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예술

최봉림 - 세계 사진사 32장면 (1826~1955)

windshoes 2010. 9. 13. 17:12
세계 사진사 32장면 (1826~1955)/ 최봉림 지음/ 디자인하우스/ 2003년



몇몇 장면으로 본 무슨무슨 시리즈는 모 출판사의 독점적인 제목 붙이기 방식인 줄만 알았는데, 최근 디자인하우스에서 출판된 "세계사진사 32장면"이란 책에도 이런 류의 제목이 붙었다. 몇몇 장면이란 시리즈는  결국 대중적인 통사를, 흥미를 끌만한 사건들과 인물을 중심으로 묶어 보겠다는 확실한 의도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저자가 낯이 익다고 생각했는데 열화당에서 나오는 사진북 시리즈 중 하나인 "도마쓰 쇼메이"의 옮긴이이기도 했다. 전체적인 예술사 속에서 사진사를 별도로 끄집어 내어 정리하고자 하는 시도, 아우르러려는 노력은 국내에서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보다 조금 앞서 진동선 선생의 "영화보다 재미있는 사진 이야기 - 사진사 드라마 50"이라는 책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 두 책을 서로 비교해가면서 읽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두 책 모두 때로 공통된 강점과 약점을 노출하기도 하며, 비교될만한 우수한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세계 사진사 32장면"은 1826년 사진의 탄생으로부터 1955년의 인간가족전을 하나로 엮었고, 인간가족전 이후의 사진사에 대해서는 별도의 책으로 엮는다는 기획 아래 만들어진 책이다. 32개의 사건과 국면으로 사진의 역사 130년을 한 권으로 묶는다는 시도는 결코 쉽지 않은 것이다. 앞에서 말한 진동선의 책이 드라마50이라 부제를 달았으나 촛점은 사진작가에게 있는 반면, 이 책은 그야말로 사건과 현상에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이다. 그런 점에서 이 두 권의 책은 서로 상보적인 관계로 읽어도 재미있을 것이다. 저자 최봉림은 각각의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32장의 사진을 엄선해서 골라냈다. 이중에는 사진에 조금만 관심있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대표적인 사진으로부터 이야기는 들었으나 보지 못했던 사진도 수록되어 있다. 인류 최초의 사진이라 할 수 있는 니엡스의 "창문에서 본 조망"도 그 중 하나이다.

사진은 미술을 대체하고, 미술 분야와 영향을 주고 받으며 성장했다. 그리고 동시에 시대를 담는 종이거울의 역할도 충실히 해냈다. 저자는 이 부분도 놓치지 않지만 무엇보다 저자의 가장 확실한 인식을 보여주는 것은 이 책이 사진사의 역사를 인간가족전을 정점으로 하여 시대를 구분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문학과 예술의 사조를 배울 때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치열한 변증법적 쟁투를 기억할 것이다. 저자는 바로 이 시점 "인간가족"전을 기점으로 휴머니즘과 사회의 진보에 대한 순진한 믿음을 '백조의 노래'로 거부한 작가들을 중심으로 2부를 시작할 것이라고 작가 서문에서 말하고 있다. 그리고 2부의 시작은 윌리엄 클라인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이 책의 진정한 서평은 두번째 책이 출간되었을 때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1부 먼저 읽어둔다고 해도 지장은 없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의 2부에 기대가 크다.

저자는 사진을 통해 시대를 읽고, 사회를 통해 사진을 읽어들인다. 이 책은 흔한 몇몇 장면으로 본 시리즈가 아니라 학적으로도 치밀한 방식을 취해 쓰여진 비교적 고급 독자를 염두에 둔 어렵지 않은 사진사 입문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