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역사
윌리엄 브럼 - 미군과 CIA의 잊혀진 역사/ 녹두(2003)
windshoes
2010. 9. 4. 10:31
윌리엄 브럼 - 미군과 CIA의 잊혀진 역사/ 녹두(2003)
이란, 리비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중국, 캄보디아, 필리핀, 인도네시아, 베트남, 한국, 이탈리아, 그리스, 과테말라, 볼리비아, 쿠바, 니카라과, 파나마....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나라들은 고작 19개 나라에 대한 이야기가 전부다. 우리는 정부기관에서 하는 일들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국민을 위해 생산적인 일만 할 것 같은 산업자원부, 한 국가의 산업자원을 총괄하는 부서라고 배웠지만 그 밑에 얼마나 많은 산하기관이 있고, 그네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우리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수자원공사는 단지 수자원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정부가 만든 공사형태의 기업체로 생각하고, 원자력공사는 원자력의 안전한 관리를 위해 정부가 우리들 세금으로 만든 기업체 형태로 생각해버리고 마는 경향이 있다.(이들 공사가 산자부 직할 기관인지는 잘 모르겠다.)
왜? 미국의 국부 토마스 제퍼슨은 "가장 좋은 정부는 가장 적게 다스리는 정부"라고 말했을까? 왜? 헨리 데이빗 도로우는 이런 그의 말에 동의하여 "시민 불복종"이란 말을 했을까? 수자원공사는 단지 수자원관리만을 하는 곳이 아니다. 그곳은 댐을 만든다. 그런데 이 기구는 한 번 만들어지고 나면 계속해서 많은 예산을 소모하고, 보다 많은 댐을 건설하기 위해 사업을 추진한다. 원자력기구가 한 번 만들어지고 나면 계속해서 이에 따른 핵발전소 건설을 추진하게 된다. 이유는? 그것이 조직의 논리이기 때문이다. 상비군이 존재하게 된 뒤, 세상이 더 안전해졌는가? 세계 각국은 상비군이 존재하기 전보다 더욱 많은 전비(군비가 아니다, 전비다)를 소모한다. 이유는 군비경쟁이 전쟁의 위험을 고조시키고, 전비 소모는 군산복합체의 수지타산을 맞춰준다. 군산복합체에 근무하는 노동자는 자신의 아들, 이웃 형제가 전쟁터에서 전사하더라도 이를 영웅적인 죽음으로 추모할 지언정, 자신이 만든 미사일이, 총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라고는 생각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에겐 돌봐야 할 가족이 있고, 안정된 직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고교생에 의해 일어났던 콜럼바인 총기 난사 사건이 미국 최대 규모의 군산복합체 공장 인근이었다는 것은 무시될 수 없는 진실이다.
이렇듯 한 번 만들어진 정부기구는 계속해서 사업을 추진하지 않을 수 없는 속성을 지닌다. 그렇다면 미국의 정부기구 중 가장 많은 예산을 소모하면서 그 내용 자체가 금기시되는 정보기관들은 과연 국민들의 합리적인 감시 아래 놓여 있을까? 이 책의 저자인 윌리엄 브럼은 그런 의문에서 이 책을 저술하게 되었다. 원래 외교관이 되고 싶었던 윌리엄 브럼은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면서 이 꿈을 버리고, 1967년 국무성을 떠나 그 후 워싱턴에서 최초의 대안언론인 「워싱턴 자유언론」의 설립자 겸 편집자가 되었다. 그는 현재까지 미국, 유럽, 중남미 지역에서 프리랜서 언론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1969년 이미 CIA와 원수처럼 될만한 일을 저질렀는데, 200명 이상 되는 직원의 이름과 주소가 담긴
우리에게 CIA는 이미 매우 친숙한 이름이다. 소위 '랭글리'라는 애칭(?)으로도 불리우는 미 중앙정보부는 한국에도 그 아류를 설립한 적이 있는데 지금은 국정원이란 이름으로 변모한 "중앙정보부"가 그것이다. 중앙정보부를 지칭했던 영문약자가 KCIA였다. 나는 이런 류의 책들 - 첩보의 세계를 다룬 책들에 대해 - 완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대개 이런 류의 책들은 그 성격상 후일담에 그치기 때문이다. 정보기관의 비밀 사업들은 대개의 정부에서 비밀문서로 보관해 일정기간 동안 일부 관계자를 제외하고는 열람 자체가 금지된다. 세계의 많은 역사학자, 사회학자들이 미국의 비밀문서 해제 소식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도 그 탓이다. 심지어는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미모의 첩보원이었던 마타 하리에 대한 정보 역시 2017년에야 비로소 프랑스 정보 당국에 의해 비밀이 유지되도록 규정해두었다고 한다.
죽은자는 말이 없다고 하던가? 국민을 속이고 비밀리에 정보기관들은 정보수집은 물론 쿠데타음모, 정적암살을 비롯해 여론 조작, 테러, 매수, 선동공작을 획책하고 이를 실행에 옮긴다. 경우에 따라서는 직접적인 무력침략조차 서슴치 않는다. 우리는 단지 겉으로 드러난 현상만을 가지고 그 내용을 유추해볼 뿐 명확한 증거는 어디에도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비밀정보기관들은 세계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국민의 눈과 귀를 속이고 활동한다. 이 책에서 밝히고 있는 내용들도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와 의회도서관에서 찾은 자료와 기밀 해제된 각종 문서를 참고하여 19개의 사건을 전개 과정에 따라 순차적으로 정리한 것에 불과하다. 우리가 읽고 있는 이 책의 내용들은 이미 사건이 일단락된 뒤의 이야기들이라는 것이다. 미국은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에서 500만명 이상을 죽이거나 죽도록 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쉼없이 정보공작과 직접적인 침략행위를 계속하고 있다.
저자는 조지 오웰과 마이클 파렌티의 매우 인상적인 말로 저자의 말을 마감하고 있다.
과거를 다스리는 자는 미래를 다스리고,
현재를 다스리는 자는 과거를 다스린다.
- 조지 오웰, <1984> 중에서
언젠가 공산주의가 세계의 대부분을 장악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반공주의가 이미 세계를
장악한 사실을 보지 못하고 있다.
- 마이클 파렌티, <반공주의의 충격> 중에서
윌리엄 브럼의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들은 사실(fact)이다. 그러나 그걸 읽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 점에서 주의해야 한다. 한 가지는 잘 믿기지 않지만 믿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갑자기 세상 모든 일이 미국과 CIA의 공작으로 보일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주의하시고, 동시에 이 책의 몇몇 단점을 소개하자면 한 가지는 저자 자신이 때로 지나치게 흥분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녹두 출판사의 책임이겠지만 군데군데 인명이나 지명 표기에서 실수가 보인다. 그래서 이 책을 구입한지는 좀 되었는데, 처음에 읽다가 그런 부분이 보여서 덮어버리고 말았다. 물론 못 읽을 정도는 아니다. 참고로 이 책은 다음의 책과 함께 읽으면 정말 좋을 것이다. 그것은 이삼성 교수의 <세계와 미국:20세기의 반성과 21세기의 전망>(한길사)란 책이다. 이 책은 다소 두께가 있으므로 그것이 좀 어렵다면, 같은 저자의 <20세기의 문명과 야만>(한길사)를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책 내용에 대한 자세한 소개를 하지 않는 까닭은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 중 상당수는 이미 "문망"에서도 다루었거나 앞으로 다룰 내용들과 겹치는 부분들도 있을 것이기 때문인데, 책을 읽기 전에 한 가지 들려주고 싶은 재미난 이야기는 미국이 그동안 사용해온 국방비는 예수 탄생 이래 매 시간 당 1만 7,000달러 이상이란 것이다. 올해가 2004년이니까, 계산들 잘 해보시길.... 그들은 그 돈으로 2,000만명 이상의 제3세계 민중을 살해했다. 한 사람 죽이는데 드는 돈이 한 사람 살리는데 드는 돈보다 늘 훨씬 많이 지출된다는 것, 그것이 인류의 비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