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철 :일본제국의 싱크탱크 - 고바야시 히데오 | 임성모 옮김 | 산처럼(2004)
만철 :일본제국의 싱크탱크 - 고바야시 히데오 | 임성모 옮김 | 산처럼(2004)
혹시 "근대화연쇄점"을 기억하시는가?
내가 어렸을 때
"근대화"는 오늘날의 세계화 혹은 지역화처럼 유행어였던 모양이다. 구멍가게보다는 조금 크고 오늘날 우리가 마트 혹은 수퍼마킷이라는 호칭으로 익숙한 잡화점보다는 조금 작은 규모의 가게들 중에 일종의 체인점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근대화연쇄점이라는 구멍가게가 있었다. 굳이 "근대화의 역군"이라든지 하는 우리 주변의 떠들석했던 여러 구호들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박정희 정권 아래에서 "근대화"는 "반공"과 함께 최고의 이데올로기였다. 근대화가 의도하고자 했던 숨겨진 정서는 아마도 "못 살겠다 갈아보자"와 "갈아봤자 더 못산다"던 이승만 정권 시절의 지긋지긋한 가난, 우리 민족 반만년을 억누른 배고픈 설움을 극복해보자는 것이었을 게다.
근대화의 핵심 키워드는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세"였다.
"만철: 일본제국의 싱크탱크"란 책에 대해 말하면서 왜 느닷없이 "근대화" 타령인가, 그것은 "만철", 아니 "만주국"이 우리 근대화의 실제 모델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에 따라 "근대화(近代化, modernization)"는 각기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쉽게 정의되기 어려운 말이면서 시대 상황과 그 말이 쓰이는 장소에 따라 각기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되는 말이다. 그렇다면 먼저 내가 생각하는 근대화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의해볼 필요가 있다. 내가 생각하는 현재 시점에서 우리의 근대화는 크게 두 가지을 의미한다. 그것은 '산업화와 민주화'이다. 막스 베버식의 관점을 차용했을 때 근대화란 봉건사회의 시스템을 해체하고 자본주의 사회로 진입하는 것이다. 그것을 아시아 혹은 다른 여타 후진 사회에 도입했을 때 근대화는 단순하게 보자면 서구화 혹은 서유럽화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를 협소한 개념으로 보는 이들은 어느 한 사회가 다른 단계로 전이되어 가는 상황에서 응당 겪어야 하는 일종의 통과의례로 파악하기도 하는데, 이때의 근대화는 단순하게 서구화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어찌되었든 근대화는 문화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전통적인 사회"에서 "근대적 사회"로 이행해 하는 과정을 의미하고, 그런 의미에서 아시아의 근대화는 어찌 보자면 서구화(경제적으로는 산업화, 정치적으로는 민주화를 의미한다)를 의미한다.
이 책의 저자인 고바야시 히데오(小林英夫) - 같은 발음이지만 다른 한자를 사용하는 일본의 유명한 평론가 고바야시 히데오(小林秀雄, 1902~1983)와 착각하지 마시길 - 교수는 "대동아공영권, 쇼와 파시즘, 중일전쟁" 등 일제 침략사를 연구해온 일본의 중량급 역사학자다. 그의 연구 제목들이 알려주듯 그는 전쟁전 일본의 과거를 탐문하고 있다. 그의 저서 "만철"에서 종종 일본에 의해 피지배자들에 대한 연민의 정서가 묻어나는 것은 역시 그가 이런 관점에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탓이다. 스티븐 E. 앰브로스의 저서 "대륙횡단철도"는 미국의 건국과 발전 과정에서 남북전쟁보다 더욱 중요한 사건을 대륙횡단철도 부설에 놓고 있다.
▶ 만주철도(전쟁 중에는 무장한 장갑열차들이 운행되었다.)
1865년 미국에서 시작된 센트럴 퍼시픽과 유니온 퍼시픽의 대륙횡단철도가 연결되는 대사업은 미국의 동부와 서부를 같은 시간대, 같은 공간대의 삶으로 이어주는 역할을 했으며, 나아가 대서양과 태평양을 이어주었다. 그리고 이것은 더 나아가 필리핀이 스페인 식민지에서 미국 식민지로 바뀌게 되는 과정, 20세기 최대의 사건이랄 수 있는 미국의 태평양 진출의 도화선이자 바탕이 되는 사상 초유의 사건이 되는 초석을 놓아기 때문이다. 중국은 상해와 같은 동부 해안으로부터 옌안과 같은 내륙으로 100km 들어갈 때마다 시대적으로 10년씩 뒤로 밀려난다고 한다. 근대화가 동부 해안 저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탓이다. 중국이 장강 삼협댐 건설과 같은 내륙의 개발에 열을 올리는 이유 역시 거기에 있다.
우리는 얼마전 고속철도가 개통되었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3시간만에 주파한다는 고속철도는 그러나 서울에서 멈춰버렸다. 만약 이 열차가 평양을 거쳐, 신의주, 그리고 블라디보스톡, 모스크바, 바르샤바, 베를린에서 파리로 이어진다면 우리는 반도국가라는 지리점 잇점을 십분 살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비록 일제강점기였기는 하나 우리의 선조들이 열차를 타고 만주와 세계를 향해 떠날 수 있던 시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 문제로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한 만주와 고구려사, 과거 우리 민족의 활동 무대였던 만주, 연해주, 시베리아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데도 이 책은 재미난 도입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만주국과 박정희의 경제개발5개년 계획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가 지금 시점에서 만철에 주목해야 하는 것은 미국의 대륙횡단철도가 단순한 철도회사가 아니라 서부개척의 총본부였던 것처럼, 만철이 단순한 철도회사가 아니라 일제의 만주경영을 맡은 사실상 식민기구였다는 점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일본이 일종의 모델하우스처럼 만들고 싶었던 나라 만주국의 실질적인 브레인이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우리가 극복하지 못한 근대화 모델 박정희의 사상적 뿌리와 모델이 바로 그곳 만주에 있었다. 박정희는 만주의 신경(新京:現 長春)군관학교를 거쳐 1944년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였고, 8·15광복 이전까지 관동군에 배속되어 중위로 복무하였다.
우리가 이 책에서 만철보다는 만주국에 더 주목해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으며, 저자 자신이 만철을 이야기하며 만철을 통해 만주국 경영 문제가 전쟁 전과 전쟁 후를 잇는 주요 맥락으로 살피고 있는 이유이다. 만주국은 전후인 1950년대 일본이 이룩한 경제기적의 기본 정책을 실험했던 곳이고, 현재 남북한의 지배 엘리트들의 양대 뿌리를 이룬 박정희와 김일성이 청년기를 보낸 곳이다. 만주는 동북아 근/현대사의 블랙박스인 것이다. 박정희만 만주 출신인 것이 아니라 박정희 정권 아래에서 최장기 국무총리를 지냈던 최규하 전 대통령 역시 만주국 관리 출신이란 점에 주목해 보자. 경제개발5개년 계획의 원형이 시작된 곳, 관치금융과 정경유착에 의한 재벌중심의 경제 성장 정책이 시작된 곳이 바로 그곳이다.
▶ 이만희 감독, <쇠사슬을 끊어라(1971)> 만주를 배경으로 한동안 즐겨 제작되었던 만주웨스턴 장르 영화는 서부영화의 대륙간횡단철도가 그러하듯 만주철도가 주요 배경으로 종종 등장한다.
근대화의 두 얼굴 - 착취와 풍요
이 책을 읽노라면 종종 이 책의 저자 고바야시 히데오가 간과하고 있는 몇 가지가 느껴져서 개운하지가 못하다. 그것은 고바야시 히데오가 만철의 낭만적인 면모에 몰입한 나머지 만철의 기본적인 속성과 숨겨진 의도를 적절하게 노출시키지 못하거나 가볍게 넘어가는 것들이다.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에 동인도회사를 건립한 뒤에 네덜란드를 식민지배했고, 영국인 인도에 동인도회사를 설립한 뒤 인도를 식민지배했다. 만철은 일본이 만주를 식민지배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된다. 일본은 민간회사를 가장해 제국주의적 침식의 한 수단으로서 만철을 이용한 것이다. 제국주의적 침탈을 실질적으로 주도한 일본 정부는 만철이 주도한 식민 침탈을 단지 민간회사의 실수로 자신들과 상관없는 일로 잡아 뗄 수 있었다.
앞서 우리 사회 근대화의 핵심 키워드는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세"라고 말했다. 저자 고바야시 히데오는 만철의 경제개발, 경제발전에 주목하면서 만주철도와 근대화가 지닌 다른 어두운 측면을 손쉽게 건너띈다. 오늘날 지역사회에 침투해 들어온 거대자본의 유통업체들이 지역 사회의 작은 구멍가게들을 질식시키듯, 지역사회에 침투해 들어온 거대자본의 서점들이 지역 사회의 영세 서점들을 붕괴시키는 것처럼, 철도를 통해 이룩한 근대화(산업화)는 지역 혹은 한 국가, 민족의 자급자족적 경제 질서를 붕괴시키고 장기적으로는 자본주의적 팽창을 좀더 손쉽게 만들어 준다. 조선의 근대화가 단발을 강요했던 것처럼, 철도 부설을 위해 저임금과 비인간적 노동환경에 시달리던 식민지 조선 백성들의 얼굴은 고스란히 박정희 정권 시절의 근대화 역군들의 얼굴과 정확하게 오버랩된다.
우리는 경부고속도로가 세계 역사상 유래가 없을 만큼 싼 값, 최단기간에 건설되었다는 근대화의 업적에 도취해 종종 그 뒤안길에서 살인적인 노동강도, 안전없이 강행된 공사로 인해 77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쉽게 망각하곤 한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참여정부가 추진하고 있는(기존의 대통령 자문기구인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회'를 '동북아시대위원회'로 개칭하고 그 구조와 기능을 크게 확대) 동북아시대위원회의 미래 비전은 종종 과거 만철과 일본이 추진하고자 했던 '대동아공영권'- 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기는 하지만 외형상으로 보았을 때 '동북아네트워크'를 구축하고자 노력한다는 점에서는 - 다른 성질의 유사한 지향을 보인다는 사실을 망각하게 만든다. 동북아네트워크 건설은 최근 중국의 동북공정문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양날의 칼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근대화의 두 가지 덕목 중 한 가지인 산업화는 분명하게 성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들은 아직도 전근대적인 방식으로 추진한 근대화의 후유증으로 인해 절름발이 근대 속에 놓여 있다. 우리는 서구에서는 일찌감치 통과해왔고, 이제는 극복의 대상이 된 "민족국가" 건설이란 측면에서 아직 절름발이 상태에 놓여 있고, 식민지 지배 마인드 속에 추진되었던 "경제개발계획"에 따른 산업화의 후유증 속에 놓여 있다. 더 나아가 우리는 근대화의 가장 중요한 덕목인 민주화의 추진과정에서 끊임없이 박정희 모델이라는 이전의 망령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중요한 싯점마다 되풀이 되는 과거 청산과 수구보수세력의 역공은 물론 그들 자체가 이땅의 견고한 지배 세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문제도 있지만 민주화를 추진한다는 세력, 민주화를 성취하겠다는 개혁세력이 박정희 모델로 표현되는 근대화 이데올로기를 극복할 만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에 더 큰 책임이 있다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