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판타지 - 김서정, 굴렁쇠(2002)
『멋진 판타지』 - 김서정, 굴렁쇠(2002)
나는 이것을 문학의 비타협적인 속성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문학이 세상과 불화한다는 것은 단순히 정치적(이때의 정치적이란 말의 의미는 현실정치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주류권력과 불화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뤼시엥 골드만은 『소설 사회학을 위하여』에서 소설을 "타락한 사회에서 가장 타락한 방식으로 진실을 추구하는 서사"라고 정의한 바 있다. 여기서 핵심은 "타락한 사회에서의 가장 타락한 방식"이 무엇인가?를 묻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진실을 추구하는 서사"가 무엇인가?를 묻는 일이다. 소설 문학은 이미 태생적으로 타락한 사회에 적응하는 방식으로 나타난 장르이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여전히 "진실을 추구하는 서사"로서의 위치를 놓치지 않는다.
문학의 위기란 결국 엄살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소설은 여전히 타락할 건덕지를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세상을 타락한 사회라고 인식한다면 할수록 소설은 그 가운데서도 가장 타락한 방식의 서사이므로 앞으로도 도 많이 추락할 수 있다. 그렇다면 소설은 어떻게 타락할 것인가? 그 방식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이 욕망의 무한 질주를 앞서는 서사를 채택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정반대의 길로 달려가는 것이다. 그 정반대의 길에서 만날 수 있는 장르 중 하나로 나는 판타지를 꼽고 싶다. 판타지하면 최근 성공리에 영화 시리즈를 마감한 톨킨의 판타지 소설 『반지의 제왕』을 먼저 떠올릴 수 있을 텐데, 이 소설 역시 출간 이후 금세기 이내 영화화되기는 어렵다는 평을 들었던 작품이다. 결국 세기를 넘겨 영화화에 성공했다.
김서정의 『멋진 판타지』는 '어린이문학평론집'이라는 부제를 달고 '굴렁쇠'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전체가 3부의 구조로 꾸며져 있는데, 제1부 '판타지는 멋있다'를 통해 판타지란 무엇인가를 규정하고 있다. 판타지란 그리스말에서 나왔는데, '눈에 보이도록 하는 것', '현실로는 나타나지 않는 것을, 상상력의 힘을 빌어 어떤 특정한 모양으로 바꾸어 놓는 활동이나 힘 또는 그 결과'라고 한다. 저자에 따르면 판타지는 '현실 세계의 법칙을 깨뜨리는 이야기'이지만 이런 단순한 정의보다 중요한 것은 그런 요소들이 어떻게 '다른 세계'에 대한 생각을 끌어낼 수 있는가에 촛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이 세계와는 다른 또 하나의 세계, 다른 사람은 생각지도 못했던 나만의 세계를 뛰어난 상상력으로 만들어 내놓아, 읽는 이를 놀라고 감탄하게 하는 이야기" 그것이 바로 판타지라고 말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의문을 던진다. 전래동화도 판타지인가? 저자는 "전래동화는 이 세상이, 사람들의 이성으로 모두 설명할 수 있는 곳은 아니라고 말한다. 또 소박한 윤리, 도덕으로 단순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곳도 아니라고 말한다. 설명할 수 없고 받아들이기 힘든 삶도 모두 나름대로 귀한 것이라는 사실을, 논리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들려주는 것이 전래동화"라고 말한다. 매우 재미있는 해석이고, 공감할 수 있는 정의였다. 이 정의를 통해 우리는 전래동화 역시 판타지이며 훌륭한 전래동화, 판타지는 현실세계와는 다른 세계를 이야기하지만 결코 현실과 괴리된 꿈같기만 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속성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제1부에서 판타지의 여러 덕목들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제2부 '잊혀지지 않는 이야기'에서 저자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서구의 동화들 - 단순히 동화라고 규정할 수 없는 철학우화들이라 할 수 있는 것들 - 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미하엘 엔데, 필리파 피어스, 루이스 캐럴, 엘윈 브룩스 화이트, 앨런 알렉산더 밀른,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등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으며(위엔 언급된 작가들 이외에도 많으나 편의상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만 언급) 뛰어난 작품들을 발표한 이들이다. 이들 가운데 특히 필리파 피어스의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는 특이한 판타지이다. 『반지의 제왕』처럼 선과 악 사이의 처절한 전투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기이한 캐릭터들이 줄이어 나오지도 않는다. 도리어 아주 평범한 일상적인 풍경들 속에서 벌어지는 현실이 어떻게 판타지가 될 수 있을까? 저자는 그것을 "시간"이라고 말한다. 한밤중 톰은 시계를 바라보며 환상,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판타지의 세계로 들어간다. 영원할 것 같은 어린 시절은 일순간의 꿈과 같다. 한 번 흘러간 시간은 영원히 되돌릴 수 없다는 진부하기 짝이없는 교훈을 필리파 피어스는 짐짓 근엄한 표정으로 재미란 설탕가루에 버무려 준다.
그런 점에서 '삐삐'는 어른과 아이의 환상을 한 몸에 버무린 존재다. 삐삐는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한다는 점에서 아이들에게는 어른이고, 돈이 곧 자유라는 어른들의 환상 속에서 그는 돈 많은 어린이다. 아이 입장에서도, 어른 입장에서도 삐삐는 부러움을 한 몸에 받을 만한 존재다. 삐삐가 반권위적이란 점만 놓고 보면 그는 완벽한 아나키스트이다. 삐삐의 뒤죽박죽 별장에서는 세상의 권위, 예절, 질서, 체제 따위는 온통 뒤죽박죽이 되어버린다. 그런데 삐삐가 그런 전복적인 자유를 즐길 수 있는 요소들은 무엇인가? 그것은 말을 번쩍 들만큼 엄청난 힘과 해적 선장 아버지가 물려준 금화들, 그리고 무엇보다 천진난만하여 어른들을 꼼짝 못하게 만드는 말의 힘이다. 그렇다고 삐삐가 무척 논리적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삐삐는 논리적이라기 보다는 어린이기 때문에 보이는대로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다. 어른들은 논리를 가장하지만 그것이 진실은 아니다. 세상은 논리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어른들은 이미 내면화하고 있는 탓에 그들 자신의 논리가 천진난만한(?) 삐삐에게는 통하지 않는 것이다.
제3부 '독일동화문학과 판타지'는 208쪽에 불과한 얇고 작은 이 책에서 가장 작은 쪽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가장 이론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이 부분이 이 책의 전체에서 가장 활력이 없어 보인다. 게다가 저자가 언급하고 있는 부분들 - 독일동화문학은 낭만주의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으며, 독일 낭만주의는 독일 정신의 한 유산으로 인식되고 있다. - 에서 나는 한 가지 의문아닌 의문이 생겨났다. 그것은 판타지 문학 전체에 대한 것과도 연결된다. 전래동화란 개념, 전래동화가 본격적으로 채집되기 시작한 것은 고전주의 시대를 거쳐 낭만주의에 이르러서다. 낭만주의란 사조는 결국 민족주의와 깊은 연관을 맺게 된다. 히틀러가 바그너의 "니벨룽겐의 반지"를 연모한 것처럼 말이다. 낭만주의의 자기 파괴적 속성은 반합리주의와 연결되고 이는 다시 파시즘과 연결된다. 그런데 저자는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거의 전혀 연구가 없어 보인다.
앞서 판타지 문학이 지닌 덕목들 - 다른 세계에 대한 열린 상상력과 설명할 수 없고 받아들이기 힘든 삶도 모두 나름대로 귀한 것이라는 사실, 교훈성과 전복적인 기운들 - 을 일거에 무화시켜 버릴 수도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에서 나는 무척 아쉬움을 느꼈다.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국경이 있다"는 말은 이중의 소외를 말하는 것이다. 하나는 과학, 과학연구에는 그 어떤 제약도 주어질 수 없는 초월적인 것이란 의미에서의 소외이고(이는 다시 말해 과학은 시민사회의 도덕률이나 윤리에서 자유로운 어떤 것이라는 위험한 규정이 된다), 그런 과학자들조차 국가 이데올로기에는 종속된 존재여야 한다는, 즉 국가구조의 하부에 속해야 한다는 규정을 통한 소외를 암시하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판타지 문학에 대입시키면 판타지에는 국경이 없으나 판타지 문학에는 국경이 있다는 말이 될지 모르겠다.
옛이야기는 동화의 어머니라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판타지 문학은 독일동화문학의 예에서 알 수 있듯 전래동화와 깊은 연관이 있으며 이는 다시 민족과 연결된다. 판타지문학이 '다른 세계'를 다룬다 하더라도 현실과 괴리된 이야기일 수 없는 것처럼 판타지 문학의 태생 또한 민족과 결부되지 않을 수 없다. 서구의 판타지 문학이 한국 혹은 동양의 판타지 문학과는 다를 수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다.톨킨의 『반지의 제왕』에 대한 여러 해석들 가운데 하나는 그가 경험한 세계대전에 대한 것이다. 『반지의 제왕』에서 가장 두드러진 암시는 모르도르의 화산에서도 알 수 있듯 '불'이다. 세계을 일순간에 잿더미로 만들 수 있는 불에 대한 암시가 대량폭격과 소이탄, 핵에 의한 공포를 말하는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해리 포터』 시리즈가 판타지이면서 동시에 다른 세계에서조차 자본주의 방식의 마법 - 가령, 님버스제 최신 모델의 빗자루 - 를 표현하는 것 이 또한 앞으로 판타지 문학이 풀어야 할 숙제일지 모르겠다. 판타지 문학이 과거 낭만주의 속에서 민족적 뿌리를 찾는 시도로서 행해진 전래동화 채집이라는 민족적 뿌리를 거부할 필요도, 거부할 수도 없지만 가장 순수한 듯 보이는 판타지 문학 역시 타락한 현실과의 치열한 대결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