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조작하는 자, 진실도 조작할 수 있다(미디어오늘, 2012. 12.18.)
로버트 카파는 오늘날 포토저널리즘의 살아있는 신화로 평가받지만 그도 처음엔 헝가리 출신의 가난한 유태인 망명자에 불과했다. 다큐멘터리 사진가로서 그에게 최초로 세계적 명성을 안겨준 사진은 스페인시민전쟁을 취재하며 남긴 <어느 인민전선파 병사의 죽음>(1936)이었다. 하지만 이 한 장의 사진은 로버트 카파가 이후 다섯 차례의 전쟁에 종군 기자로 참여하고, 1955년 「라이프」지의 요청으로 인도차이나 전쟁을 촬영하던 중 지뢰를 밟아 41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이후까지도 오랫동안 진위(眞僞) 여부를 놓고 뜨거운 논쟁에 휩싸여 있었다.
이 사진이 이처럼 오랫동안 진위 논란에 휩싸이게 된 까닭은 총에 맞아 쓰러지는 병사의 군복에 총탄 자국이나 유혈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고, 사진 속 장면이 너무나 극적이어서 카파에 의해 연출된 장면이 아니냐는 의심 때문이었다. 거기에 더해 로버트 카파는 자신의 사진이 연출된 것이 아닌 진실이라고 적극적으로 변명하고 옹호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의 의혹은 더욱 커졌다. 로버트 카파 사후에 스페인시민전쟁을 취재했다는 한 영국 기자가 이 사진이 촬영될 당시 카파와 함께 프랑스 국경 부근의 한 호텔에 묵고 있었다고 주장함으로써 사진 조작에 대한 의혹은 더 한층 증폭되었지만 후에 그의 주장은 거짓으로 판명되었다.
훗날 카파의 지인들은 로버트 카파가 이 사진에 대해 적극적으로 옹호하거나 변호하지 않았던 사연에 대해 카파와 나눴던 대화를 공개했다. 사진을 촬영하던 당시 전선이 교착되어 있었기 때문에 병사들과 로버트 카파는 참호 안에서 빈둥거리며 시간을 때우다가 서로 친해졌다. 총격전 같은 것도 없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아무 일도 없이 지내는 것에 지친 병사들은 반 장난삼아(아마도 로버트 카파의 부추김이 있었고) 참호를 박차고 나가 언덕 아래로 달려 나갔다. 그 순간 갑자기 총격전이 벌어졌고 몇몇 병사들이 목숨을 잃었다. 로버트 카파가 이 사진에 대해 함구했던 것은 스스로의 죄책감 때문이었다. 사진의 진위 여부를 둘러싼 오랜 논쟁은 1990년대 중반 사진 속 병사가 24살의 공장 노동자 페데리코 보렐 가르시아(Federico Borrell Garcia)이며, 1936년 9월 5일 세로 무리아노에서 전사했다는 사실이 입증됨으로써 논쟁의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박근혜 후보 선거광고 사진의 일부분. 특정인물이 반복해서 나타나고 있다. |
당장 내일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구태여 ‘포토저널리즘과 로버트 카파’라는 먼 길을 돌아온 까닭은 지난 17일 <미디어오늘>이 잇따라 보도한 <새누리당, 17일자 선거광고 군중사진 조작 논란>, <박근혜 광고 사진 조작, ‘위법’ 논란> 기사 때문이다. 새누리당이 지난 12월 17일 주요 일간지를 통해 내보낸 박 후보 광고에 사용된 사진에는 대구시내 중심가로 보이는 장소에 셀 수 없는 군중들이 모여 있는 사진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 사진 속에 등장하는 군중들이 포토샵의 ‘도장 툴(같은 이미지를 도장 찍는 여러 번 복제하는)’ 기능을 이용해 이른바 ‘뽀샵(사진변조)’ 처리를 한 흔적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동일 인물이 한 장의 사진에서 도사 전우치처럼 여러 곳에서 동시에 등장하는 사례까지 확인되었다.
광고사진의 원본으로 추정되는 지난 12일 뉴스1 사진.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는 이날 저녁 대구 중구 동성로에서 거리유세를 했다. 조작 의혹이 있는 부분은 붉은 박스 처리. ©뉴스1 |
1826년경 니엡스에 의해 최초의 사진이 등장한 이래 현재까지 사진 200년의 역사에서 가장 뜨거운 논쟁거리 중 하나는 사진의 위변조와 연출이다. 그것은 빛에 의한 그림을 뜻하는 포토그래피(Photography)의 번역어인 사진(寫眞)이란 말이 뜻하는 바가 ‘진실을 모사하다’란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사진은 같은 이미지 예술인 회화와 달리 카메라 렌즈 저 편에 실재 피사체가 존재한다는 것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진은 그것이 기능적으로 언론의 매체로 이용되든, 아니면 단순히 여권발급용 증명사진의 용도로 사용되든 진실의 위변조 문제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이 대중에게 주는 믿음과 역할 때문에 사진을 위변조하고자 하는 시도는 끊임없이 있어왔다. 비근한 사례 중 하나로 1989년 12월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셰스쿠가 그의 반대파들을 집단학살하고 묻은 것으로 알려진 티미쇼아라의 파헤쳐진 무덤을 배경으로 한 남자가 눈물짓고 있는 사진이 서방 언론을 통해 널리 전파되었다. 차우셰스쿠가 비정한 독재자라는 것은 사실(fact)이었지만 이 사진은 사실(fact)이 아니었다. 그것은 당시 집권부가 압제자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봉기 주도자들이 공동묘지를 파헤치고 죄 없는 시신을 끄집어내 연출한 것이었지만 언론사 기자들은 그런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최악의 사례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지난 8일 사진 조작 논란을 불러 일으킨 박근혜 후보 광화문 유세 현장. |
광고 사진의 조작 문제를 제기하자 박근혜 후보 측 안형환 대변인은 “사진 설명에 시간과 장소를 명시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허위사실로 볼 수는 없다”며 “광고는 광고로 봐줘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아마도 이 말을 광고인들이 들었다면 그들도 틀림없이 분개했으리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아무리 다양한 제작기법이 이용되는 광고라 할지라도 그들이 광고에 담고자 하는 것은 진실(truth)이지 프로파간다(propaganda)가 아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진실을 알리기 위해 목숨을 걸고 내전과 참사의 현장으로 카메라를 들고 달려가지만 누군가는 진실을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조작하려고 한다.
독일의 선전상 괴벨스는 “선전은 이성적 인식을 전할 필요도 없거니와 점잖을 필요도 없다. 성공으로 이끄는 것이 가장 좋은 선전”이라고 말했는데, 민주주의 꽃이라는 선거에서 승리를 목적으로 국민을 여론 조작의 동원 대상으로 삼는 정당에게 민주주의란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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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카파, 어느 인민전선파 병사의 죽음, 1936
본의 아니게 사진조작의 희생양이 된 로버트 마스는 어떤 마음이었을지 상상해보면서 읽어보시면 더욱 가슴에 와 닿지 않을까 싶어요,
사진은 제가 별도로 올렸으니 한 번 살펴보시고요. 아래 사진에 보면 한 남자가 아기의 시신에 손을 얹고 울고 있습니다. 사진을
촬영한 사람은 물론 사진을 보는 사람들 누구나 이 남자가 차우셰스쿠 정권의 압제에 희생당한 불쌍한 엄마와 아기의 아버지일 거라고
추측하도록 되어 있지만 실제 이 남자는 아기는 물론 여기 있는 시신들과 아무런 연고도 없는 사람입니다. 게다가 공동묘지에서 마구 파헤쳐진 열아홉구의 시신 역시 차우셰스쿠의 압제로 인해 죽임을 당한 사람들이 아니라 여자의 시신은 몇 주전에 간경화로 사망했고, 아기는 식중독으로 돌연사한 시신입니다.
차우셰스쿠의 독재에 저항하는 민중봉기 세력이 서방언론에 자신들의 정당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이런 엄청난 사건 조작을 일으켰던 것이죠.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티미쇼아라는 대중 매체와 이미지 조작에 관한 의심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정보 과잉의 시대, 보여주는 대로 믿는 것이 얼마나 바보 같은 일인지 이 사진은 잘 보여주고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