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SY/한국시

복효근 - 아름다운 번뇌

windshoes 2011. 9. 30. 11:10

아름다운 번뇌

- 복효근



오늘도 그 시간
선원사 지나다 보니
갓 핀 붓꽃처럼 예쁜 여스님 한 분
큰스님한테서 혼났는지
무엇에 몹시 화가 났는지
살풋 찌뿌린 얼굴로
한 손 삐딱하게 옆구리에 올리고
건성으로 종을 울립니다
세상사에 초연한 듯 눈을 내리감고
지극정성 종을 치는 모습만큼이나
그 모습 아름다워 발걸음 멈춥니다
이 세상 아픔에서 초연하지 말기를,
가지가지 애증에 눈감지 말기를,
그런 성불일랑은 하지 말기를
들고 있는 그 번뇌로
그 번뇌의 지극함으로
저 종소리 닿는 그 어딘가에 꽃이 피기를...

지리산도 미소 하나 그리며
그 종소리에 잠기어가고 있습니다.



*

승려란 생사일대사(生死一大事)의 인연(因緣)을 걸고 용맹정진(勇猛精進)하여 대오각성(大悟覺醒)하는 것을 목표로 수행하는 자를 말한다. 태어남과 죽음은 누구에게나 평생 한 번의 커다란 사건이다. 물론 불교에서는 윤회를 이야기하지만 무수한 윤회를 반복해도 도를 깨우칠 수 있는 인간으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또 다시 무수한 인연의 덕을 쌓아야만 가능하다. 한 번 인간으로 태어나는 일도 어렵건만 도를 깨우쳐 윤회의 사슬로부터 벗어나는 대오각성을 얻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번뇌를 깨뜨리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겠는가.


그런데 시인은 그런 성불일랑은 하지 말라고 한다. 시인의 욕심이다. 하지만 그래서 시인이다. 모든 걸 초탈한다면 그는 이미 시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시인을 지상에 유배된 자들이라 부른다. 지옥 같은 현실로 유배된 지장보살의 현신쯤 되는 자들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