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거스 컨스텀, 클라우디아 페닝턴 - 난파선의 역사 - 해양문화총서 3
난파선의 역사 - 해양문화총서 3/ 앵거스 컨스텀, 클라우디아 페닝턴 지음, 김웅서 옮김/ 수수꽃다리/ 2003년
"난파선의 역사"는 지난 1990년대 초반부터 우리 역사학계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서양 아날학파의 미시사적인 연구의 한 성과물이다. "보물섬" 이래 전세계 해양을 지배한 영국과 현재 세계의 바다를 주름잡고 있는 미국의 역사학자, 큐레이터가 만나 공동으로 작업한 결과물이기도 한 이 책은 청소년기의 매력적인 주제 중 하나였던 "난파선"에 관한 것이다. 난파선은 역사학자는 물론 바다에 대한 동경과 순수를 간직한 청소년에 이르기까지, 그저 바다 밑에 가라앉은 배가 아니라 '보물선'이자 '보물섬'이다. 역사학자에게는 지난 시대를 실증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중요한 '타임캡슐'일 테고, 우리들에게는 무한한 상상의 공간 속에 자리한다. 앵거스 컨스텀과 클라우디아 패닝턴은 우리들을 13세기의 난파선으로부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침몰한 군함에 이르는 난파선의 역사 속으로 끌어들인다.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난파선은 누가 뭐래도 수없이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한 "타이타닉"호 였을 것이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스스로 불침이라고 주장했던 선박은 얼마나 많았던가? 인류의 기술적 진보가 아무리 달을 건너 화성과 태양계 저 너머로 인류의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고 자랑하지만 결국 우리가 모든 기술력을 총동원해서 만든 강철 선박도 해양의 개념으로 보자면 거대한 풀장에 알루미늄박으로 접은 종이배에 불과하다. 이 책에는 그런 실증적인 증거물들로 그득하다.
이 책은 먼저 난파선의 개념과 수중고고학을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난파선을 찾는 과정과 발굴작업, 침몰선 인양, 잠수의 역사, 배가 난파되었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일들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다종다양한 난파선들을 소개하고, 난파되기까지의 과정을 소략하고 있다. 가령 역사상 가장 유명한 타이타닉호의 침몰이나 영국의 최신형 전함이었던 로열 오크호의 침몰도 이 책에서는 그들의 침몰이 피할 수 없는 사건이었던 것처럼 짧게 정리될 수밖에 없다는 아쉬움을 남긴다는 것이다. 가령, 난파선에 대해 실린 도판들이 칼라와 흑백을 구분하고 모두 좋은 편이지만, 이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난파선의 설계도면이나 구조도 등 난파 되기 이전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 부분이나 당시 선박의 내부 구조,선원, 선장의 역할, 역사 등 이야기를 보다 재미있고, 심층적으로 꾸밀 수 있는 부분들이 보완되었더라면 보다 수준높은 읽을 거리가 되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다(물론, 원저 역시 그랬으리라 생각한다).
솔직히 처음 "난파선의 역사"라는 책이 나온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얼마나 가슴이 두근거렸는지 모른다. 어렸을 적 누구라도 책상 밑으로 기어들어가 무인도 동굴 생활을 대체하는 상상 속의 '로빈슨 크루소우'를 경험한 것처럼 난파선은 모험에 대한 원초적인 동경을 불러일으키는 소재이다. 그런데 막상 책을 펼쳐들고 나서는 다소 아쉬움이 남았다. 어차피 이런 류의 책을 보고자 하는 사람들은 여러 부류가 있을 것이다. 소박하게 과거 자신의 추억을 되살리는 소소한 재미를 위한 이들도 있을 것이고, 보다 심화된 내용을 알고 싶은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 중간에 참 어중간한 위치에 놓여 있다. 문학적인 재미를 느끼며 읽기에는 다소 딱딱하고, 보다 심화된 내용을 알고 싶은 이들에게는 그다지 새로운 사실도, 자세한 내용도 부족하다는 아쉬움을 간절하게 남긴다. 다만 한 가지 위안을 삼을 만한 것은 "수수꽃다리"라는 출판사가 "해양문화총서" 시리즈를 기획했고, 이 책은 그 세번째 책이라는 것이다. 그 책들은 "인류의 해저 대모험 -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에서 핵잠수함 시대까지, 해양문화총서 1, 바다는 희망이다 - 21세기를 위한 해양보전, 해양문화총서 2" 등이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이 분야에 대한 좋은 책들이 많이 발간되었으면 하는 것이 독자로서의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