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TERACY/바람구두의 유리병편지

참 재미있는 나라, 대한민국

windshoes 2013. 6. 26. 10:25




오성과 한음으로 유명한 백사 이항복은 어려서부터 재기가 넘치는 인물이었지만 그의 어린 시절은 매우 불운했다. 그의 나이 9세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16세에는 어머니마저 세상을 등졌기 때문이다. 일찌감치 고아가 된 신세였지만 이항복의 나이 19세 때에 그의 재능을 높이 산 당대의 권신 권철은 아들(권율)에게 시켜 손녀사위로 삼도록 했다. 아마도 그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일화 - 실화일지 아닐지는 모르겠으나 - 가 만들어졌을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 그의 옆집에는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영의정 권철이 살았다.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萬人之上)’이라는 영의정의 지위가 높다보니 그의 집 하인들도 기세가 등등하여 함부로 굴었다.

이항복의 집에는 해마다 감이 주렁주렁 열리는 감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나뭇가지가 이웃한 권철의 집으로 넘어가자 그 집 하인들이 감을 함부로 따가는 통에 나무가 상할 지경이었다. 이항복 집 하인들이 나무라자 "우리 집 담으로 넘어왔으니 우리 것"이라며 몇 차례 대거리를 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들의 행실이 고쳐지지 않자 이항복에게 그런 사실을 고해바쳤다.

이항복은 권철이 집에 있는 날을 골라 그를 찾아갔다. 이항복은 권철이 머무는 방문을 뚫고 다짜고짜 자기 팔뚝을 밀어 넣었다. 권철이 "어허, 이 무슨 해괴한 짓인가?" 묻자 이항복은 "대감마님! 이 팔뚝은 누구의 팔뚝입니까?"라고 되물었다. 권철이 "자네 몸에 붙어 있으니 자네 팔이 아닌가."라고 했다. 그러자 이항복은 "그런데 어찌하여 대감 집 하인들은 저희 집 감나무가 담장을 넘었다고 제 집 감이라고 하는 것입니까?"라고 따졌다. 그제야 전말을 깨달은 권철이 하인들을 불러 크게 야단을 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항복의 기개와 기지를 높이 평가해 그를 손녀사위로 삼았다. 

이런 고사를 들먹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나눈 정상회담 문건은 국가기록원에 '대통령 지정 기록물'*로 지정되어 있어 아무나 함부로 볼 수 없도록 법으로 보호되고 있다. 그러나 처음 녹음 상태가 좋지 않았기에 청와대 비서실에서는 녹음원본을 국정원에 보내 새로 녹취하도록 시켰다. 원본은 국가기록원에서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국정원에 보관된 기록물은 국정원이 임의로 보관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일설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한 부는 국가기록원에서 '대통령지정기록물'로 보관하게 했으나 다른 한 부는 국정원에 맡겨 공공기록물로 관리하도록 했다고 한다.** 그 까닭은 대통령지정기록물로 보관되면 후임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함부로 열람할 수 없기 때문에 후임 대통령이 앞으로 있을 정상회담에 나서게 될 때, 참고하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하기 위해 일부러 국정원에 공공기록물로 남기는 선의를 베풀었다고도 한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나의 마음은 복잡다단하다. 그에게 표를 준 적이 없고, 그의 정책을 지지하지 않았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 개인의 선의에 대해선 일정한 믿음이 있다. 그는 거칠었지만, 한 편으로 매우 섬세한 대통령이었고, 무엇보다 사심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후임 대통령들은 그가 살았을 때나 죽은 뒤에도 이처럼 욕을 보인다.

노무현 정부 시절 국정원장을 지냈던 김만복은 퇴임한 뒤 공저로 펴낸 책에 당시 정상회담 내용 일부를 소개했다. 국정원은 그를 '기밀누설' 혐의로 고발했고, 검찰은 고의성은 없었다며 기소유예처분을 내렸다. 당시 보수언론들은 이 사건을 과연 무어라 했을까? 남재준 현 국정원장은 국정원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이번 문건을 공개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애초에 이런 사태가 벌어진 까닭이 무엇이었나를 생각해본다면 국정원이 지켜야 할 명예 같은 건 존재한 적조차 없었을지 모른다. 국가의 이익과 명예 보다 조직 논리와 이익이 앞서는 자질 없는 사람이 국가정보원 원장에 취임했다.

이것이 누구의 책임일까? 나는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대한민국만큼 재미있는 나라도 참 드물다. 용산참사 재판 당시 검찰은 법원의 공개 명령에도 불구하고 수사기록 3천 쪽을 끝끝내 공개하지 않았고, 과잉진압의 희생자들을 감옥으로 보냈다. 또 노회찬 의원은 검찰을 비롯한 고위공직자들에게 떡값 명목의 뇌물을 제공한 기업을 폭로하고, 그 명단을 공개했다는 이유로 의원직을 상실했다. 이런 비상식적인 일들이 상시적으로 벌어지는 나라는 누구의 책임인지 또한 묻지 않을 수 없다.

* 대통령 지정 기록물

대통령 기록물의 안전한 보존을 위해 중앙 기록물 관리 기관으로 이관 시 대통령이 지정한 기록물은 국회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 의결이 이루어지거나, 관할 고등 법원장이 중요한 증거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여 영장을 발부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반 지정 기록물은 15년, 개인의 사생활 관련 기록물은 30년의 범위 내에서 열람 · 사본 제작을 허용하지 않거나, 자료 제출에 응하지 않고 보호할 수 있는 제도

** 공공기록물관리법(공공기관의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정부 내 모든 기관의 문서 보관을 의무화하는 법으로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정부투자기관 등 공공기관에 모두 적용되며, 국가 전반의 기록물을 안전하게 보존하고 체계적ㆍ통일적으로 관리하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1998년 말에 제정되어 2000년 1월부터 시행에 들어갔으며, 2012년 3월 21일 일부 개정되어 같은 해 7월 1일부터 시행되었다. 이 법률에 따르면 공문서뿐만 아니라 회의록, 비공식보고서, 비밀기록, 메모노트까지도 보존대상에 포함시켜 국정의 입안단계부터 최종종결까지 전 과정을 사후에 규명할 수 있도록 하였다.

특히 후대의 역사적 심판을 거쳐야 할 핵심기록을 철저히 보존하고 공개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에서 대통령 통치문서는 대통령 임기종료 6개월 전부터 '국가기록원(옛 정부기록보존소)'에 이관하도록 하였다. 또한 정부 기록물을 무단으로 은닉하거나 국외로 유출했을 경우, 기록물을 중과실로 멸실했을 경우, 기록물을 고의 또는 중과실로 그 일부 내용이 파악되지 못하도록 손상시킨 경우 등에는 7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국가기록원장은 국장급이므로 장관의 지휘를 받는 다른 부처의 기록관리 실태를 지도ㆍ감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