, 과거와 달리 이제는 국가 전체의 사기가 중요해졌다. 그것은 필수적이다. 징용과 용병의 시대에는 국가적 전쟁에 종사하거나 전투를 하는 사람이 비교적 소수였다." <56-57쪽>


프랑스의 정치가 탈레랑은 "전쟁은 너무 심각한 일이라서 군인들에게 맡겨둘 수가 없다"고 말하지만 그와 같은 이유로 몽고메리는 "전쟁은 너무 심각한 일이라서 정치가들에게 맡겨둘 수가 없다"고 말한다. 물론 이때의 몽고메리가 말한 것은 군인과 정치가 모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뜻일 게다. 우리는 앞서 몽고메리가 말한 것을 기억해야 한다. 전쟁은 너무 심각한 일이기 때문에 군인과 정치가에게만 맡길 수 없다. 더군다나 현대의 전쟁은 총력전이기 때문에 더더욱 시민사회의 감시 아래 놓여야 한다.

몽고메리는 전쟁의 여러 이유 중 하나, 특히나 현대전에서 두드러진 특징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빈번한 전쟁에 대한 또 다른 근본적 이유로 집단에 소속하려는 인간의 뿌리 깊은 욕망을 들 수 있다. 한 사회 안에서 충성심이나 집단의 주체의식, 애국심과 같은 것이 발전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이웃 집단에 대해서는 배타적이고 적대적이게 된다. 라틴어 hostis가 '이방인'과 '적'을 동시에 뜻한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지상의 다양한 민족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남다른 문화에 강하게 집착하는 경향이 있으며, 그러한 문화와 군사제도는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다. <83쪽>


라틴어로 이방인과 적이 같은 단어로 표현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장군을 만나기는 동서양을 모두 통틀어 보더라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배타적인 마음, 조직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 민족주의, 국가주의, 국수주의가 바로 타인에 대한 잔학 행위로 나타났었음을 우리가 "전쟁의 역사"에서 교훈으로 얻을 수만 있다면 평화의 발명에 더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는 25장 "에필로그 - 평화라는 이상"에서 예레미야서를 인용하여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모두가 거짓을 행하며, 평화롭다, 평화롭다 하나 평화가 없도다"라고 말한다. 분명 문명은 진보했고, 지난 2000년 동안 모든 선량한 사람들이 마음속 깊숙이로부터 평화를 갈구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20세기에 이르러 역사상 가장 잔혹하고 가장 혼란스러운 시대를 경험했다. 우리는 국가간의 전면적인 야만 상태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 숱한 시간들을 전장에서 보내고 전쟁을 연구한 학자로서 몽고메리는 말한다.

"진정한 군인은 타인을 적으로 삼지 않고, 인간 내면의 야수를 적으로 삼는다. 한 군인으로서 나는 희망한다. 황금빛 노을이 지고 반목과 싸움을 잠재우는 소등 나팔소리가 울리는 그날이 오기를. 이윽고 찬란한 태양이 솟아오르며 세계 온 나라의 친선과 평화를 깨우는 기상나팔 울리는 그 시대가 오기를."


아무리 많은 숫자의 군대라 할지라도 항상 승리를 거둘 수 없으며, 국민들의 마음을 영원히 장악할 수도 없다고 말이다. 평화를 애호한 사람들은 자유와 정의를 위해 싸웠다. 자유와 정의가 없으면 겁 많고 노예화된 사람들에게 평화가 주어졌다 한들 그 평화는 지상의 지옥과 같았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화는 인간 내면의 야수와 싸워 얻은 평화이며, 만일 그 평화를 쟁취하고 유지한 미덕들이 상실된다면 평화는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평화는 실천이라는 미덕과 함께 해야만 지켜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세대는 20세기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평화를 발명해내야 하는 도덕적 책무를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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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옥스퍼드 세계 영화사 - 제프리 노웰 스미스 (엮은이) | 김경식 | 이남 | 이순호 | 이영아 | 이유란 | 전찬일 | 주영상 | 허인영 (옮긴이) | 열린책들(2006)


영국의 유수한 명문대학으로 옥스포드와 케임브리지를 꼽는다. 다소 엄살을 섞어 말하자면, 요사이 이들 대학에 대해서 내가 알고 있는 정보라고는 영국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유학 생활하기가 그다지 까다롭지는 않아도, 생활비가 많이 들어 힘들다더라는 정도의 정보밖에 없긴 하다. 그럼에도 이 두 대학이 대영제국 전성기의 제국 엘리트들의 산실이며 수많은 명사들을 배출했다는 정도는 알고 있다. 그런 역사적인 사실을 떠나 내게 이 두 대학은 다음과 같은 책들로 인해 명문대학이다. 우선 케임브리지는 개마고원에서 출판하고 있는 "케임브리지 세계사 강좌" 시리즈로 인해, 옥스포드는 옥스포드 영어 사전 및 영국사 등의 저서를 출판하는 명문 대학 출판부를 가진 대학으로써 나에게 명문대학이다.

 

"제프리 노웰 스미스"가 책임편집자로 등재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 책의 저자로는 모두 80여명 가량의 세계 유수의 영화학자와 평론가들이 참여했다. 사이먼 윈체스터의 책 "교수와 광인"을 통해서 이미 잘 알려져 있듯 옥스포드 영어사전의 권위는 전세계적으로도 절대적이다.(옥스포드 영어대사전은 약 40년 동안 학자 1000여명이 동원돼 1928년 처음 완간되었는데, 사이먼 윈체스터는 이 과정에 참여한 제임스 마리의 이야기를 통해 옥스포드 영어사전이 만들어지던 무렵의 문화와 역사를 담아 책으로 엮었다.) 내가 처음 옥스포드란 고유명사와 인연을 맺은 것도 중학교 입학하면서 삼촌이 선물해준 "옥스포드 혼비 영영한 사전"을 통해서였다.

 

옥스포드 영어사전의 명성은 오늘날에도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는데, 명성이 지속될 수 있는 바탕에는 옥스포드 영어사전측이 일년에 최소 4차례에 걸쳐 인터넷 개정판을 내는 등 매해 1,500단어 이상을 추가하는 노력에 기초한다. 이렇게 온라인 사전에 추가된 단어들은 옥스포드 출판부가 발행하는 수십 종류의 활자 사전 개정판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프랑스 역시 17세기 왕립학술원을 통해 국가 차원에서 사전 작업에 착수해서 1690년대 첫번째 불어사전을 만들었고, 이후 총리 직속 기관으로 불어연구원을 두어 1960년대에는 표준불어대사전 작업에 착수하여, 1990년대 16권을 완간해냈다. 프랑스의 유명출판사인 라루스 역시 1910년 첫 불어사전을 펴낸 뒤 매년 개정판을 출판하고 있어 100회 가량의 개정판을 내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인터넷 확산과 함께 대형 포털 사이트들이 국어사전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어 온오프라인상의 모든 어휘연구작업이 사실상 중단된 상황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었을 때 부럽기 그지없는 일이다. 최근 들어 국내의 언론사들이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또한 미디어로서 온라인 매체들에 밀리는 현실이고, 상대적으로 영세한 잡지 매체들 역시 경영상 매우 곤란한 처지다. 이젠 신문, 잡지를 정기구독하는 일에 대해 세금 감면 혜택이라도 주어야 할 판이다.

 

얘기가 잠시 다른 곳으로 샜다. 앞서 말한 내용을 살펴보면 알겠지만, 이 책 "옥스퍼드 세계 영화사" 앞에 특별한 방점이 필요하다면 역시 옥스포드에 붙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국내의 영화붐을 타고 "세계영화사"란 주제로 국내에 출판된 책들은 꽤 여러 종이 되지만, 이 책은 "옥스포드 대학 출판부(Oxford University Press)"에서 출간되었단 사실 하나만으로도 공신력과 품질을 인정해줄 수 있다. 그래서인지 국내외 매스미디어들이 이 책에 대해 보인 호들갑스러운 평가가 괜한 것이라 할 수는 없다. 그야말로 "세계영화사"에 대한 주제로 쓰인 최고의 책이다.

 

이쯤하는 것으로 이 책에 대한 외견상의 평가는 일단락짓기로 하고, 소비자로, 독자로 책을 좀더 꼼꼼이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이 책의 만듦새는 본래 영어판이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독특하다. 정확하게 1.000쪽으로 떨어지기는 하지만, 실제 본문 내용은 판권 포함해서 997쪽으로 떨어진다. 뒤에 남는 페이지는 그냥 백지이긴 하지만, 그냥 1,000쪽이라고 해도 별무리는 없겠다. 집에 1,000쪽짜리 책 있는 사람은 어디 그리 흔하겠는가? (내가 아니고 우리 사무실에 소장된 가장 두꺼운 책은 금성출판사판 국어대사전인데 거의 3,800쪽 가량 된다.) 이렇게 두꺼운 책이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일반적인 단행본 제본으로 책 상태가 오래도록 유지될 수 없다. 그래서 이 책은 정통적인 양장본 제본 방식인 사철 제본으로 되어 있는데, 종이를 일일이 실로 꿰맨 책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겠다. 단단한 하드 커버로 마치 앨범처럼 덮개가 되어 있다.

 

속표지를 넘기면 책임편집자의 "감사의 말씀"이 수록되어 있고, 그 뒤로 이 세계영화사(사전이라 불러도 좋으리)의 기고자들 명단이 나오는데, 거기에서 이 책의 첫번째 문제이자 관점이 튀어 나온다. 기고자의 면면을 일일이 확인할 수는 없겠지만, 그들의 국적을 살펴보면 이 책이 의도적이든 아니든 영미적 관점에 의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폴란드, 라트비아, 인디아, 홍콩, 일본, 러시아 필자 등이  각 1인이고, 이상하게 네덜란드 필자가 2인, 그리고 뜻밖에 프랑스 필자가 1인밖에 참가하지 않고 있다. 국적이 영화사를 특별히 편협하게 기술하는 요인이 되진 않겠지만, 아무래도 자국 영화는 자국의 필자가 가장 잘 안다고 했을 때, 프랑스 국적을 지닌 필자가 80여 명이나 되는 중에서 1인에 불과하다는 것은 다소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다.(참고로 호주 영화인은 2명 참가하고 있다) 나머지는 모두 영미권 인사들이다. 그런 까닭에 프랑스 무성영화에 대한 기술은 미국의 리처드 에이블이 담당하고 있다.

 

두 번째 문제는 이 책을 재미있게 읽기 어렵다는 거다. 물론, 나의 개인적인 취향을 탓할 수도 있고, 책이 재미없는 것과 유익함은 별개의 문제라고 인정한다. 앞서 이미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지만, 이 책의 유익함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다만, 책의 재미와 관련해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 책의 무미건조함이다. 대개 여러 명의 필자가 참가하는 기획서들의 일반적인 문제는 필자간의 의견 차와 책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한데 조율하기 어렵다는 점인데, 이 책에선 그런 단점을 찾아보기 어렵다. 옥스포드 대학 출판부와 이 책의 번역자들이 공들인 덕이겠지만 이 책은 마치 한 명의 저자가 담당해서 만들었다고 해도 좋을 만큼 일관된 톤을 지닌다. 그런데 그 일관된 톤이 사전적인 무미건조함이란 사실이다. 따라서 영화사도 일종의 예술사라는 역사라고 할 때 사관이 드러나 보여야 하는 대목이 거의 없는 덤덤함을 지속하고 있다는 점은 이 책의 장점이자 역시 재미를 추구하는 독서란 점에선 지적해 둘 대목이다(개인적으로 영화사의 기술에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비평사 -혹은 비평사조- 부분이 이 책에서도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는 점은 다소 아쉽다).

 

이 책이 무려 1,000쪽에 달한다고는 하지만 구조 자체는 매우 간단한 편이다. 모두 3장의 구성(897쪽부터 시작되는 용어설명, 참고문헌, 인명색인, 영화색인은 별도로 하고)으로 되어 있는데, 1장 "무성영화 1895 - 1930", 2장 "유성영화 1930-1960", 그리고 3장 "현대영화 1960-1995"까지의 실제로는 영화 100년사라고 할 수 있다. 각각의 장들은 다시 동일한 구조를 가지고 반복되는데, 서론으로 각 시대의 영화사적인 특징과 얼개를 소개하고 그런 뒤에 그 시대의 특징적인 영화사적 사건에 대한 개론을 소개한다.

 

1장에서는 당연히 영화의 탄생과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의 부장을 집중적으로 다루며, 이 시기에 분화되기 시작한 애니메이션, 코미디, 다큐멘터리, 아방가르드 영화 등 영화 장르를 개별적으로 다룬다. 그 뒤에 다시 각국의 영화 스타일을 각각의 필자들이 맡아서 다룬다. 1장과 2장의 영화를 구분하는 가장 큰 구분점은 소리의 문제이다. 2장에서는 본격적인 유성영화 시대를 맡이한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의 성공과 이 무렵 영화에 불어닥친 검열의 문제, 기술혁신의 문제를 특징적으로 소개한다. 그런 뒤 유성영화 시대 더욱 극적으로 분화된 영화의 장르들(뮤지컬, 서부영화, 범죄영화, 판타지 등)을 개별적으로 소개한다. 혁명의 시대이기도 했던 이 무렵 이데올로기가 영화에 끼친 영향을 소개하고, 각국의 영화 스타일과 발전상을 소개하는 것으로 마무리 짓는다(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영화를 포함해서).

 

3장 현대영화편에서 가장 주목해볼 기술적 혁신과 영화사적 사건은 그간 유일한 동영상 매체로서 영화가 누려왔던 영광에 치명적인 위협이 된 TV매체의 출현을 꼽는다. 서론 이후 곧바로 '텔레비전 시대의 영화' 라는 별도의 구성을 통해 텔레비전이 영화산업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분석하는 것에 할애하고 있는데,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이후의 구성인 '미국영화'편까지 이어진다고 할 수 있다. 최소한 미국영화가 매체로서 TV와 경쟁할 자원으로 삼은 것은 섹스와 선정성, 그리고 블록버스터였으니까 말이다. 이후 유럽의 예술 영화들, 미국의 독립영화가 TV출현에 대한 영화예술적 모색이란 점을 고려해 아방가르드 영화들, 시네마 베리테 등 예술영화운동을 살펴본다. 그 뒤 각국의 영화 발전을 살핀다.

 

이미 여러 리뷰들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이 책은 여러 나라의 영화 발전을 다루고 있다. 영미권 영화(실제로는 미국 영화)는 당연히 그 중심에 있고, 그 주변부 영화로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동유럽, 독일, 러시아, 터키, 아랍, 아프리카, 이란, 인도, 인도네시아, 중국, 홍콩, 대만, 일본,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라틴 아메리카 등을 총망라하고 있지만, 한국 영화는 별도로 다뤄지지 않았다(이렇게 역사적인 맥락에서만 영화사가 기술되면 상대적으로 예술의 주체인 창작자들이 소외되기 마련이다. 아마도 편저자들 역시 그 점을 고민한 듯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알랭 들롱과 같이 유명 영화 감독과 배우를 포함해서 미술감독, 촬영감독에 이르는 각각의 영화 종사자들을 모두 132명 소개하는 것으로 보충하고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나로서도 처음 듣는 인물들이 많았다).

 

지금 한국영화가 누리고 있는 영광을 생각해보면 당연히 아쉬운 부분이긴 하지만, 이 책이 출간된 것이 1996년의 일이란 점(과 1995년까지만 다룬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크게 무리는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다. 최소한 서구인들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우리 영화의 출현은 21세기적 사건이지, 20세기의 사건은 아닐 테니 말이다. 

* 본래 하드커버로 먼저 출판되었는데 보급본으로 새로 나와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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