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인문학

그림으로 보는 세계문화상징사전 - 진 쿠퍼, 이윤기 옮김/ 까치글방(1994)

windshoes 2011. 11. 5. 10:04


그림으로 보는 세계문화상징사전 ㅣ 까치글방 87
진 쿠퍼 지음, 이윤기 옮김 / 까치글방 / 1994년 5월





이 책은 직접 구입한 것은 아니고, 누군가 선물해주어서 갖게 되었다. 모두가 알고 있는 방법이고, 학교 다닐 때부터 충분히 권유받아온 방법인지라 새삼 말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는 방법이겠지만 쉽게 실천에 옮기기 어려운 것 중 하나가 사전을 찾아 그 정확한 뜻을 아는 것이다. 이 책의 옮긴이인 이윤기 선생은 "역자후기"에서 실례로 자신이 경험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한 독실한 크리스천 의사 친구의 결혼 축하연에서의 일이었다고 하는데, 축하예배를 이끌던 목사가 군의관의 군복 깃에 달린, 지팡이를 감고 오르는 뱀의 형상이 수놓인 기장을 가리키면서 '여러분, 이 군의관의 기장을 보세요. 지팡이와 뱀을 보세요. 구약성경 출애굽기에 나오는 모세와 아론의 지팡이랍니다.'라고 했다.


목사는 군의관 기장을 성서적인 것으로 해석하여 이를 축하예배의 설교용 소재로 이용한 것인데, 이윤기 선생은 사실 이것이 그리스 신화에서 의료의 신으로 등장하는 아폴론의 아들 아스클레피오스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알고 있었다. 아스클레피오스는 당시의 용한 의사이자 현인이었던 케이론의 가르침을 받아 대단한 의사가 되었고, 그가 설립한 의과대학은 수많은 명의들을 배출해냈는데, 오늘날 서양 의학에서 의학의 성인으로 받들어지는 히포크라테스도 이곳 출신이었다. 당시 의과대학은 아스클레피오스의 사당도 겸했고, 당시 의사들은 의사인 동시에 제관이기도 했다. 그 제관들이 사용한 엠블렘이 바로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를 휘감고 있는 아스클레피오스의 뱀(전령이자 사자인 흑빛 무독사)였다는 것이다.


이윤기 선생은 끝까지 참지 못하고 사실은 이런 뜻이라고 말해서 그 자리에서 무안을 당했다는 경험을 토로한다. 불행히도 이런 자리에서 지적인 민주주의는 종종 중우정치로 변해버리곤 한다. 지식인의 반열에 오르지 못한 이라도 이런 경험은 한 두 차례 가질 법한 일이기도 한데, 그럴 때 좋은 지침서가 되는 것이 이런 류의 책이다. 이 책이 국내에 처음 출간된 것이 지난 1994년의 일이고 보니 점차 고급화되어가는 최근 유행을 감안해본다면 비록 양장본이라고는 하나 지질이나 인쇄의 질 등 모든 점에서 많이 뒤처진 감도 있다. "그림으로 보는"이라고 해서 1,500여 개에 이르는 표제어에 일일이 도판이 따라오는 것은 아니다. 또 사전이라고는 하지만 사전에 흔히 있는 반달색인(thumb index)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의 가격이나 기타 여러가지를 생각해볼 때 그 정도 사치는 바라기 어려운 일일 테고, 정 필요하다면 반달색인을 대신할 만한 포스트잇도 있으므로 그런 방법을 사용해보는 것도 좋다.


주변에서 이제 더이상 책으로 된 사전보다는 전자사전을, 백과사전도 간편하고 손쉬운 인터넷 백과 사전을 즐겨 찾는 경우가 많은데 물론 시대의 대세이니 무어라 말할 것은 없다. 그런데 가끔 사무실로 전화해서 핸드폰 분실했다고, 내 전화번호를 다시 묻는 친구들이 있다. 핸드폰에만 입력해놓고, 손으로 적는 수첩에 정리한 적은 없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다 자란 한국인 성인 남성의 대뇌 무게는 1,300~1,400g정도라 한다. 평생 살면서 몇 % 활용도 못한다고 하는데, 너무 놀려두면 나중에 써먹고 싶어도 써먹을 데가 없어질지도 모르겠다. 그런 친구들에게 아직 전자사전은 커녕 전자수첩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나란 사람은 영 구닥다리일지도 모르겠지만, 공부든 기억이든, 자기 책에 밑줄 긋고, 입으로 소리내 읽어보고, 손으로 직접 옮겨 적는 방법을 능가하는 것은 아직 발견되지 못했다는 걸 일깨워주고 싶다. 결국 책을 읽고 기억하는 건 사람이니까...




한 가지 더 현재 대한의사협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휘장에 사용되고 있는 지팡이는 사실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가 아니라 헤르메스의 지팡이로 이 둘은 지팡이를 뱀이 휘감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지만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는 원래 뱀이 한 마리이고, 헤르메스의 지팡이는 뱀 두 마리가 서로 몸을 얽힌 채 기어오르는 형상이다. 아스클레피오스가 앞서의 유래에 따라 의학을 상징하는 인물이고, 그와 같은 유래에 따라 의학 분야의 휘장으로 사용되는 것은 역사적인 연원이 있는 것이지만 죽은 이를 저승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부여받고 있는 그리스 신화의
헤르메스가 사용하는 지팡이 '카두세우스'가 대한의사협회의 휘장으로 사용되는 것은 생각만 해도 으스스한 잘못된 사례이다. 그럼에도 이 휘장이 아무런 고민 없이 대한의사협회의 휘장으로 사용되었던 것은 미군 의무대가 처음 잘못 채택한 휘장을 우리가 아무 고민 없이 차용해 사용해 왔던 결과다. 이제라도 바로 잡는 것이 올바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