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 - 아트 슈피겔만 지음, 권희종 외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1994년 9월




1958년 무렵 뉴욕 레고 파크. 여름이었다고 기억된다. 내가 열 살인가 열 한 살이었을 때…. 난 하우이, 스티브와 어울려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있었는데 그만 스케이트 끈이 끊어지고 말았다.
“야! 얘들아! 기다려.”
“꼴찌다! 꼴찌! 하하하”
“같이 가! 얘들아.”
아버진 마당에서 뭔가를 고치는 중이셨다.
“마침 들어오는구나. 이리 와서 이것 좀 잠깐 잡아주렴.”
“훌쩍, 네?”
“아티, 그런데 너 왜 우는 거니? 나무를 잘 붙들려무나.”
“제가 넘어졌는데요. 친구들이 절두고 가버리잖아요.”
아버진 톱질을 멈추셨다.
“친구? 네 친구들?”
“그 얘들을 방 안에다 먹을 것도 없이 일주일만 가둬놓으면….”
“…그 땐 친구란 게 뭔지 알게 될 거다.…”
<1권 본문 5-6쪽>


아트 슈피겔만의 『쥐(Maus)』는 모두 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1권은 아버지 블라덱 슈피겔만의 청년기인 1930년대 중반부터 1944년 폴란드의 유대인 게토에 머물던 시기를 다루고, 2권은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작가는 ‘마우슈비츠’란 익살을 부리기도 하지만) 수용소에서 극적인 생존에 이르는 시기를 다룬다. 그러나 아트 슈피겔만의 『쥐』는 과거사를 연대기적으로 구성하는 단순한 회상투로만 구성되진 않는다. 우리는 『쥐』를 통해서 작가인 아들 아트 슈피겔만이 아버지 블라덱 사이에 놓인 경험의 차이, 감정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그 이유는 작가가 『쥐』를 통해 일정하게 의도하는 바가 성공적이었음을 뜻한다.


무엇보다 아트 슈피겔만의 『쥐』가 홀로코스트를 다룬 수많은 작품들과 다른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이 작품이 과거와 현대를 번갈아 가며 대비시키고 있는 구조를 취하는데서 발생한다. 즉,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나(작가)와 과거 아우슈비츠에서 생환한 아버지 블라덱 사이의 현재적 갈등 구조는 끝내 해결되지 않지만, 작가는 『쥐』의 작업을 위해 사이가 결코 좋을 수 없는 아버지를 정기적으로 방문해야만 한다. 두 사람의 사이가 좋을 수 없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궁극적인 원인은 앞서 인용하고 있는 『쥐』의 첫 도입부에서 이미 극명하게 드러난다.


유대인 강제수용소의 체험을 나에게 최초로 각인시켜준 인물은 우리에게도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으로 잘 알려진 빅토르 프랑클(Viktor E. Frankl) 박사였다. 그는 이 책에서 죽음의 유대인 강제수용소(실제로는 가스처형실을 갖춘 유대인 최종해결시설)에 갇힌 수인들에 대해 외부인들은 선입견을 가지기 쉽다고 말한다. 그들은
“죄수들 사이에 불붙는, 생존을 위한 격렬한 투쟁”에 관해 거의 모르고 있으며, 매일 끼니와 자기 자신을 위한, 친구를 위한 무자비한 투쟁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수용소에 갇힌 모든 사람들이 한 사람이 구원받으면 다른 한 명의 희생자가 채워져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기의 이름이나 자기의 친구를 희생자 명단에서 지우려고 아우성을 쳤다는 사실 말이다. 빅토르 프랑클은  결국 이 수용소에서 저 수용소로 수년간 끌려 다닌 끝에 삶을 위한 투쟁에서 도의심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수인들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고, 이들은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잔혹한 폭력, 도둑질, 심지어는 친구까지도 팔아 넘겼다.


아버지 블라덱이 바로 그런 경험들을 통해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생존자였다. 전후 세대인 아들 아트와 아우슈비츠를 경험한 아버지 블라덱 사이에는 이렇게 경험하지 않으면 결코 넘어설 수 없는 커다란 간극이 있었고, 이 두 사람의 간격을 회복하기 어렵게 만든 것은 아트 슈피겔만이 스무 살 때 겪은 어머니 안나(아냐)의 자살이었다. 물론 어머니의 자살이 블라덱의 책임은 아니었지만 두 사람을 묶어주던 하나의 울타리가 무너진 것이다. 우리는 이 작품 『쥐』가 단순히 히틀러의 만행을 그림으로써 우리들로 하여금 홀로코스트에 대해 반성을 촉구하는, 좋은 의도를 지니고 있으나 그만큼 그저 그런 교훈적인 유형의 만화가 아니란 사실을 알고 있다. 이 작품은 그런 의도
(그런 의도도 있겠지만)로 그려진 것이기 보다는 아트 슈피겔만이 아버지 세대와의 일정한 단절과 소통, 이해를 위해, 다시 말해 스스로의 정리를 위해 그린 작품이란 느낌이 더욱 강렬하다.


그는 자신과 다른 체험을 가지고 있는 부모 세대와 대화함으로써 끝끝내 넘어설 수 없을 것 같았던 아버지 블라덱을 이해하게 되고, 단절을 경험한다. 추측컨대 아마도 그는 이 작업을 통해 성장했을 것이다. 사실 나는 아버지 블라덱의 삶에 대한 태도를 이해할 수 있다. 살아온 과정이 너무나 각박했던 이들 가운데 블라덱이 거쳐 온 극단적인 체험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이와 흡사한 태도를 지닌 이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당장 우리의 조부모 세대, 부모 세대 혹은 앞으로 우리들도 우리의 아이들에게 이와 흡사한 이야기를 할지 모른다.


나 역시 생활보다는 생존을 우선해야 했던 체험이 있었고, 이 무렵 내가 즐겨 입에 담던 경구
“강한 자이기 때문에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았기 때문에 강한 것이다.”란 경구는 최고의 가치를 지닌 말이었다. 일단 살아남는다는 것, 그것은 어떤 비굴이나 치욕, 폭력도 감내할 만한 가치 있는 일로 여겼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와 같은 태도만이 현실적이고, 어른스러운 자세라고 여겼던 것이다. 아픔과 슬픔을 극복하는 냉혹함만이 삶의 진정한 자세라고 여기는 동안, 나는 주변에서 순수나 소박한 낭만을 이야기하는 이들을 얕잡아 보았고 경멸했다. 그들은 삶의, 현실의 냉혹함을 모르는 철부지 어린애 같은 존재들이라 여겼고, 결국엔 삶의 과정에서 도태될 것이라 믿었다. 아버지 블라덱이 어린 아들 아트에게 했던 말 “친구? 네 친구들? 그 얘들을 방 안에다 먹을 것도 없이 일주일만 가둬놓으면…. 그 땐 친구란 게 뭔지 알게 될 거다.…”와 같이 말이다.


그러나 아트 슈피겔만의 『쥐』는 공개할 필요 없을, 어찌 보면 아우슈비츠를 드러내는데 도리어 군더더기 같은 대목들에서 도리어 진실을 보여주는 미덕을 지니고 있다. 아버지와 자식의 갈등, 아버지가 청년기에 했던 연애 이야기, 어머니의 자살, 그리고 아버지 블라덱 자신이 유대인이란 이유로 가스실에 보내질 뻔 했던 경험에도 불구하고 흑인종에 대해 지닌 편견들, 마트에 가서 이미 개봉한 음식물을 바꿔오는 인색함 등등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우리는 블라덱과 아들의 이야기를 남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들 자신의 이야기로, 그들의 이야기가 지난 한 시대의 과거사가 아닌 오늘에도 이어지는 이야기일 수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더 깨우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잔혹한 시대를 살더라도
“인간의 구원은 사랑으로, 그리고 사랑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빅토르 프랑클이 유대인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까닭, 그는 이렇게 말한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육신을 초월해서 존립하는 것이다. 나의 아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러한 사실을 알았다는 것에 조금도 구애되지 않고 그녀의 모습을 관조함에 여전히 내 자신을 송두리째 바쳤을 것이며, 그녀와 나의 정신적 대화는 전과 다름없이 생생했을 것이며 만족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그대의 가슴에 새겨주소서. 그러면 사랑은 죽음과 같이 강해지리다.” 그는 F. 니체의 말을 인용해 (비록 강제수용소에서의 삶과 죽음의 과정이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긴 했으나)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고 증언한다. 그 말은 “살아갈 이유를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어떠한 상황에서도 견뎌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삶이 우리에게 거는 기대다. 그렇기에 우리가 삶의 도상(途上)에서 받게 되는 가장 중요한 질문들은 대개 “어떻게”가 아닌 “왜”이다.


아버지 블라덱의 냉정하고, 각박한 심성과 삶의 자세를 우리는 『쥐』의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으며, 그를 둘러싸고 있었던 여러 조건들 속에서 그의 기대를 배신했거나 믿음을 버림받았던 무수한 경험들이 그를 그렇게 만들 수밖에 없었음을 알게 된다. 아우슈비츠의 유대인들이 숱한 배신과 희망의 박탈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것을 어찌 과거의 일이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오늘날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 임금 노예로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한 채 살아가길 강요당하는 현실에서도 역시 배신과 희생은 반복된다. 그러나 블라덱이 끝끝내 살아남을 수 있었고, 살아남기 위해 그토록 노력했던 까닭은 바로 그의 사랑하는 아내 ‘아냐’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물론 블라덱의 이런 태도를 지긋지긋한 가족주의의 발현이라고 간단히 치부해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는 오로지 인간만이 자신이 아닌 타인
(가족을 포함해서)과 공동체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타인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자만이 타인의 종이 되기를 거부할 수도 있는 법이다. 지금은 비록 아우슈비츠가 인류에게 별다른 교훈을 주지 못한 것처럼 보이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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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작전명 발키리 - Valkyrie



 

난제 - 역사성과 오락성(흥행성적) 그리고 작품성
역사 속에 실존했던 인물과 사건을 영화나 드라마, 소설로 재구성하는 일은 화살 하나로 세 개의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일처럼 어렵다. 역사성과 오락성(흥행성적) 그리고 작품성을 동시에 만족시킨다는 일이 어디 그렇게 쉬운 일이겠는가? 언젠가 어느 신문 기자던가, 평론가가 영화 <트로이>에서 헥토르가 아킬레스에게 죽임을 당한다는 이야기를 썼다가 인터넷 누리꾼들을 중심으로 스포일러를 유포했다고 혹독한 비난의 대상이 된 적이 있었다. 내가 이 일을 기억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 무렵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옆 좌석의 젊은 여성 둘이 나누는 대화를 실제로 들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기자인지, 평론가인지를 혹독하게 비판했고 그 덕분에 영화 보는 재미가 반감되었다고 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를 읽지 않았다는 것을 힐난하고 싶어서 꺼낸 이야기가 아니다. 대성(大聖) 공자도 태어나면서부터 모든 것을 알았던 사람이 아니라고 고백하는데, 뉘라서 태어나면서부터 세상의 모든 고전을 읽을 수 있을까. 영화를 통해서이든, 원작을 통해서이든 누구나 그 이야기를 처음 접하는 순간은 있는 법이다. 고전이란 인류의 문화유산이란 점에서는 보배이겠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수많은 세월 동안 대중들에게 다양한 형태로 널리 전파된 이야기란 뜻이기도 하다. 이것을 영화화하거나 드라마로 장르 전이(轉移)를 할지라도 기본적인 이야기 틀을 바꾸긴 매우 어렵다. 고전이 살아남는 이유 중 하나는 그 익숙한 이야기 스타일이 대중에게 이미 숱하게 검증받았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천재가 아니고서야 누가 감히 이에 도전할 수 있을까?


두 번째 장편영화인 <유주얼 서스펙트>에서 스릴러물에 놀라운 재능을 보여주었던 신예감독 브라이언 싱어였지만, 이후 <엑스맨> 1편과 2편, 그리고 <수퍼맨 리턴즈>에서는 할리우드의 상업영화 감독으로 안주하는 것으로 보였다. 어릴 때부터 제2의 스티븐 스필버그를 꿈꿔왔던 브라이언 싱어로서는 선배가 <쉰들러 리스트>로 보여 주었던 길을 따라가고 싶은 의욕도 있었을 것이다. 그는 자진해서 영화 <발키리>의 감독을 맡았다. 사실 역사를 공부하다보면 매력적인 인물과 유난히 끌리는 사건, 극적인 요소들로 인해 깊이 매료되는 시대가 있는 법이다. 나는 나치 독일 치하에서 억압에 저항했던 숄 남매의 <백장미단> 이야기를 처음 접했던 것과 거의 동시에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의 히틀러 암살 음모 사건을 접했다.


결과를 빤히 아는 역사영화(EPIC)를 보는 재미는 어디에서 오는가?

아돌프 히틀러는 생전에 모두 42차례의 암살 기도(『독재자들』, 교양인, 2009)에도 불구하고,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정치지도자로서 가장 많은 암살 시도가 있었던 인물은 아마도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였으리라 싶은데, 『피델 카스트로 - 마이 라이프』(현대문학, 2008)에 따르면 모두 600여 차례나 있었다고 한다. 그를 제외하고는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프랑스의 샤를르 드골 대통령이 6차례의 암살 기도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다. 늑대 무리는 조직적으로 사냥감을 공격하지만 우두머리를 잃으면 사냥을 포기한다고 하는데, 국가조직의 수장을 제거함으로써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겠다는 암살은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정치수단 중 하나다.


제임스 1세를 암살하려 했던 가이 포크스(Guy Fawkes)를 비롯해서 링컨 대통령을 암살했던 존 윌크스 부스(John Wilkes Booth),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범이라는 리 하비 오스월드(Lee Harvey Oswald), 그의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을 암살한 시르한 비샤라 시르한(Sirhan Bishara Sirhan)에 이르기까지 정치인을 겨냥한 암살은 성공유무와 상관없이 대중의 관심이 쏠린다. 이런 사건들이 수많은 음모론의 대상이 되는 까닭은 누군가 한 개인의 죽음이 시대의 향배를 어긋나게 하거나 방향을 바꿀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올리버 스톤 감독을 비롯해 수많은 미국인들은 케네디 대통령이 살아있었다면 미국이 베트남전의 수렁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유력한 대통령 후보였던 동생 로버트 케네디가 암살당한 까닭 역시 그가 범죄와의 전쟁을 강력하게 추진했던 법무부 장관 출신이었고,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당시 미국의 군산복합체가 막대한 이득을 얻고 있던 베트남전에서 미군을 철수시키겠다고 공약했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를 움직이는 것이 개인으로서의 위인(偉人)인지, 아니면 평범한 다수를 차지하는 대중(大衆)인지는 역사학의 오래된 논쟁거리로 남겨두자.


어찌되었든 역사영화를 보는 재미 중 하나는 그것이 우리 인류의 생애사 속에 포함되는 실존했던 인물들이 시대를 고민했던 흔적이란 것이고, 두 번째 재미는 과연 나폴레옹이 불면증과 위장장애에 시달리지 않았다면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하지 않았을 것이며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하지 않았다면 프랑스의 역사, 나아가 유럽의 역사 더 나아가 인류의 역사가 어떻게 달라졌을까와 같은 역사 속 작은 국면들이 차지하는 결과를 되짚어봄으로써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서양의 역사를 우리 한국의 역사에 대입시켜봄으로써 우리가 처해있는 실제 현실의 문제와 한계 등을 점검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비록 영화 <발키리>는 <유주얼 서스펙트>라는 걸출한 스릴러를 연출했던 감독의 작품이라고 하기엔 극적인 요소가 약한 편이긴 하지만 이와 같은 점들을 감안해서 본다면 상당히 재미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슈타우펜베르크 vs. 김재규

정치적 수장을 제거하는 암살의 상당 부분은 브루투스와 케사르의 예에서 알 수 있듯 측근에 의해 실행될수록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 최고 권력자는 항상 삼엄한 경호를 받기 때문에 암살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만 있다면 암살의 성공가능성은 비약적으로 높아진다. 그러나 암살이 암살만으로 정치적 의도까지 성공했다고 볼 수 있을까?


정치적 보복이 아니라면 한 개인에 불과한 정치인의 암살을 통해 정치적 의도까지 관철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아버지와 마찬가지였던 케사르를 암살한 브루투스의 의도는 로마공화정을 수호하고자 했던 것이지만 그의 죽음은 공화정의 몰락을 앞당기는 결과만을 초래했다.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겨냥해 민주주의를 회복하려고 했다는 김재규의 의도와 달리 그의 죽음으로 군부독재를 청산할 수는 없었다. 현대적인 국가조직은 ‘관료제’라는 단단한 배후조직에 의해 보호되기 때문이다.


영화 <발키리>에서 암살 음모의 주동자였던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이 정치인들과 군인들의 논의에 답답해했던 이유는 히틀러 암살 이후 무주공산(無主空山)이 될 최고 권력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없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은 독일 군부의 뇌리에는 쉽게 자리 잡을 수 없는 논의, ‘쿠데타’를 끌어들인 장본인이었다. 비록 규모나 역사적 의의란 차원에서 여러 가지 차이는 있지만 슈타우펜베르크와 김재규는 상당히 닮은꼴이다. 이 두 사람을 닮은꼴이라 비교한다는 것은 본의든 아니든 박정희 전 대통령과 아돌프 히틀러를 비교하게 된다.


일제 식민 통치와 한국전쟁을 치르며 출발한 신생공화국 대한민국은 좌우 갈등, 분단, 부정부패, 경제난 등으로 최악의 위기 속에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군부쿠데타를 통해 집권했지만 이후 형식상으로는 민주선거를 통해 연속해서 재집권에 성공한다. 그의 최대 업적은 경제개발에 성공하여 수백 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한국인들에게 ‘보릿고개’란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3선 개헌에 성공한 뒤 유신이라는 초헌법적 쿠데타를 통해 독재의 길로 들어섰다. 뒤이어 오일쇼크 등으로 인한 경제위기, 민주화를 바라는 국민의 열망을 철권으로 억압하는 독재에 염증을 느낀 민중의 저항 속에 최측근이었던 김재규 중앙정보부 부장의 총에 살해당한다.


히틀러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뒤 제정을 대신해 출범한 바이마르공화국의 정치, 경제적 무능과 볼셰비즘의 발흥에 위기를 느낀 독일의 일부 민족주의자들, 군국주의자들과 결합해 국가사회주의당(나치당)을 독일 의회의 주요 정당으로 성장시킨다. 이후 힌덴부르크 대통령의 사망과 독일제국의회 방화사건 등을 통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에 비견할 만한 ‘비상대권’을 차지하고 독일 내 유일무이한 최고 권력자가 된다. 유신체제가 정권에 대한 어떤 비판, 헌법 개정에 대한 발언만으로 처벌되었던 것처럼 히틀러가 비상대권을 차지한 독일 역시 나치 체제와 총통에 대한 어떤 비방, 비판도 처벌의 대상이었다.


서민적 독재자와 귀족적 민주주의자

내가 아는 한 독일 역사에서 군부에 의한 쿠데타는 거의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퇴한 빌헬름 제정을 물러나게 한 키일 군항의 반란은 있었지만 그것은 쿠데타라기보다는 혁명이었다. 어떤 이는 독일에서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지 않았던 까닭을 독일의 민주주의가 그만큼 강력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그와 정반대의 이유로 독일에선 군부에 의한 쿠데타가 일어나지 않았다. 독일을 통일한 프로이센을 일컬어 ‘국가가 군대를 소유한 것이 아니라 군대가 국가를 소유한 이상한 체제’라는 평가가 있을 만큼 독일은 국가구조 속에 군대의 전통이 강력하게 존재했다. 그러나 한국의 역사적 전통 속에는 군부가 민간권력을 장악하는 일이 고려 무신정권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었다. 어떤 의미에서 군부의 정치화는 일제의 식민통치 기간 동안 일본 군대를 통해 습득하게 된 경우라 할 수 있다.


한국의 최고통치자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풍경 중 하나는 막걸리를 마시는 대통령이다. 민주공화정의 주인이라는 대다수 국민들이 맥주와 위스키를 섞어 마시는 동안에도 대통령은 논두렁에 앉아 막걸리 마시는 풍경을 즐겨 연출한다. 이런 풍경이 연출되는 까닭은 단순하다. 최고통치자들의 실생활이 서민적이지는 않지만 서민적이라는 인상을 줄수록 통치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박정희가 그의 정적이라 할 수 있는 윤보선이나 장면에 비해 우위에 설 수 있었던 중요한 부분 중 하나가 이 두 사람과 달리 서민적인 풍모와 출신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독일의 최고통치자였던 히틀러는 그동안 독일을 지배해왔던 기존의 지배엘리트들과 달리 매우 서민적인 인물이었다.



▶ 헤밍 폰 트레스코프(Henning von Tresckow) 대령

히틀러 암살음모를 추진했던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은 물론 에빈 폰 비츨레벤 장군, 헤닝 폰 트레스코프, 메르츠 폰 크비르하임, 베르너 폰 헤프텐, 파울 폰 하세, 하인리히 폰 헬도르프 등 히틀러 암살 음모의 주역들 대다수는 중간 이름에 귀족을 뜻하는 폰(von)이 들어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 독일의 전통적인 귀족(융커)계급 출신이었다. 하사출신이었던 히틀러는 귀족계급이 지배하던 독일군 수뇌부를 신뢰하지 않았고, 제1차 세계대전의 패배를 자초한 무능한 무리로 멸시하기 까지 했다. 그가 에르빈 롬멜을 총애했던 까닭 중 하나는 그가 자신과 마찬가지로 서민 출신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히틀러 암살 이후 권력수반에 앉을 계획이었던 루드비히 베크 전 독일육군 참모총장을 비롯해 칼 프리드리히 괴들러(전 라이프치히 시장) 같은 인물들이 히틀러 암살 이후 수립하려 했던 독일은 과거와 같은 지배엘리트들의 복귀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사실 히틀러 암살 음모에 가담했던 이들이 처음부터 히틀러의 반대파는 아니었다. 도리어 이들은 히틀러의 지지자들이었고, 그로부터 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런 이들이 히틀러에게 등을 돌리게 된 까닭에 대해 영화 <발키리>는 유대인학살 등 인류에 대한 범죄, 역사 앞에 선 인간으로서의 양심적 갈등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킨다. 히틀러가 권좌에 앉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볼셰비즘의 발호에 위기감을 느낀 독일 내 자본가들과 중산층, 영국과 프랑스의 무관심 등 여러 요인들이 합쳐진 결과이긴 하지만 일반 서민들의 열렬한 지지가 밑바탕이 되었다. 한국전쟁을 전후해 외국 유학을 다녀온 지배계급의 자식들이 사회주의자가 되고, 서구로부터 들어온 기독교식 교육을 받은 피지배계급의 자식들이 청교도적 민주주의 사상을 받아들여 자신의 계급적 뿌리와 이반된 사상을 지니게 되었던 것처럼 히틀러를 가까이에서 접한 귀족적 민주주의자들은 히틀러를 제거하고자 했고, 그의 통치로 가장 큰 피해를 겪어야 했던 대다수 독일 서민들은 여전히 히틀러를 지지했다.


쿠데타로 나치지배가 종식될 수 있었을까

역사가들이 가장 즐겨하는 질문이자 가장 꺼리는 질문은 “만약에~”란 것이다. 역사란 이미 과거에 일어난 사건 중에서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는 주요한 사건을 찾아내 인과관계와 그 의미를 찾아 묻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과거에 아무리 중요한 사건이었다 할지라도 그것이 현재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거나 의미가 없다면 그것은 역사적 사건이 될 수 없다.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 영화 <발키리>로 우리에게 묻고 싶은 질문은 무엇이었을까?

 


사실 영화 <발키리>는 역사영화로서는 매우 훌륭한 편이다. 할리우드에서 제작되는 역사 영화들이 지닌 문제점의 상당수는 역사를 희화화하거나 제멋대로 왜곡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발키리>는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진지하다(물론 다큐멘터리도 허구이며 창작자의 의도가 반영된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브라이언 싱어 감독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 ‘나치’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히틀러와 나치체제에 저항하려다 목숨을 잃은 이들도 있었다는 사실을 전세계인들에게 보여주고자 했다. 그의 이런 의도는 톰 크루즈라는 대중적인 스타에 의해 충분히 담보되었고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었다.


영화 <발키리>의 장점은 이처럼 진지하다는 데 있지만, 동시에 관객들에게 왜 진지해져야 하는지 충분히 설명해주지 않는다. 역사 속의 사건이 그 자체로 극적인 요소들을 풍부하게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를 관객 모두가 읽었다고 할 수 없는 것처럼 히틀러 암살이란 대의에 목숨을 거는 요 인물들의 당위적 결의는 영화 내부에 있지 않고, 관객들의 영화 외부에서 배운 역사에서 나온다. 그 결과 논리적으로는 공감할 수 있어도 영화를 보는 동안 정서적으로 공감하기란 쉽지 않다. 


슈타우펜베르크는 영화 서두에 이미 히틀러의 제거를 결심한 사람이었고, 베를린의 히틀러 암살 음모 세력 역시 이미 준비된 사람들이다. 그들이 왜 목숨까지 걸면서 히틀러를 제거하려 하는지에 대해 관객들 보고 스스로 역사에서 배우라고 말하는 것 같다. 영화의 진행상 필요한 등장인물 수가 너무 많은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영화 <발키리>자체가 지닌 극적인 요소에만 천착해버리면 역사영화가 줄 수 있는 재미로부터 너무 멀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일반 관객들이 히틀러 암살 음모 사건을 접하게 될 때, 가장 먼저 던지게 될 핵심적인 질문이 무엇이었을까를 상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아마도 그 질문은 ‘만약 히틀러가 슈타우펜베르크 대령과 그의 동지들이 계획했던 대로 암살당했다면 과연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였을 것이다. 역사는 정말 달라졌을까? 슈타우펜베르크의 히틀러 암살 작전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있었던 1944년 6월 6일로부터 44일이 경과한 1944년 7월 20일의 일이었고, 독일이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한 것은 발키리작전으로부터 10개월쯤 뒤인 1945년 5월 8일의 일이었다. 과연 한 명의 정치지도자가 암살당하고, 쿠데타로 나치 정권은 전복될 수 있었을까? 그 결과 독일은 연합국, 소련 등과 휴전을 맺을 수 있었을까?


우리는 이 영화 <발키리>를 통해 역사 앞에 무수한 질문들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김재규의 총탄이 유신에 종지부를 찍기는 했으나 뒤이어 12.12쿠데타와 5.18광주학살을 불러들인 것처럼 히틀러의 암살이 역사의 냉정한 잔혹성을 보여주었을지도 모른다. 역사에는 가정(假定)이 없다고 하지만 어쩌면 그와 반대의 경우를 보여주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와 같은 질문은 그저 영화를 재미있게 보면 그뿐인 관객의 입장에서 호사스러운 질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는 내일을 살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어제가 있는 법이다. 설령, 그것이 역사의 잔인한 수레바퀴 앞에서 실패라 불리게 될지라도 목숨을 걸고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되는 오늘도 있는 법이다.



영화 <발키리>는 의인이 10명만 있어도 소돔을 멸망시키지 말아달라던 아브라함의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비록 실패로 끝났고, 대중의 지지도 받지 못했지만 그들이 있어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의 광기에 휩싸인 독일이 역사 앞에서 그래도 우리 속에 이 체제에 저항한 사람들이 있었노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1980년 5월 광주의 마지막 날은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계엄군이 탱크를 앞세워 광주도청으로 진격해오던 날 밤을 어떤 소설가는 이렇게 말했다. "그날, 살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살았고 죽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죽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는 그날 죽고자 마음 먹은 시민들의 피를 통해 산 사람들의 의식을 일깨우는 역사이기도 했다. 나는 역사가 어느 한 사람에 의해 결정되거나 이끌려 간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천하흥망에는 필부에게도 책임이 있는 법(天下興亡 匹夫有責)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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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피터의 의자 - 에즈라 잭 키츠 | 이진영 옮김 | 시공주니어(1996)




에즈라 잭 키츠가 뉴욕 브룩클린의 유대계 폴란드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났다는 이야기는 앞서 "내친구 루이"에서 이야기한 바 있다. 폴란드 그리고 유대인, 이민자... 라는 이 세 단어는 에즈라 잭 키츠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데 반드시 필요하단 생각이 든다. 폴란드계 유대인하면 내 머리 속에 가장 먼저 연상되는 인물은 "로자 룩셈부르크"이다. 막스 갈로의 "로자 룩셈부르크 평전"엔 이런 대목이 있다.

 

로자로 하여금 삶을 지탱하도록 해준 것, 시련을 견뎌나가게 해주고, 정면으로 맞서며, 추락할 때마다 다시 튀어오르게 해준 것, 불안과 절망에도 불구하고 살아남게 해준 것은 유머였다. 아마 그건 자신도 모르게 폴란드계 유대인이라는 출신이 부여한 타고난 유머감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온갖 박해를 받으면서도 파괴되지 않으며,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남는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다.<막스 갈로, 로자 룩셈부르크 평전, 푸른숲, 382쪽>

 

1492년 스페인은 레콩키스타(정치적 통일)를 완수한 뒤, 스페인 지역 내의 유태인들에 대한 박해를 실시했고, 이때 스페인의 유태인들가운데 대략 25만 명이 북아프리카, 이탈리아, 오스만제국으로 이주했다. 19세기 초 유럽 전역에는 약 330만명의 유대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러시아에도 많은 수의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다. 19세기말부터 20세기초까지 러시아에서는 유대인 대박해인 "포그롬(pogrom)"이 행해졌는데, 이 무렵 가장 많은 유대인들이 거주하고 있던 지역은 폴란드였다. 러시아에서 포그롬이 행해질 무렵 중동부 유럽엔 대략 650만명의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고, 홀로코스트가 일어나던 1939년 유럽에서의 유대인들은 850만 명에 육박했다고 한다. 폴란드는 1795년 프로이센, 러시아, 오스트리아의 3국에 의해 분할되었는데, 나폴레옹에 의한 '바르샤바 공국시대(1807-1815)'를 제외하고 1795년부터 1918년까지 3국의 지배는 계속되었다. 폴란드의 유대계 이민자의 후손 에즈라 잭 키츠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앞서 막스 갈로의 표현을 빌어 한 단어를 더 추가해야겠다. "온갖 박해를 받으면서도 파괴되지 않으며,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남는 공동체" 의식을 지닌 작가. 에즈라 잭 키츠라고 말이다.

 

그의 작품에는 여러 주인공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의 공통점은 대체로 꿈과 환상의 세계에서 튀어나온 인물들이기 보다 서민적인 일상의 주인공들이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한 번 등장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작품 속 어딘가에서는 주인공 혹은 그에 필적할 만한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에즈라 잭 키츠가 어떤 사람도 주변부화되는 것, 소외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에즈라 잭 키츠의 "피터의 의자"에서 주인공 피터는 평범한 흑인 서민 가정의 어린이다. 그는 "내가 어린이책을 만드는 목적은 실재에서 환상까지 나의 모든 경험을 아이들과 나누기 위해서이다. 나는 그 아이가 누구든 자신을 중요한 존재로 느끼며,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다"고 말한다. 피터에게 동생이 생기기 전까지 어린 피터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피터에게 동생이 생겼다. 피터는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이야기의 첫 장면은 어린 피터가 혼자, 아니 혼자는 아니다. 화면 우측 하단에 쭈그려 앉아서 피터가 놀고 있는 장면을 반쯤 감은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강아지(아마도 닥스훈트가 아닐까 싶은데) 윌리가 있다. 피터는 나무토막과 기타등등의 잡동사니를 이용해 이제 막 빌딩 한 채를 완성하려는 찰나다. 그때 윌리가 벌떡 일어나 달려오는 바람에 피터가 공들여 쌓은 빌딩이 무너지고 말았다. 함께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기가 깰지 모르니 조용히 놀라는 말이다. 다음 장면에서 피터와 윌리가 고개를 빼꼼 내밀고 - 이 장면은 상당히 흥미로운데, 에즈라 잭 키츠 특유의 콜라쥬 기법이 응용된 화면에서 마치 동화 바닥을 벽삼고, 문삼아 만화처럼 피터와 윌리가 목만 내밀고 있다.(동생 수지의 방 안을 들여다 본다. 수지? 수지라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다. 맞았다. 에즈라 잭 키츠의 "내친구 루이"에서 로베르토와 함께 어린 루이에게 인형극을 보여주던 바로 그 사람의 이름이 또한 수지이다. 이 책 "피터의 의자"가 1967년작이고, 루이가 1975년작이니 그 기간 동안 어린 수지가 성장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 피터는 자신의 물건을 동생을 위해 분홍색으로 스스로 칠하면서 박탈과 소외의 슬픔을 벗어나 나눔의 즐거움과 행복을 함께 깨달아 간다.

 

어찌되었든 에즈라 잭 키츠는 그림동화작가로서 일러스트적인 재능뿐만 아니라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 역시 대단하다는 사실을 입증해보이는데, 첫번째 에피소드와 연계된 바로 다음 대목에서 이야기 전체의 갈등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잘 암시해주고 있다. 피터가 사용하던 요람을 차지하고 있는 아이는 피터의 여동생 수지였던 거다. 작가는 어린 피터의 생각 "저건 내 요람인데, 분홍색으로 칠해버렸잖아."를 통해 피터의 박탈감과 그것이 현실 상황에서는 어떻게 드러나는지 잘 보여준다. 그것은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피터의 의자, 즉 파란색 의자가 어떻게 피터의 손에 의해 분홍색으로 덧칠되는가 하는 과정을 통해 잘 녹아든다. 피터는 자신의 요람을 빼앗겼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버지는 한 술 더 떠 피터가 앉았던 식탁 의자까지 분홍색으로 덧칠하려고 한다. 그것도 피터의 손까지 빌어서 말이다. 게다가 피터의 침대 마저 분홍색으로 덧칠되어 있었다.

 

어린 피터에겐 이 과정이 마치 분홍색의 침공처럼 여겨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 어린이가 동생이 태어나면서 느끼게 되는 박탈감과 이를 치유하고, 스스로 성장한 존재로 여기게 만드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묘사하는 과정을 에즈라 잭 키츠는 색의 변화를 통해 묘사하고 있다. 이제 피터에게 남은 건 침대 옆에 놓인 작은 의자 하나뿐이다. 피터는 의자와 강아지 윌리를 데리고 가출을 시도한다. 그동안 피터에게 더할나위없이 소중하고 아늑했던 공간인 가정에서 분홍색(여동생 수지)은 점점 피터의 자리를 점령해들어오고, 피터는 하나 남은 자기 의자를 가지고 탈출하는 것이다. 자기 의자를 내려다보고 있는 피터의 모습은 유머러스하게 묘사된다. 마치 5.16군사쿠데타 이후 시청 앞 광장에 서 있는 박정희 처럼 양 손을 허리께에 짚고는 의자를 내려다 보고 있는 장면이 비장하기 이를 데 없어 웃음이 절로 나는 것이다. 게다가 피터가 집을 나올 때 함께 가지고 나온 자신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보면 웃음은 더욱 커진다. 사진 속의 아기 피터조차 작은 의자를 바라보는 것처럼 보인다. 크게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에즈라 잭 키츠는 사진 속의 피터를 그려내곤 혼자 씽긋 웃지 않았을까.

 

분홍색의 침공으로부터 탈출한 피터는 많은 일을 했으므로 이제 피터는 조금 피곤하다. 피터의 옷과 신발도 모두 의자와 같은 청색 계열로 묘사되고 있는데 의자에 앉으려던 피터는 깜짝 놀라는 표정이다. 에즈라 잭 키츠는 이 장면을 마치 영화 속의 줌인처럼 화면 속의 인물들을 좀더 크게 그려내고 있는데, 사진 속의 아기 피터와 피터의 얼굴 표정이 너무나 흡사하게 묘사되고 있음에 이 작가의 섬세함에 새삼 놀라게 될 것이다. 작가는 피터가 벌이는 잠시의 일탈, 아니 일탈이라기 보다는 동생이 생긴 어린이의 반항을 따스하고 유머러스한 시선으로 담아내고 있다.


 

엄마가 창가로 와서 피터를 불렀어.
"피터야,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래?
점심에 아주 맛있는 걸 해 먹을 건데."
피터와 윌리는 엄마의 말을 못 들은 척 했어.
피터에게는 따로 생각이 있었거든. <본문 중에서>

 

엄마의 부름에 딴청 부리는 피터, 이때는 사진 액자에 담긴 아기 피터도 딴청을 부리는 듯 보이고, 피터가 들고 나온 악어 인형도, 개구진 애완견 윌리도 피터와 반대 방향을 쳐다보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누구라도 어린 시절 자신의 잘못을 깨닫긴 하지만 겸연쩍은 탓에 이를 인정해보지 못한 경험이 있을 거다. 그 순간의 한 장면을 카메라로 찰칵 담아내기라도 한 것처럼 묘사되고 있다. 피터는 엄마 몰래 커튼 뒤에 숨어서 엄마가 자기를 찾아내도록 한다. 물론 커튼 아래로 피터의 파란 신발이 보인다. 엄마가 커튼을 훽 젖히자, 피터는 옆에 숨어 있다가 폴짝 뛰어나와 소리친다. "나 여기 있어요."

 

엄마가 피터를 못 찾은 건지, 일부러 못 찾은 척한 것인지는 중요치 않다. 피터의 엄마는 피터 자신이 스스로 성장했음을 인정할 수 있도록 피터의 명분을 세워주었고, 피터 역시 이런 사려깊은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답게 스스로 자신의 의자를 분홍색으로 칠해 동생 수지에게 선물할 계획을 말한다. 박탈이 증여로 바뀌는 순간이다. 에즈라 잭 키츠는 어린 피터의 모습을 통해 더불어 사는 삶의 작은 교훈을 가르쳐주는 지도 모르겠다. 우린 누구나 알게 모르게 남의 몫을 조금씩 얻어쓰고, 나눠쓴 덕으로 오늘까지 살고 있다. 어린 시절 분홍색(동생)을 침탈로 여겼다면 이젠 함께 하는 연대로 여길 수도 있지 않을까? 모두 그런 과정을 거치며 살아왔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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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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