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인문학

김경윤 - 처음 만나는 우리 인문학

windshoes 2013. 3. 29. 16:07


사마천의 "사기"를 모두 읽는 사람이 있긴 있을까? 드물긴 하지만 간혹 있긴 하다. 나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긴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읽어둔 "사기"에 대한 책들을 또 구입한다. 가끔 이런 부류의 열전들을 폄훼하거나 깊이 있는 책이 아니란 식으로서 서평을 써대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부류의 독자들은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운 부류에 속하는지 미처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어렵게 글을 쓰면 대중적이지 못한 저작이라고 비난하고, 대중적인 수준으로 글을 쓰면 이번엔 깊이가 없다고 비난한다. 예전에 나도 그런 독자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도 모르겠다.

오늘 추천하는 책은 "처음 만나는 우리 인문학"이란 책이다. 나는 이 책을 매우 좋게 읽었고, 저자의 박식함과 깊이에 감탄했다. 그런데 A서점의 리뷰들(그리고 별점을 보니, 내가 그 서점에서 리뷰어로 활동할 당시에도 이런 식의 별점 시스템을 비판한 적이 있는데, 비판했던 이유는 이 시스템이 그만큼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는 것에 비해 간혹 말도 안 되는 우스운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기도 하다)을 읽어보니 앞서 이야기했던 잘못을 범한 리뷰들이 상당수였다고 생각한다.

저자인 김경윤 선생에 대한 소개를 보니 아마도 내또래가 아닐까 싶었다.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가 사 주신 한국전래동화선집과 어린이 세계문학전집을 재미있게 읽었어요. 하지만 그보다 더 재미나게 읽은 책은《소년중앙》, 《새소년》, 《어깨동무》 같은 어린이 잡지였지요. 청소년기에는 친구들의 연애편지를 대신 써 주며 간식도 많이 얻어먹었어요. 그때 막연하게‘나는 커서 작가가 될 거야’라고 생각했지요. 대학 시절에는 문학을 전공하며 시나 소설도 읽고 동서양의 고전을 많이 읽었어요.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나는 이제부터 결코 책을 손에서 놓지 않을 거야’라고 다짐했거든요. 덕분에 글도 쓰고, 책도 여러 권 내게 되었어요. 그리고 도서관이나 학교, 지역 단체에서 인문학 강의도 하고 있지요. 지금은 그동안 읽은 책들을 모아 일산에서 자유청소년도서관을 운영하고 있어요."

상재해둔 저서가 9권에 이르는 것을 보면 그간 저술활동도 활발히 해온 편인데 그의 다른 책들을 읽어보진 못했지만 아마도 이 책은 저자 자신이 상당히 아낄 만한 책에 들어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의 저술들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것인데 반해 이 책은 성인들을 위한 본격적인 교양서의 부류에 들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교양'을 쌓는 일은 매우 어렵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를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한국의 교양이 세계의 교양이 되지 못했고, 못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교양이란 고전 시대에는 중국의 교양을 의미했고, 현대에 와서는 영미를 중심으로 한 서구의 교양을 의미한다. 다소 거칠게 말해 영국인들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읽고, 그것만 달달달 외워서 무슨 이야기할 때마다 한 구절씩 말해도 교양 있는 척 할 수 있다. 중국인들은 논어나 중용 정도만 제대로 공부해도 그 비슷한 시늉을 낼 수 있지만 한국 사회에서 교양이란 가랑이가 찢어지도록 멀리 달려야만 하고, 그래봐야 이탈리아 유학갔다 돌아와 같은 한국인들 앞에서 노래 자랑 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가 많다. 폄훼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그래봐야 어차피 우리 것이 아니란 뜻이다.

그렇다고 내가 국수주의자라 우리 것은 소중한 것이야라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교양이 서구나 중국의 그것보다 더 많이, 더 넓게 헤아릴 수 있는 것이 될 가능성은 열려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와 흡사한 측면에서 여성성을 남성성에 비해 높이 평가하는데 그 이유는 여성성이란 것이 결국 사회적 약자의 위치를 오랫동안 경험하면서 체득된 것이기에 좀더 개방적이고, 온순하며 화합의 정신을 담아낸다고 보기 때문이다.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보아도 즐겁다고 영어권 아이들 만나면 쏼라대는 소리를 한 마디도 제대로 못알아듣겠지만 아시안잉글리쉬 내지는 비영어권 서구인들과의 대화는 영어로도 충분히 가능하더라는 것으로 이해해도 좋겠다.

어쨌든 이 책은 상당히 매력적인데 그 이유는 이미 우리 인문학을 연구한 여러 학자들, 저자들의 저서를 김경윤이 상당히 폭넓게 꼼꼼하게 씹고 발효시켜 보통 사람들도 읽고 소화하기 쉽게 풀어내고 있으며 거기에 저자 자신의 사유도 함께 녹여냈기 때문이다. 내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좋은 책이고, 아까운 책인데 그에 비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해 안타까운 책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을 권한다.


* 다만, 편집자로서 이 책의 표지 디자인은 잘못되었단 생각이 든다. "처음 만나는 우리 인문학"이란 책 제목 답게 표지에 문고리를 하나 그려놓고 거기에 저자의 이름을 문패처럼 달아놓았던데 문고리 이미지가 아파트 실내 문고리처럼 서양식 문고리였다. 디자이너와 편집자가 이 책의 의미를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다는 생각이다. 정, 문고리 디자인을 이용하고 싶었다면 중국식도, 서양식도 아닌 한국식 미닫이 문고리를 했어야 의미가 정확하게 살 것이기 때문이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5132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