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규관'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1.03.28 황규관 - 우체국을 가며
  2. 2010.11.23 황규관 - 마침표 하나 (3)

우체국을 가며

- 황규관



다시 이력서를 써서
서울을 떠날 때보다 추레해진
사진도 붙이고, 맘에도 없는
기회를 주신다면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로 끝나는 자기소개서를 덧붙여
우체국을 간다
컴퓨터로 찍힌 월급명세서를 받으며 느낀 참담함이 싫어
얼빠진 노동조합이나
제 밥줄에 목맨 회사 간부들과 싸우는 것이
마치 아귀다툼 같아서 떠나온 곳에게
무릎을 꿇은 것이다
밥 때문에
삐쩍 마른 자식놈 눈빛 때문에
이렇게 내 영혼을 팔려는 짓이
옳은 일인지 그른 일인지
왜 그럴까, 알고 싶지가 않다
나는 이렇게 늘 패배하며 산다
조금만 더 가면, 여기서 한발짝만 더 가면
금빛 들판에서
비뚤어진 허수아비로 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것마저 내게는 욕심이었다
이력서를 부치러 우체국을 간다
한때 밤새워 쓴 편지를 부치던 곳에
생(生)의 서랍을 샅샅이 뒤져
1987년 포철공고 졸업 1991년 육군 만기제대
이따위 먼지까지 탈탈 털어서 간다

*

이력서를 써본지 오래 되었다. 그 덕분에 낡아빠지고 덜덜거리며 어디에서 멈출지 모르는 자가용을 굴린다. 이력서의 내용을 살펴본지 오래 되었다. 그 덕분에 월급이 자동으로 이체되는 통장에 돈이 쌓이고, 아내는 나몰래 야금야금 돈을 빼간다. 나도 아내 몰래 비상금 통장을 만들어 조금씩 비상시에 대비한다. 이력서 대신 사직서를 써놓고 가끔씩 직장 생활에 신물이 넘어올 때마다 펼쳐놓고 읽는다. 이거 하나만 집어던지면 십수년 청춘을 다 바친 세월은 말짱 황이 되지만 황금 들판에서 비뚤어진 허수아비는 몰라도 까마귀처럼 잠시 어디론가 훨훨 날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이력서를 써본지 오래 되었다. 이력서 내용도 살펴본지 오래 되었다. 내가 본래 어떤 사람이었는지 잊은지 오래 되었다. 내가 어떻게 살아온 사람인지 기억하지 않게 된지 오래 되었다. 내가 누구인지 잊은지 오래 되었다. 오래 전의 나는 어떤 꿈을 꾸었는지, 어떤 꿈을 가지고 있었는지 잊은지 오래 되었다. 나는 누구인지 잊은지 오래 되었다.    

기억의 먼지까지 탈탈 저당잡힌지 오래 되었다. 내 삶이 한 장의 이력서로 요약될 수 있다는 사실이 끔찍하지만 이력서조차 없다면 그마저도 기억에 남을 일이 없다는 걸 깨닫는 건 더 끔찍한 일이지 않는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ESY > 한국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승희 - 사랑은  (2) 2011.04.04
허영자 - 씨앗  (0) 2011.04.01
권현형 - 푸른 만돌린이 있는 방  (1) 2011.03.31
정윤천 - 멀리 있어도 사랑이다  (2) 2011.03.30
마종기 - 우화의 강  (2) 2011.03.29
황규관 - 우체국을 가며  (0) 2011.03.28
김경미 - 나는야 세컨드1  (2) 2011.03.25
이정록 - 도깨비 기둥  (1) 2011.03.24
이동호 - 비와 목탁  (3) 2011.03.23
박제영 - 비 내리는 오후 세 시  (3) 2011.03.22
황지우 - 비 그친 새벽 산에서  (1) 2011.03.21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마침표 하나


- 황규관


어쩌면 우리는

마침표 하나 찍기 위해 사는지 모른다
삶이 온갖 잔가지를 뻗어
돌아갈 곳마저 배신했을 때
가슴 깊은 곳에서 꿈틀대는 건
작은 마침표 하나다
그렇지, 마침표 하나면 되는데
지금껏 무얼 바라고 주저앉고
또 울었을까
소멸이 아니라
소멸마저 태우는 마침표 하나
비문도 미문도
결국 한 번은 찍어야 할 마지막이 있는 것,
다음 문장은 그 뜨거운 심연부터다
아무리 비루한 삶에게도
마침표 하나,
이것만은 빛나는 희망이다


출처 : 황해문화. 2001년 여름호(통권31호)



*



“어쩌면 우리는 / 마침표 하나 찍기 위해 사는지 모른다”
는 황규관 시인의 말에 나도 모르게 눈썹이 꿈틀했다. 난 삶이 별거 없다고 생각하는, 그야말로 나이브(naive)한 허무주의자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나보고 열심히 산다고 한다. 일을 좀 줄이라고 한다. 사람에겐 참 다양한 얼굴이 있지만 내게 열심히 산다고 평하는 이들은 아마도 내가 하는 일이 많고, 그 많은 일들을 꽤나 열심히 치르면서 살아내고 있다고 보여서 그러는 모양이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허무주의자치곤 겉보기에 열정적으로 보일 수 있겠다 싶기는 하다. 무정부주의도 허무주의 계열의 정치적 계파로 보는 이들도 있는데 일리가 있는 말이다. 내가 열심히 사는 인간처럼 보이는 건 언젠가도 말했지만 나에겐 사는 것이 괴롭고 힘든 일이라서 그걸 잊기 위해 열심히 몰입할 거리를 찾아내려는 내 노력의 소산일 뿐이다.


소멸의 반대말이 불멸이라면 불멸을 꿈꾸는 이들은 당연히 열심당원(Zealot)들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열심당원처럼 보일지라도 그런 것을 전혀 소망치 않으니 사이비 열심당원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시인이 말하는
“그렇지, 마침표 하나면 되는데/ 지금껏 무얼 바라고 주저앉고/ 또 울었을까”라는 물음은 어쩌면 내가 내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내게 있어 모든 삶은 소멸을 향해 나아가는 ‘길 위의 인생(Life on the Road)’이다. 아무리 거창한 삶에게도, 또 비루한 삶에게도 소멸은 공평하다. 그 사실이 나에게 있어서도 역시 빛나는 희망이다. 내가 지금 열심히 사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불멸을 꿈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소멸에 이르는 과정 자체를 망각하기 위한 것이다. 삶을 모르기에 죽음에 대해 말할 수 없었던 공자처럼….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이전버튼 1 이전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