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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

정양 - 가난에 대하여 : 박재삼 시집 '비 듣는 가을나무'를 읽고 가난에 대하여 : 박재삼 시집 '비 듣는 가을나무'를 읽고 - 정양 어떤 사람에게는 가난이야 한낱 남루이므로 부귀공명이 끝끝내 그리운 타고난 살결까지는 다 가릴 수가 없었겠지만 아다시피 이 땅에는 가난이 너무 많아서 자랑도 슬픔도 부끄럼도 못 되었지만 밑이나 째지고 부황기 들고 모래밭에 혀나 빼물고 몸이나 팔고 맨주먹이나 파르르파르르 떨었었지만 모를 일이다 타고난 마음씨 하나로 어찌하여 그 가난이 이 세상에서 제일로 제일로 반짝이는지 다만 아직 만나지 못하고 사귀지 못한 그 많은 눈물까지를 해맑은 햇살로나 씻어 어떻게 반짝이게 하는지 정말로 정말로 모를 일이다 * 세상의 많은 길 중에서 커다란 대로를 놔두고, 굳이 비탈길, 돌무더기 켜켜이 쌓인 뒤안길로 가야 할 때, 혹은 그 길로 걸어가는 고행을 자처하.. 더보기
정양 - 토막말 토막말 - 정양 가을 바닷가에 누가 써놓고 간 말 썰물진 모래밭에 한줄로 쓴 말 글자가 모두 대문짝만해서 하늘에서 읽기가 더 수월할 것 같다 정순아보고자퍼서죽껏다씨펄. 씨펄 근처에 도장 찍힌 발자국이 어지럽다 하늘더러 읽어달라고 이렇게 크게 썼는가 무슨 막말이 이렇게 대책도 없이 아름다운가 손등에 얼음 조각을 녹이면 견디던 시리디시린 통증이 문득 몸에 감긴다 둘러보아도 아무도 없는 가을 바다 저만치서 무식한 밀물이 번득이며 온다 바다는 춥고 토막말이 몸에 저리다 얼음 조각처럼 사라질 토막말을 저녁놀이 진저리치며 새겨 읽는다 * 문학을 아름다운 우리말의 보고(寶庫)이자 보루(堡壘)라고들 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자어를 쓰고 있구나). 때때로 나는 문학, 특히 시(詩)를 빙산에 비유하곤 하는데, 그것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