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TERACY/WORK

지하철 탄생 150주년과 공공디자인

windshoes 2013. 1. 21. 11:52

지하철 탄생 150주년과 공공디자인


전성원(계간 황해문화 편집장)
 
           
 


지난 2013년 1월10일은 인류가 과거 SF소설에서나 상상할 수 있었던 땅속을 다니는 열차, 즉 지하철이 탄생한 지 정확히 150주년 되는 날이었다. 1863년 1월10일, 영국 런던의 패딩턴과 페링던 사이 6㎞ 구간을 달리면서 시작된 지하철은 이후 신속하고 안전한 운송수단으로 전 세계에 빠르게 확산되었다. 아시아에서는 1927년 일본 도쿄에 최초로 건설됐고, 우리나라는 1974년 8월15일 서울시 1호선 서울역과 청량리 사이의 7.8㎞ 구간을 연결한 것이 최초였다. 재미있는 사실은 북한이 우리보다 1년 앞서 지하철을 개통(1973년)했다는 것인데 당시만 하더라도 북한 경제력이 남한을 앞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전 미국의 자동차 전문매체인 <잘롭닉>이 조사한 '세계 최고의 지하철 시스템을 갖춘 도시'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지하철이 역사(驛舍) 내부의 청결, 시설의 안락성, 요금결제 및 안내의 편리함 등의 장점으로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오늘날 지하철은 도심을 이용하는 승객들에게 가장 편리한 교통수단의 대명사이자 그 도시의 문화, 생활수준을 말해주는 지표가 됐다.
오늘날 런던은 미래도시의 가치를 담는 창조도시의 원조로 각광받고 있는데 런던이 이처럼 세계적인 창조도시가 될 수 있었던 밑바탕에 런던지하철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런던지하철의 공공디자인은 세계디자인사에 길이 남는 기능성과 심미성을 자랑하고 있는데, 이런 사실은 런던지하철의 로고같이 대표적인 디자인 몇개만 살펴봐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런던지하철(언더그라운드)의 로고는 빨간 동그라미안을 가로지르는 파란 띠로 이뤄진 UFO 모양의 지하철역 표지판과 한눈에 알아보기 쉽게 색깔별로 깔끔히 정리된 노선도를 꼽을 수 있다. 단순하면서도 세련된 런던지하철의명료한 디자인은 도시의 중심과 외곽을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연결하고 있는 거대한 네트워크에 전체적인 통일성과 개별적인 정체성을 동시에 부여한다. 이런 이유에서 런던지하철은 가장 효율적인 시각교육센터이자 전 세계 공공디자인의 교과서로 여겨지고 있다.
런던지하철이 이같은 명품디자인을 자랑하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인 1907년 당시 런던지하철을 운영하던 런던 제너럴 옴니버스 컴퍼니가 프랑크 피크(Frank Pick)라는 한 젊은이를 고용해 역사를 뒤덮고 있던 온갖 광고간판과 포스터를 한데 모아 정돈하는 업무를 맡기면서 시작됐다.
프랑크 피크는 자신이 맡은 임무를 성실히 수행했을 뿐만 아니라 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런던 지하철의 디자인을 질적으로 강화하기로 마음먹고 서체 디자이너인 에드워드 존스턴(Edward Johnston)과 건축 디자이너인 찰스 홀든(Charles Holden) 등을 참여시키는 대대적인 공공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의 지휘 아래 존스턴은 런던 언더그라운드 로고(1925년)를 만들었고, 홀든은 50여개의 아름다운 역사를 탄생시켰으며 전기회로도에서 영감을 얻은 해리 베크(Harry Beck)의 지하철 노선도(1933년) 역시 이때 만들어졌다. 그의 지하철노선도 디자인은 이후 전 세계 지하철 노선도의 표준이 됐다.
프랑크 피크는 이외에 지하철 공공미술프로젝트를 전위적인 성향의 신진작가들에게 의뢰해 지하철에 대한 단순한 정보안내부터 전 영역에 걸쳐 새로운 미감을 불어넣도록 하면서 영국의 아방가르드 예술이 런던지하철과 함께 성장하도록 지원했다. 이것이 오늘날 영국이 세계적인 창조산업(디자인과 미술을 포괄하는)의 중심지로 성장하는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창조산업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는 이 때 역설적이게도 공공디자인의 중요성과 공공성의 회복이 우리에게 중요한 화두인 까닭도 거기에 있다. 가장 서민적인 공간을 새롭게 디자인함으로써 창조산업의 원동력으로 삼았던 런던지하철 탄생 150주년을 맞아 우리를 다시 한번 돌아보자.


인천일보 : 2013년 01월 16일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