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촌이 말했지, 전공투를 보라고
삼촌이 말했지, 전공투를 보라고
<적군파>/퍼트리샤 스테인호프 지음/임정은 옮김/교양인 펴냄
1988년의 어느 날 고3 수험생이던 나는 삼촌과 마주 앉아 앞으로 어떤 대학, 무슨 학과를 지원할지 인생 상담을 했다. 말이
인생 상담이지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숙부모들이 양육을 책임진 상황이라서 진로를 결정하는 대화를 나눈 셈이다. 그러나 나는
직전 해였던 1987년 고등학생 운동에 참여한 뒤로 대학 말고 다른 곳에 뜻이 있었기 때문에 삼촌을 실망시키는 말만 계속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학에 가고 싶은 마음은커녕 대학에 갈 만한 성적도 아니었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저 멀리 남도 땅의 전남대나
조선대에 가고 싶다고 했다. 굳이 그곳을 이야기했던 건 오월대(전남대 투쟁조직)와 녹두대(조선대 투쟁조직) 때문이었다. 당시
우리에게 오월대와 녹두대는 영화 <넘버3>의 송강호가 “예전에 말야, 최영의란 분이 계셨어, 전 세계를 떠돌며 맞짱을
뜨던 분이 계셨어”라던 분과 맞짱을 뜬다고 해도 믿었을 전설의 파이터 집단이었다. 내 이야기를 답답한 표정으로 듣던 삼촌은 우리는 일본을 20년쯤 뒤처진 상태로 따라가고 있는데 일본의 학생운동 세력이었던
‘전공투(全共鬪)’가 나중에 어찌되었는지 알지 않느냐며, 이쯤에서 생각을 접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게 좋겠다고 충고했다. 이후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일본 학생운동에 대해 관심을 가졌지만 배움이 부족한 탓이었는지 국내에서 전공투를 본격적으로 다룬 책은 거의
만날 수 없었다.
1970년 3월 적군파는 요도호를 공중 납치해 평양으로 가려다 한국 김포공항에 비상 착륙했다(위).
‘세계 동시 혁명’ 꿈꾼 젊은이들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된 일본 학생운동 관련 서적은 2006년에 나온 <미시마 유키오 對 동경대 전공투
1969~2000>를 제외하고는, 지금 소개하는 퍼트리샤 스테인호프의 <적군파-내부 폭력의 사회심리학>이 사실상
유일하다.
전공투란 잘 알려진 대로 1960년대 후반에 출현한 일본의 새로운 학생운동 세력으로, 이들은 패전이 남긴 폐허 속에 꽃피운 전후
민주주의와 고도성장이라는 화려함에 가려진 일본의 맨얼굴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우친 젊은이들이었다. 그 가운데서도
‘자기부정의 논리’를 극단으로 밀고 나가 ‘세계 동시 혁명’이라는 슬로건 아래 무장투쟁을 부르짖은 세력이 바로
적군파(赤軍派)였다.
삼촌은 내게 한국의 학생운동이 일본을 뒤따라간다고 했지만 권위주의 독재 체제 아래에서 진행되었던 한국의 학생운동(민주화운동)은
처음부터 합법적 지위를 얻지 못한 채 비합법·반합법 투쟁을 통해 끊임없이 합법공간으로의 투쟁을 지향한 반면, 일본의 학생운동은
합법 공간에서 반복되는 무기력을 경험하면서 비합법·반합법 투쟁으로 변모해 갔다. 결과적으로 이 차이가 한국의 학생운동권이
제도정치로 포섭되는 과정을 밟게 된 반면 일본의 학생운동권이 사회로부터 격리되는 결과(단카이 세대)를 빚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일본 적군파는 전 세계를 경악시킨 몇몇 사건(청년 다섯 명이 219시간 동안 3만5000명의 경찰과 대결한 사상 초유의 인질극
‘아사마 산장 사건’, 북한에 혁명 기지를 건설한다며 평양으로 간 일본 최초의 비행기 납치 ‘요도호 사건’, 그리고 잔인한 동지
살해로 일본 진보 운동에 찬물을 끼얹은 ‘연합적군 숙청 사건’)으로 악명을 떨쳤다. 이 책의 의의는 앞서 살펴본 대로이지만 다소
아쉬운 점은 저자가 사회심리학을 표방하면서도 사회경제적인 측면에 대한 언급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숙청의 원인을 분석하는 과정에서도
일본과 미국을 대비시키며 일본 사회 특유의 문화와 관습에서 해답을 찾는 듯 보이는 게 아쉽다. <2013-03-09>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57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