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예술

현장에서 만난 20th C : 매그넘(MAGNUM) 1947~2006 - 매그넘 (지은이) | 에릭 고두 (글) | 양영란 (옮긴이) | 마티(2007)

windshoes 2011. 9. 9. 11:02

현장에서 만난 20th C : 매그넘(MAGNUM) 1947~2006 - 매그넘 (지은이) | 에릭 고두 (글) | 양영란 (옮긴이) | 마티(2007)





20세기 최고의 프리랜서 사진가 집단 “매그넘”


『현장에서 만난 20th C』는 “우리는 그들의 사진으로 세계를 기억한다”는 의미심장한 부제를 달고 있다. 선언적 어투로 쓰인 이 말을 만약 다른 사람이나 다른 사진집단이 했다면 아마 우리는 매우 거만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누구인가? “MAGNUM” 사진에 대해 조금만 관심이 있다면, 모를 수 없는 보도 사진가들의 집단이 바로 매그넘이다. 매그넘은 좀체로 넘어서기 어려운 중세의 길드 같다는 느낌을 준다. 어쩌면 프리메이슨 같은 비밀스러운 입교식을 치르지나 않을까 싶을 만큼 신비로운 매력을 선사하는 이들이 바로 매그넘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라이프> 등 포토저널리즘의 전성기를 경험한 사진작가들은 편집자들의 의도와 요구에 따른 작업 방식에 많은 불만을 품게 되고, 그들이 촬영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촬영하고, 그들이 의도하는 대로 게재해주는 매체에 그들의 사진을 제공해주는 방식의 사진작가 에이전시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오랜 친구 사이이기도 했던 프랑스의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로버트 카파, 데이비드 시무어 등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창립한 프리랜서 포토그래퍼 집단이 바로 매그넘이다. 이들은 다큐멘터리 사진을 전문으로 하여 이후 세계를 대표하는 엘리트 사진 집단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지난 1993년과 2001년, 국내에서도 매그넘의 대규모 사진전시회가 있었기 때문에, 또 최근엔 로버트 카파 사진전이 열리기도 해서 국내 애호가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나 역시 매그넘에 소속된 사진작가들 가운데 로버트 카파는 물론이고, 베르너 비쇼프, 유진 스미스(한동안 ‘매그넘’에서 활동하다가 탈퇴),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엘리어트 어위트, 요제프 쿠델카, 필립 할스만 등에 대해 관심이 많아서 매그넘과 관련된 몇 권의 원서 사진집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지닌 최고 미덕 중 하나는 이전의 다른 책들에서는 보기 힘든 사진들이 제법 많이 수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건 정말 큰 미덕이다.)

한․불에서 거의 동시에 출간된 『현장에서 만난 20세기』
- 그러나 가독성을 떨어뜨리는 편집레이아웃

국내에서 지난 2007년 10월에 출간된 『현장에서 만난 20세기』는 인터넷으로 검색한 결과로는 프랑스보다도 한 달 정도 먼저 국내 출간된 책이다. 이 책은 1947년부터 2006년까지 주요 사건들을 매그넘의 사진작품을 통해 바라보고, 에릭 고두(Eric Godeau)의 글이 해설을 다는 형태로 꾸며져 있다. 이미 이 책을 읽은 많은 이들이 『현장에서 만난 20세기』의 편집과 레이아웃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지만, 막상 직접 책을 읽어보니 이들의 지적은 모두 사실이었다. 일단 10년 단위로 내지를 붉은색, 주황, 올리브그린, 노랑, 남보라, 민트그린 등의 테를 둘러 구분하고 있는데, 사진들이 온갖 요란한 색채의 방해를 받는다. 거기에 사진 캡션으로 들어가는 문장들은 그야말로 종횡무진(縱橫無盡)이라 가뜩이나 요란한 색채들로 인해 저해된 가독성은 더욱 떨어진다.

프랑스판과 거의 동일한 시기에 출간되었기 때문에 내심 프랑스판과 거의 동일한 표지와 내지 레이아웃을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기도 했는데, 막상 프랑스판 책의 표지를 보는 순간 국내판 책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내지 레이아웃을 확인할 수 있는 이미지를 구하지 못해 내지 편집의 차이는 알 수 없었다). 처음에 나는 이 책이 싱가포르에서 인쇄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약간 의아하게 생각했다. 사실 사진집의 경우 외국에서 인쇄해오는 일이 그렇게 드물진 않다. 작년에 열화당에서 출간된 『내면의 침묵 -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찍은 시대의 초상』은 독일에서 인쇄한 것이다. 매그넘에서 제공한 사진의 질이 특별히 카르티에 브레송보다 나빴을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지만 『현장에서 만난 20세기』의 인쇄 질감이 앞서 언급한 책에 비해 현격하게 떨어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 아마도 용지 선택 문제와 인쇄의 질이 전체적으로 사진의 질을 떨어뜨린 것으로 보인다.

로버트 카파가 매그넘을 결성한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로버트 카파를 비롯한 “매그넘”의 사진작가들이 독자적인 사진집단, 에이전시를 창설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은 당시 권력집단의 보도통제는 물론, 편집이라는 권력(편집권)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자신들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행사하고자 하는 강한 욕구를 지니고 있었다. 나 자신이 한 명의 편집자로 밥벌이를 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편집이란 생각하기에 따라 대단한 권력자이기도 하다. 지배계급(권력)은 자신들이 지배하는 세계와 일상의 권력을 합리화하고 영속화시키기 위해 일상에 존재하는 모든 의미를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보이게 만들고 싶어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부자연스러움’과 ‘어색함’ 예를 들어 클래식 공연장에서 느끼게 되는 공연한 주눅, 박물관 마다 일정한 방향과 동선을 지시해주는 화살표들과 같이 일상 속에서 우리는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기존의 세계(지배권력)가 교묘하게 직조한 틀(매트릭스) 속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 책의 부제는 “우리는 그들의 사진으로 세계를 기억한다.”이다. 이 말은 절반은 맞는 말이지만 꼭 그만큼의 진실은 유보된 말이기도 하다. 우리가 한 장의 사진으로 기억하는 역사적 사건들이지만 사진 그 자체는 하나의 스펙타클(spectacle)한 이미지 기호일 뿐이다. 우리에게 그 한 장의 사진이 진정한 의미로 기억되기 위해선 그에 걸맞은 해석(단순하게 말하면 ‘캡션’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이 존재해야만 한다. “사진 한 장이 백 마디 말보다 더 많은 말을 한다.”는 이야기는 도상성(iconicity)이 지닌 위력을 설명해주는 훌륭한 사례다. 사진은 누가 뭐래도 강력한 시각적 이미지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이들은 사진의 이미지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반영하고, 우리들에게 그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착각을 불러 일으켜 허구적인 객관성과 신뢰성을 얻어낸다. 그러나 사진은 결코 대상의 객관적인 반영이 아니며, 주관성을 객관성으로 손쉽게 가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진은 도리어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도구가 될 수 있다.

시각기호인 사진은 그 자체로 다양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보도사진들의 경우에 우리는 사진 이미지 밑에 가로 놓인 해석(캡션)을 읽고, 이미지를 해독하는 과정을 거친다. 사진 속에서 총을 들고 있는 병사가 광폭한 살인마인지, 전란 속에 생명의 위협을 받는 난민들을 구호하기 위해 파견된 병사인지 우리는 사진만으로 해석할 수 없으며, 좀더 복잡하게는 병사가 띄고 있는 정치적 의미, 사회적 의미를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롤랑 바르트는 거친 바다 위에 배가 닻을 내려 선체를 고정시키듯, 언어기호는 시각기호의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특정한 범위 내로 한정하는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정박(anchorage)’의 개념을 통해 설명한다. 그런 의미로 보았을 때 우리는 이 책에 글을 쓰고 있는 저자(혹은 편집자) 에릭 고두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괜찮은 내용의 그런 데로 괜찮은 번역 그러나 몇 가지 결함으로 독자에게 불친절한 책

그러나 책을 읽는 동안, 책을 다 읽고 난 뒤 책의 어디에도, 아니 책의 뒤표지에 적혀있는 몇 줄의 글만으로 저자가 어떤 사람이며, 무슨 생각으로 이 책을 발간하게 되었는지 유추해내야 했다. 우리는 그가 선별해낸 300장의 사진과 보도사진가의 전설이라는 ‘매그넘’을 통해 역사를 이미지로 기억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 자신은 문서보관소에 기록된 수많은 사진들을 일일이 헤집고, 자신이 나름대로 설정한 기준에 따라 1947년부터 2006년까지의 역사를 정리하고 있지만, 정작 그의 책을 읽는 우리들에게 그는 장막 저 편에 서 있다.

나는 이 책의 가장 큰 문제가 가독성을 해치는 편집레이아웃에도 있지만, 이처럼 독자들에게 상세한 정보(예를 들어 저자에 대한 정보, 옮긴이의 말 등)를 제공하지 않는 불친절함에 있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인터넷 서점 아마존(프랑스)에서 이 책은 23.75유로(38,000원)에 판매되고 있으며, 인터넷상으로 이 책에 수록된 사진의 이미지들이 보고 싶다면 매그넘의 포토아카이브 사이트를 찾아가면 좋을 것이다. (물론 사진의 크기가 좀더 작고, 화질도 좋은 편은 아니지만)
( http://www.magnumphotos.com/archive/C.aspx?VP=Mod_ViewBoxInsertion.ViewBoxInsertion_VPage&R=2TYRYDK5YSOX&RP=Mod_ViewBox.ViewBoxThumb_VPage&CT=Album&SP=Album )

끝으로 한 마디 더 나는 가끔 사진집단 매그넘의 저런 선언적인 어투에서 삼성의 CF카피 같은 선정성을 느낀다. 그건 매그넘 작가들 탓일까? 아니면 기획사들 탓일까? (어쨌거나 비키니 편에서 '달리다'와 '칼 사강'이란 불어식 번역은 좀 웃겼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