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TERACY/Tempus Edax Rerum

재벌을 개혁한 대통령, T.루스벨트

windshoes 2013. 3. 5. 15:04




미국 역대 대통령들 중에는 이상한 사람, 별난 사람도 많이 있었지만 신념이나 정책이 서로 모순된 가운데에도 기묘한 조화를 이루어 결국 국민에게 사랑받는 대통령이 된 사람도 있었다. 20세기를 미국의 세기라고도 하는데 바로 그 20세기를 예비한 대통령이 바로 제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였다.

20세기가 막 시작될 무렵 미국은 오늘날의 중국이 그러하듯 이미 영국을 대신해 세계의 공장이 되어가고 있었다. 당시 생산되던 공산품 가운데 절반을 미국이 생산해낼 정도였다. 문제는 미국이 국가로서 기본적으로 갖추었어야 할 많은 제도가 미비한 나라였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시의 미국엔 소득세도 없고, 독점제한도 없고, 노동3권도 보장되지 않는 나라였다.

오늘날 자선과 복지의 대명사로 불리는 명사들, 카네기, 록펠러, J.P.모건, 밴더빌트, 굴드 등이지만 당시 이들을 가리키는 표현이 ‘강도귀족(Robber Barons)'이었다는 사실만 보아도 알 수 있듯 매우 좋지 못했다. 경제성장의 그늘 아래 경제력 집중과 빈부격차, 환경파괴 등은 미국이 신흥강대국으로 성장해가는 것을 위협할 수 있는 위험요소들이었다.

T.루스벨트는 어떤 경우에도 결코 진보주의자라고 할 수 없는 대통령이었지만 그는 미국을 혁신하는데 성공한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먼로독트린’을 새롭게 해석하여 미국의 팽창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는데 이 때문에 그의 대외 정책을 가리켜 ‘곤봉외교’라 불렀다. 강대국이 되기 위해선 강력한 해군력을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그는 미·서전쟁 당시엔 직접 의용군(Rough Riders)을 이끌고 참전하는 등 대외적으로 강력한 제국주의자였지만 국내 정치의 측면에선 ‘반재벌 독점 해체’라는 대단히 진보적인 정책들을 강력하게 추진해 나갔다.

재미있는 건 그가 매킨리 대통령의 암살로 부통령 신분이었다가 대통령이 된 인물이었다는 거다. 매킨리 대통령은 재벌들에게 특히 인기가 좋았는데 이것은 그가 친재벌 정책으로 일관했기 때문이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이지만 당시 강도귀족들은 정치권력을 자신들의 시냐로 삼기 위해 정치인들에게 검은 돈을 제공했는데, T.루스벨트 역시 이들이 제공한 정치 자금 덕분에 재선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당선에 성공한 뒤에는 입을 싹 씻고, 강력한 재벌 개혁을 추진했다.

이에 격분한 강도귀족 중 한 사람은 "우리가 저 개새끼에게 먹이를 주었는데, 저놈은 우리 손을 물었다"고 말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어쨌든 재벌들 입장에서 보면 은혜도 모르는 인간이었던 T. 루스벨트의 이런 노력 덕분에 오랫동안 유명무실화되어 있던 독점금지법이 되살아나고 록펠러가 이끄는 스탠더드 오일을 해체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루스벨트는 “법 위에 사람 없고, 법아래 사람 없다.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 법에 복종하기를 요구할 때 우리는 그의 동의를 구하지 않는다. 법에 대한 복종은 권리로서 요구되는 것이지 특혜로서 부탁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대외정책에서 팽창정책을 추구한 제국주의자였지만 1906년 러일전쟁을 중재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수상(우리 입장에서 보자면 입맛이 씁쓸한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있었다)하였고, 엄청난 사냥광이었지만 세계 최초로 국립공원 제도를 만들어 환경보호에 앞장서기도 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테디 베어’의 원조가 테디(시오도어의 애칭) 루스벨트 대통령에게서 나온 것이다. 어느 날 대통령 수행원들을 이끌고 사냥에 나섰다가 어미 곰을 잃고 홀로 남겨진 어린 곰이 나무에 매달려 있는 것을 발견하고 주변에서 총으로 쏴서 잡으라고 했지만 총 쏘기를 거부한 일화가 대중에게 알려지면서 이것이 이른바 '테디 베어'의 시초가 되었다.

20세기 초엽의 미국은 오늘날 대한민국 이상으로 강력한 재벌들과 금권정치가 버티고 있는 나라였지만 T.루스벨트는 여론과 언론의 도움을 받아 강력한 재벌개혁 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다. T.루스벨트 역시 다른 정치인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약점을 가지고 있었고, 그 또한 언론을 싫어해 언론을 향해 '거름더미나 뒤지는 자들'이라고 비난했지만 그는 바로 그 여론의 도움을 얻어 재벌개혁에 일정 부분 성공할 수 있었다. 낭만적인 기질이 넘쳤으나 또한 권력의지에 불타는 현실 정치인이었던 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영화 중 하나가 1975년 존 밀리어스 감독이 만든 “바람과 라이온(The Wind And The Lion)”이다. 숀 코넬리, 캔디스 버겐 주연의 영화였는데 T.루스벨트 역에는 브라이언 키스(Brian Keith)가 맡아 연기했었다.

21세기에도 우리는 여전히 정부가 나서 국가의 성장 동력을 찾고, 정부가 정책으로 이를 뒷받침해 끌어나가는 패러다임에 갇혀 있는데, 20세기 초엽 미국은 재벌해체와 재벌개혁을 통해 세계의 패권국가로 성장하는 기초를 닦았다. 만약 내가 대국굴기(大國屈起) 같은 시리즈를 만든다면 이런 이야기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