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TERACY/바람구두의 유리병편지

깊고 푸른 것이 어디 몸에 물든 멍뿐이겠습니까?

windshoes 2010. 12. 20. 10:08

깊고 푸른 것이 어디 몸에 물든 멍뿐이겠습니까?
- 내 마음의 모래바람에게 보내는 여섯 번째 편지

혹시 내가 하고 있다는 문화망명지에 가보았을 테지. 그곳에 가면 망명신청이라고 회원가입을 위한 게시판이 있는데, 그곳에서도 밝혔듯이 난 긴 글이 좋아. 만약 세상이 책이라면 난 세상을 벌써 다 읽어버렸기 때문이라고 해두자. 아주 어렸을 적에 나는 세상을 다 알아버렸어. 건방진 얘기라고 해도 하는 수 없다는 거, 그대가 뭐라 하건 세상의 바닥을 이미 보아버렸다는 내 느낌, 조금도 변함이 없을 거라는 거 그대도 이미 알겠지.

그래서 그래, 긴 글을 원하는 건. 내가 아직 읽지 못한 것이 있다면 당신이니까. 내게 그것을 보여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고, 그것이 아니라면 난 이미 다 읽었으니 네가 읽은 걸 나에게 보여달라고 말하고 있는 건지도 몰라. 아마 둘 다일 가능성이 제일 클 거 같네.

나는 '광기' 혹은 '몰입'을 사랑해. 그 감정 자체를 사랑하지. 며칠 전 서재 페이퍼에 한 줄짜리 글을 올린 적이 있었어. 지금은 지워버렸지만, 거기엔 아마 이렇게 쓰여 있었을 거야. “내가 미친 듯이 일에 열중하는 건 잊기 위해서”라고. 난 내가 좋아하는 일이든 그것이 내가 도전하기 힘겨운 일이듯 무언가 미친 듯이 몰입하고 싶어. 아마도 그 까닭은 어린왕자가 도착했던 ‘술주정뱅이의 별’에서 주정뱅이가 술을 마시던 이유와 비슷할 거야.

그 다음 별에는 술꾼이 살고 있었다. 그 방문은 매우 짧았지만 어린 왕자를 깊은 우울에 빠뜨렸다.
"뭘 하고 있어요?" 빈 병 한 무더기와 술이 가득 차 있는 병 한 무더기를 앞에 놓고 말없이 앉아 있는 술꾼을 보고 그가 말했다.
"술을 마시지" 침울한 표정으로 술꾼이 대꾸했다.
"왜 술을 마셔요?" 어린 왕자가 그에게 물었다.
"잊기 위해서지" 술꾼이 대답했다.
"무엇을 잊기 위해서요?" 측은한 생각이든 어린 왕자가 물었다.
"부끄럽다는걸 잊기 위해서지" 머리를 숙이며 술꾼이 대답했다.
"뭐가 부끄럽다는 거지요?" 그를 돕고 싶은 어린 왕자가 캐물었다.
"술을 마시는 게 부끄러워!" 이렇게 말하고 술꾼은 침묵을 지켰다.
그래서 난처해진 어린 왕자는 길을 떠나 버렸다.
"어른들은 정말 참 이상하군" 하고 어린 왕자는 여행을 하면서 혼자 속으로 중얼거렸다.

어쩌면 그대가 내미는 손길은 술주정뱅이를 돕고 싶었던 어린왕자의 관심 같은 걸지도 몰라. 영화 <라스베거스를 떠나며>에서 창녀 세라는 술꾼 벤을 사랑하지만 그를 술에서 벗어나게 할 수는 없었지. 벤에게 필요한 것이 여자였을까? 벤에게 필요한 건 대화 상대였을 뿐이야. 그런데 이게 재미있어. 벤에게 필요한 건 정말 대화상대일 뿐일까. 처음엔 벤이 세라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했거든. 그가 영혼의 친구를 알아보는 재주가 있었건 아니건 간에 벤에게 세라는 영혼의 친구였다는 생각이 들어. 영혼의 친구라고 해서 구세주가 되는 건 아니야. 벤은 이미 세상의 바닥을 보았고, 더 이상 깨어있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벤은 세라에게 조건을 내걸지. 자신에게 술을 마시지 말라고 하지 말 것. 동시에 그도 세라의 몸을 파는 직업에 대해 참견하지 않겠다고 말하지.

사람들은 이것을 마치 동종의 거래이거나 대등한 관계로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난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 사랑이 뭐지? 사랑이란 지독한 참견이거든. 내가 너의 삶에 개입하고 싶다는 의사표현이란 거지. 그런데 벤은 세라보고 자신이 술을 마시며 스스로를 파괴해 가는 걸 방치하라고 말하는 거지. 반대로 세라가 몸을 파는 것도 참견하지 않겠노라고. 이게 대등한 관계설정일 수 있을까? 벤이 세라를 사랑했을까? 난 대등한 관계라고는 생각할 수 없지만 사랑했다고는 생각해. 무어라 설명할 순 없지만 난 그걸 너무 잘 알 수 있거든. 어떤 사람들은 반문할 수도 있을 거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하고 말이야. 난 그런 사람들에게 되묻고 싶어. 대관절 사랑이 뭔데? 사랑하면 구원받을 수 있어? 사랑하면 인생이 달라지나? 사랑하면 이 지겨운 삶이 갑자기 연분홍빛으로 변하기라도 한데?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모두에게 그런 것은 아니란 거야. 어떤 종류의 인간에겐 그런 환상을 더 이상 품을 수 없을 만큼 세상은 지독한 경험을 선사하지.

벤이 세라의 곁에 머물 수 있었던 이유는 오로지 한 가지였어. 절대, 절대로 술을 마시지 말라고 말하지 말 것이 아니라 절대, 절대로 사랑하지 말 것이었지. 세라가 벤을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는 이상, 사랑하니까 네 삶에 개입하고 싶다거나 안타깝게 바라보지 않는 한 벤은 세라 곁에 머물 수 있지. 왜냐하면 벤은 인생을 바꾸고 싶어하지 않았거든. 하지만 세라는 벤을 사랑하고, 벤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지. 나는 모든 대화란 기본적으로 섹스와 같다고 생각해. 아니 반대로 섹스도 대화라고 생각한다고 말해야 옳을까. 또 섹스를 한다고 모두 아기를 만드는 것도 아니지만, 섹스 한다고 해서 꼭 사랑하는 것도 아니니까. 사랑 없이 어떻게 섹스를 하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 섹스가 곧 사랑인 사람도 있다고 생각해. 그런 경우도 마찬가지겠지. 사랑을 통해 인생을 바꾸고 싶다는 마음, 가치있는 삶으로의 질적인 변화를 꿈꾼다고 하자고. 그건 대화도 마찬가지지. 어쨌거나 둘 사이의 공통점이 있다면 누군가와 지속적으로 대화하기 위해선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지불하거나,(독서 혹은 정신과 상담처럼) 아니면 상대를 호감의 대상으로 판단한 결과인 거지. 싫어도 억지로 하는 섹스가 강간인 것처럼 싫어하는 사람에게 계속해서 말을 거는 것도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폭력이라고 할 수 있겠지.

벤은 죽기 직전에야 세라와 마지막으로 섹스를 하지만 영화적 장치로서 극적인 장면이긴 해도 그것이 반드시 사랑의 표현이랄 수는 없다고 생각해. 내 입장에서 보자면 벤은 오래전부터 세라를 사랑했으니까. 잔말이 길었네. 사실 이 글을 쓰면서 좋았던 이유는 네게 편지를 쓰는 동안엔 내가 괴롭지 않았다는 거야. 나는 해마다 겨울나기가 무척 고통스러워. 왜 그런지, 나 스스로는 잘 알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었는지는 몰라도 내게 꼭 필요했던 사람들이 꼭 겨울에 떠났거든. 징크스라고 말하는 게 아냐. 겨울에 안 좋은 기억들이 켜켜이 쌓여있다는 말을 하는 거지.

그대는 나에게 망망대해에 유리병편지를 띄우는 사람이라고 말했지. 그리고 그대의 안부가 반갑냐고도 물었지. 물론이야. 참견하는 걸 병적으로, 지독히 싫어하지만 누군가와 대화하는 걸 난 섹스만큼 좋아해. 둘 중 어느 걸 더 좋아하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좋아하지. 난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대신, 일하는 걸 무척 좋아해. 만약 이 일이 - 글 쓰고 읽는 것도 - 말하는 것과 같은 것, 최소한 흡사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이해하기가 더 쉽겠지만... 누군가와 대화할 수 없을 때가 많았어. 그 상대(그 상대가 꼭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마, 세상일 수도 있는 거니까)가 마음에 안 들 때도 많았고, 그래서 나는 혼자 글을 쓰고, 남의 글을 읽는 걸 좋아해. 왜냐하면 그 동안엔 날 잊을 수가 있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어린 왕자가 찾아간 별에서 만난 술꾼 같은 거야. 어느 날 어린 왕자가 날 찾아와서 "뭘 하고 있어요?" 다 읽어서 한쪽으로 쌓아놓은 책 한 무더기와 앞으로 읽어내야 할 책 무더기를 앞에 놓고 말없이 앉아 있는 나에게 어린왕자가 만약 그렇게 묻는다면 나는 아마도 "책을 읽지"라고 침울한 표정으로 대꾸했을 거야. "왜 책을 읽어요?" 어린 왕자가 나에게 묻는다면 물론 "잊기 위해서지"라고 답하겠지. "무엇을 잊기 위해서요?"라고 그가 측은한 표정을 지으며 묻는다면 "날 잊기 위해서지"라고 고개를 숙이며 답했을지도 몰라. "뭐가 부끄럽다는 거지요?" 어린 왕자가 날 돕고 싶은 마음에 캐물었다면 "책만 읽는 게 부끄러워!" 라고 답한 뒤엔 입을 닥칠지도 모르겠어. 솔직히 책을 읽는 게 부끄러울 일은 아니지. 그것만큼 의미있는 일이 또 어디 있겠어. 하지만 내가 처음 책을 읽게 되고,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술꾼의 그것과 별로 다를 바가 없었어. 일찌감치 부모와 헤어진 뒤 작은 아버지, 어머니에게 얹혀살면서 난 내내 스스로를 기생충처럼 생각했거든. 물론 이게 전부는 아니야. 87년의 기억이 그 뒤에 또 병풍처럼 서 있거든. 그렇다고 이 두 가지만 알게 되면 나에 대해 다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바보는 아니길 바래.

어쨌거나 그걸 잊고 싶어서 책을 읽었고, 책을 읽고 남들 앞에서 내가 읽어낸 지식들을 토해내고,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동안엔 내가 그들보다 우월하다고 느낄 정도는 아니어도 내가 존재할 이유가 있고, 어딘가에 속한 자라는 느낌 같은 건 만들어낼 수 있었어. 하지만 그런 자기존재감 같은 건, 성냥팔이 소녀의 성냥 같은 거였지. 책장을 덮거나 글을 쓰다가 중도에서 멈춰버리면 그런 느낌은 어느 사이엔가 생생하게 다시 살아나곤 했으니까. 그런데 이쯤에서 밝혀두고 싶은 건 그렇다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 왜 그러느냐고 묻는 사람들 때문에 피곤해지곤 한다는 거야. 그래서 앞서 먼저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란 영화 이야기를 한 거야.

나도 사랑이 구원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어. 아니, 솔직히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 내가 소설가 최인훈 선생을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한 적 있던가? 최인훈 선생이 이런 이야기를 했지. "참여냐 아니냐의 문제는 그러므로 각자가 인간을 미래로, 열려진 지평으로 인식하느냐 닫혀진 지평 속에서 환상의 초월만이 가능한 존재로 보느냐는 데에 귀착된다. 얼핏 생각에 개체로서의 인간은 한정된 역사적 시간이라는, 갇혀진 지평 속에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인간을 그렇게만 본다면 인간에서 '부정'의 계기를 간과하는 것이며, 인간은 갇혀있음에도 불구하고 탈출하려는 존재이며, 그렇지 않다면 물체에 지나지 않으므로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서는 부단히 현실을 부정하여 나날이 새롭게 사는 길밖에 없을 것이다." 사랑만이 구원일 수 있는지에 대해 나는 단언할 수 없어. 사랑하기 위해선 또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만 하니까. 내가 세상을 다 보아버렸다거나, 읽어버렸다고 하는 느낌과 인식은 여전해. 하지만 최 선생 말씀대로 그렇다고 해서 내 지평을 부정할 수 있는 계기를 버릴 수도 없지.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서 그러하듯, 내가 온전하게 '나'이기 위해서도 나는 부단히 현실을 부정하여 나날이 새롭게 살아갈 방도를 궁리하는 수밖에 없으니까.

가끔 나는 내가 이승에 별로 욕심이 없단 생각이 들어. 이승에 맺힌 것, 남긴 것이 별로 없어서일지도 모르지만 그 보다는 어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이 세상에 나 하나 없어도 별로 문제될 게 없다는 걸 안다는 거야. 그 의미를 누가 부여해줄 수 있겠어? 나도 내가 다 아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고 늘 반문하곤 해. 하지만 난 가끔 날 사랑하는, 혹은 내가 사랑하게 된 이들에게 무척 소홀한 사람이란 이야기를 듣곤 하지. 붙잡을 수 없을 것 같다고도 하고. 정말 자신을 사랑하는 게 맞느냐고 번번이 확인하듯 되묻는 말을 들어. 그럴 때마다 난 정말 떠다니는 먼지가 되는 기분이야. 어쨌든 그대가 나를 앞으로 오십년쯤은 사랑해주어도 괜찮을 사람이라고 말해주었을 때 기분은 좋아지더군.

내가 전에 말했지. 깊고 푸른 것이 어디 몸에 물든 멍뿐이겠느냐고. 사람들은 바다, 깊은 것을 심연(深淵)이라 하지만 그것도 한자풀이로 따져보면 기껏해야 지구라는 별에 놓인 한낱 깊은 연못에 불과하지. 바다가 제 아무리 깊어도 말이야. 글을 쓰는 자가 세상을 다 읽어낸 자는 아닐 거야. 하지만 세상과 끊임없이 겨루고 견주어가며 도달할 수 없는 곳을 향한다는 점에서 불가능한 길 위의 여행에 미친 자라 생각해. 신영복 선생이 말한 지남철처럼 그것이 파르르 바늘 끝을 떨고 있는 동안엔 믿어도 괜찮아. 난 어차피 확신을 갖고 살아가기 보단 나 자신조차 도마 위에 올려놓고 끊임없이 살펴보는 자니까. 그래서 가장 행복할 때조차 후회하고, 반성하잖아.

한 고비 넘기면 또 한 고비. 삶과 사랑에 대해 많은 생각과 많은 말들을 듣고, 많은 이야기를 하고, 많은 충고를 하고 듣고 살아왔지만 사랑에 대해 유일한 진리가 있다면 곁에서 마지막까지 버텨주는 것뿐이라고 생각해. 비록 제 몸과 마음이 온통 멍투성이, 상처투성이라 할지라도 떠나지 않고, 마지막까지 버텨주는 거. 사랑도 사람의 일이고 사람의 하고 많은 감정 중 하나인데 변하기도 하고, 화내기도 하고, 질투하기도 하고, 지치기도 하고, 남들 하는 거, 다른 감정들처럼 배신도 하고, 별별 거 다하겠지. 그래도 남는 게 사랑이고, 곁에 남아주는 게 사랑이라고 생각해. 왜 내가 이런 말을 하냐고. 울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그랬다는 군. 너희들을 두고 어떻게 눈을 감느냐고. 지금도 드는 생각이지만 정말 어떻게 눈을 감으셨다니? 그러니 오래 버텨줬어야지. 누이가 6학년, 내가 3학년 때 일이야. 그리고 올해 내 나이가 딱 울 아버지 돌아가실 때 나이지. 이만하면 올해 내가 유난히 우울해도 괜찮은 이유가 되지 않을까. 올해만 넘기면 내가 아버지보다는 좀 더 이승에 머문 셈이니까.

이런 편지를 술도 안마시고 쓸 수 있을 만큼 난 냉정해. 그런 인간이니 내가 날 좋아하는 일이라고 쉬울까, 안 그래! 흐흐. 어쨌든 내 결론은 그래. 사랑 같은 거 하지 않아도 좋고, 사랑 같은 거 해주지 않아도 좋으니까 그저 곁에 오래 머물러 달라고 말하는 건지도.

* 추신 : 내일 읽어보면 지워버릴 것 같아서 지금 그냥 보낸다. 소심한 구석도 있잖아. 내가...아마도 이 편지는 나에 대해 내가 쓴 글 중에 가장 정직한 글이란 생각이 드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