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TERACY/Tempus Edax Rerum

한반도의 밤하늘에서 펼쳐진 프롭전투기들의 사투

windshoes 2013. 6. 12. 15:51

한반도의 밤하늘에서 펼쳐진 프롭전투기들의 사투


나는 항공기 매니아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내가 뭐는 매니아가 아니냐는 반문이 스스로 들어서 좀 웃었다. 얼마 전 백일장을 치른 뒤 백일장 심사가 있었는데 김영승 시인이 오더니 반갑게 웃으며 당신도 항공기 매니아인데 내 블로그를 즐겨 보고 있다고 말씀하셔서 약간 겸연쩍은 적이 있었다. 만약 기회가 닿는다면 김영승 선생과 항공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봐도 재미있을 듯 싶다. 어쨌든 난 여러 방면의 매니아이지만 그 중에서 '항공기도 매니아'인데, 항공기 중에서도 특히 프롭(프로펠러)기 매니아다. 프롭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하나는 현재는 전쟁 무기로서의 효용 가치가 없는 종류라 정말 순수하게 좋아한다고 말해도 내 양심에 그렇게 걸리진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간혹 여전히 현역 군사 무기로 이용되는 무기가 있으니 이제부터 소개하려고 하는 "AN-2"기이다.

우리가 초등학교 다닐 때, 그러니까 정확히는 국민학교 다닐 때 학교 정문 게시판에 민방위 사이렌 안내판과 더불어 적기의 실루엣을 그려놓고 이런 항공기가 날아오면 가까운 군부대에 신고하거나 방공호로 대피하라는 적기 식별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80년대까지는 학교마다 붙어있었던 것 같은데 최근엔 어떤지 잘 모르겠다. 이곳에도 AN-2기에 대한 제법 상세한 안내가 있었는데, 사실 이런 종류의 비행기들은 대개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특수 임무용(적진 정찰 및 탄착 관측, 구조 및 물자 투하 임무)으로도 많이 사용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영국 웨스트랜드 라이산더(Westland Lysander)같은 기종인데 유고슬라비아 지역의 빨치산을 지원하거나 특수요원들을 적 후방으로 실어나르는 용도로도 사용되었다. 라이산더의 경우 동체는 금속골조에 캔버스 천으로 외피를 둘러싸고 있어 레이더에 잘 포착되지 않으며 고도15m까지 이르는 이륙거리가 불과 250m(축구장 두개 반 정도의 길이)에 불과했다. 아마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레지스탕스가 등장하는 영화 중 야간에 몰래 내리는 비행기를 본 적이 있다면 바로 이 비행기라고 보면 된다.





소련 역시 제2차 세계대전 중 매우 뛰어난 항공기들을 많이 개발했는데, AN-2기는 ANTONOV BYREV 설계국에서 1940년 초부터 설계를 시작하여 1947년 8월 최초의 시험비행을 실시하였고, 1948년부터 양산 체제를 갖추고 대량 생산을 시작했다. 우리나라 같이 크지 않은 나라에서도 군 내부 수요로 연락기 등 프롭 항공기의 필요성이 요구될 때가 있는데(물론 최근엔 헬리콥터가 일반적이긴 하다) 러시아 같이 땅덩이가 큰 나라에서 수송기 혹은 연락기 용도로 개발되었었다. 어쨌든 당시는 동서냉전 시대였으므로 소련이 개발한 무기체계는 곧 이웃한 사회주의 블록의 여러 국가들로 이전되었는데, AN-2의 경우 중국은 1957년부터 Y-5(YUN SHUJI-5)란 이름으로 생산되기 시작했고, 1960년엔 폴란드 역시 생산면허권을 획득해서 현재까지 생산하고 있다.

"안토노프 AN-2는 단발엔진을 갖춘 복엽 수송기로, 시속 160km의 저속·저공비행이 가능한 경수송기이다. AN-2는 실내 공간을 넓게 하기 위해 세미-모노코크 구조이며, 기골과 표피는 가벼운 합금의 금속으로 제작되었고, 상하날개는 레이더 파를 흡수하는 도료로 피복된 특수천(?)으로 제작되었다. 200m의 짧은 활주로에서도 이착륙이 가능하며 기상 관측 사진 촬영, 낙하산 훈련 및 소규모의 병력 투입 등에 운용된다"고, 대체로 이렇게 설명하고 있지만 사실 이 비행기의 외피 역시 캔버스천이고, 도료를 특수도료를 발랐을지는 모르겠지만, 특수 도료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이처럼 저속의 비금속제 항공기들은 레이더에 잡히더라도 큰 새 정도의 크기 정도로 밖에 인식되지 않기 때문에 이른바 북한이 가지고 있는 '스텔스' 항공기라고 말하는 것이다. 물론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이 역시 비대칭무기인 셈이다. 북한의 재래식 소형 잠수함을 놓고 그렇게 평가하는 것처럼 말이다.





한동안 우리나라에서는 AN-2의 공포를 과대평가(?)하여 당장이라도 AN-2에 탑승한 북한군 특수부대가 서울 한복판을 아수라장으로 만들 것처럼 이야기하기도 했는데, 일부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정도 이상으로 과대평가된 측면도 없지 않다. 영화를 많이 본 분들은 알겠지만 상대가 무시무시해야 그들과 싸워 이기는 우리 편이 더 위대해보이는 것처럼, 국방안보 분야에 있어서도 자칭타칭 이 분야 전문가들이 상대방의 무기체계를 과도하게 높이 평가하는 경향은 언제나 있어왔다. 그 이유는 국방안보 분야는 언제나 새롭고 비싼 무기체계를 도입하고자 하는 강한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AN-2의 위협에 대적한다는 이유로 휴즈사로부터 500MD헬기를 도입했고, 최근 아파치 헬기 도입 근거 중 하나로도 이용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맥락이 전혀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올해로 한국전쟁 휴전 60주년이지만 한국전쟁은 항공전사에 있어 제트기 간의 공중전이 벌어졌던 최초의 전쟁으로 기록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미국은 소련의 항공기 개발 능력을 비롯해 여러 방면에서 근거 없는 자신감에 넘쳐 있다가 몇 차례 커다란 충격에 휩싸이는 데,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 소련이 개발한 미그(Mig)15와 미그21기의 놀라운 성능 때문에 놀랐고(미그 쇼크), 소련이 독자적인 핵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로젠버그 부부 사형), 소련의 우주기술(스푸트니크 쇼크)에 놀랐다. 그러나 실제 전사를 살펴보면 한국전쟁 당시 이루어졌던 제트기 간의 공중전은 물론 베트남전에서도 미국은 사실상 압도적인 우세였다. 그런데 이처럼 압도적인 우세에도 불구하고 미국 공군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일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은 야간 폭격을 주장했고, 미군은 주간 폭격을 고집했는데 한국전쟁 당시에도 제공권은 거의 완전히 UN(미)군 측에 있었고, 미군의 대규모 폭격능력은 마오쩌둥의 아들을 참전 일주일만에 전사하게 만들 정도였다. 그러나 이처럼 대낮의 하늘은 미공군이 장악하고 있었지만 야간의 하늘은 북한이 압도적 우세라고 할 수는 없어도 최소한 미군을 골치아프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제공권을 빼앗겨 주간에 작전을 펼칠 수 없었던 북한 공군은 주로 야간을 이용해 동해안의 강릉비행장을 비롯해 백령도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서 야간 폭격 작전을 펼쳤다. 물론 주요 목표는 미군의 공군기지가 밀집해 있던 김포와 평택 등 서부전선 지역이었다.

북한의 남한 야간 공습은 1950년 11월 18일 춘천 소양강 근처의 미군 부대를 공습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1953년 7월 16일 까지 계속되었는데, 가장 활발할 때인 1952년 5월에는 한 달 동안 50여기가 남한 상공에 잇따라 출현하기도했다. 북한 야간폭격기들은 미군 기지를 목표로 했지만, 1952년 6월 15일에는 당시 대통령 이승만이 머물고 있던 경무대를 폭격한 적도 있었다. 당시에는 다행히 별다른 피해는 없었지만 이후 옛 청와대 건물에는 그물 모양의 위장망이 설치되었는데, 박정희 시절에 가서야 제거되었다. 하마터면 전쟁 중에 대통령 유고라는 큰 일을 치를 뻔 했지만 이것은 실제 전과에 이르지는 못했다. 그러나 실제로 커다란 피해를 입기도 했는데, 1953년 6월 15,16일 밤에는 북한 공군기 17기가 야간에 침투해 인천의 니군 유류 저장 시설을 전소시켜 버렸다(당시 오백만 갤런에 이르는 엄청난 연료가 손실). 또 당시 미국의 최신예 주력전투기였던 F-86 세이버의 기지로 이용되던 수원 비행장을 야간 기습해 세이버 전투기 9대를 파괴하기도 했다.





야심한 밤이면 덜덜거리는 엔진 소리를 내며 날아오다가 기지 상공에서 엔진을 끄고 슬그머니 침투해 폭격을 하고 사라졌기 때문에 기지 방공을 책임진 미군들은 이들을 ‘야간 점호 적기(Bed time check charlie)'라고 불렀다. 간혹 제트기를 가진 미 공군이 저속의 프롭기들을 격추하지 못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할 수도 있겠으나 제트기는 기본적으로 고공, 고속 성능을 위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자칫하면 목표물을 지나칠 수 있었는데, 당시 북한의 전투기들은 저속으로 저공을 비행하기 때문에 이들을 격추시키기엔 미 공군 제트 전투기들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문제였다. 결국 미 공군은 더이상 전쟁에 쓰일 일이 없을 거라고 여겼던 과거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야간 전투기들을 다시 불러들였고, 북한 공군과 심야의 하늘에서 물고 물리는 치열한 공중전을 벌여야 했다. 이것이 한국전쟁 당시 한반도의 밤하늘에서 펼쳐진 프롭전투기들 간의 사투였다.

사진1) 웨스트랜드 라이산더, 2)AN-2, 3)라보치킨 La-9, 4)Yak-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