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운대행(沒雲臺行)
  

- 황동규


1


사람 피해 사람 속에서 혼자 서울에 남아
호프에 나가 젊은이들 속에 박혀 생맥주나 축내고
더위에 녹아내리는 추억들 위로
간신히 차양을 치다 말고
문득 생각한 것이 바로 무반주(無伴奏) 떠돌이.
폐광지대까지 설마 관광객이?
지도에서 사라지는 길들의 고요.
지도를 펴놓고 붉은 볼펜으로 동그라미 하나를 치고
방학에도 계속 나가던 연구실 문에 자물쇠 채우고
다음날 새벽 해뜨기 전 길을 나선다.

  2

영월 청령포를 조심히 피해 31번 국도를 탄다.
상동 칠랑에서 국도를 버리고
비포장 지방도로로 올라선다.
중석 걸러낸 크롬 옐로우 물이
길 옆 시내 가득 흘러오고
저단 기어를 넣은 `프레스토'가
프레스토로 떤다.
차 고장 없기만을 길의 신(神)에 빌며
망초꽃이 모여선 길섶을 지나
아다지오로
덤프트럭 자국 깊이 파인 언덕을 오른다.
길의 신이 급커브를 약간 풀어놓으며
아슬아슬한 낭떠러지를 보여준다.
크롬 옐로우가 꿈결처럼 몸을 바꿔
흑인 영가로 흐르기 시작한다.
흑인 영가의 어두운 음을 끼고
에어콘 끄고도 헐떡이는 차를 천천히 몰아
온갖 생물학이 모여 썩고 있는 쓰레기 낟가리를 돈다.
아! 폐광 하나가 검은 입을 벌리고 비탈에 박혀 있다.
입술 위로 너와지붕이 튀어나오고
그 위엔 다듬지 않은 풀들이
수염처럼 자라고 있다.
빠지고 남은 이빨처럼 녹슨 쇠기둥 두 개가 박혀 있고
녹슨 밀차 한 대가 굴 밖으로 나오려다 말고
뒤틀린 선로 위에 심드렁하게 서 있다.
들이밀면 머리부터 씹힐 것 같아
목을 움츠리고 슬쩍 몸을 들이민다.
귀가 먹먹
아 사람 사라진 사람 냄새!
천정에서 물 한 방울이
정확히 머리 위에 떨어진다.

  3

고개가 가파르다.
자장 율사(慈藏律師)가 진신사리 봉안했다는 정암사 가는 길
그도 헐떡이며 넘었으리라.
앵앵대는 소형차를 길가에 그냥 내버리고 싶다.
가만, 자장이며 의상(義湘) 같은 쟁쟁한 거물들이
경주, 황룡사, 부석사를 버리고
왜 강원도 산 속을 방황했을까?

왜 자장은 강원도 산골에서 세상을 떴을까?
입적지(入寂地) 미상의 의상도
강원도 산골의 행려병자가 아니었을까,
이곳 어디쯤에서?
가파른 언덕을 왈칵 오르자
해발 1280m의 만항재.
태백시 영월군 정선군이 서로 머리 맞댄 곳.
자글자글대는 엔진을 끄고 차를 내려 내려다보면
소나무와 전나무의 물결
가문비나무의 물결
사이사이로 비포장도로의 순살결.
저 날것,
도는 군침!
황룡사 9층탑과 63빌딩이
골짜기 저 밑에 처박혀 보이지 않는다.
바람이 없이도 마음이 온통 시원하다.
잠시 목숨을 잊고 험한 길 한번 마음놓고 차를 채찍질해
황룡사, 63빌딩, 정암사를 순식간에 지나서
정선 쪽으로 차를 몬다.

  4

화암약수터 호텔 여주인은 웃으며 말했다.
“제철인 데다 버섯 재배농가 회의로
정선군 모든 방이 다 찼지요.
몰운대 저녁노을이나 보시고
밤도와 영월이나 평창으로 나가시죠.”
표고버섯죽 한 그릇 비우고
길을 나선다.
신선하고 기이한 뼝대
저녁빛을 받아 얼굴들이 환했다.
그 위에 환한 구름이 펼쳐진 길
그 끝을 향해.

5

몰운대는 꽃가루 하나가 강물 위에 떨어지는 소리가 엿보이는 그런 고요한 절벽이었습니다. 그 끝에서 저녁이 깊어가는 것도 잊고 앉아 있었습니다.
새가 하나 날다가 고개 돌려 수상타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모기들이 이따금씩 쿡쿡 침을 놓았습니다.
(날것이니 침을 놓지!)
온몸이 젖어 앉아 있었습니다.
도무지 혼자 있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

너를 잃고 해마다 한두 번씩 찾아가던 몰운대, 구름도 가라앉아 지날 수 없다던 강원도 정선의 높은 뺑대(절벽) 위에 서면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죽어버리자던 마음도 잊혀지곤 했다. 너를 잃고도 살아갈 수 있다던 내가 징그럽게 미웠으므로 나는 그곳에 설 때마다 미워하던 나에 대해 알 수 없는 위안을 얻어 돌아서곤 했다. 절벽 위 벼랑 끝에 서면 생(生)에 대한 지긋지긋한 욕망이 스멀스멀 기어오르고, 간신히 기운을 차려 돌아서면 하늘 위로 구름이, 땅 위의 옥수수 밭이 스스스 소리를 내며 뱀처럼 움직인다. 바람이 혀를 날름거리며 '거봐, 이번에도 죽지 못하고 돌아섰지?'

삶이 세상에 갇혀 오도가도 알 수 없는 이라면, 도통 생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는 사람은 몰운대로 가라. 그곳 벼랑 위에 서면 네 삶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으리. 퉁퉁하게 부어오른 한꺼풀 살가죽에 갇힌 그대의 삶이 흐엉흐엉 소리를 내며 울어줄지도 모를 일이다.




* 지난 2010년 다시 찾은 몰운대, 벼락맞은 소나무는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가지마저 삭아서 하나둘 떨어져 나가고 나무 둥치 속 보금자리를 찾은 벌들이 앵앵 울어대며 나그네의 등을 몰아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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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더딘 슬픔

- 황동규

불을 끄고도 어둠 속에 얼마 동안
형광등 형체 희끄므레 남아 있듯이,
눈 그치고 길모퉁이 눈더미가 채 녹지 않고
허물어진 추억의 일부처럼 놓여 있듯이,
봄이 와도 잎 피지 않는 나뭇가지
중력(重力)마저 놓치지 않으려는 쓸쓸한 소리 내듯이,
나도 죽고 나서 얼마 동안 숨죽이고
이 세상에 그냥 남아 있을 것같다.
그대 불 꺼지고 연기 한번 뜬 후
너무 더디게
더디게 가는 봄.

*

어려서 할미를 어미인 양 여기며 살았다. 나 결혼하는 것까지는 보고 돌아가실 수만 있다면 소원이 없다던 할머니는 정말 나 결혼한 이듬해 봄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퇴근하고 돌아와 이제 막 잠들려는 찰나에 받은 전화로 할머니의 부음을 접했을 때 내가 느낀 황망함이란 당신의 죽음이 주는 황망함이 아니라 그 순간 너무나 침착하고 냉정한 나를 발견했다는 사실로부터 왔다.

만약 그 순간 내가 눈물이라도 펑펑 흘렸다면 앞으로 오게 될 장례 절차들이나 복잡다단한 일감들에 대한 생각이 아니라 내 양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느낄 수 있었다면 나는 그보다 훨씬 단순하게 나의 슬픔에 대해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다음날 일찌감치 양복을 차려 입고, 검정 넥타이를 동여매면서도 나는 슬프지 않았고, 슬프지 않은 내가 괘씸했다. 치매가 시작된 후 7년 가까이 서서히 말라 죽어가는 늙은 고목처럼 할머니는 그렇게 시들어갔고, 마침내 마지막 숨을 거두셨을 때 어쩌면 남들도 나처럼 안도했을지 모를 일이었지만 나는 나의 침착함과 냉정함이 쉽게 용서되지 않았다.  

장례 절차의 막바지에 이르러 당신을 염하기 위해 굳게 닫힌 냉장고 문이 열리고 마른 북어처럼, 혹은 동태처럼 그렇게 뻗뻗하게 굳어버린 당신의 몸을 염쟁이가 닦아내고, 고모들이 대성통곡을 하는 와중에도 내 눈에선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리지 않았다. 나는 말없이 내 멱살을 죄고 흔들며 수도 없이 속으로 되뇌었다. "나쁜 새끼, 나쁜 새끼, 나쁜 새끼..." 할미가 담긴 관을 들고 영구차에 옮겨실으면서도 바짝 말라 돌아가신 할머니가 왜이리 무거운지, 날은 또 왜그리 추운지에 대해 생각했다.

할미를 담은 영구차가 출발하고, 뒤를 이어 유족들이 탄 버스가 출발하는데 내 영혼은 유족들이 탄 버스에 담겨 있지 않고 저만치 뒤에서 버스를 쫓아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저 멀리 할머니가 묻힐 공원묘지 입구가 보이기 시작하자 나도 모르게 내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내 눈물을 내가 느꼈을 무렵부터 할미의 관이 땅에 묻히고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그 이후의 기억이 내게 없다. 삼촌들과 고모들이 내가 많이 울었다고, 많이 슬퍼했다고 그도 그럴 수밖에 없지라고 혀를 끌끌 차며 어깨를 다독여 주었다 하는데, 내겐 그 기억이 없다.

때로 진짜 상실감은 매우 더디게 온다. 슬픔이 그러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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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1916년 부활절』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지음, 황동규 옮김 / 솔출판사(1995)



예이츠는 1865년 더블린 외곽 샌디먼트라는 곳에서 영국계 부모 밑에서 태어났으나 평생을 아일랜드의 시인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그의 부모가 영국계라고는 하나 그의 집안은 200년 이상 아일랜드에서 살았다. 그의 가계는 대대로 성직자 집안이었으나 부친 J.B 예이츠는 법률공부를 했다. 그러나 법률가가 되는 것을 포기하고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가 되었다. 부친이 화가였다고는 하나 생활을 꾸려나가는 것은 쉽지 않았고, 예이츠 역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화가를 포기하고 시업에만 전념했다.


내가 예이츠를 재인식하게 된 것은 지난 1991년 아직 대학생이지 못하던 시절 어느 후미진 극장에서 보았던 영화 <멤피스벨(Memphis Belle)> 때문이었다. 그 무렵의 나는 아직 대학생이 아니었고, 그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사람이었다.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그 순간의 자기 자신이 얼마나 초라하게 느껴지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개봉 당시 그다지 인기를 얻지 못했는지 관객도 별로 없는 극장의 어둠 속에서 나는 무엇을 응시하고 있었을까? 우리에게 예이츠는 그의 명성을 드높이면서 동시에 그에 대해 괜히 잘 아는 척하게 되는 작품 「호수 섬 이니스프리(The Lake Isle of Innisfree)」로 기억된다. "나 이제 일어나 가리, 이니스프리로"란 인상적인 첫 구절이 주는 낭만과 처음부터 끝까지 호수의 잔잔한 이미지가 연상되는 싯구를 따라 예이츠의 이미지도 거기에 종속되어 버린다.


예이츠를 어떤 시인이라고 규정하는 다소의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굳이 그의 시적인 세계를 이야기해본다면, "아일랜드 민족주의"와 "신비주의"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시집의 번역자이자 시인인 황동규 선생의  해설에도 드러나고 있지만 "20세기의 시인들 가운데 예이츠처럼 명성의 오르내림 없이 사랑을 받는 시인"은 드물다. 그 이유 가장 큰 이유야 역시 그의 시가 지닌 탁월한 성취에 기인하지만, 다른 이유를 꼽자면 그 중 하나는 20세기에 출몰한 특별한 문예사조들 어디에도 그의 시가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상징주의에도 모더니즘에도 해당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시인이었고, 그것에만 충실한 삶을 살았다.


예이츠의 시에서 드러나는 신비주의는 아마도 에드바르트 뭉크의 화풍에 가계가 성직자 집안이었던 영향이 녹아드는 것처럼 성직자 집안으로 몇 대에 걸쳤던 영향력 아래 있는 것일 게다. 예이츠의 부친은 신학을 포기하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비종교적인 인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예이츠 역시 기질상 기독교적인 전통을 신봉하는 신자는 아니었으나 그것을 대체할만한 종교적 비의를 찾아 일생을 추구했다(따지고 보면 아일랜드는 켈트족 본래의 종교인 드루이드(Druides)의 전통이 강한 곳이 아닌가). 예이츠의 시세계가 변천해가는 과정은 몇 개의 중요한 시기들로 구분된다. 초기 런던의 시인들(셸리와 같은)에게서 영향을 받던 낭만적인 시기의 시들에서는 어머니의 고향 슬라이고의 지명과 민담 등을 시적인 소재로 사용하고 있다. 앞서 이야기했던 '호수 섬 이니스프리' 역시 이런 시기의 경향을 대표하고 있는 시이다.


▶ 아일랜드 민족주의자들이 일으킨 1916년 부활절 봉기 당시 모습

그는 종종 발표할 당시의 시를 다시 시집으로 묶으면서 새로운 시어로 교체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주로 자기도취적인 낭만주의적 경향의 시어들을 제거하는데 치중되곤 했다. 그는 좀더 목소리를 낮춰 자신이 독자들에게 보여주고자 했던 이미지들을 보편적인 것으로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그의 시는 좀더 구체적인 이미지들을 추구해 나간다. 그 자신은 이때의 경향에 대해 "비인격적인 아름다움을 포기하고 정상적이고, 정열적이며 분별력이 있는 자아"를 지니고자 했다고 말한다. 그런 시기에 나온 시들이 이 시집에도 수록되어 있는 '물 속의 자신을 찬미하는 늙은이들'이다.


나는 들었다, 저 늙고 늙은 늙은이들이 말하는 걸,

"아름다운 모든 것은 떠내려 간다
물처럼."
I heard the old, old men say,
'All that;s beautiful drifts away
Like the waters.'


이 시기에 그는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만남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여인 "모드 곤(Maud Gonne)"을 만난다. 예이츠는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내 인생의 고뇌는 시작됐다"고 고백할 만큼 아름답고 아일랜드 독립에 대한 신념에 가득 찬 독립운동가였다. 그러나 모드 곤은 자신을 열렬히 사랑했던 예이츠의 청혼을 거절하고 다른 독립운동가와 결혼했던 그녀의 남편이 1916년 부활절 봉기 때 처형당하자 예이츠는 또다시 청혼한다. 모드 곤은 예이츠의 청혼을 다시 거절했고, 결국 예이츠는 다른 여자와 결혼하며 그녀를 기억속에 접었다. 훗날 예이츠는 그녀가 자신을 받아들였다면 자신은 그저 평범한 시인에 그쳤을 것이라고 회상하기도 했다. 예이츠는 수년간 그녀에게 필사적인 구애를 펼쳤으나 열렬한 아일랜드 민족주의자였던 모드 곤은 그의 구혼을 완강하게 뿌리치고 만다. 이때 그는 '두 번째 트로이는 없다 No Second Troy'에서 그녀를 트로이의 헬렌에 비유했다.


모드 곤의 사랑을 얻는데 실패한 예이츠는 아일랜드 문학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그레고리 부인을 만나 사귀게 되면서 마음의 안정도 찾게 된다. 그는 자신의 혼란에 질서를 부여하고 싶었고, 그의 이런 시도들은 매우 복합적인 형태로 작용한다. 그는 중산층의 속물의식을 혐오했으며 종종 걸인이나 농부들과 같은 계급 혹은 그 이상의 계급인 귀족적인 아름다움에서 이상적인 인물을 발견해낸다.



▶ 이니스프리의 호수 섬

그의 명성도 점점 더 높아져 더 이상 시인으로서만 머물 수 없게 되어, 그는 1922년엔 갓 건국한 아일랜드 공화국의 상원위원에 지명되어 1928년까지 활동한다. 이 무렵 쓰인 시 중 하나가 영화 <멤피스 벨>에도 일부 인용된 시 '아일랜드 비행사가 죽음을 내다보다 An Irish Airman Foresees His Death'이다.


나는 안다, 저 구름 속 어디에선가
내 운명과 만나게 될 것을.
내 싸우는 자들 내 미워하지 않고
내 지키는 자들 내 사랑하지 않는다.
I know that I shall meet my fate
Somewhere among the clouds above;
Those that I fight I do not hate,
Those that I guard I do not love;


시인은 이후 한층 더 원숙해진 시어들, 사실적인 언어들을 통해 신비스러운 힘을 발휘한다. 이 시집의 번역자인 황동규 시인은 그의 대표적인 시 '풍장(風葬)'을 통해 그 자신이 예이츠의 영향을 받았음을 일부 시인하고 있다.


"내 마지막 길 떠날 때/ 모든 것 버리고 가도, / 혀 끝에 남은 물기까지 말리고 가도,/ 마지막으로 양 허파에 담았던 공기는/ 그냥 지니고 가리. / 가슴 좀 갑갑하겠지만 / 그냥 담고 가리."

<황동규, 풍장 28 중에서>


"한 외로운 환희의 충동이 나를/ 이 설레이는 구름 속으로 나를 몰아넣었다./ 나는 모든 것을 재어보았다, 마음 속에 떠올려./ 이 삶, 이 죽음과 견주어 볼 때/ 앞으로 올 세월도 지나간 세월도/ 호흡의, 호흡의 낭비로 보였다."

<예이츠, 아일랜드 비행사가 죽음을 내다보다 중에서>


예이츠는 말년에 이르러 이런 말을 했다.
"모든 것을 한 마디로 요약해 본다면, 사람은 진리를 구현할 수는 있으나 그것을 알 수는 없다고 말하겠다 … 추상적인 것은 삶이 아니며 도처에서 자기모순을 드러낸다. 그대는 헤겔을 반박할 수 있지만, 성자나 6펜스의 노래(Song of Sixpence)를 반박할 수는 없다." 모든 생명이 지난 삶에 대한 반성을 통해 제 자리를 찾는다. 그것이 과학적인 개념으로 보았을 때는 진화라고 부르는 것일 게다. 우리는 우리의 삶과 죽음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더 나은 미래를 살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기에…. 예이츠의 시는 합리주의에 기초한 서구철학과는 다른 방향으로 진화해 갔다. 그의 성찰이 담긴 시집 한 권을 읽어보는 것도 좋은 일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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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조그만 사랑 노래

- 황동규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늘 그대 뒤를 따르던
길 문득 사라지고
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여기저기서 어린 날
우리와 놀아 주던 돌들이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추위 환한 저녁 하늘에
찬찬히 깨어진 금들이 보인다
성긴 눈 날린다
땅 어디에 내려앉지도 못하고
눈 뜨고 떨며 한없이 떠다니는
몇 송이 눈.

*
참, 사랑이란.....
오나가나 애물단지다.
나이와 상관없고, 성별과 상관없고, 국적과 상관없이 사랑은 온천지에
공평하게 번진다. 바이러스처럼...
수많은 변종을 품은 채....

사랑한다고 혼자서 열번만 되뇌인 뒤 처음 만난 사람을 쳐다보면
사랑에 빠지게 될까?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저 들판에 버려진 눈처럼 널 사랑한다.
짓밟아 더럽혀지도록 방치해둔 채
봄 햇살 눈물 되어 녹아내리도록
첫 눈 내린 옥상 지긋이 밟아본 그 기억처럼
흘러내린 피 한 방울처럼
가슴 설레던 기억으로 사랑이여.....

때묻은 사랑도 값싸게 받아주시려는지...
길 문득 사라지고
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여기저기서 어린 날
사랑은 눈물되어 저문 땅을 적신다.

난 이미 더럽다.
어런더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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