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횡단철도 - 시간과 공간을 정복한 사람들의 이야기 / 스티븐 E. 앰브로스
대륙횡단철도 - 시간과 공간을 정복한 사람들의 이야기 / 스티븐 E. 앰브로스 지음/ 손원재 옮김/ 청아출판사/ 2003년
21세기, 우리는 세계화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지구라는 한 행성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진정 하나의 세계 속에 살고 있다는 인식이 가능해진 것은 불과 200여년 전의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공간적의 문제였다. 실크로드를 통한 동서양의 교류를 상인들은 목숨을 걸고 몇년의 기간을 소비하는 모험을 했다. 지금은 단지 7-8시간 걸리는 길을 말이다. 19세기로부터 20세기 중반에 이르는 시기에 인류는 과연 하나의 시대 속에 살고 있었을까. 필기구 문제만 놓고 보았을 때 지금 50-60대의 연령에 있는 사람은 과거 수세기의 경험들을 압축해온 이들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붓과 펜, 연필, 만년필과 볼펜에서 수동타자기, 전동타자기, 워드프로세서를 거쳐 컴퓨터, 노트북에 이르는 수많은 필기도구를 사용해 왔다. 볼펜에서 타자기로의 이동과 다시 노트북 컴퓨터로의 이동을 우리는 '근대화'라고 부른다. 우리 사회는 이런 압축적 근대화의 길을 걸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 IT강국의 이미지가 창조된 것은 불과 10년여의 일이다. 보루네오 정글에서의 삶과 지금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같은 시간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은 과연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는가? 이것이 동시대성의 문제일 것이다.
이 책의 영문판 제목은 'Nothing Like It In The World'이다. 우리말로 바꿔보자면 '세상에 이런 일은 없었다' 정도가 될까. 1865년 미국에서 시작된 센트럴 퍼시픽과 유니온 퍼시픽의 대륙횡단철도가 연결되는 대사업은 이렇듯 미국의 동부와 서부를 같은 시간대, 같은 공간대의 삶으로 이어주는 역할을 했으며, 나아가 대서양과 태평양을 이어주었다. 그리고 이것은 더 나아가 필리핀이 스페인 식민지에서 미국 식민지로 바뀌게 되는 과정, 20세기 최대의 사건이랄 수 있는 미국의 태평양 진출의 도화선이자 바탕이 되는 사상 초유의 사건이 된다. 중국은 상해와 같은 동부 해안으로부터 옌안과 같은 내륙으로 100km 들어갈 때마다 시대적으로 10년씩 뒤로 밀려난다고 한다. 근대화가 동부 해안 저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탓이다. 중국이 장강 삼협댐 건설과 같은 내륙의 개발에 열을 올리는 이유 역시 거기에 있다.
Engines from the Union Pacific Railroad (right) and the Central Pacific
스티븐 E. 앰브로스는 뛰어난 저술가이자 드라마틱한 스토리텔러의 재능을 아낌없이 발휘하고 있다. 그는 밀리터리 매니아들을 흥분시킨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저자이자, 미국의 전직 대통령들인 아이젠하워와 닉슨 대통령의 자서전을 집필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이 책 <대륙횡단철도>에서도 역시 뛰어난 이야기꾼의 솜씨를 발휘하고, 대륙횡단철도의 의미를 확연하게 드러내고 있다. 인디언들의 땅을 조금씩 침범해 가며 미국은 대서양 연안의 동부로부터 태평양으로 향하는 대륙횡단철도를 건설해 새로운 제국 미국 건설의 초석을 다진다.
남북전쟁이 전쟁을 통해 미국의 남부와 북부를 하나로 통합시켰다면 대륙횡단철도는 철도건설이라는 국책사업을 통해 미국의 동부와 서부를 하나로 잇는다. 암브로스는 그 와중에 희생된 이들에 대해서도 주목한다. '폭약과 중국인. 그 먼 옛날 창조주가 인간이 반드시 지나가야 할 길에 놓아둔 흙과 바위에 맞서기 위해 사용된 유일한 무기라고 할 수 있다.' 서부 지역에서는 일거리를 찾아 미국을 찾은 중국인들이, 동부 지역에서는 이민 후발 주자로 들어온 아일랜드 출신 노동자들이 가혹한 노동조건 속에서 일했다. 그 와중에 협잡꾼에 가까운 사업가들의 이전투구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 책을 통해 미국이란 나라의 건설과정에 대해 좀 더 알 수 있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더불어 우리의 동시대성을 가로막는 남북분단에 대한 새로운 시각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최종점이자 시작점이 될 수 있다. 미국이 대륙횡단철도를 놓아 새로운 세기의 주인공으로 성장한 것처럼 우리들도 부산이나 광주에서 출발하여 평양, 신의주, 블라디보스톡, 모스크바를 거쳐 폴란드 바르샤바, 베를린, 파리로 이어지는 진정한 유라시안대륙횡단철도의 시작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