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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문학

C.S.루이스 - 헤아려 본 슬픔 "슬픔은 마치 긴 골짜기와도 같아서, 어디로 굽어들든 완전히 새로운 경치를 보여주는 굽이치는 계곡이다." 언젠가는 그에 대해 글을 써보리라 마음 먹고는 있지만 J.R.R.톨킨에 비해 좀더 기독교적인, 아니 기독교인의 본보기 같은 인물이라 C.S.루이스에겐 좀더 쉽게 손이 가질 않는다(기독교인을 부정하거나 싫어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내게는 좀더 이해하기 어렵고, 복합적인 인물로 여겨진 탓이다). "나니아연대기"의 작가이자 현 대 기독교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론가이자 저술가 중 한 명이었던 클라이브 스테이플스 루이스(Clive Staples Lewis, 1898.11.29 ~ 1963.11.22)는 아내 조이 데이빗먼(Joy Davidman)과의 애틋한 사랑으로도 유명하다. 옥스포드대학 교수이자 이미.. 더보기
알베르 까뮈 - 혼자만 행복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 사진은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이 촬영한 알베르 까뮈 알베르 까뮈의 소설 는 아프리카 지중해 연안의 작은 도시 오랑에 페스트가 들이닥치며 시작한다. 시 당국에 의해 도시는 폐쇄되었고 사람들은 작은 도시에 갇혀 스스로의 힘으로 죽음과 맞서 싸워야 한다. 취재를 위해 오랑에 왔다가 갇혀버린 기자 랑베르는 파리에서 기다리는 아내를 위해 불법이라 할지라도 죽음과 삶이 교차하는 도시에서 탈출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찾는다. 어느 날, 드디어 그를 태우고 오랑을 탈출시켜줄 배편을 구한 랑베르는 부두에 나갔다가 마음을 되돌린다. 심경의 변화를 느낀 랑베르는 오랑을 탈출하는 대신, 도시에 남아 자신도 페스트와 함께 싸우기로 마음먹는다. 그는 페스트(죽음)와 맞서 싸우는 의사 리유에게 자신은 이제 오랑을 떠나지 않기로 했.. 더보기
다자이 오사무(Dazai Osamu)-자기애와 자기혐오 사이에서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가운데 어느 문장에서 꽂힌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나는 그를 좋아했었다. 아주 어릴 적부터의 일이니까. 요즘엔 그의 책을 다시 꺼내보는 일도 거의 없지만, 만약 그가 그 무렵 내 마음을 끌어들일 것이 있었다면... 그건 아마도 그의 위악과 위선이 빚어내는 신물나는 이중주에 젖어 무심결에 이건 '내 얘기같다'가 아닌 '내 얘기다'로 느낀 대목들이 자주 있었기 때문일 게다. 존 포드에게 있어 존 웨인이 페르소나라면, 마틴 스콜세지에게 로버트 드니로가 그렇다면, 알프레드 히치콕에게 제임스 스튜어트가 그렇다면.... 독자로서 또는 글쟁이로서 내가 내 이야기를 사소설처럼 엮어갈 필요를 별로 느끼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분명 다자이 오사무에게 기인한다. 언젠가 나는 A서점의.. 더보기
넌 아직 몰라도 돼 - 청소년을 위한 아주 특별한 시집 바느질의 여왕 - 신지영 무릎 사이에 가죽 조각을 끼고 하나하나 이어 붙이다 보면 어둠이 달려와 하늘은 검은 망토를 둘러요 깜깜한 밤이 되면 해님을 꿰먀서 하늘에 붙이고 싶어요 더듬더듬 바늘구멍 찾다보면 너덜너덜 캄캄한 웃음이 떨어질 거 같거든요 실을 당겨서 휘어진 손가락에 지문은 없어요 잃어버렸다고 울진 않아요 내 지문은 상표보다 선명하게 축구공에 찍혀 있으니까요 오늘도 바늘은 서른 두개의 오각형과 육각형 조각을 꿰매서 축구공을 만들어요 매일매일 천육백이십 번의 바느질은 하루를 한 달을 일 년을 이어 붙여요 내가 만든 축구공이 골대를 통과해 축구장 가득 사람들의 함성을 터뜨릴 때 어느덧 나는 바느질의 여왕 사람들 마음을 한 조각도 놓치지 않고 하나로 이어 붙여요 출처: "넌 아직 몰라도 돼 - 청소년을.. 더보기
윤희상 - 소를 웃긴 꽃 소를 웃긴 꽃 ㅣ 문학동네 시집 90 윤희상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6월 지난 언젠가 화요일에 나는 선배 박형준 시인과 함께 국밥을 먹었다. 지금 한국의 시인들이 처해있는 다소 비극적인 상황에 대해 선배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나는 꾸역꾸역 국밥을 밀어 넣었다. 밥알을 씹으며 한 편으론 한국의 시인들이 현대미술이 처한 난관과 흡사한 난관에 처했다는 생각을 했다. '형, 문학이 문학 그 자체의 힘을 잃고, 자꾸만 철학이 되고, 정치가 되어 가고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아직 시 문학은 살아있다. 비록 커다란 변화의 조짐들이 불길한 징조가 되어 연이어 출현하고 있지만. 오늘 아침 출근을 하니 또 한 명의 선배 시인이 새로 시집을 냈다고 시집을 보내주었다. 간만에 읽는 신간 시집이다. 첫 .. 더보기
D에게 보낸 편지 : 어느 사랑의 역사 - 앙드레 고르 지음, 임희근 옮김 / 학고재 / 2007년 11월 D에게 보낸 편지 : 어느 사랑의 역사 - 앙드레 고르 지음, 임희근 옮김 / 학고재 / 2007년 11월 앙드레 고르는 내게 있어 마르크스 이후 발견한 가장 매력적인 사상가 중 하나였다. 이반 일리치를 계승한 정치생태학자로서 그의 사상은 산업문명 전반을 반추해보도록 만드는 힘이 있다. 다만 생태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남성(sex)으로써 태어난 남성(gender)'이 여성주의자(페미니스트)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는 것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힘든 일이다. 왜냐하면 ‘생태주의’를 하나의 실천적 이념(정치)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자신을 규정하고 있는 모든 문명체계(혹은 문화)를 극복하고 매일매일 새로운 인간이 되겠다는 결심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앙드레 고르가 평생의 반려였던 도린에게 보낸 사랑의 메시지.. 더보기
절망의 끝에서 - 에밀 시오랑 지음, 김정숙 옮김 / 강 / 1997년 3월 절망의 끝에서 - 에밀 시오랑 지음, 김정숙 옮김 / 강 / 1997년 3월 "죽음이란 생을 낭만화하는 원리이다. 생에 로맨틱(낭만적) 차원을 주는 원리이다" - 노발리스 희랍어 "아포리아"는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없는 난관을 의미하는 말로 막다른 길이란 뜻을 함께 가지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상대방의 논리를 아포리아 상태에 빠뜨리는, 무지의 자각이란 교육법으로 젊은이들을 가르쳤다.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은 대화에서 로고스의 전개로부터 필연적으로 생기는 난관을 일컬어 아포리아라고 말한다. 아포리아란 철학의 막다른 길은 아니지만 말이 끊기는 곳에서 사유가 꽃핀다는 점에서 가장 "끊을 절 + 입구 = 철학"적이다. 내가 위치한 지점(혹은 입장)을 어느 순간부터 자각하게 되었는가? 그 시기는 잘 알 수 없으나.. 더보기
송병선 - 영화속의 문학읽기:영화로 보는 라틴아메리카 사회와 문화 영화속의 문학읽기 - 영화로 보는 라틴아메리카 사회와 문화 송병선 지음 / 책이있는마을 / 2001년 2월 지난 한 해 우리 영화는 세계 3대 영화제를 사실상 석권하는 기염을 토했다. 70년대 우리 문화 자장의 중심에 위치한 것이 문학, 그 가운데서도 소설이었다면, 80년대는 시와 사회과학이었을 것이고, 90년대 이후 현재까지 그 핵심을 이루는 것은 영화다. 나 역시 한동안 영화를 꽤 열심히 보았고, 영화를 만드는 상상을 했었다. 한 사회의 문화적 에너지가 어느 한 분야에 집결하는 것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겠으나 이를 잘되는 집안꼴이라고 칭찬하기도 어렵다. 우리 영화 흥행의 그림자가 워낙 넓고 짙은 까닭도 있지만, 문화란 것이 특정한 한 분야의 성공만으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문학은 죽었다,.. 더보기
희망은 길이다 - 루쉰 | 이철수(그림) | 이욱연 옮김 | 예문(2003) 희망은 길이다 - 루쉰 | 이철수(그림) | 이욱연 옮김 | 예문(2003) 나는 "루쉰" 선생을 존경한다. 예전에 누군가에게 말한 적이 있지만 존경한다는 건, 다른 말로 "나도 당신처럼 살고 싶어요"란 뜻이라고 말한 바 있다. 마음속으로 존경만 하고 그의 삶을 본받지 않는다면 존경한다는 말이 무슨 의미를 지니겠는가란 뜻에서 한 말이었다. 문제는 정작 말만 그렇게 하고 나 역시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것일 게다. "희망은 길이다"란 책을 나는 지금까지 근 10여 권 넘게 구입했다. 내가 이 책을 그렇게 많이 구입한 것은 내가 한 권을 읽고 난 뒤 나만 읽지 않고 좀더 많은 이들에게 루쉰의 글을 읽게 하고 싶다는 욕심에 그리한 것인데, 오늘 살펴보니 그간 이 책을 선물 받은 이들이 죄다 꿀 먹은 벙어리가 .. 더보기
루바이야트 - 에드워드 피츠제럴드 | 민음사(1997) 루바이야트 - 에드워드 피츠제럴드 | 민음사(1997) 오마르 카이얌(Omar Khayyam)은 11세기 중엽 페르시아 동북부 지방 코라싼주의 나이샤푸르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지나 출생연대는 정확치 않다. 오마르 카이얌이 살았던 시대는 셀주크 투르크 왕조가 문화적으로도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던 시대였다. 기독교인들의 성지인 예루살렘을 차지하고 순례자들을 박해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 오마르 카이얌이 언제쯤 숨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교황 우르바누스2세가 처음 십자군을 일으킨 1096년 이전에 숨지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오마르 카이얌의 이름도 정확하게 누구를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는 11세기경에 살았던 천문학자이자 수학자, 역사학자, 철학자(당시의 지식인이란 존재를 생각해볼 때 이렇듯 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