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의 역사학 : 근대국가는 성을 어떻게 관리하는가 - 후지메 유키 지음 | 김경자 | 윤경원 옮김 | 삼인(2004)
성매매특별법을 둘러싼 논쟁과 성의 역사학
- 새로운 혹은 해묵은 논쟁의 관점들
후지메 유키의 "성의 역사학 - 근대국가는 성을 어떻게 관리하는가"는 부제가 충분히 암시하고 있는 것처럼 여성의 신체를 국가가 어떻게 관리(통제)하여 왔는가? 그것은 근대의 틀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통제되고, 억압되어 왔는가를 마르크스적인 관점과 페미니즘의 관점을 이용해 연구고찰한 결과물이다.
후지메 유키는 근대공창제는 군대, 군사주의, 근대국민국가 체제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이 제도는 군대 위안과 성병 관리를 기축으로 한 국가관리 체계이며, 근대국가 건설, 특히 강력한 군대 건설의 이익과 결합해 탄생한다. 성병 검진을 통해 질병이 없다는 것이 증명된 여성을 창부로 등록시킨 이 제도의 목적은 성병에서 남성, 특히 장병을 보호하는 것이다. 캐서린H.S.문의 "동맹 속의 섹스"에 드러난 사례(1965년)를 요약해보면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미8군 병사들의 약 84%는 성매매를 경험했으며, 성매매의 주요원인은 동료의 압력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군은 성매매와 성병을 관리하는 것은 전쟁과 전쟁 준비에 저해되는 모든 요소들을 관리할 필요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나 여성들의 입장에서 살폈을 때 이런 제도는 거리의 여성들에 대한 시민권의 전적인 폐지를 국가가 공인하는 최초의 정책을 의미했다. 전쟁 기간 동안 병사들이 걸리는 가장 많은 질병 1위는 성병이고, 2위가 감기였다고 한다." 근대국민국가의 거의 모든 성매매 관련 법안은 남성고객과 성매매 여성의 처벌에 차등을 두었고, 알선업자와 포주는 체포되지도 않는 법률이었다.
또한 저자는 선진자본주의 국가가 본국과 식민지에 공창제를 도입하는 과정을,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과 산업혁명의 유럽 대륙 및 미국으로의 파급, 선진자본주의 각국에 의한 식민지 분할, 상품경제의 침투에 따른 사회변동 등을 배경으로 전통 사회가 해체되고 도시와 해외로 미증유의 인구이동이 발생하고 무산계급 여성들에게 부단히 성매매 여성화의 압력이 가해지는 과정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는 결국 부르주아 사회가 사회제도로서 성매매를 필연적으로 동반하고 있음을 폭로하는 것이기도 하다. 버나드 쇼는 성매매를 윤리적 차원에서 접근하지 말도록 요구하면서 "실제로 도덕성의 근저에는 경제문제가 있다. 성매매는 여성의 타락이나 남성의 방종이 아니라 여성들의 저임금, 과소평가, 과중 노동으로 야기되는 것이다. 여성들의 비참한 상황이 아주 가난한 여성들에게 이슬처럼 덧없는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성매매에 매달리도록 강요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경우 성매매 여성이 인신매매 등에 의한 것이 아닌 자발적인 선택으로서의 성매매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함을 알 수 있다.
후지메 유키는 성매매금지운동에 대해 여성주의 진영이 "여성 전체가 억압당하면서도 특히 노동자계급 여성들이 성매매 여성화되는 강한 압력 속에 있었고, 실제로 이들은 성매매 여성의 오명을 쓴 동성(同性)이며 함께 연대해서 싸워야 할 동등한 자매"로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폐창운동의 헤게모니를 종교적 도덕주의자들이 잡고, 공창제(성매매) 폐지로 나아가는 것은 "해방을 지향한 것이 억압을 입법화"하는 것이며, "당연히 성매매 여성들과 연대해야 할 이들이 성매매 여성을 폭력에 강제된 희생자, 저능이기 때문에 타락한 자로 보고 구제, 교화, 배척의 대상으로 삼게 되는 것"을 경계하도록 요구한다. 성매매 여성을 피해여성으로만 규정하는 것을 "계급을 뛰어넘어 자매로 이어줄 끈"을 끊는 것으로 보았다. 이런 관점은 "우리는 왜 성매매를 반대해야 하는가"를 쓴 원미혜 선생의 "나는 성을 팔지 않아도 되는 세계에서 제기되는 '왜 굳이 성을 파는가?'라는 질문과 성을 팔고 있는 세계에서의 '왜 팔면 안되는가?'의 반문 사이에서 만들어진 좁고 답답한 공간에 갇혀 있는 듯했다. 어느 세계에서도 시원스런 답을 찾을 수 없었다"며 반복되고 있다.
근대일본의 사례를 중심으로 구미국가들의 사례들과 비교하며 성과 생식의 문제를 국가적 차원에서 어떻게 다루었는가를 밝히고 있다. 이 책은 여러가지 점에서 논쟁적일 수 있다. 첫째는 그것이 일본의 사례라는 점에서 그 자체로 논쟁적이다. 광복 60주년을 맞이하는 2005년 1월 5일. 올해 들어 첫 수요집회가 열렸다는 사실은 아직도 역사적으로 정리되지 못한 한일 양국의 문제가 어째서 현재진행형의 논쟁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런 차원에서 저자인 후지메 유키는 한국어판 서문을 통해 "1990년대에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들이 전개한 저의를 요구하는 운동은, 일본의 연구자들에게 조선을 비롯한 아시아의 관점을 결여한 '일본 여성사'가 얼마나 일면적이며 오만한 자민족중심주의에 빠져있는가 하는 점을 충격적으로 깨닫게 해주었다"고 고백한다. 그와 같은 관점에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일본군 '노예'제가, 1930년대에 시작된 전쟁에서 돌연히 나타난 것이 아니라, 근대의 군국주의.식민지주의와 불가분의 관계 속에서 전개된 국가폭력 제도, 즉 공창제가 가장 흉폭한 단계로 발전한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자 했다"고 말한다.
둘째로 논쟁적일 수 있는 부분은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의 문제를 계급적인 관점으로,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는 문제인가? 하는 것이다. 저자는 여성의 몸과 근대국민국가 사이의 관계를 공창제, 낙태죄 체제, 산아조절 문제를 중심으로 분석하면서 계급적 관점과 여성주의적 관점을 두루 이용하고 있는데, 논쟁적일 수 있는 부분은 주로 계급적 관점을 동원해 여성주의적 관점에 대해서는 비판적 자세를 취하고 있는 점이다. 고백하건대 나자신은 비록 여성주의적 자세 일부에 대해 비판적이긴 하지만, 후지메 유키가 다루고 있는 문제들 - 공창제, 낙태를 포함한 산아조절 문제 등 - 은 계급적 관점만으로는 해석하기 힘든, 대안을 제시하기 어려운 문제들이란 지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후지메 유키의 비판에 대해 대체로 동감하면서도 방법론적으로만 여성주의적 관점을 차용한 것은 아닌지, 그 지향점을 지나치게 계급적 관점에만 치중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즉, 여성주의적 관점은 방법론적인 부분에서만 차용하고, 그 지향점에선 소외시킨 것이 아닌가하는 부분은 논쟁으로 남을 만하다고 느꼈다.
이와 같은 부분은 제1차 페미니즘을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을 거쳐 구미 사회에서 백인 중산층 여성을 중심으로 여성교육의 확대, 취업기회의 확대, 민법 개정, 여성의 참정권 획득과 같은 여성의 시민적 권리를 추구하며 국제적으로 폭넓게 전개"된 긍정적인 측면을 인정하지만, "제1차 페미니즘에서 섹슈얼리티의 문제에 도전한 것은 소수파"였으며, "여성을 존경할 만한 여성과 그렇지 않은 여성"으로 이원화한 점, 근본적으로 이성애 중심이었음을 지적하는 부분에서 드러나는데, 이런 부분은 긍정할 수 있었다. 제2차 페미니즘은 성과 생식에 대해 새로운 견해를 제안했는데, 페미니즘이 드디어 권력의 문제에 접근하게 되었다는 것이 제2차 페미니즘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성과 생식의 문제를 사적인 영역에서 공적인 영역으로 끌어내 정치학의 문제로 삼아 "개인적인 것은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The Personal is the political)"이라는 슬로건 아래 그간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되던 남녀관계, 성애, 출산, 육아, 산아조절 등의 문제에 정치성을 부여한 긍정적인 측면을 인정하였다. 제2차 페미니즘은 선진자본주의의 국가중심주의, 백인중심주의, 중산층 중심주의를 극복하고자 했지만, 비백인 여성과 제3세계 여성들의 관점에서 보자면 제2차 페미니즘은 백인중산층의 시야와 동기에 규정되기 쉬운 점을 들어 "제국의 페미니즘"으로 비판한다.
흑인해방운동과 민족해방운동을 위해 싸운 여성들은 여성 억압이 민족(인종) 억압과 계급 지배와 일체를 이루며 여성 사이에는 계급과 인종(민족)에 근거한 차이와 권력관계가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즉, 지배집단의 여성(비록, 그 자신이 페미니스트라 할지라도)이 획득한 것은 피지배집단 여성의 희생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비판이다. 후지메 유키의 "성의 역사학"이 어려운 까닭은 이해가 쉽다, 어렵다는 차원의 어려움이 아니다. 그것은 최근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우리 사회의 여러 층위들이 성매매특별법과 성매매여성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의들, 논쟁들, 시위를 어느 한 가지 관점에서 파악하기 어려울 만큼 복잡한 것과 궤를 같이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성매매특별법 시행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현재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논쟁들을 총망라하고 있다.
언어가 사람을 규정한다는 명제가 일상사에서 이보다 더 극명하게 드러나는 경우도 드물다고 생각될만큼 성을 사고 파는 행위를 규정하는 단어들은 "윤락, 매춘, 매매춘, 성매매, 성 노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관점과 정치적 입장을 드러낸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에까지 접근해 들어가면 과연 성을 사고 팔 수 있는 것인가?란 질문으로부터, 성을 사고 파는 일은 올바른가? 이것을 노동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와 같은 질문들, 성매매에서의 자발성이란 인정할 수 있는가? 와 같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심각한 선택과 판단을 내리도록 강요한다. 마치 실제 성매매가 일어나는 집창촌의 좁디 좁은 골목길과 미로처럼 얽힌 방들 사이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꼴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나름의 방안을 제시하고 있기는 하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난 뒤 현재까지 성매매특별법과 성매매 혹은 성노동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되었
는데, 아직까지도 그 미로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보더라도 이 책은 나에게 해답을 선사하는 책이 아니라 보다 많은 고민 속에 처박아 버린 꼴이다. 이 책을 읽고 난 뒤 내가 느낀 한 가지는 저자 "후지메 유키"라면 현재 우리 사회의 성매매 문제에 대해 이렇게 말할 것 같다. "그 어떤 선입견도 갖지 말고, 현장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라. 그들 스스로가 그들 스스로를 해방시킬 수 없는 존재로 규정해 소외시키고, 타자화하지 말고, 그들이 스스로를 해방시킬 수 있는 주체가 될 수 있음을 인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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