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꿈꾸는 것처럼



- 허수경


너의 마음 곁에 나의 마음이 눕는다

만일 병가를 낼 수 있다면
인생이 아무려나 병가를 낼 수 있으려고……,


그러나 바퀴마저 그러나 너에게 나를

그러나 어리숙함이여


햇살은 술이었는가

대마잎을 말아 피던 기억이 왠지 봄햇살 속엔 있어


내 마음 곁에 누운 너의 마음도 내게 묻는다

무엇 때문에 넌 내 곁에 누웠지? 네가 좋으니까, 믿겠니?


내 마음아 이제 갈 때가 되었다네

마음끼리 살 섞는 방법은 없을까


조사는 쌀 구하러 저자로 내려오고 루핑집 낮잠자는 여자여 마침 봄이라서 화월지풍에 여자는 아픈데

조사야 쌀 한줌 줄테니 내게 그 몸을 내줄라우


네 마음은 이미 떠났니?

내 마음아, 너도 진정 가는 거니?


돌아가 밥을 한솥 해놓고 솥을 허벅지에 끼고 먹고 싶다 마치 꿈처럼

잠드는 것처럼
죽는다는 것처럼


*


허수경의 시 중에 가장 좋은 것들은 어떻게 쓰인 것인지 도통 알 수 없는 것들이 많다. 귀신에 홀린 것처럼, 꿈결에 쓰인 것처럼, 혹은 취한 것처럼 그렇게 도통 말을 붙일 수가 없다. 시를 읽노라니 같이 귀신에 씌인 것처럼 허우적대며 시만을 따라가다보면 나도 모르게 도통한 사람처럼 웃거나 울거나 멍해져서 앉아있게 된다. 물론 허수경의 모든 시가 그렇지는 않지만 이 시는 그렇다.


잠드는 것처럼

죽는다는 것처럼
 

마음을 놓으면

마음을 놓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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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소나기


- 허수경



재실댁은 아파트 파출부 그 집 아재 김또돌 씨는 하수구 치는 일을 했제 야반도주 고향을 베린 지 어언 십여 년 하루떼기 벌이에 이골은 났지만 날이 갈수록 왜 이리 쪼그라만 드는 살림 단칸 월세방에 내외간이 딴이불 거처를 하는데 김또돌 씨 술이라도 한잔 들이키는 날에는 이불 싸가지고 마루에 누웠제 옌장 마누라쟁이라고 암만 고달퍼도 할 일은 해야제 맨날 돌아누우니 살맛이 나 살맛이

쓴 담배만 뻑뻑 빨다 잠이 들었는데 이쿠 소나기야 마루까지 치받고 후둑거리는 소나기 피해 우당탕탕 챙겨 방으로 들어왔는데 소나기 핑계로 들어와 누웠는데
웬일로 재실댁이 먼저 안겨오지 않나 소나기 한번 장하데이 이녁도 장하게 한번 들어오소 김또돌 씨 소나기처럼 황소처럼 달려들었제 임자요 섭했지예 몸이 천근 같으니 내사 우찌 살붙일 정이 나것소
재실댁 마른 가슴 더듬다 잠이 든 김또돌 씨는 빚에 몰려 쫓겨온 고향 짼한 고향 보리밭에 또 한 번 재실댁을 넘어뜨리는 꿈을 꾸었지러 별 숭숭 말짱한데 도시 산동네 하루벌이 부부


*

'옌장 마누라쟁이라고 암만 고달퍼도 할 일은 해야제 맨날 돌아누우니 살맛이 나 살맛이'
'이녁도 장하게 한번 들어오소'
'임자요 섭했지예 몸이 천근 같으니 내사 우찌 살붙일 정이 나것소'


정(情) 중에 제일은 '살정'이라 했던가, 그런데 먹물잽이들은 이런 말 쓰면 촌스럽다거나 뭔가 음탕, 음란하게 여겨지는지
좀 유식하게 말해 꼭꼭 '스킨십'이란다(그런 제약이 더 음란하구만). 허수경 시인의 "밤 소나기"는 도시 산동네 하루벌이 부부의 일상 중 한 국면만을 살짝 옮겨 우리들 눈 앞에 살갑게 묘사한다. 굳은 살 박힌 묵은 정을 부끄럽게 일깨운다. 부럽다. 아마 그런 까닭에 처음 허수경 시인이 문단에 혜성처럼 나타났을 때 시인의 입담에 질려버린 사람들이 시인이 이미 무수한 삶을 경험한, 노련한(?)  연배의 시인일 거라고 그렇게 넘겨짚어 버렸을지도 모르겠다. 헐, 그건 그렇더라도... 허수경 시인은 어찌 젊은 나이에 저런 것들까지 헤아릴 수 있는 능력이 있었을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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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웠다, 그 생애의 어떤 시간

-  허수경

그때, 나는 묻는다. 왜 너는 나에게 그렇게 차가웠는가.
그러면 너는 나에게 물을 것이다. 그때, 너는 왜 나에게 그렇게 뜨거웠는가.
서로 차갑거나 뜨겁거나, 그때 서로 어긋나거나 만나거나 안거나 뒹굴거나 그럴 때,
서로의 가슴이 이를테면 사슴처럼 저 너른 우주의 밭을 돌아 서로에게로 갈 때,
차갑거나 뜨겁거나 그럴 때, 미워하거나 사랑하거나 그럴 때,
나는 내가 태어나서 어떤 시간을 느낄 수 있었던 것만이 고맙다

*

시를 읽다보면 또, 또, 또냐? 또 '사랑'이냐?고 그렇게 말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대개의 좋은 시는 서정시고, 서정시는 곧 연애시고, 연애시는 곧 '사랑'에 대한 시이다. 사랑을 많이 체험해야만 좋은 시를 쓴다고는 할 수 없지만 확실한 건, 사랑을 해보지 못한 사람은 좋은 시인이 되기 어렵다쯤 될 것이다.

시인이 노래하는 풍경은 사랑하는 동안이 아니라 사랑이 끝난 뒤다. 그때 나는 묻는다. 왜 너는 나에게 그렇게 차가웠는가? 사랑이 어긋나지 않았다면 나는 당신에게 그렇게 물을 이유가 없다. 무성생식에서 유성생식으로의 진화는 생물체의 종족본능을 위한 선택 중 한 가지였다. 그러나 순간 무수히 많은 통증이 우리에게 남겨졌다. 우리는 같은 존재였다가 이제 서로 다른 존재가 된다. 시인이야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겠지만 저' 너른 우주의 밭'에서 지금 내가 아프다 한들 눈이라도 꿈쩍하겠는가?

"나는 내가 태어나서 어떤 시간을 느낄 수 있었던 것만이 고맙다"라고 말한다. 한 편으로야 우주적인 시선으로 승화시킨 것이라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어는 다른 말로 하자면 '내가 이제야 간신히 아프지 않게 되었다'는 고백일 뿐이다. 시적이든 예술적이든 '승화'란 그런 것이다. 아픔을 숨기거나 잊기 위한 간악한 술수...

'그저 나는 아프다. 나는 아프다. 나는 죽도록 아프다.'는 말만 되뇌일 수 없기에 하는 말일 뿐이다. 고맙긴 쥐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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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 허수경


이름 없는 섬들에 살던 많은 짐승들이 죽어가는 세월이에요


이름 없는 것들이지요?

말을 못 알아들으니 죽여도 좋다고 말하던
어느 백인 장교의 명령 같지 않나요,
이름 없는 세월을 나는 이렇게 정의해요.

아님, 말 못 하는 것들이라 영혼이 없다고 말하던
근대 입구의 세월 속에
당신, 아직도 울고 있나요?

오늘도 콜레라가 창궐하는 도읍을 지나
신시(新市)를 짓는 장군들을 보았어요
나는 그 장군들이 이 지상에 올 때
신시의 해안에 살던
도룡뇽 새끼가 저문 눈을 껌벅거리며
달의 운석처럼 낯선 시간처럼
날 바라보는 것을 보았어요

그때면 나는 당신이 바라보던 달걀 프라이였어요
내가 태어나 당신이 죽고
죽은 당신의 단백질과 기름으로
말하는 짐승인 내가 자라는 거지요
이거 긴 세기의 이야기지요.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의 이야기지요.

출처 : <문학과 사회>, 2009. 여름(통권 86호)

*

예전에 날 가르쳤던 은사는 사물의 이름을 아는 것은 존재의 본질로 들어가는 열쇠라고 했었다. '개'를 '개'라 부른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 '개'라는 존재의 본질로 들어가는 첫걸음이라 말한 것이다. 처음 들었을 때는 의심할 바 없는 너무나 명쾌한 깨달음이었다. 그러나 '종(種)'으로서의 '개'를 호명하는 '이름'으로서의 '개'와 '해피, 메리, 쫑'을 아는 것은 별개다. 종으로서 개의 본질을 아는 것은 물론 개별적인 '해피, 메리, 쫑'을 아는데 도움이 되겠지만 우리가 '해피'라 부르는 '어떤' 개와의 인연(관계)이 주는 존재의 무게를 해석하는 것과는 무관하다.

김춘수의 '꽃'과 어린왕자의 '장미'는 다른 존재다.

이름 없는 섬, 이름 없는 것들, 말 못하는 것들, 말을 못 알아듣는 것들, 그러므로 죽여도 좋은 것들에게 근대의 입구, 근대의 세월은 지옥문이었다. 불교에 유명한 선문답, 화두가 있다. 개에게도 불성(佛性)이 있는가? 조주 선사는 '없다(無)'라 답했다(狗子無佛性). 이것이 불교의 유명한 무(無)자 화두다. 불성(佛性)이란 무엇인가? 기독교식으로 말하자면 삼위일체인 성부와 성자와 성신(성령) 중 내 안에 깃든 성신을 의미한다. 불성을 다른 말로 불종성(佛種性)이라고도 한다. 부처의 본성 내지는 부처가 될 수 있는 씨앗을 품고 있는 성품을 의미한다.

초기(원시)불교에서는 일체 중생은 모두 불성을 지니고 있지만 번뇌의 때에 가리워져 본래의 불성을 깨닫지 못하였으므로 깨닫기만 한다면 누구나 부처와 보살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석가 입멸 후 100년경까지 석가의 가르침을 해석하기 위해 논쟁을 거듭했던 부파불교(部派佛敎)는 교리해석에 치중하며 대중과 멀어졌고, 자기수행의 완성를 우선으로 했기 때문에 출가를 전제로 한 학문적인 불교였다. 이에 반발한 대중들이 교단을 이탈하면서 출발한 것이 원시불교의 본래 정신으로 돌아가고자 했고, 이들을 중심으로 대승(大乘)불교가 시작되었다.

대승불교의 중요한 경전 중 하나인〈열반경 涅槃經〉은 "모든 중생이 본래부터 불성을 지니고 있다(一切衆生 悉有佛性)"고 명시한 최초의 대승경전이다. 불교의 사물(四物)이 범종과 법고, 운판, 목어로 되어있는 것처럼 불교에서 말하는 일체중생이란 '이 세상에 살아있는 모든 존재'를 의미한다. 범종의 입구가 아래를 향한 것은 지옥에서 백팔번뇌에 시달리며 고통받는 중생들의 영혼을 향해 울려퍼지라는 의미다. 법고는 축생들을, 목어는 수중생물들을, 운판은 공중을 떠도는 영혼들, 특히 새의 영혼을 극락으로 인도하기 위해서다.

내가 태어나 당신이 죽고
죽은 당신의 단백질과 기름으로
말하는 짐승인 내가 자라는 거지요

지구는 당신과 내가 사라져도 중량에는 변화가 없을 테니 윤회전생(輪廻轉生)하는 인간의 업보로 인해 지구가 무거워질 일도 아마 없을 게다.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의 이야기"는 인간이 모두 죽어 없어져도 계속 진행될 것이며, 설령 인간이 지구를 온통 파먹어버리는 날이 올지라도 우주적으로는 여전히 아무 일 없다. 그런데 나의 우주는 '개'라는 한 종의 이름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고, '해피, 메리, 쫑'이란 구체적인 이름들의 우주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당신이 부재한다면 나의 심장도 함께 아프다.

그런데 왜? 조주 선사는 개에겐 불성이 없다고 했을까?  당신도 무(無)자 화두에 빠져볼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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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가는 먼 집

- 허수경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그래서 불러봅니다 킥킥거리며 한때 적요로움의 울음이 있었던 때,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또 한 슬픔이 문을 여는 것을 이만큼 살아옴의 상처에 기대, 나 킥킥……, 당신을 부릅니다 단풍의 손바닥, 은행의 두 갈래 그리고 합침 저 개망초의 시름, 밟힌 풀의 흙으로 돌아감 당신……, 킥킥거리며 당신이라고……, 금방 울 것 같은 사내의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에 기대 마음의 무덤에 나 벌초하러 진설 음식도 없이 맨 술 한 병 차고 병자처럼, 그러나 치병과 환후는 각각 따로인 것을 킥킥 당신 이쁜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내가 아니라서 끝내버릴 수 없는, 무를 수도 없는 참혹…… 그러나 킥킥 당신


<출처> 허수경, 혼자 가는 먼 집, 문학과지성사, 1992

*

올해(2009) ‘기형도’가 세상을 등진지 20년이 되었다고 떠들썩하다. 시의 시대였다고 하는 1980년대가 저물던 무렵, 기형도가 유성(流星)처럼 나타났다고 스러졌으므로 그를 기념하는 행사가 올해 대대적으로 벌어진다한들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기형도가 유성처럼 곤두박질쳤다면 1980년대의 마지막에 혜성처럼 등장한 시인으로 ‘허수경’을 논하지 않고 지나간다면 개인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허수경은 1988년 《실천문학》에서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라는 시집을 통해 나를 비롯한 수많은 문학청년들의 가슴을 시퍼렇게 멍들게 한 혁혁한 전과가 있다.

‘기형도와 고정희’처럼 극장 안에서, 지리산에서 이승을 하직하지 않고, 멀고 먼 독일까지 날아가 서서히 긴 꼬리를 남기고 사라져가고 있는 허수경.

1964년생이니까 첫 시집을 내던 1988년에 그녀의 나이 불과 24세였다. 그러나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를 읽은 독자들 중 누구도 시인의 약력을 읽기 전에는 시인이 불과 24살의 어린 처자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도저히 나이를 가늠할 수 없으리만치 처연(凄然)한 어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첫 번째 시집이 던진 파괴력이 너무 컸던 탓일까. 허수경의 시는 이후 내게 혜성처럼 “끝내버릴 수 없는, 무를 수도 없는” 청춘의 짙은 그림자를 남기고 멀리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말줄임표(……)에는 누구에게나 감추고 싶은 민감한 과거의 기억[治病] 하나쯤은 숨기고 있는 것이다. 묻지 말라고, 아니, 물어달라고 환후(患候) 쯤은 물어줄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듯 드러내놓고 감추는 것이다.

나 또한 그래서 말줄임표를 쓴다. 묻지 말아달라고 아니 아프니까 나 좀 다독거려달라고 숨기면서 드러내기 위해서 쓴다. 당신쯤 되면 내게 그런 여백을 허용해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하지 못한 내 사랑~ 음, 어디까지 왔을까?”“~음이거나 아니면 “흘러내릴까봐 차마 감지 못하는 눈꺼풀”처럼 말줄임표의 침묵 뒤에는 그런 물음이 숨겨져 있다. 적요(寂寥)한 무덤가에서 힘없이 돌아서는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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