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물부족국가가 아니다.
최재천 교수의 한 칼럼에 따르면 "우리나라를 세 차례나 방문한 세계적인 침팬지 연구가이자 환경운동가인 제인 구달 박사는 음식점에 들어가 앉기 무섭게 얼른 물컵부터 뒤집는다. 그러곤 물을 따르러 온 종업원에게 물은 꼭 필요하다고 요청하는 사람에게만 따라주라고 신신당부"하곤 했다고 한다(이 대목을 읽고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으나 제인 구달이 방문한 식당은 아마도 고급 식당이었으리라 추측해보았다. '김밥천국' 같은 셀프서비스 식당이라면 어차피 자기 손으로 물을 따라마실 테니 문제 될 게 없을 테고, 보통 식당에선 물병을 가져다주긴 하지만 아주머니든, 알바 생이든 물컵에 물까지 따라주는 법은 거의 없으니까. ㅋㅋ 별걸 다 추측해보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부분은 제인 구달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다지 한국적으로 유용해 보이진 않았다).
어쨌든 제인 구달이 이렇게 행동하는 의미는 지금 세계에는 줄잡아 9억명의 사람들이 깨끗한 물을 마시지 못하고 있는데 원하거나 청하지도 않는 물을 따라주며, 마시지도 않을 물을 컵 가득 채워주는 일은 일종의 물낭비(죄악)이라는 것이다. 제인 구달의 이런 행동은 존경할 만한 일이고, 우리도 함께 고민해봐야 할 일이다.
어쨌든 물의 소중함에 대해 이야기하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이야기가 우리나라는 "유엔이 정한 세계 물 부족 국가"라는 말이다. '물의 날' 같이 특정한 날은 물론 MB 시대에 이르러 4대강을 역점 사업으로 추진하면서 전국 어딜 가나 숱하게, 지겹게 듣는 이야기가 되었다.
그러나 한 가지만 분명히 해두자!
UN은 한 번도 대한민국을 가리켜 '물 부족 국가'라고 말한 적이 없다. 오래전 미국의 국제인구행동연구소(PAI)가 내놓은 유치하기 이를 데 없는 분석 결과를 우리 정부가 댐 건설이나 기타 개발 사업을 추진하려는 목적에서 재탕, 삼탕하여 아예 골수까지 우려내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한 국가의 연평균 강수량을 인구수로 나눠 일인당 강수량을 계산했는데, 우리나라의 연평균 강수량은 세계 평균을 거의 20~30%나 웃도는 수준이지만 워낙 좁은 땅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다 보니 인구수로 나누면 졸지에 사막국가 수준으로 떨어지는 통계의 장난이 벌어져서 그런 것뿐이다. 그런 걸 분석이라고 내놓다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냉정하게 말해 우리는 물부족 국가가 아니라 물낭비 국가이며, 그나마 수천년 잘 흘러가던 강을 제맘대로 들쑤셔 엉망으로 만드는 바보 같은 물관리 국가일뿐이다. 비록 우리가 물부족 국가는 아닐지 몰라도 물을 잘 관리하는 치수는 국가의 대사다. 그런 중대사업을 아무 철학도, 계획도 없이 자기 임기 내 제대로 된 환경평가 한 번 제대로 거치지도 않고, 속전속결로 해치우는 나라에서 머나먼 나라에 살고 있는, 깨끗하고 시원한 물 한 잔이 절실하게 필요한 9억 명의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나 할까 싶다.
어쨌든 대한민국은 물부족 국가가 아니라 물낭비국가이며 물관리가 엉망인 국가라고 UN이 지정한들 이상할 게 없는 나라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