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친구들에게 '컴뱃'을 아느냐고 물으면 100중 8~90은 바퀴벌레 약을 먼저 떠올리지 않을까 싶은데, 나 어릴 적 TV에서는 이른바 반공드라마로 '전우'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얼마전에 최수종이 출연해서 다시 만들어진 적도 있는데, 내 기억 속 '전우'의 수준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졸작이었다.
어쨌든 드라마 '전우'는 미국의 TV시리즈 - 그러니까 미드의 원조 격이었던 여러 TV프로그램들이었던 '600만불의 사나이', '소머즈', '월튼네사람들', '초원의 집', '도망자', '헐크' 등등 - 들 중 하나였던 빅 모로(Vic Morrow) 주연의 <전투(combat)>의 컨셉을 따온 드라마였다. 인터넷쇼핑몰에서 이 시리즈 DVD가 염가에 나왔길래 미친 셈 치고 전 시리즈를 구매했다. 인상적인 오프닝과 귀를 찢는 듯 날카로운 총소리도 여전했다.
빅 모로는 1982년 임권택 감독이 신일룡, 남궁원, 정윤희, 윤양하, 남포동 등과 함께 <아벤고공수군단(Abengo Airborne Corps)>이란 영화에 출연했다. 광고 포스터에는 빅 모로가 마치 주연인 것처럼 대대적으로 선전했지만 실제로는 특별 출연으로 짤막하게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출연진의 면면을 봐도 그렇고, 임권택 감독이나 촬영진도 당대 우리 영화계의 특A급 인사들이 총출연하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이전까지 제작되었던 '특공대 반공영화'의 총집합체이면서도 모든 부분이 나사 빠진 듯 이것도 저것도 아닌 온갖 것들이 잡탕이 되었음에도 따로국밥처럼 놀아서 결국 흥행에 실패하고 말았다. 차라리 완전히 액션반공영화로 갔다면 또 모르겠는데 1982년이란 시대상황이 그렇게만 몰고가기엔 애매한 시대였던지 끝까지 애매한 영화로 남았던 것으로 기억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옛날에도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전투>를 보면서 예나지금이나 한결같이 들었던 마음은 - 그때는 어려서 그랬다치고, 지금은 작품성을 위해서(?) - 맨날 미군이 이기니까, 나도 모르게 독일군도 한 번쯤 이겨주었으면 바라는 마음이 들더라는 것이다. 아마도 그런 탓에 이후 수정주의 할리우드 영화들에선 독일군의 시각에서 전쟁을 바라보는 반전영화들도 꽤 제작되었다. 전쟁에 나가면 언제나 승리하는 인간적인(?) 미군의 비인간적인 면모를 보면서 어린 마음에도 그것이 주류에 대한 저항의식의 단초가 되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흔히 역사는 승자의 것이라고 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에서 사람들은 패자에게 동정을 보내고(물론 독일군을 동정한다는 건 어디까지나 인간적인 것이지만), 패자의 시선에서 다시금 역사를 바라보고자 하는 의식이 생기는 걸지도 모르겠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유황도(이오지마)를 소재로 각기 다른 두 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두 편 다 범작 이상의 수준을 보여주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일본군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를 보면 - 분명 패전하는 독일군 못지 않게 서글프고 비참함은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을 텐데도 - 그 주인공들에게 충분한 감정이입을 할 수가 없다. 내셔널리즘이란 것에도 거리차란 것이 존재하는 탓일지도 모르겠지만 다른 한 편으로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가더라도 과거사가 분명하게 매듭(사과와 용서)지어지 못한 채 흘러가는 시간이란 무의미한 것일지도 모른다.
* 나의 내셔널리즘 탓일지도?
**빅 모로가 배우이자 시나리오 작가였던 바바라 터너와의 사이에서 얻은 딸이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 <브루클린으. 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에서 열연을 펼쳤던 제니퍼 제이슨 리( Jennifer Jason Leigh)이다. 그러고보니 딸의 얼굴에서 아빠의 표정 얼굴이 엿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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