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영화/DVD
아메리칸 갱스터(American Gangster, 2007)
windshoes
2011. 8. 25. 18:01
아메리칸 갱스터(American Gangster, 2007)
감독 : 리들리 스콧(Ridley Scott)
각본 : 스티븐 자일리언(Steven Zaillian)
원작 : 마크 제이콥슨(Mark Jacobson)
출연 : 덴젤 워싱턴(프랭크 루카스), 러셀 크로우(리치 로버츠), 클레어런스 윌리엄스3세(범피 존슨)
<아메리칸 갱스터>는 1960년대 월남전이 한창 진행 중인 미국으로 우리를 이끈다. 극장판이 아닌 감독판은 런닝 타임이 3시간에 육박할 정도인데도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전혀 지루하단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 같은 조밀한 짜임새와 박진감을 동시에 갖출 수 있었던 배경엔 물론 리들리 스콧의 연출 솜씨가 가장 큰 덕이겠지만 그 밑바탕엔 스티븐 자일리언의 내공을 무시할 수 없다. 그는 영화 <쉰들러리스트>를 각색해 1994년을 그의 해로 만들었던 극작가이기도 하다.(리들리 스콧이 사회성 짙은 시네아스트로 평가되지 못하는 대신 주로 시각적인 쾌감을 선사하는데 대가로 알려진 반면 스티븐 자일리언은 <쉰들러 리스트>, <갱스 오브 뉴욕>, <시빌 액션>에 이르기까지 시민과 평등이라는 사회적 주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 온 각본가이자 감독이란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화는 1968년의 미국 뉴욕 할렘을 장악하고 있던 흑인 갱스터의 두목 범피 존슨(클레어런스 윌리엄스3세)이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대부>에서 돈 꼴레오네가 자기 집 정원에서 숨졌다면 범피는 당시 미국에 한창 번지기 시작한 대형 마트에서 그의 오른팔이었던 프랭크 루카스(덴젤 워싱턴)가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숨진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다. 그런데 두목 범피가 죽음을 맞이한 장소가 대형 마트라는 것은 영화 전체를 통해 매우 의미심장한 사회학적인 알레고리를 형성한다. <아메리칸 갱스터>는 실제 사건을 영화화한 것이지만 실제 인물인 범피 존슨은 레스토랑에서 죽었다.
‘웨스턴(western)'이 미국의 신화를 대체하는 영화적 산물이라면 ‘갱스터(Gangster)’는 미국의 자본주의 구조와 현실을 투사하는 대표적인 영화 장르다. 마틴 스콜시지의 <갱스 오브 뉴욕>이 미국 건국사의 암울한 시초를 그리고 있다면,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대부>는 미국 자본주의 발전의 역사를 그려낸 3부작이다. 브라이언 드 팔마의 <스카페이스>는 정치적 격변을 틈타 미국으로 망명한 쿠바 난민이 자본주의적 성공의 사다리에서 추락하는지를 보여준다. 리들리 스콧은 미국식 신자유주의 경제구조가 무엇인지 <아메리칸 갱스터>를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영화 초반 뉴욕 할렘가의 갱스터 두목이자 흑인 빈민들에게는 로빈 후드로 통했던 범피 존슨은 뉴욕 할렘가에 들어선 대형 마트를 바라보면서 ‘소비자와 생산자의 직거래 방식으로 소비자에게 이득을 가져다준다’는 대형마트식 산법에 냉소를 보낸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사회에 실업자가 만연하고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설 자리를 점점 더 잃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1962년 아칸소 주 출신의 샘 월튼은 “월마트 스토어 주식회사(Wal-Mart Stores, Inc.)”라는 대형할인점 체인사업을 시작해 현재는 8백 40억 달러에 달하는 재산을 소유하고 있다. 실제로 범피가 숨진 곳이 월마트는 아니지만, 구시대 인물인 범피가 죽은 뒤 그의 자리를 계승한 루카스는 그의 사업에도 ‘월마트화(Wal-Martification)'를 도입한다.
바로 생산자와의 직거래, 저가전략이란 시장 원리 말이다. 월마트의 영업방식은 해외의 노동력부터 자체 매장 내부의 노동력에 이르기까지 최저가격을 강요하는 방식이다. 규모의 경제란 측면에서 이처럼 국제적인 괴물에 대항할 수 있는 토착 유통기업은 거의 없다. 비록 ‘월마트’가 한국에서는 ‘이마트’라는 토착 괴물에 밀려 떠나긴 했지만 이마트가 월마트와 경쟁한 방식의 기본 구조는 대동소이하기 때문이다. 범피 존슨의 수행비서이자 보디가드였던 프랭크 루카스는 바로 그 같은 방식으로 인도차이나의 마약생산업자와 직거래 방식으로 마약을 거래했고, ‘블루매직’이란 브랜드명을 이용해 순도 높은 마약을 뉴욕에 공급한다(이 부분이 알레고리로서는 상당히 재미있다. 순도 높은 마약은 물론 마약 중에서는 고급제품일 테지만 그 자체로는 독약이니까. 마찬가지로 월마트로 상징되는 저가상품과 대량구매방식은 그 자체로는 소비자에게 이득처럼 보이지만 전지구적으로는 재앙이 될 수 있다).
조폭의 생태학에서 두목이 비명횡사하거나 명확한 후계자를 결정하지 못했을 때 대권을 승계하는 것은 대개 수행비서라고 한다. 루카스가 범피의 비서 출신이었던 것처럼 삼성 그룹의 경영진의 2/3은 비서 출신이란 사실도 의미심장하다(영화 속 리치 형사는 삼성 출신의 김용철 변호사일 수도 있다. 어떤 이는, 심지어 당시 그의 고백을 들은 신부님들조차 김용철 변호사에게 삼성에서 호의호식하다가 이제 와서 라고 말했다는데, 리치 형사 역시 절대적인 선이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는 루카스의 체포에도 성공했고, 부패 경찰들을 일망타진하는데도 성공했다. 과연 김용철 변호사는 비서 출신의 임원진들과 회장님을 법정에 세운 것만으로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 우리 사회는 성공한 걸까?). 얼마 전 <두사부일체>란 코믹 조폭 영화가 흥행 대박을 터뜨린 일도 있지만, 사실 알렉산더 대왕과 해적이 대화를 나눈 시대 이래로 조폭과 기업, 국가는 본질적으로 같은 작동 원리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영화 <대부>는 CEO들의 경영학 수업에서 빠져선 안될 교재이고, 마피아 출신 간부의 경영학 처세술서가 베스트셀러로 팔리기도 한다. 조폭과 기업은 서로를 학습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월마트에 취직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겠지만 그것은 월마트가 누구나 일하고 싶은 좋은 직장이기 때문은 아니다. 그들 중 상당수는 월마트가 진출하기 전엔 자신의 매장을 가지고 있던 자영업자들이었을 테고, 비록 월마트보다는 작은 규모였겠지만 좀더 나은 보수를 지급하는 중소 마트에서 일했던 사람들일 것이다. ‘월마트’로 상징되는 세계화는 한해 1만 4,000개의 직장을 없애고, 그 대신에 ‘월마트’ 같은 비숙련 저임금 직장 3,000개를 만들 뿐이다.
감독 : 리들리 스콧(Ridley Scott)
각본 : 스티븐 자일리언(Steven Zaillian)
원작 : 마크 제이콥슨(Mark Jacobson)
출연 : 덴젤 워싱턴(프랭크 루카스), 러셀 크로우(리치 로버츠), 클레어런스 윌리엄스3세(범피 존슨)
<아메리칸 갱스터>는 1960년대 월남전이 한창 진행 중인 미국으로 우리를 이끈다. 극장판이 아닌 감독판은 런닝 타임이 3시간에 육박할 정도인데도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전혀 지루하단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 같은 조밀한 짜임새와 박진감을 동시에 갖출 수 있었던 배경엔 물론 리들리 스콧의 연출 솜씨가 가장 큰 덕이겠지만 그 밑바탕엔 스티븐 자일리언의 내공을 무시할 수 없다. 그는 영화 <쉰들러리스트>를 각색해 1994년을 그의 해로 만들었던 극작가이기도 하다.(리들리 스콧이 사회성 짙은 시네아스트로 평가되지 못하는 대신 주로 시각적인 쾌감을 선사하는데 대가로 알려진 반면 스티븐 자일리언은 <쉰들러 리스트>, <갱스 오브 뉴욕>, <시빌 액션>에 이르기까지 시민과 평등이라는 사회적 주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 온 각본가이자 감독이란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화는 1968년의 미국 뉴욕 할렘을 장악하고 있던 흑인 갱스터의 두목 범피 존슨(클레어런스 윌리엄스3세)이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대부>에서 돈 꼴레오네가 자기 집 정원에서 숨졌다면 범피는 당시 미국에 한창 번지기 시작한 대형 마트에서 그의 오른팔이었던 프랭크 루카스(덴젤 워싱턴)가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숨진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다. 그런데 두목 범피가 죽음을 맞이한 장소가 대형 마트라는 것은 영화 전체를 통해 매우 의미심장한 사회학적인 알레고리를 형성한다. <아메리칸 갱스터>는 실제 사건을 영화화한 것이지만 실제 인물인 범피 존슨은 레스토랑에서 죽었다.
‘웨스턴(western)'이 미국의 신화를 대체하는 영화적 산물이라면 ‘갱스터(Gangster)’는 미국의 자본주의 구조와 현실을 투사하는 대표적인 영화 장르다. 마틴 스콜시지의 <갱스 오브 뉴욕>이 미국 건국사의 암울한 시초를 그리고 있다면,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대부>는 미국 자본주의 발전의 역사를 그려낸 3부작이다. 브라이언 드 팔마의 <스카페이스>는 정치적 격변을 틈타 미국으로 망명한 쿠바 난민이 자본주의적 성공의 사다리에서 추락하는지를 보여준다. 리들리 스콧은 미국식 신자유주의 경제구조가 무엇인지 <아메리칸 갱스터>를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영화 초반 뉴욕 할렘가의 갱스터 두목이자 흑인 빈민들에게는 로빈 후드로 통했던 범피 존슨은 뉴욕 할렘가에 들어선 대형 마트를 바라보면서 ‘소비자와 생산자의 직거래 방식으로 소비자에게 이득을 가져다준다’는 대형마트식 산법에 냉소를 보낸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사회에 실업자가 만연하고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설 자리를 점점 더 잃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1962년 아칸소 주 출신의 샘 월튼은 “월마트 스토어 주식회사(Wal-Mart Stores, Inc.)”라는 대형할인점 체인사업을 시작해 현재는 8백 40억 달러에 달하는 재산을 소유하고 있다. 실제로 범피가 숨진 곳이 월마트는 아니지만, 구시대 인물인 범피가 죽은 뒤 그의 자리를 계승한 루카스는 그의 사업에도 ‘월마트화(Wal-Martification)'를 도입한다.
바로 생산자와의 직거래, 저가전략이란 시장 원리 말이다. 월마트의 영업방식은 해외의 노동력부터 자체 매장 내부의 노동력에 이르기까지 최저가격을 강요하는 방식이다. 규모의 경제란 측면에서 이처럼 국제적인 괴물에 대항할 수 있는 토착 유통기업은 거의 없다. 비록 ‘월마트’가 한국에서는 ‘이마트’라는 토착 괴물에 밀려 떠나긴 했지만 이마트가 월마트와 경쟁한 방식의 기본 구조는 대동소이하기 때문이다. 범피 존슨의 수행비서이자 보디가드였던 프랭크 루카스는 바로 그 같은 방식으로 인도차이나의 마약생산업자와 직거래 방식으로 마약을 거래했고, ‘블루매직’이란 브랜드명을 이용해 순도 높은 마약을 뉴욕에 공급한다(이 부분이 알레고리로서는 상당히 재미있다. 순도 높은 마약은 물론 마약 중에서는 고급제품일 테지만 그 자체로는 독약이니까. 마찬가지로 월마트로 상징되는 저가상품과 대량구매방식은 그 자체로는 소비자에게 이득처럼 보이지만 전지구적으로는 재앙이 될 수 있다).
조폭의 생태학에서 두목이 비명횡사하거나 명확한 후계자를 결정하지 못했을 때 대권을 승계하는 것은 대개 수행비서라고 한다. 루카스가 범피의 비서 출신이었던 것처럼 삼성 그룹의 경영진의 2/3은 비서 출신이란 사실도 의미심장하다(영화 속 리치 형사는 삼성 출신의 김용철 변호사일 수도 있다. 어떤 이는, 심지어 당시 그의 고백을 들은 신부님들조차 김용철 변호사에게 삼성에서 호의호식하다가 이제 와서 라고 말했다는데, 리치 형사 역시 절대적인 선이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는 루카스의 체포에도 성공했고, 부패 경찰들을 일망타진하는데도 성공했다. 과연 김용철 변호사는 비서 출신의 임원진들과 회장님을 법정에 세운 것만으로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 우리 사회는 성공한 걸까?). 얼마 전 <두사부일체>란 코믹 조폭 영화가 흥행 대박을 터뜨린 일도 있지만, 사실 알렉산더 대왕과 해적이 대화를 나눈 시대 이래로 조폭과 기업, 국가는 본질적으로 같은 작동 원리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영화 <대부>는 CEO들의 경영학 수업에서 빠져선 안될 교재이고, 마피아 출신 간부의 경영학 처세술서가 베스트셀러로 팔리기도 한다. 조폭과 기업은 서로를 학습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월마트에 취직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겠지만 그것은 월마트가 누구나 일하고 싶은 좋은 직장이기 때문은 아니다. 그들 중 상당수는 월마트가 진출하기 전엔 자신의 매장을 가지고 있던 자영업자들이었을 테고, 비록 월마트보다는 작은 규모였겠지만 좀더 나은 보수를 지급하는 중소 마트에서 일했던 사람들일 것이다. ‘월마트’로 상징되는 세계화는 한해 1만 4,000개의 직장을 없애고, 그 대신에 ‘월마트’ 같은 비숙련 저임금 직장 3,000개를 만들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