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SY/한국시

허영자 - 씨앗

windshoes 2011. 4. 1. 09:57

씨앗


- 허영자

가을에는
씨앗만 남는다


달콤하고 물 많은

살은
탐식하는 입속에 녹고
단단한 씨앗만 남는다


화사한

거짓 웃음
거짓말
거짓 사랑은 썩고


가을에는

까맣게 익은
고독한 혼의
씨앗만 남는다


*


부드럽고 쓸모있는 것들이 오래 남는 것이 아니라

단단하고 고집세서 쓸데 없는 것들이 오래 남는다
쓸모없어 찾는 사람도 없는
외롭고 쓸쓸하게 방치되어버린
오직 꼭 하나의 목적을 위해 남겨진 것
자신을 죽여야만 살릴 수 있는 것
죽기 전까지 고독하게, 쓸쓸하게
자신을 버림받도록 만든 무엇 하나
버리지 못하고, 삭히지 못하고
저버러지 못하고, 내버리지 못하고
무엇 하나 썩도록 버려두지 못하고
온전하게 품어내야만 제 쓸모를 다하는 것
그것은 가장 나중까지 남아야만 알아 볼 수 있다


고독하게 오래도록 버림받은 당신의 의미...

모든 쓸모들이 떠나버린 뒤
알 수 있는 유일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