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정가제 문제를 놓고 옆길로 빠진 생각
엊그제 그럴 일이 있어서 인터넷서점과 동네서점에서 똑같은 책(『몰입』)을 구입하게 되었는데 정가 12,000원짜리 책이 인터넷서점에선 40% 할인해 7,200원인데, 같은 책을 동네서점에서 구입하니 10%만 DC해줘서 손해 본 느낌이 들었다. 소비자인 ‘나 개인’은 동네서점에서 책을 사면 살수록 손해를 보는 셈이다. 그런 합리적인 이유로 동네서점이 자꾸만 사라진다.
대형마트 피자집에 가면 더 큰 사이즈에 맛도 괜찮은 피자가 동네피자집보다 값도 저렴하다. 전화만 해놓으면 미리 만들어두기 때문에 장보러 갈 때마다 애용한다. 대형업체인 만큼 동네 피자 가게 보다 나은 재료로 위생적으로 만들 것 같아 아이에게 먹이기도 안심이 된다. 그런 합리적인 이유로 동네 피자집이 자꾸만 사라진다.
대형 프렌차이즈 업체가 운영하는 빵집의 실내 인테리어가 깔끔하고, 포장도 깔끔하며 여러 가지 쿠폰이나 할인행사들도 한다. 게다가 유명 연예인이 광고도 하고, 새로운 제품들도 개발해 출시하기 때문에 인테리어 한 번 바꾸지 않는 동네빵집을 가지 않게 된다. 그런 합리적인 이유로 동네 빵집이 자꾸만 사라진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굳이 정부가 나서서 재벌 기업에 구태여 특혜 따위 주지 않더라도 또 대기업이 굳이 법을 위반하지 않고도 시장에서의 합리적인 경쟁만으로도 대기업의 경쟁력은 점차 더 강화될 것이다. 대기업의 자본력을 앞세운 ‘규모의 경제’라는 합리적인 구조에 따른 결과다. 소박을 넘어 순박하게 말해서 대기업은 한꺼번에 대량으로 원료를 구입하므로 그만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고, 그만큼의 가격경쟁력을 확보한다.
단지, 이 같은 이유만으로도 대기업의 경쟁력은 어마어마해질 수 있는데, 여기에 다시 기업은 많은 종업원을 고용하고 있다(고용확대나 구조조정 같이 노동자를 볼모삼아)는 이유로 정부로부터 여러 가지 특혜(법인세 인하, 값싼 수도와 전기료 등 세제혜택을 비롯해)를 받는다. 100만 원을 빚진 사람은 매일같이 은행에 들들 볶이겠지만 1,000억 원을 빚진 기업은 은행에 큰 소리를 치는 것과 같은 이치로 그 정부가 굳이 ‘비즈니스 프렌들리’한 정부가 아니더라도 기업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소비자로서 우리 개인은 물론, 유권자로서의 우리들이 5년에 한 번씩 선출하는 정부도 매우 합리적인(?) 정책을 펼치는데도 어째서 우리는 살기가 점점 더 팍팍해지는 걸까? 그 까닭은 우리들 개개인은 손해를 줄이고, 이득과 만족을 극대화하기 위해 합리적인 소비를 하고 있지만 그것이 결과적으로 우리 스스로의 일자리를 줄이고, 우리 스스로 선택의 폭을 좁히고, 경쟁 없는(몇몇 대기업이 독점하는) 시장을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우리는 믿었던 대기업이 만드는 두부가 사실은 GMO(유전자조작)콩으로 만들어지고 있으며, 심지어 몇몇 대기업은 자신들이 시장에서 경쟁을 회피하기 위해 담합하여 시장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우치고 분노함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 업체의 제품을 또다시 구입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런 일들이 발생하는 까닭은 미시적으로 보면 우리 모두가 합리적인 소비를 하며 살고 있는데도 거시적으로 보면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최악의 선택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단순히 그런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만으로도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어느 한 개인이 이런 상황을 인식하고 동네시장에 가고, 동네빵집에 가고, 동네서점에 간다고 해도 한 개인의 소비행태의 변화만으로는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없을뿐더러 그 개인은 바보처럼 혼자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이런 불합리를 개선하기 위해 법제화(구조적 제도화)가 필요하고, 많은 사람들이 법제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자본력이 뛰어난 대기업과 맞붙어 중소기업, 영세상인들도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선 사회가 자본의 힘을 일정하게 통제하여 미시적으로는 다소 불합리해 보여도 거시적으로는 합리적인 소비를 하도록 권장하기 위해서이다.
유럽을 여행해본 사람들은 유럽은 해만 지면 가게가 문을 닫아 할 일도 없고 심심하니 한국이 놀기도 좋고, 살기에도 좋다고 말한다. 여행도 가고, 놀 수도 있는 사람 입장에서야 억울하겠지만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그렇기에 유럽의 노동자들에게는 '저녁이 있는 삶'이 있고, 한국의 노동자들에게는 '남을 위해 일하는 저녁'은 있어도 '나와 내 가족을 위한 저녁'이 없는 것이다. 이것 역시 앞서 말한 미시적인 합리적인 소비가 거시적인 불합리한 결과를 빚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동네빵집 사장의 불친절함에 화가 날 수도 있고, 동네시장 아주머니가 나에게 바가지를 씌웠다고 열 받을 수도 있다. 그런데 어느 날 나는 회사에서 진상 독자의 항의 전화에 시달릴 수도 있고, 반대로 그 독자는 나에게 화가 날 수도 있다. 우리는 모두 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 오늘은 내가 소비자이지만 내일은 내가 누군가에게 생산자인 것이다.
우리 어릴 때 친구들과 어울려 놀며 불렀던 노래가 있다.
"다같이 돌자 동네 한바퀴 아침일찍 일어나 동네 한바퀴 우리보고 나팔꽃 인사합니다 우리도 인사하며 동네 한바퀴 바둑이도 같이돌자 동네한바퀴"
동네 어귀의 나팔꽃에도 인사할 수 있는 아침, 저녁이 있는 삶이 우리 모두 다함께 존재할 수 있을 때, 아빠엄마가 지역사회 커뮤니티에 참여해 마을공동체가 건강하게 살 수 있고, 아빠엄마가 아이들의 학교생활에도 참여해 학교와 가정이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을 때 우리 아이들이 좀더 안전하게 자랄 수 있다. 도서정가제에서 생각이 참 멀리도 와버렸는데, 결론 삼아 한 마디 하자면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착취하며 사는 지금의 삶의 형태를 지속하던지 아니면 그와 반대로 서로가 서로와 연대하며 사는 삶의 방식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지 고민하고, 그런 사회로 가기 위해 사회적 연대와 합의를 강화하고,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다 같이 살자!
* 동네 레코드 가게의 음반들이 음원이 된지 오래 되었다. 음원을 다운 받지 못하는 세대에겐 새로운 음악을 접할 기회마저 사라지고, 값이 싸더라도 전문 오디오 기기를 통해 듣던 음악이 스마트폰의 작은 회로와 기판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에서 음원제작자들이 좋은 음질에 투자할 이유도 사라진다. 이것은 현재의 출판에도, 미래의 출판에도 고스란히 적용될 수밖에 없는 문제다. 일부 인터넷 서점이 출판 유통의 모든 것을 장악하는 날, 권력이나 외부의 억압에 의해 어떤 책의 유통을 거부하는 날이 온다면 그 책은 아예 세상에 없는 책이 될 것이다. 또 유통망을 장악한 인터넷 서점이 자신의 이득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출판사에 할인율만큼 부담을 떠안기는 지금의 방식은 결과적으로 책 가격에 더 많은 거품을 만들 수밖에 없다. 그건 고스란히 책 읽는 독자의 부담으로 전가될 수밖에 없으며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책을 구입하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