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에 읽는 프로이트 - 루스 베리 | 이근영 옮김 | 중앙M&B(2003)
30분에 읽는 프로이트 - 루스 베리 | 이근영 옮김 | 중앙M&B(2003)
남들 앞에서 잘난 척 주워섬기기 위해 굳이 이런 류의 책을 볼 필요는 없다. 나의 경험상 적당히 어려운 말 한 두 마디를 하고 난 뒤, 다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면 분명 대화 상대는 당신이 실제로 알고 있는 것 이상을 알고 있으리라 믿어줄 테니까 말이다. "30분에 읽는 ~" 시리즈 전편을 읽어볼까 생각 중이다. 돈이 썩어서 그러는 건 아니고, 편하게 정리된 요약본을 읽는 유익함이란 것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러는 편이 낯선 길을 헤매는 것보다 확실히 나은 선택이다. 그러니까 이런 책을 본다는 건 꼬시고 싶은 여자 친구를 태우고 드라이브 나갔다가 모르는 길 앞에서 자신있게 아는 척 하다가 땀 삐질삐질 흘리며 개망신 당하는 것보다 모르는 걸 솔직히 인정하고, 네비게이션을 이용하던지 아니면 주변 사람에게 물어보는 편이 더 낫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게다가 "프로이트"에 대해 알게 된다고 해서 인생에 특별한 보탬을 받을 사람은 또 얼마나 되겠는가. 자신이 어렸을 적에 억압된 성적('쩍'이다 '적'이 아니고) 본능에 의해 고정된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는 주장을 알게 되고, 알고 보니 억압된 성적 본능이 자기 어머니를 애인으로 삼고 싶고, 아버지를 연적으로 심각하게 고려한 결과라는 식의 주장을 알게 된다고 억압된 성적 본능에 대한 치료가 한순간에 이뤄질리도 없다(실제로도 프로이트에겐 이런 류의 비판이 자주 나온다). 앞서 나는 이 시리즈를 계속 볼까 궁리 중이라고 말했는데, 현재까지 이 시리즈 가운데 모두 4권을 읽었고, 3권이 더 대기 중이다. 노암 촘스키,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니체,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읽었고, 시몬느 드 보봐르, 다윈, 칼 구스타프 융이 대기 중인 책들이다.
이 가운데 노암 촘스키는 꽝이었고, 카를 마르크스는 최고였고, 지금 말하려는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그저 그랬다. 니체는 마르크스보다는 별로였지만 프로이트보단 좋았다. 물론 내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건 아마도 촘스키를 제외하곤 내가 사전지식을 좀더 갖고 있거나 개인적으로 좀더 친숙하게 여기는 정도에 비례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다시 말해 나는 마르크스랑 가장 친하고, 그 다음에 니체, 그리고 프로이트, 그 친구하고는 사이가 별로 안 좋다는 말이다. 개인적으로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사상가로 나는 예수, 석가모니, 공자, 마호메트 같은 종교적 인물들을 제외하고,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니체, 지그문트 프로이트 그리고 찰스 다윈을 꼽는다. 이들이 왜 중요한가를 논증하는 자리가 아니므로 프로이트에 대해서만 조금 이야기를 해보면, 프로이트가 주장한 정신분석이란 무엇인지를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프로이트에 의해 창시된 정신분석은 마치 북핵 문제에 대한 미국의 일관된 원칙(CVID, 완전하고, 증명가능하며, 되돌이킬 수 없는 핵 해체)처럼 우리의 인간 이해를 되돌이킬 수 없는 방식으로 바꾸어 놓았다. 다만, 거기엔 CVID의 두 가지 원칙이 빠질 수밖에 없다. "완전하고 증명가능하며..." 완전하고 증명가능한 정신분석이 과연 가능하겠는가? 바로 이 부분때문에 프로이트 자신도 고민했고, 그런 고민의 흔적, 프로이트 스스로가 학문적 엄밀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생각한 나머지 "정신분석"에 "학(學)"를 배제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프로이트의 덕분으로 무의식 속의 내(과거)가 나를 지배하며, 무의식 속의 정체성은 내 의식에 비친 모습과는 다를 수 있다는 점 등 이제는 너무나 일반화되어 상식처럼 받아들여지는 생각들을 접하게 된다. “무의식, 억압, 리비도” 등의 중심개념이 우리들로 하여금 인간 이해의 전제 조건이 되도록 한 것은 프로이트 이후의 일이다.
프로이트는 오스트리아의 의사 J.브로이어의 연구 - 심한 히스테리에 걸린 한 소녀에게 최면술을 걸어 병을 일으키게 된 시기의 사건에 대해 얘기를 시켰는데, 그것으로 소녀의 병이 완쾌되었다. - 즉, 마음속 깊이 억눌려 환자 자신은 의식하지 못하는 마음의 상처가 병이 되는 원인임을 알아낸다. 그는 마음이 신체적 변화(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고, 히스테리 증상은 의식의 영향을 받지 않고 무의식 속에 억압되어 있던 마음의 갈등이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육체적인 증세로 변형되어 일어나는 정신적 에너지로 생기는 병임을 알아내었다. 따라서 히스테리를 고치려면 무의식 속에 눌려 있던 감정을 정상적 통로를 통해서 의식계(意識界)로 방출(catharsis)하면 된다는 이론을 세우게 된다.
프로이트는 히스테리의 원인이 성적(性的)인 억압에 있다고 보았고, 이는 유아기 때부터 있는 것이라고 주장해 많은 논란에 휩싸이고, 지금까지도 비판의 대상이 되는 일종의 결정론적인 단계까지 나아간다. 프로이트에 대해 쏟아지는 비판들은 이외에도 그가 핍박과 천대를 오래 받은 유대인이기 때문에 그의 학설은 유대인에게 특히 강한 것을 침소봉대했다거나, 인간의 정신과 행동에 대해 성을 너무 강조했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특히 정신분석학회 초기의 수제자들이자 열렬한 신봉자였던 아들러, 융 등에 대해 그는 가부장적인 권위로 일관했다. 결국 이들은 인간을 움직이는 법은 성 에너지가 아니라 ‘권력을 향한 의지’ 또는 성이 아닌 힘을 상정(想定)하여 자기 나름대로의 정신분석을 수립하며 프로이트에게서 떨어져 나왔다.
20세기를 떠들썩하게 만든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어쩌면 프로이트 자신만의 콤플렉스가 아니었는가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프로이트 자신은 정신분석을 심리학과 생물학에 뿌리를 둔 과학으로 신봉했으나 정신분석이 과학으로 성립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그의 사후에도 여전히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앞으로 인간의 정신세계에 대한 과학적 탐구가 반드시 프로이트에 의존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의문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문학과 예술, 나아가 문화현상, 사회현상에 대한 탐구를 꿈꾸는 이에게 있어 누구도 프로이트의 사상을 피해갈 수는 없다. 물론 프로이트의 이론과 상관없이 이 책 "30분에 읽는 프로이트"가 유용한가? 좋은 책인가? 에 대한 의문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정가는 5,500원이고, 알라딘에서 10% 할인해주니 4,950원 게다가 무료 배송에 다시 8%의 마일리지가 붙어 400원이 쌓인다.
만약에 당신이 프로이트에 대해 어떤 책을 읽는 것이 좋을까 상의하기 위해 친구에게 전화를 걸고(그럴 친구가 있다면 말이지. ^^;;;), 함께 만나 서점을 돌아보고 테이크 아웃 커피전문점에 들러 친구에게 커피 한 잔을 사준다고 치자. 어떤 것이 더 적은 가격에 큰 효용을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불문가지다. "30분에 읽는~" 시리즈가 괜찮은 점은 또 있다. 열린 책들에서 프로이트 전집 전 15권 세트가 나오고 있다. 물론, 프로이트를 잘 알고 제대로 공부하고 싶다면, 게다가 돈도 많다면 "30분에 읽는~" 시리즈 같은 건 쳐다볼 필요도 없다(과연 그럴까? 흐흐). 어쨌든 이런 전집을 읽기 전에 워밍업 단계로 읽어도 좋고, 나처럼 프로이트 전집을 읽고 싶지는 않지만 그의 중요 저작 몇 권은 읽어둬야겠다 싶은 사람에게는 저렴한 가격에 괜찮은 선택일 듯 싶다. 참고로 현재 나는 프로이트 전집 가운데 "꿈의 해석, 정신분석강의, 정신분석학 개요" 3권을 구입했다. 앞으로 한 두 권 정도 더 구입해 읽을 생각이지만 프로이트 저작을 직접 읽는 일을 더 할지는 미지수다.
결론삼아 한 말씀 드리자면, 당연하게도 이 한 권으로 프로이트를 다 알 수 없다(그건 프로이트가 너무나 대단하고 위대한 사상가라서 그렇다기 보다는 프로이트 자신이 주장하듯 한 인간을 온전히 우리가 알 수 있을까? 무얼하든 어차피 한계는 있다). 하지만, 이 한 권으로 출발하는 건 꽤 괜찮은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