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 불릿, 고엽제(에이전트 오렌지)
슬로우 불릿, 고엽제(에이전트 오렌지)
경북 칠곡군 왜관읍은 내게는 그리 낯선 동네가 아니다. 대학 들어가기 전 3년 동안 막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할 무렵 왜관읍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성 베네딕도 수도원 공사 현장에서 겨우내 일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베네딕도 수도원 공사현장은 제법 규모가 크고, 읍내와 거리도 있는 편이어서 별도의 함바(공사현장노무자를 위한 밥집)집도 있었다. 음식의 질이야 얼마 전 ‘함바 비리 사건’을 통해서도 널리 알려진 대로 수준 이하였지만 어쨌든 끼니와 군것질거리, 담배 등속은 함바를 통해 해결했기 때문에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왜관읍까지 나갈 일은 별로 없었다. 다만 비 오거나 공사가 없는 날엔 읍내에 나가 단백질을 보충하거나 귤 한 봉지 사서 나눠먹는 일은 종종 있었다. 아마 그런 까닭이었겠지만 왜관읍에 캠프 캐럴(미군기지)에 대해선 특별한 인상이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엊그제 뉴스에서 이곳 캠프 캐럴에 미군이 베트남전에서 사용했던 ‘에이전트 오렌지(Agent Orange)’라는 고엽제 수천 킬로그램을 비밀리에 지하에 매몰 처리했다는 기사를 접하고 나서야 왜관읍 근방에 미군 기지가 있었다는 기억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캠프 캐럴에 고엽제가 비밀리에 매몰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미국 애리조나 주 피닉스에 위치한 KPHO-TV(CBS계열)가 지난 16일(미국시간) 캠프 캐럴에 근무한 적이 있다는 3명의 전 주한미군 병사들의 증언을 보도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증언에 따르면, 1978년 캠프 캐럴에서 중장비 기사로 복무했던 스티브 하우스는 “상관이 처리할 게 있다며 도랑을 파라고 했고, 그곳에 ‘베트남 컴파운드 오렌지’라고 적혀 있는 드럼통을 묻었다”고 증언했는데, 그와 함께 복무했던 로버트 트라비스 역시 “창고에 있던 205개 드럼통을 일일이 손으로 밀고 나왔다”며 이때 실수로 드럼통에서 새어나온 고엽제에 노출돼 자신에게 “건강상의 문제도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보도와 관련해 캠프 캐럴 관계자는 “고엽제를 묻었다는 얘기는 처음 듣는 것”이라며 부인했지만 “아무것도 확인된 게 없다”며 사실 관계를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모호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다시 말해 한국 정부가 찾아내서 사실을 확인하고 따지면 그때 가서 태도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이 보도 이후 이어진 보도에 따르면 그동안 캠프 캐럴은 환경오염과 관련된 사건으로 자주 구설수에 올랐었는데,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기름 유출과 석면 오염 파문이었다. 그러나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캠프 캐럴 측은 한국 국민의 건강을 위한 합당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기름 유출 사건으로 인해 대구 시민의 식수원인 낙동강이 오염돼 칠곡 군청이 나서 수년에 걸쳐 방제작업을 한 적도 있다. 그러나 석면 파문은 시간이 흐르면서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고엽제 ‘에이전트 오렌지’란 무엇인가
미국은 베트남전 기간 동안 베트남의 정글에 고엽제, 이른바 ‘에이전트 오렌지(agent orange)’를 뿌렸는데, 그 양이 자그마치 50,000톤(약 4,000만 리터)에 이른다. 미국이 베트남전쟁에서 고엽제를 사용한 것은 주요 전투가 밀림이 우거진 정글에서 치러졌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베트남에는 보호해야할 만한 주요 산업시설이 거의 전무했으므로 전략적으로 중요한 거점을 지키거나 공격하는 것으로는 상대의 전투의지를 꺾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월맹과 남베트만민족해방전선은 농촌을 중심으로 영향력을 확대해 왔기 때문에 미국은 지상군을 신속하고 안전하게 이동시키기 위해서 헬기를 이용한 ‘공중기동(air-mobility)’과 같은 새로운 개념의 작전을 도입했고, 적의 출몰지역을 중심으로 ‘수색섬멸(Search and Destroy)’ 작전에 주력했다. 그러나 도로망이 부족하고 열대림과 같은 자연적 장애물이 많은 상태에서 미군의 작전은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 즉 베트콩의 기습공격에 노출될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미군은 적에게 은닉처를 제공하고, 작전에 장애가 되는 베트남의 밀림을 파괴하기 위해 에이전트 오렌지와 같은 강력한 화학 제초제들을 공중 투하하는 새로운 작전을 실시했는데, 이것이 이른바 ‘랜치핸드(ranch hand, 목장 일꾼)’ 작전이었다.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등 광범위한 지역에서 펼쳐진 이 작전은 항공기를 이용해 정글 위 40m 이하 상공에서 시속 240km의 저속으로 비행하면서 4분 이내에 폭 80m, 길이 16km의 정글을 완전히 말려 죽이는데 사용되었다.
랜치핸드 작전에 따라 에이전트 오렌지를 살포하고 있는 UC-123 (USAF photo)
‘에이전트 오렌지’란 이름은 당시 이 약품이 노란색 드럼통에 담겨져 있었기 때문에 붙은 별명으로 실제 고엽제 용액의 색깔이 노란색은 아니었다. 주로 유기염소계의 제초제인 2,4,5-T(trichloro phenoxic acid)와 2,4-D를 1:1로 혼합한 약품으로 2,4-D는 국내의 잡초 제거를 위해 미국에서 1950년부터 수입해서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에이전트 오렌지는 사용 당시만 하더라도 인체에 큰 독성은 보고된 바 없었지만 2,4,5-T와 2,4-D의 혼합시 생성된 불순물질로 다이옥신인 2,3,7,8-TCDD가 발암성, 돌연변이성 질환을 일으키면서 크게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
우리나라는 베트남 전쟁에 1964년 9월부터 1973년 3월까지 8년 6개월 동안 32만 명이 참전했지만 고엽제의 후유증은 1991년 호주에 거주하는 한국 교민이 내한해 고엽제의 피해로 인해 원인모를 병을 앓아 죽어가고 있다고 호소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정부도 이에 대한 대책으로 1993년 2월 고엽제 후유의 중환자 진료 등에 관한 법률을 국회에 통과시키는 등 대책을 마련하기 시작했고, 국가보훈처에서 고엽제 피해자들에게 보상 및 치료를 실시하게 되었다.
고엽제에는 발암성이 가장 높다는 맹독성분인 다이옥신(다이옥신은 청산가리의 1만 배, 비소의 3000배에 이르는 독성을 지닌 물질이다)에 의한 폐암, 간암, 임파선암, 혈액암 등의 건강장애가 제일 심각하고, 심각한 생식기능장애, 면역손상으로 각종 전염성 질환에 걸릴 수가 있으며 호르몬조절 기능손상으로 불임, 기형, 장애어린이 출생, 발육 장애 등이 올 수 있다. 에이전트 오렌지에는 맹독성인 다이옥신 외에도 인체에 해로운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여러 화학물질들이 함유되어 있는데, 살포 당시 노출되었던 임신한 동물들에게서 피부발진과 피부색소변화를 일으켰다. 인체에 나타난 현상은 안면, 목, 배에 피부발진, 사지감각손실, 신경손상, 성욕소실, 불면증 등을 일으킬 수 있고, 이외에도 두통, 위장염, 신장염, 장출혈, 혈관질환 등을 나타냈다. 그러나 지금까지 마땅한 치료제가 없다는 것이 더욱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에이전트 오렌지는 노출된 당사자 뿐만 아니라 후손들에게까지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사진은 에이전트 오렌지로 인해 돌연변이성 질환으로 사산된 신생아들의 모습이다(에이전트 오렌지에 의해 치명적인 손상을 입은 이미지는 이외에도 인터넷 검색을 통해 많이 찾을 수 있지만 너무 끔찍한 모습들이라 옮기지 않는다).
이처럼 인체에 치명적인 손상을 끼치는 에이전트 오렌지이지만 과거 DDT가 그러했던 것처럼 초기에는 참전 군인들의 원인모를 발병에 대해 관계당국은 고엽제와의 상관관계에 대해 발뺌하거나 부인해 왔다. 그러나 차츰 시간이 흐르면서 고엽제와 이와 같은 질병들의 상관관계가 서서히 밝혀지면서 사람들은 에이전트 오렌지가 밀림을 고사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그에 노출된 사람들을 오랜 고통에 시달리다가 결국 죽게 만들고 유전적으로 후손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에서 ‘슬로우 불릿’이라 불렀다. 현재 미국에서 이 말은 고엽제 후유증 환자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에이전트 오렌지는 한국과 무관한가
한국은 1965년도부터 1973년 철군할 때까지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32만 명을 베트남전쟁에 파병했다. 이 전쟁에서 한국군은 4,960명이 전사, 10,962명이 부상자를 냈지만 전쟁의 상처는 끝나지 않았다. 사전에 아무런 주의사항 없이 미군에 의해 주도적으로 사용된 고엽제는 적과 아군의 구별 없이(적에게 사용하면 괜찮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치명적인 후유증을 안겨주었고, 그 고통이 대를 이어 후손들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다. 베트남 전쟁 당시 사전에 어떤 경고도 받지 못했던 파월 장병들은 고엽제를 몸에 바르면 정글에서 모기 등 해충을 방제해주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았기 때문에 “병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철모에 듬뿍 퍼 담은 가루 고엽제를 가슴에 안고 비료처럼 뿌려대는 시범을 보이고는 짝짝짝 박수를 받기도 했을 정도”로 고엽제의 영향에 대해 무지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1991년 호주 교민의 고발이 있기 전까지 고엽제 피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가 1993년부터 보훈처를 통해 대책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는 ‘대한민국고엽제후유의증전우회', '베트남전쟁참전전우회' 등이 조직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데, 고엽제로 인한 국내 사망자는 현재에도 한해 200여 명인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렇다면 고엽제 피해는 베트남전 참전 군인들만의 문제인가? 2001년 2월 13일 보도에 따르면, 지난 60년대 말 우리나라 DMZ에서 복무했던 제대군인이 국가보훈처 보훈심사위원회에 의해 고엽제 후유증을 앓고 있다는 심사 결과를 받았다. 지난해 12월 말 현재 DMZ에서 복무했던 제대군인 중 554명이 고엽제 후유증을 호소하고 있으며, 심사 결과 이 중 14명이 후유증을, 65명이 후유의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999년 12월 <함께 사는 길>에 게재된 「비무장지대 고엽제 살포」란 글에 따르면 “지난 1968년 4월부터. 서부전선에서 동부전선까지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 남쪽에서 민간인 통제선 이북 지역으로 2천2백만 평이 대상 지역이었으며, 철책선 양쪽 1백여 미터와 전술적으로 중요하다고 판단한 지역, 그리고 주요 도로 양쪽 30여 미터에 살포했다. 당시 뿌려진 고엽제는 베트남전 때 사용된 것과 똑같은 ‘에이전트 오렌지’이며 원액 2만1천 갤런(약 3백15드럼)을 경유와 3대 50으로 섞어 사용했는데 살포한 분량이 무려 1백40만 리터, 드럼통으로 7천여 개”에 이른다고 한다.
‘식물통제계획 1968년’이란 작전명으로 실시된 당시 살포작업에는 주로 한국군이 동원되었고 주한미군은 감독만 했던 것으로 드러났는데, 국방부의 각종 기록들에 따르면 살포작업에 2만6천6백여 명의 한국군이 동원되었다고 밝혔지만, 한 방송사는 살포 첫해인 1968년에만 다섯 달 동안 연인원 3만5천여 명이 동원되었고, 이듬해에도 같은 규모로 이루어진 점으로 미루어 볼 때 2년 동안 총 7만여 명은 동원되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고엽제의 독성에 대해 전혀 모르는 병사들이 아무런 보호 장비도 없이 맨손으로 살포작업에 동원됐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더운 날씨 탓에 심지어 옷까지 벗어던지고 고엽제의 안개 속에서 수 시간 동안이나 무방비로 노출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고엽제 성분은 토양이나 동식물에게 30여 년 동안 잔류하기 때문에 고엽제 피해자가 상당수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이다. 비무장지대(DMZ)에 고엽제 에이전트 오렌지가 대량으로 살포되었다는 사실 역시 오랫동안 비밀로 감춰져 왔지만 당시 고엽제 살포에 직접 관여하지도 않았던 전 주한 미군 병사가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고발함으로써 국내에도 이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다.
미국은 당시 전투 지역이었던 베트남은 물론 우방인 한국에 에이전트 오렌지를 살포할 당시에도 이미 고엽제의 심각한 위험성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964년 미국과학자연맹에서는 미국이 에이전트 오렌지를 이용한 생화학무기를 실험하고 있다고 비난한 바 있었으며, 1966년에는 존 에드설 하버드대 교수를 비롯해 30여명의 과학자들이 에이전트 오렌지의 살포는 야만적 행위이며, 군인과 민간인 모두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이라고 경고했었다. 또한 베트남 참전 미군 고엽제 피해자들의 소송을 담당한 뉴욕주 한 지방법원의 판결문에는 미국 대통령 과학자문위원이었던 맥도널드 박사의 증언이 기록되어 있는데, 한국에 살포되기 3년 전인 지난 1965년 백악관 회의에서 이미 고엽제가 인체에 끼치는 유해성에 관해 논의했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 자리에는 지난 1968년 한국에 고엽제 살포를 승인했던 맥나마라 당시 미 국방장관도 참석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우리나라 고엽제 피해 소송대리인인 백영엽 변호사 역시 미국 정부는 물론 제조회사들도 월남전 이전부터 고엽제에 다이옥신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과 다이옥신이 인체에 해롭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캠프 캐럴, 고엽제 매몰의 진실과 그 결과는
경북 칠곡군 왜관읍에 위치한 캠프 캐럴에 주한미군이 비밀리에 수천 킬로그램의 고엽제를 비밀리에 매몰했다는 증언이 있었지만 이것이 사실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명백한 진위는 드러나지 않았다. 지금까지 미 국방부는 베트남전 당시 사용하고 남은 ‘에이전트 오렌지’는 바다에 폐기했다고 주장해 왔지만, 만약 캠프 캐럴에 대한 증언이 사실이라면 미 국방부의 발표 역시 거짓이었다는 것이 드러나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고엽제와 관련된 유독성은 물론 여러 사건들이 밝혀져 왔던 정황을 살펴볼 때 캠프 캐럴의 고엽제 매몰사건이 사실일 가능성은 매우 높아 보인다. 다만, 우리가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은 베트남에서, 한국의 DMZ에서 널리 사용되었던 에이전트 오렌지(고엽제)의 진상이 밝혀지는 과정에서 한 번도 우리 정부가 주도적으로 작전실태나 오염실태에 대해 밝혀낸 바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한국의 비무장지대(DMZ) 고엽제 살포 사실 역시 1968년 당시 동두천에서 주한미군 의무병으로 복무했던 병사가 통증과 소화기 이상, 암 등 고엽제 후유증에 시달리다 지난 1999년 미국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내 피해보상판정을 받음으로써 처음 확인된 것이다. 스티브 하우스, 로버트 트라비스 등의 증언을 보도한 KPHO-TV는 애리조나 주립대 피터 폭스 교수의 말을 인용해 “매몰된 고엽제로 인한 지하수 오염 가능성”이 있으며 “오염된 지하수가 농업용수로 쓰였을 경우 음식물에도 들어갔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지역(캠프 캐럴)을 정화시킬 유일한 방법은 모든 지하수를 뽑아내는 것”이라며 “이런 화학물질을 제거하는 데 50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말했지만 지금 한나라당의 텃밭으로 여겨지는 경북 영남 지역의 수백만 시민들이 사용하는 낙동강 상수원이 다이옥신에 의해 오염될 수 있는 치명적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보도를 접한 한국 정부나 언론의 태도는 어쩐지 미온적이다.
정부는 환경부를 통해 ‘환경정보 공유와 접근 절차’에 따라 통보가 필요한 환경 사고의 경우 SOFA(주한미군지위협정) 환경분과위 협의를 통해 공동조사가 가능하다고 밝혔는데, SOFA 규정에 근거해 미군 측에 사실 확인을 촉구하고 공동조사를 요청하겠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공식 입장이다. 그렇다면 우리 정부는 이 사건의 진실을 밝혀낼 수 있을까? 진실을 밝혀낸다면 그에 따른 적절한 보상을 미국 정부를 통해 받아낼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진실을 밝혀내기도 쉽지 않겠지만 설령 진실이 밝혀진다고 하더라도 이후 원인제공자인 미국 측의 사과와 보상은 받는 데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쉽지 않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이미 예전에 밝혀졌던 휴전선 인근 비무장지대의 고엽제 살포로 인한 후유증 환자들에 대해 미국 정부 측에서는 법적 보상을 거부하고 있다. 윌리엄 코언 당시 미국 국방장관은 고엽제 살포가 한·미간 협의 아래 한국 정부가 결정한 일이므로 미국은 고엽제 보상의 법적 책임을 부담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힌바 있다. 우리 정부 측에서는 한·미간 협의는 있었지만 살포작업이 미군의 요청에 따라 미군 주도하에 이루어진 것이라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미국 정부는 미국 정부대로, 우리 정부는 우리 정부대로 피해 보상에 관한 책임을 질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 사건에 대해 주한 미군 측이나 우리나라 국방부 측에서 합동조사반을 구성해 이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를 실시했어야 마땅하지만 양 측 모두 간간이 서로의 입장만 밝히고 있을 뿐 제대로 된 진상조사에 착수할 의지(한국 땅에 뿌려진 것이고, 피해자 대부분이 주로 한국 국민이기 때문에 당연히 한국 정부가 더욱 강한 의지를 보여야 마땅하겠지만)를 보이지 않는다.
1966년 7월 9일 한·미 양국 사이에 체결된 한미행정협정, SOFA는 한국 국민에겐 가시 방석이고, 주한미군에겐 여전히 안락한 가죽 소파(sofa)다.
이차대전 끝나고 / 유태인 학살 독가스 개발했던 / 독일의 제조사 사장은 / 재판 후 처형되었다
그런데 / 공포의 다이옥신으로 / 베트남의 선량한 국민과 / 참전 병사 그들의 자손들에게 / 치명적 피해를 떠안겼던 미국의 기업은 / 여전히 국제면책권 주장하며 / 큰소리 친다 / 고엽제와 관련된 어떤 소송에도 / 미국 법원은 빗장 걸었다
세월 흘러가도 / 풀 돋아나지 않는 민둥산 / 암과 기형아와 온몸 뒤틀리는 신경마비로 / 기약없이 앓고 있는 땅
그 베트남에서 / 무수한 양민 살상되고 / 생태계는 무참히 파괴되었는데 / 누가 보상할 것인가 / 누가 그들의 눈물 닦아줄 것인가
- 이동순, 「고엽제 6」 전문
이동순 시인은 시집 『베트남 시편』을 통해 고엽제와 베트남의 상처에 대해 저렇게 노래했는데, 지금 한국 국민들의 입장은 혈맹인 미국 보다 한때 적으로 싸웠던 멀고 먼 베트남 국민들의 입장과 더 많이 닮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