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예술

깊은 밤 그 가야금 소리 - 황병기 | 풀빛(1994)

windshoes 2011. 1. 17. 13:14
『깊은 밤 그 가야금 소리』 - 황병기 | 풀빛(1994)




"국악"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유익서 선생의 장편소설
『민꽃소리』를 떠올리게 된다. 작품성 유무를 떠나 우리 소설에서 드물게 국악인을 소설의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대강의 내용은 우리 음악을 하는 전통 명인들이 겪는 비극적인 사랑과 예술에 대한 추구를 다루고 있는데, 소설 자체의 재미도 있지만 그보단 내 개인적인 추억에 얽힌 일 때문이다. 아주 오래전 내 기억 한 켠에 자리잡고 있는 할아버지의 환갑잔치, 내가 아직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인 70년대 중반의 일이었다. 그 무렵엔 우리 집안이 쫄딱 망하기 전이라 제법 규모있는 환갑 잔치를 치렀는데, 소리하시는 분들을 모셔다 잔치를 벌였던 기억이 난다. 요새 식으로 말하자면 칠순 잔치를 괜찮은 부페 식당을 빌어 그곳에 노래방 기계를 가져다 놓고, 부페 직원이 사회를 보는 것과 흡사할 것이다. 어쨌든 내가 만난 최초의 국악인은 할아버지의 환갑잔치에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밴드마스터처럼 쇠락한 분위기의 사람들이었다. 나의 이런 기억은 오래도록 지속되었다.

 

종종 너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혹은 자주 대하고, 접하게 되는 지라 그 가치를 잘 모르는 일과 사람에 대해 흥미를 느낀다. 어떤 인물들은 그 사람이 한국 사람이기에 국내에선 도리어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음악인의 예를 들자면 윤이상 선생이 그렇다. 물론, 아는 이들은 알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위대한 음악인이 아닌가, 나는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장르적으로 보았을 때 국악이 또한 그런 건 아닌가. 나 자신이 국수주의나 민족주의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자 하는 사람이면서도 나의 이런 성향이 도리어 우리 음악에 대해 일정한 폄하 혹은 몰이해를 조장하는 건 아닌가란 반성이 든다.

 

『깊은 밤 그 가야금 소리』는 우리 국악계의 존경받는 스승이자 훌륭한 가야금 연주자인 황병기 선생이 그간 이곳저곳에 발표했던 글들과 그가 국악을 연주하는 예술가로 살아오면서 느낀 것들을 정리한 책이다. 책의 내용은 물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것들이 중심이라 그냥 황병기 선생의 에세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가끔씩 황병기 선생은 결코 가볍지 않은 내용들을 그 안에 담고 있다. 이 책은 재작년쯤 헌 책방에 갔다가 우연히 발견한 책이다. 가끔 글과 문장이 가진 힘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드는 경우가 있는데, 특별한 문학교육을 받았을리 없는 이들에게서 문장의 힘을 느끼게 될 때 그 충격은 좀 더 커진다.  이 책에 수록된 황병기 선생의 글을 읽노라면 조금도 현학적이거나 멋을 부리지 않은 문장들에서 풍기는 고졸(古拙)한 멋이란 무엇인지 알게 된다.

 

이런 순간은 정말 글이 곧 사람이라는 말이 맞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국악에는 '열 명창에 고수 한 명'이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명창(名唱) 열 명 나오긴 쉬워도 훌륭한 고수(鼓手) 한 명 나오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말이다. 국악을 전공한 이가 아니라면 이 말의 깊은 속내를 접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황병기 선생은 그 뜻이 무엇인지 저절로 알게 해준다. 「고법(鼓法)의 7단계」란 글 가운데 일부를 소개해 본다.

 

우리의 민속음악은 작품이 악보로 전해 온 것이 아니라 연주자들의 귀에 의하여 전해져 왔다. 즉 작품은 연주자의 귀 속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연주자들은 서양음악에서보다 훨씬 주관적인 연주를 하게 된다. 게다가 판소리의 북 반주처럼 완전히 즉흥 연주를 할 경우에는 더욱 주관적인 연주를 하게 된다. 그러나 연주자의 주관이 극치에 달하여 무아의 경지에 이르게 되면 자신을 벗어나서 새로운 객관성을 얻게 된다. 바꾸어 말하면 음악의 객관성이 철저한 주관성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공자가 인생의 최고 단계라고 설파한"마음이 하고자 하는 것대로 하여도 법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경지와 상통한다고 하겠다. 완전히 즉흥적이면서 주관적으로 뜨겁게 연주하는 듯이 보이는 판소리의 북 반주는 사실은 철저하게 법도에 맞게 객관적으로 냉철하게 연주라는 무아의 단계에까지 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판소리 북을 유달리 '판소리 고법(鼓法)'이라고 부르면서 법(法)자를 강조하는 것이 일리가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