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로봇 - 01. 천공의 성, 라퓨타(로봇병사)
내 인생의 로봇 - 01. 천공의 성, 라퓨타(로봇병사)
"리테 라토바리타 우르스 아리아로스 바르 네로리이르(우리를 구하라, 빛이여 소생하라!)"
이 주문이 기억나는 사람이라면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天空の城ラピュタ, 1986)"를 매우 인상깊게 본 사람일 게다. 물론 저 주문을 몰라도 인상적으로 보았을 가능성은 충분하지만.
"천공의 성 라퓨타"는 내가 좋아하는 아일랜드 작가 중 한 명인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여행기" 중 3부에 공중에 떠 있는 섬 '라퓨타'의 에피소드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조나단 스위프트를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당시 스위프트의 정치적 입장은 '보수주의'였다.
언젠가 진중권 선생이 보수주의자의 풍자에 대해 이야기하며 "스위프트는 모던의 과학과 모던의 정치를 신랄하게 풍자했으나, 역사의 흐름은 외려 그의 풍자를 우습게 만들어버렸다.이는 기독교의 목사이자 보수당의 당원으로서 스위프트가 가진 한계일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스스로 우스워지는 게 보수적 풍자의 운명이다. 하지만 오늘날 비판의 힘을 잃은 스위프트의 풍자는 당대를 넘어 문학의 고전으로 남았다. 나 역시 스위프트처럼 정치적 풍자를 한다. 사실 진보적 태도를 취하기만 하면 널린 게 풍자할 거리다. 하지만 그 풍자가 당대를 넘어서려면 정치적 올바름만으로는 부족하다. 문학의 본질은 정작 그 부족한 부분에 있다."고 말한 바 있는데, 나는 진중권이 오늘날 스위프트의 풍자는 비판의 힘을 잃었다는 지적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다만, "풍자가 당대를 넘어서려면 정치적 올바름만으로는 부족하다. 문학의 본질은 정작 그 부족한 부분에 있다"는 지적에는 동의한다.
스위프트는 "걸리버 여행기"를 통해 실용에는 둔감한 채 공리공론(空理空論)에만 집중하는 라퓨타인들을 통해 당대의 과학 풍토를 풍자하고 있는데, 어떤 풍자들은 이후 실제 과학으로 입증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스위프트는 라퓨타 사람들이 화성 주위를 돌고 있는 두개의 위성을 발견하기도 했다고 썼는데, 실제로 이 위성들은 책이 씌여진지 150년 후에야 발견되었다.
어쨌든 라퓨타 사람들은 제대로 된 건물이나 옷은 만들어 입지 못했는데, 그 이유가 옷 치수를 재는데 줄자대신 천체고도 측정기인 사분의나 나침반 같은 것들을 사용했기 때문이라는 거다. 이곳의 과학자들은 허황된 공상에 빠지는 것을 즐겨하기 때문에 이처럼 공상에 빠진 사람들을 전문적으로 깨워주는 직업이 있을 정도라고 기술하고 있다.
스위프트가 현실정치적 입장에서는 보수주의자였을지 몰라도 그의 문학이 그렇게 협소한 지점에만 머물렀다면 "걸리버 여행기"는 잠시 읽혀지다가 사라졌거나 그저 그런 판타지쯤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러나 스위프트가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걸리버 여행기"의 풍자는 성공했고, 고전의 지위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다.
라퓨타는 남성위주의 가부장적 사회로, 권력의 정점에는 매우 포악한 왕이 자리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섬 아래 위치한 발니바르비를 식민지배하듯 하고 있는데, 왕은 때때로 거대한 섬(라퓨타)의 그림자를 이용해 발니바르비의 반란 지역에 해를 가리거나 비를 막거나 돌을 아래로 굴러떨어뜨리겠다는 협박으로 이 지역을 통치해왔다. 이것은 영국에 대한 아일랜드의 지배를 풍자한 것이지만 오늘날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의 지배 방식과 비견해봐도 풍자가 빛을 바래지 않는단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통치질서에 있기 때문에 이곳의 여성들은 라퓨타를 떠나고 싶어한다. 하지만 아내들이 아무리 섬을 떠나 육지를 방문하고 싶다고 요청해도 대개는 승인되지 않는다. 이유는 한 번 떠난 여성들이 단 한 번도 자발적으로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 아, 오늘 쓰려고 했던 내용은 원래 이게 아니었지. ㅋㅋ 그냥 오늘은 스위프트와 걸리버여행기 그리고 천공의 성 라퓨타의 로봇병에 대한 이야기 맛보기 정도로 해두자. 벌써 에너지 달린다. ㅋㅋ 후속 이야기는 생각나면 또 언젠가...
http://youtu.be/5Hmn5ruzpG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