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태 - 일본의 불안을 읽는다
일본의 불안을 읽는다 - 일본 트라우마의 비밀을 푸는 사회심리 코드
권혁태 (지은이) | 교양인 | 2010-08-20
권혁태의 『일본의 불안을 읽는다』는 지난 2010년에 나오긴 했지만, 그 해에 나온(다시 말해 그해 나온 책들 중에 내가 접해본) 책들 중에서 가장 훌륭한 책일 뿐만 아니라 내가 읽어본 일본 관련 서적 중 가장 빼어난 책으로 손꼽는 책이다.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은 일본의 최근 행보들을 일본의 근현대사를 고찰함으로써 그 이면에 감춰진 일본이란 국가의 욕망과 의도에 대해 사회과학적 분석을 가하고 있다. 분석의 내용과 형식이 매우 정치(精緻)한 책인데, 어떤 까닭에서인지(교양인은 심리학 저서들도 많이 내고 있다) 이 책의 출판사인 교양인은 책제목은 물론 헤드카피까지 '일본 트라우마의 비밀을 푸는 사회심리코드'라고 심리학 서적 냄새가 물씬 나는 느낌으로 밀어서(그 결과 한 마디로 책을 베려버렸다) 이 책이 지닌 여러 미덕을 훼손시켜버린 느낌이다.
그런 탓에 이 책은 마치 일본에 대한 그저 그런 인상비평 책들 ‘느그들이 일본을 알어?’ 같아 보인다. 게다가 머리를 풀어헤친 표지 이미지 속 여인은 정말 ‘안습’이다. 표4의 카피 역시 '일본의 집단 심리를 읽는 네 가지 코드 불안, 분열, 트라우마, 그리고 자기기만'이다. 이래서야 이 책은 그저 그런 심리학자의 일본탐방기 같아 보일 수밖에. 저 네 개의 단어가 물론 이 책의 열쇠말일 수도 있지만, 책의 내용을 살펴보면 이 단어들이 사용된 까닭은 역사적 기반을 가지고 도출된 결론이라고 할 수 있는데, 표4에 이용된 느낌은 마치 선험적으로 주제를 정해놓고, 일본에 대해 접근한 것처럼 오인하도록 만든다. 게다가 노란 색 표지라니….
개인적으로 나는 우리가 일본에 대해 가지고 있는 한 편의 우월감과 다른 한 편의 열등감을 떠나 일본과 우리의 근대는 일본이란 어머니(아버지)이자 자매를 미국이 근친교배시킨(이건 내 입장에선 굉장히 순화시킨 단어 선택이다)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한국과 일본이 일정한 시차를 두고, 서로 다르면서도 비슷한 경로를 걷고 있는 까닭은 '한국과 일본의 근대'가 미국이란 공통의 DNA를 강제로 물려받은 까닭이 크다. 그런 까닭에서라도 우리는 일본을 좀더 열심히 공부할 필요가 있다(하기사 내게 안 그런 분야가 하나라도 있겠냐만).
그것이 이 책을 단지 일본 우경화에 대한 고민으로만 읽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실정치의 맥락에서 일본은 역사적으로, 전통적으로 중국과는 등거리 외교를 해왔지만 한국은 대륙과 직접 연결되어 있는 까닭에 대륙(중국)의 역사에 더 깊은 영향을 받아왔다. 아마도 한국과 일본의 정치적 입장이 좀더 명확하게 갈리는 부분은 이 대목이 될 것이다. 『일본의 불안을 읽는다』는 건 일본의 불안을 읽는 것이지만 동시에 한국의 불안과 미래를 읽어내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한 예를 들어 이 책에는 일본 내의 좌파 정당과 정치세력의 몰락 과정에 대해 섬세하게 묘파하면서도 중요한 맥들을 짚어주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일본 좌파의 ‘분열’ 과정이다. ‘우치게바’를 우리말로 옮기면 ‘내부 폭력’쯤 될 터인데, 잘 알려진 대로 일본의 경우엔 적군파를 통해 극단적으로 표출된 사례이지만 1980년대 운동을 경험한 이들이라면 형태는 다소 완화되어 있지만 우리 역시 이와 비슷한 형태의 여러 내부폭력들이 존재했고, 경험했다. 일본과 비교해 조직 내 위계, 성역할 분담을 가장한 차별과 성폭력 등등의 문제란 점에서 좀 더 봉건적이고 가부장적 형태의 폭력이었다.
난 한국사회에서 진보적 노동 운동이 도덕적으로도 파탄났음을 드러낸 장면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97년 IMF를 앓고 이 땅은 '구조조정-정리해고'라는 강요를 순리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에서 왔다고 생각한다. 미쳐도 곱게 미치란 말이 있고, 프로야구에서도 비록 오늘 경기에서는 패하더라도 내일의 경기를 위해선 오늘 어떤 모습으로 패할 것인지가 중요한데 1998년 여름의 현대자동차노조는 ‘구조조정-정리해고’에 맞서 30여일이 넘는 투쟁을 하면서 추하게 미쳤고, 추하게 패했다.
약간의 살점을 얻는 대신, 척추가 부러진 것이다. 당시 노조는 많은 수의 사람들을 정리해고 시키지 않고, 가장 적은 사람들을 정리해고의 대상에 올리는 것에 합의함으로써 투쟁을 일단락지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그 대상이 사업장에서 열심히 밥 짓고, 파업현장에서도 역시 열심히 밥 짓던 식당노조 아주머니들이었다는 것이다. 30여일이 넘는 시간을 함께 싸워왔지만, 사태가 일단락되고 나서는 누구도 아주머니들과 함께하는 이들이 없었고, 그들의 고통을 아는 체 하는 이들도 없었다. 사측이 노조에게 그랬던 것처럼, 노조 또한 아주머니들의 분노와 절규를 외면했던 것이다. 1998년 현대자동차노조는 함께 연대 투쟁하던 이 아주머니들을 한때 ‘운동의 꽃'이라고 추켜올렸다. 그런데 운동의 꽃을 꺾어 바친 것은 누구였을까?
이 사건은 비록 적군파의 ‘우치게바’와 형태는 다르지만, 이후 벌어진 일련의 일들은 살인 못지않은 파괴적 효과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그 폭력성과 위선이란 측면에서 사실 훗날 나타나게 될 용산참사나 쌍용차노조에 대한 살인적인 진압의 징후였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쌩얼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이후 노동운동은 현재까지 회생의 기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이때의 각인효과는 일베의 출현에 이르기까지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잠이 안와서 뒹굴거리다 문득 눈에 띄어 다시 펼쳐 읽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들이다. 내가 책을 쥔 채 다시 잠들지 않은 것만 봐도 이 책이 얼마나 재미있고 유익한 책인지 다들 알겠지? ㅋㅋ
* 어쨌든 그런 의미에서 나는 전교조가 해직노동자를 버리지 않으면 법외노조가 될 수밖에 없다는 말도 안되는 정부의 요구에 맞서 투쟁하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