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역사
차용구 - 로마제국 사라지고 마르탱 게르 귀향하다 : 영화로 읽는 서양 중세 이야기
windshoes
2010. 10. 15. 10:36
로마 제국 사라지고 마르탱 게르 귀향하다 - 영화로 읽는 서양 중세 이야기 / 차용구 지음/ 푸른역사/ 2003년 11월
이 책 "로마 제국 사라지고 마르탱 게르 귀향하다"는 중앙대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차용구 교수가 일반인들의 중세사 이해를 돕기 위한 역사영화 에세이라고 할 수 있다. 부제가 '영화로 읽는 서양 중세 이야기'라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이 책의 내용이 어떤 것일지를 상상하는 것은 더욱 쉬워진다. 최근 국내 언론에서는 연이어 자연과학에 대한 푸대접을 이야기한다. 얼마전 남극 세종기지에 일어난 사고 소식과 뒤이어 알려진 세종기지 연구원들의 열악한 처우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른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 기초가 약한 것이 어디 이런 학문 분야 자연과학 분야에 불과할까 싶지만 역시 학문 분야에만 치중해서 이야기하자면 인문사회과학의 열악함 역시 목불인견의 상황이다. 국내최고 수준이라는 국립대학 대학원의 국사분야 박사과정이 정원미달인 것이 어제오늘 일도 아니고, 기초 상식 수준의 역사를 배울 수 있는 고등학교의 역사 수업 시간이 눈에 띄게 줄어든 것도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심지어는 전공분야가 완전히 다른 지리학과 출신 교사가 세계사나 국사를 가르치는 경우도 비일비재해진 것이 오늘 우리의 현실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대학에 진학하니 이들 학생들이 자신이 배우는 학문에 애정을 갖고 공부해주길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본인은 아무리 학문적 열정에 불타오른다 할지라도 결국 졸업 후에 취업이 안 된다면 배운 것을 사회에 환원하길 바라는 것은 불가능한 바람이 될 것이다. 게다가 처음부터 제대로된 수업을 받지 못했으니 대학에 진학하더라고 기초 교양 수업부터 다시 해야 한다. 기본이 너무 부족한 상환인 것이다. 그렇다고 학생들에게 열의를 기대할 수도 없는 상황이고 보니 교수들은 어떻게 하면 보다 쉽게 이런 기초 교양을 넓혀주고, 자신이 배워나가야 할 학문 분야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된다. 그 결과 사회학에서는 '포디즘(fordism)'의 교과서로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를 보여주고, 역사학과 교수인 차용구 교수는 일반인들의 이해를 돕는다는 명목으로 이런 책을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었다. 물론 학문이 상아탑에 안주하여 일반인들과의 교류를 등한히 한 책임은 분명 따져물어볼 만한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상황들 자체의 안쓰러움은 가시지 않는다. 이 책의 맨 뒷표지에 별도로 빼놓은 저자의 말을 다시 인용해본다.
"서양중세사를 새로운 각도에서 조망하고, 중세 기독교 문명을 독자들이 좀더 흥미롭고 친근하게 접할 수 있는 방법을 고심하던 중 '영화를 통해서 본 서양 중세사'라는 주제를 착안해 냈다. 필자가 생각하는, 역사가 영화와 만나야 하는 이유는 이러하다. 첫째. 영상의 시대가 도래했다. 둘째. 사극을 통해 역사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셋째. 사실 영화의 내용은 모두 일종의 역사다. 넷째. 현대관객은 영화에서 정보를 얻는다. 다섯째. 고증이 잘된 사극이 흥행에도 성공한다. 이제 역사가도 현대 사회의 지배적 매체인 영상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야 할 것이다."
저자의 말을 읽으며 떠오르는 상황은 우리 인문학계가 처해 있는 위기 상황을 고심하는 한 역사학자의 고민이 역력하다. 그는 무엇보다 우리 인문학, 역사학을 살리기 위해서는 일반인들의 애정과 관심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영화에 쏠린 애정의 10분지 1만이라도 인문학에 관심을 기울여 달라는, 그래서 역사를 알면 영화보기가 더욱 즐거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이렇게 직접 발 벗고 나선 것이다. 저자는 서양 중세 1,000년의 역사를 10편의 영화로 압축하여 보여주려는 일견 무모한(?) 시도를 감행한다. 게다가 '국내에서도 비교적 쉽게 구해볼 수 있는'이란 전제 조건은 반대로 이 책의 제약조건이 된다. 그 결과 서양 중세를 이 한 권으로 모두 이해한다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다. 하긴 이 책의 애초 의도부터 역사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구애의 결과였으니 이를 통해 한 사람이라도 그런 독자가 생긴다면 다행한 일일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저자인 차용구 선생이 무척이나 고심한 결과 우리는 중세 1,000년이라는 거대한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10편의 영화를 얻게 되었으니 이제 보기만 하면 된다. 나는 저자가 언급하고 있는 영화 10편 중 마지막 '마르탱 게르의 귀환'을 제외하고는 모두 서너 차례 이상 본 영화들이었다. 그만큼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영화들이다. 저자의 고심이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틴 기어의 귀향 (The Return Of Martin Guerre,1982)
그런데 이 책에는 몇 가지 단점들이 보인다. 우선 '역사+영화'라는 이 책의 이종교배 부분에서 영화가 너무 적게 언급되고 있어서 책에서 언급한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은 책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저자 자신이 서양중세사, 그 중에서도 교회사 전공자이다보니(서양중세사에서 교회사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책에서 다루고 있는 10편의 영화들의 역사 부분에서 교회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다는 것(이런 부분들은 단점이자 역시 장점일 수 있다), 셋째 몇 군데에서 보이는 오탈자 문제와 제공되는 이미지의 상태가 전체적으로 좋지 않다는 점, 크레쉬, 푸아티에, 아쟁쿠르 전투 이야기 부분에서 신무기로 등장한 '대궁'은 일반적으로 '장궁'이라 표기해야 정확했을 것이다. 책의 다른 부분에서는 '장궁'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이미 이전에 이와 비슷한 몇 권의 책이 출판된 적이 있다.
마크C.칸즈 등이 지은 "영화로 본 새로운 역사 1.2"가 도서출판 소나무에서 이미 출판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이 두 책은 서로 비교할 수 있다. 앞 책의 장점에 비해 이 책이 분명 못 미치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그 책을 뛰어넘는 부분이 훨씬 더 많이 있다. 우선 한국인이 지은 책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보다 균형잡힌 시각을 얻을 수 있으며, 서양중세사를 바라보는 역사학계의 최신 관점을 얻을 수 있고, 원시 인류로부터 현대사에 이르는 내용을 망라한 앞의 책에 비해 이 책은 보다 심도 있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무엇보다 일반인들의 눈높이로 역사를 기술하여, 일반인들이 역사에 대한 관심을 고취시킬 수 있도록 애쓴 시도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최근 서양중세사와 관련한 좋은 책들(호이징하 - "중세의 가을", 조르주 뒤비 - 중세의 결혼:기사, 여성, 성직자, 자크 르 고프 - 중세의 지식인들, 서양중세문명, 카를로 진즈부르그 - 치즈와 구더기, 중세에 살기, 필립 아리에스 - 죽음의 역사)이 많이 출간되고 있는데, 이것들과 함께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 책 "로마 제국 사라지고 마르탱 게르 귀향하다"는 중앙대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차용구 교수가 일반인들의 중세사 이해를 돕기 위한 역사영화 에세이라고 할 수 있다. 부제가 '영화로 읽는 서양 중세 이야기'라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이 책의 내용이 어떤 것일지를 상상하는 것은 더욱 쉬워진다. 최근 국내 언론에서는 연이어 자연과학에 대한 푸대접을 이야기한다. 얼마전 남극 세종기지에 일어난 사고 소식과 뒤이어 알려진 세종기지 연구원들의 열악한 처우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른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 기초가 약한 것이 어디 이런 학문 분야 자연과학 분야에 불과할까 싶지만 역시 학문 분야에만 치중해서 이야기하자면 인문사회과학의 열악함 역시 목불인견의 상황이다. 국내최고 수준이라는 국립대학 대학원의 국사분야 박사과정이 정원미달인 것이 어제오늘 일도 아니고, 기초 상식 수준의 역사를 배울 수 있는 고등학교의 역사 수업 시간이 눈에 띄게 줄어든 것도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심지어는 전공분야가 완전히 다른 지리학과 출신 교사가 세계사나 국사를 가르치는 경우도 비일비재해진 것이 오늘 우리의 현실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대학에 진학하니 이들 학생들이 자신이 배우는 학문에 애정을 갖고 공부해주길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본인은 아무리 학문적 열정에 불타오른다 할지라도 결국 졸업 후에 취업이 안 된다면 배운 것을 사회에 환원하길 바라는 것은 불가능한 바람이 될 것이다. 게다가 처음부터 제대로된 수업을 받지 못했으니 대학에 진학하더라고 기초 교양 수업부터 다시 해야 한다. 기본이 너무 부족한 상환인 것이다. 그렇다고 학생들에게 열의를 기대할 수도 없는 상황이고 보니 교수들은 어떻게 하면 보다 쉽게 이런 기초 교양을 넓혀주고, 자신이 배워나가야 할 학문 분야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된다. 그 결과 사회학에서는 '포디즘(fordism)'의 교과서로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를 보여주고, 역사학과 교수인 차용구 교수는 일반인들의 이해를 돕는다는 명목으로 이런 책을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었다. 물론 학문이 상아탑에 안주하여 일반인들과의 교류를 등한히 한 책임은 분명 따져물어볼 만한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상황들 자체의 안쓰러움은 가시지 않는다. 이 책의 맨 뒷표지에 별도로 빼놓은 저자의 말을 다시 인용해본다.
"서양중세사를 새로운 각도에서 조망하고, 중세 기독교 문명을 독자들이 좀더 흥미롭고 친근하게 접할 수 있는 방법을 고심하던 중 '영화를 통해서 본 서양 중세사'라는 주제를 착안해 냈다. 필자가 생각하는, 역사가 영화와 만나야 하는 이유는 이러하다. 첫째. 영상의 시대가 도래했다. 둘째. 사극을 통해 역사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셋째. 사실 영화의 내용은 모두 일종의 역사다. 넷째. 현대관객은 영화에서 정보를 얻는다. 다섯째. 고증이 잘된 사극이 흥행에도 성공한다. 이제 역사가도 현대 사회의 지배적 매체인 영상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야 할 것이다."
저자의 말을 읽으며 떠오르는 상황은 우리 인문학계가 처해 있는 위기 상황을 고심하는 한 역사학자의 고민이 역력하다. 그는 무엇보다 우리 인문학, 역사학을 살리기 위해서는 일반인들의 애정과 관심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영화에 쏠린 애정의 10분지 1만이라도 인문학에 관심을 기울여 달라는, 그래서 역사를 알면 영화보기가 더욱 즐거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이렇게 직접 발 벗고 나선 것이다. 저자는 서양 중세 1,000년의 역사를 10편의 영화로 압축하여 보여주려는 일견 무모한(?) 시도를 감행한다. 게다가 '국내에서도 비교적 쉽게 구해볼 수 있는'이란 전제 조건은 반대로 이 책의 제약조건이 된다. 그 결과 서양 중세를 이 한 권으로 모두 이해한다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다. 하긴 이 책의 애초 의도부터 역사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구애의 결과였으니 이를 통해 한 사람이라도 그런 독자가 생긴다면 다행한 일일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저자인 차용구 선생이 무척이나 고심한 결과 우리는 중세 1,000년이라는 거대한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10편의 영화를 얻게 되었으니 이제 보기만 하면 된다. 나는 저자가 언급하고 있는 영화 10편 중 마지막 '마르탱 게르의 귀환'을 제외하고는 모두 서너 차례 이상 본 영화들이었다. 그만큼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영화들이다. 저자의 고심이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틴 기어의 귀향 (The Return Of Martin Guerre,1982)
그런데 이 책에는 몇 가지 단점들이 보인다. 우선 '역사+영화'라는 이 책의 이종교배 부분에서 영화가 너무 적게 언급되고 있어서 책에서 언급한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은 책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저자 자신이 서양중세사, 그 중에서도 교회사 전공자이다보니(서양중세사에서 교회사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책에서 다루고 있는 10편의 영화들의 역사 부분에서 교회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다는 것(이런 부분들은 단점이자 역시 장점일 수 있다), 셋째 몇 군데에서 보이는 오탈자 문제와 제공되는 이미지의 상태가 전체적으로 좋지 않다는 점, 크레쉬, 푸아티에, 아쟁쿠르 전투 이야기 부분에서 신무기로 등장한 '대궁'은 일반적으로 '장궁'이라 표기해야 정확했을 것이다. 책의 다른 부분에서는 '장궁'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이미 이전에 이와 비슷한 몇 권의 책이 출판된 적이 있다.
마크C.칸즈 등이 지은 "영화로 본 새로운 역사 1.2"가 도서출판 소나무에서 이미 출판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이 두 책은 서로 비교할 수 있다. 앞 책의 장점에 비해 이 책이 분명 못 미치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그 책을 뛰어넘는 부분이 훨씬 더 많이 있다. 우선 한국인이 지은 책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보다 균형잡힌 시각을 얻을 수 있으며, 서양중세사를 바라보는 역사학계의 최신 관점을 얻을 수 있고, 원시 인류로부터 현대사에 이르는 내용을 망라한 앞의 책에 비해 이 책은 보다 심도 있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무엇보다 일반인들의 눈높이로 역사를 기술하여, 일반인들이 역사에 대한 관심을 고취시킬 수 있도록 애쓴 시도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최근 서양중세사와 관련한 좋은 책들(호이징하 - "중세의 가을", 조르주 뒤비 - 중세의 결혼:기사, 여성, 성직자, 자크 르 고프 - 중세의 지식인들, 서양중세문명, 카를로 진즈부르그 - 치즈와 구더기, 중세에 살기, 필립 아리에스 - 죽음의 역사)이 많이 출간되고 있는데, 이것들과 함께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