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TERACY/Tempus Edax Rerum

황해문화 창간 20주년 기념호

windshoes 2013. 11. 22. 15:17

"황해문화" 창간 20주년 기념호를 화요일부터 발송작업합니다. 감개무량이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의 감개가 무량하지요. 특별한 기념행사 같은 거 못합니다. 잡지야 잡지 그 자체가 기념인 게죠.


어떤 한 시절, 어떤 한 잡지가 있었다고 말되어지던 시대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것이 흔하고 넘치는 듯 시절인 듯 보이나 찾아보면 이만한 잡지, 요즘 참 드물다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 김명인 선생의 글이 참 좋습니다. 꼭꼭 씹어서 읽어주시길....





<권두언>
길 없는 곳에서 시작되는 길


김명인


『황해문화』가 20주년을 맞는다. 1993년 겨울호를 창간호로 내고 이제 다시 2013년 겨울호를 내는 것이다. 계간지 20년이 그리 긴 시간이라고 할 수는 없을지 모른다. 척박한 한국적 문화지형 속에서도 이보다 더 오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잡지들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블랙홀 같은 서울 중심의 구심력이 기세등등한 현실에서 인천이라는 주변적 로컬리티에 굴하지 않고 20년 동안 꾸준히 시사문화지로서 위상을 유지해온 것에 대해 약간의 자화자찬 정도는 허락되어도 좋을 것 같다.

『황해문화』는 처음부터 상업적 수지타산을 고려하지 않고 만들어진 잡지다. 계간지가 그 자체로서 수지균형을 맞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많은 계간지들이 명멸해왔지만 오래도록 속간하고 있는 다른 계간지들(물론 월간지도 마찬가지지만)의 경우 대개 해당 출판사들이 일정한 손해를 감내하면서도 그 잡지의 영향력에 힘입어 단행본 출판을 병행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함으로써 잡지 쪽으로부터의 손실을 보전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하지만 『황해문화』는 그러한 손실보전구조를 가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행을 계속한다. 그것은 『황해문화』의 발행주체인 새얼문화재단의 특수성에서 기인한다.

새얼문화재단은 인천시민의 손에 의해 40년 가까이 키워져온 풀뿌리 민간 문화재단이다. 수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명실공히 한국을 대표하는 풀뿌리 지역문화재단으로 성장한 새얼문화재단에 있어 지역을 넘어 전국적 어젠다를 형성하고 확산시키는 시사문화계간지 『황해문화』 발간 사업은 다른 무엇과 바꿀 수 없는 자부심이라고 할 수 있다. 새얼문화재단이 『황해문화』를 발간하는 일은, 재단의 다른 주요 사업들도 마찬가지이지만, 문화라는 것은 어떤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그 자체로 자율성을 가져야 하고 또 그 자율성은 의식적으로 지켜져야 하는 것이라는 확고한 의지의 소산이다. 이제 20년을 맞게 된 『황해문화』에 어떤 전통과 품격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잡지 자체의 기획과 내용들이 만들어온 것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먼저 다른 잡지들과는 다른 이러한 발행주체의 확고한 의지 자체에 스며있는 높은 품격에서부터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이것이 이 잡지를 만드는 우리의 숨길 수 없는, 그리고 굳이 숨기고 싶지 않은 자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황해문화』가 조금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사랑받기를 원한다. 그것은 비단 『황해문화』만이 아니라 『황해문화』를 포함한 진지한 잡지저널리즘 전체에 관한 소망이기도 하다. 1990년대 이래 한국 잡지저널리즘의 위상은 점차 하락일로에 있다. 주간지 시장은 그래도 어지간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월간, 계간, 특히 시사문제를 주로 다루는 정통 잡지저널리즘의 쇠퇴는 너무나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경박단소의 매체문화와 단행본 중심의 출판문화(물론 진지한 단행본들 역시 비슷한 운명이겠지만) 사이에서 시시각각 변화무쌍하게 등장하는 시사현상들을 보다 근본적인 맥락에서 차분히 짚어나가서 그 의미와 전망을 모색하는 진지한 논의의 장으로서의 잡지저널리즘이 설 자리를 잃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잡지저널리즘의 쇠퇴는 선정주의와 흑백논리로 가득한 파편적 억설들을 한편으로 하고, 지나치게 원론적인 아카데미즘적 논리를 다른 편으로 하는 여론장의 기형적 이원구조의 결과이면서 또 원인이 되고 있다. 그 결과 결국 남는 것은 전혀 합리적이지 못한 극단적 흑백논리 혹은 상호모순적인 대중적 억설들이거나 아니면 고답적인 원론들뿐, 그 사이를 잇는 여론의 합리적 변증과 조정의 과정은 생략되거나 실종되고 마는 것이다. 그 결과 우리 사회는 어느샌가 점차 '보수꼴통'의 논리와 '종북좌빨'의 논리만 남는 지적 야만의 상태로 빠져들게 되었다.

진실을 얻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설사 완전한 진실이 아니더라도 서로가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의 설득이나 합의에 이르는 길조차도 늘 복잡하고 우회적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한국사회는 이러한 돌아가는 길, 복잡한 길을 누구도 차분히 모색하려고 하지 않고 있다. 설사 그러한 길을 누군가 모색하여 이 길로 가자고 해도 도무지 들으려 하지 않고 있다. 경쟁과 불안 속에서 그야말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심정으로 쫓기듯 살아가는 오늘의 한국인들에게 이러한 차분한 성찰적 모색을 요구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우회로를 기피하는 사회, 가던 걸음을 멈추고 다시 생각해 보는 일을 모두가 귀찮아하는 사회는 위험하다. 이성이 잠들면 요괴가 눈뜬다. 그 요괴가 지금 한국사회를 백주에 횡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게 필자만의 착시는 아닐 것이다.

한갓 일 년에 네 번 나오는 잡지를 읽는다고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이 계절마다 한 번 정도 자신만의 좁은 소견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세상과 이웃의 일들에 대해 생각하고 그 깊고 먼 맥락들을 짚어나가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적어도 지금과 같이 무언가 성마른 광기가 지배하는 이 불길한 시대의 속도를 얼마간은 멈출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거기서부터 어떤 의미있는 변화도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더 많은 사람들이 『황해문화』를 읽어주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렇게 읽히는 잡지를 만들기 위해 더 노력하리라. 20년의 길목을 돌아나서는 지금 다시금 마음을 다잡아 본다.

20주년 기념호를 낸다. 이번 호는 '20년,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이라는 제목 아래 하나의 단행본형 통기획으로 만들어졌다. 이러한 시도는 통권 50호째를 맞아 '대한민국의 상처와 희망'이라는 제목으로 발행했던 지난 2006년 봄호에서 이미 한 번 시도된 바 있다. 잡지라는 매체가 지식과 교양으로 무장한 전문가들만이 글을 실을 수 있는 곳은 아니다. 하지만 계간지의 성격상 전문필자들의 글이 주로 실리는 것 또한 불가피한 일이기도 하다. 대개 할 말이란 것은 가지지 못한 사람, 억울한 사람들이 더 많은 법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또한 대개 말할 줄을 모르고, 또 말할 기회도 가지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들의 말은 대부분 누군가에 의해 대신 말해지지만 그 과정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왜곡되거나 변형되게 된다. 그리고 '글'의 형태로 전해질 때는 더욱 그 왜곡과 변형의 정도는 심해진다.

지난 50호에 이어 우리는 이 20주년 기념호를 빌려 이처럼 그동안 말하고 싶었으나 말할 수 없었던 사람들의 말을 가급적 많이 실어 알리고자 한다. 이 기획 속에는 『황해문화』가 창간된 1993년부터 올해 2013년까지 20년 동안 이 땅에 사는 마흔 여섯 사람의 살아온 이야기가 들어있다. 거기엔 공장노동자, 해고자, 농어민, 장애인, 탈북자, 화교, 이주자, 자이니치, 이민자가 있고, 인권운동가, 병역거부자, 빈민운동가, 청소년운동가, 문화기획자, 노래운동가, 대안학교 교사, 페미니즘 운동가, 촛불소녀, 해직교사, 내부고발자, 지역운동가와 시인, 소설가, 평론가, 만화가, 사진가, 가수, 극작가, 서점주인, 출판인, 해직기자가 있으며 목사, 신부, 승려 심지어 전직 대법관, 현직 레슬러의 이야기까지도 있다. 일종의 집단적 민중자전인 셈이다. 가급적 사회 각층의 목소리를 듣고자 했으므로 개중에는 글 잘 쓰고 말 잘하는 지식인들도 들어 있지만 그들조차도 무슨 대단한 공적 발언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온 지난 20년을 돌이켜 술회함으로써 이 집단적 민중자전의 흐름 속에 녹아들도록 하였다. 수많은 사연들이, 수많은 말들이 지난 20년이라는 한국현대사의 한 토막 속에서 얽혀있고 또 말해지고 있는 이 한 권의 서사기획 속에서 독자들 역시 자연스럽게 자신의 지난 20년 세월을 돌아보게 될 것이고 그것이 어떤 형상을 하든, 어떤 이미지로 다가오든 민중자전의 파노라마는 곧 우리 모두가 함께 겪어왔던 날것의 역사일 것이다.

공교롭게도 『황해문화』가 창간된 1993년은 한국사회가 1961년부터 시작된 무려 32년의 군정체제를 끝내고 어렵사리 문민정권을 탄생시킨 원년이기도 하다. 그 후 20년 동안 김영삼 정권 5년을 거쳐 김대중, 노무현의 '민주정권'이 이어졌고 이명박 정권을 거쳐 이제 박근혜 정권 원년을 맞은 것이다. 그 20년은 우리에게 어떤 것이었을까? 벌써 몇 해 전의 이야기가 되었지만 그 시절을 일컬어 '87년 체제'라거니 '97년 체제'라거니 하는 논의들이 있었다. '87년 체제'라는 명명에는 1987년의 6월항쟁과 그로부터 가능해진 직선제개헌을 비롯한 '민주(화)개혁'과 그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판단되는 현재까지의 한국사회의 질적 변화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의지가 깃들어 있었고, '97년 체제'라는 명명 속에는 1997년에 있었던 'IMF 쇼크'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적 '격변'으로 인한 부정적 구조변화야말로 1990년대 이후 한국사회의 대표 항수이며 '민주화'는 그에 비하면 일개 종속변수라는 입장이 들어 있었다.

쉽게 단순화할 수는 없겠지만 오늘의 시점에서 본다면 '97년 체제'라는 명명이 더 사태의 본질에 접근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1987년의 민주항쟁은 직선제 개헌을 낳았고 노태우-김영삼 정권 10년 동안의 산통을 거쳐 마침내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이른바 '민주정권 10년'을 일구어냈지만, 그 민주화는 정권교체와 사회 전반의 민주적 환경 조성이라는 의미있는 결과로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국가보안법 폐지의 실패에서 나타나듯 진정한 민주주의의 실현에는 크게 못 미치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그 뒤를 이은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통해 그나마 이루어졌던 민주화의 여러 성과들이 하나하나 무화되거나 격파되는 현실을 미루어볼 때 극단적으로 말하면 '87년 체제'는 일종의 환각이었다는 생각조차 드는 것이다.

더욱 비관적인 것은, 비록 신자유주의 체제가 멀게는 1980년대 초 전두환 정권 시절을 거쳐 노태우 정권 때부터 이미 세계화니 개혁 개방이니 하는 언술과 더불어 시작되기는 하였지만 김영삼 정권하의 노동법 개악, 김대중 정권하의 금융개혁, 구조조정과 대량 해고, 비정규직 양산, 노무현 정권하의 FTA 드라이브와 시장자유주의 고착 등에서 보듯 이른바 민주정부 아래서 한국사회에 확고하게 착근되었다는 사실이다. 지난 20년은 어떻게 보면 민주화의 환각 속에서 신자유주의의 고착이라는 엄혹한 현실을 방기했던 기간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고착된 '97년 체제' 기간이라고 보는 것만으로는 오늘의 한국사회를 다 설명할 수 없다. 신자유주의의 고착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권을 온전히 계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사이에 계승의 다리보다는 단절의 협곡을 더 뚜렷하게 실감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무엇 때문일까. 여기서 다시 '민주화'의 문제가 대두된다. 노무현 정권기까지 위태롭기는 했지만 의연하게 작동했던 민주화의 환각은 2008년 이명박 정권의 등장과 더불어 하나하나 깨지기 시작한다. 엄밀히 말하면 '민주화'는 신자유주의 질서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민족국가의 경계 철폐와 국가권력으로부터의 시장자유의 획득을 전제로 하는 신자유주의 질서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완성을 촉진하는 효과를 낳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의 등장과 더불어 이러한 신자유주의-부르주아 민주주의의 공생관계는 변질되기에 이른다.

한국사회에서 민주화는 권위주의적인 군사독재체제에서 탈권위주의적 문민체제로의 자연스러운 이행이라는 의미를 넘어설 수밖에 없다. 만일 한국의 지난 권위주의 군사독재체제가 제3세계의 다른 나라들처럼 식민지 민족해방투쟁에서의 정통성이라는 기반 위에서 빠른 속도의 경제, 사회발전을 기하기 위한 어느 정도 불가피한 역할을 수행한 존재였고 민주화란 그것이 부르주아 지배체제의 성숙에 따라 자연스럽게 해소되는 과정이라고 한다면 우리의 민주화 역시 불가역적으로 연착륙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한국의 민주화 과정은 단지 권위주의 군사독재체제의 유산을 극복하는 것을 넘어서 그 이전 분단과 전쟁과 냉전체제 고착 과정에서 형성된 한국적 지배체제의 근원적 문제들, 이른바 대한민국 건국 과정에서의 국가폭력과 그 피해의 문제, 그리고 그로부터 당연히 제기될 수밖에 없는 한국 주류 지배세력의 정통성/정당성 문제에까지 소급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

길게 보면 1970년대 말 박정희 정권의 붕괴 이후 노무현 정권 시기까지의 30년의 시기는 권위주의의 장기적 약화와 민주화라는 추세가 주도하는 상황에서 이와 같은 '대한민국 주도세력'들이 대세에 밀려 수세에 처해 있던 기간이었다. 하지만 김대중-노무현 정권하에서의 대북 화해 협력 분위기가 점차 증진됨으로써 그들의 존립기반인 냉전적 분단체제가 흔들리게 되고 더 나아가 제주 4·3항쟁 등 과거사 관련 진상규명과 국가책임 인정 등 자신들의 원죄가 다시 호출되는 상황에 이르면서 이들의 대대적인 역공이 이루어지게 된다. 그것이 우리가 지금 목도하는 바와 같은 이명박-박근혜 정권하에서의 전방위적 우경화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한국사회에서의 민주화는 한국 자본주의의 양적 성장에 걸맞은 정치사회적 질적 수준의 확보라는 자연스러운 경로의 일환으로 불가역적으로 진행되는 대신 냉전적 분단체제의 기형적 형성이라는 한국현대사의 특수한 조건에 부딪쳐 더이상 진전되지 못하고 오히려 정체 혹은 후퇴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단지 민주화의 표류 혹은 지체라는 문제를 넘어서 더 큰 문제들을 야기한다. 냉전질서에 기초를 둔 한국사회 정통 지배세력의 이러한 반역사적 귀환과 주도권의 회복은 그 자체로도 문제지만 그 서슬 아래서 사회 각계 각층의 정당한 생활상의 민주적 요구들조차 강압적으로 봉쇄되는 결과를 낳게 되며 그 뒤안에서 지난 20~30여 년 동안 점차적으로 제거되어왔다고 여겼던 온갖 부정, 비리, 탈법들이 다시 노골적으로 고개를 들고 자행되어도 무방한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도록 만든다는 더 큰 문제를 낳는다. 그리고 이에 정당하고 이성적인 문제제기조차 비합리적인 매카시즘적 탄압이나 단죄의 대상이 되는 현상을 낳게 되는 것이다. 이리하여 결국 현재의 한국사회는 신자유주의체제가 만들어낸 생활상의 위기에 이러한 반역사적 보수회귀 현상이 만들어낸 정신적 위기까지 가세하여 미증유의 불안과 공포, 그리고 불확정성이 횡행하는 어두운 국면으로 한없이 미끄러져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더욱 상황을 어렵게 하는 것은 민중 일반의 이러한 삶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과거와 달리 넒은 의미의 이른바 '진보세력'에게 두텁게 드리워져 있는 패배주의와 무기력감이다. 민주화의 환각, 신자유주의적 무장해제와 개인화, 그리고 대안적 상상력의 빈곤 등에 의해 이러한 심각한 작금의 상황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저항해야 할 주체적 역량은 현저하게 위축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하여 이 땅의 민중들은 지금 미증유의 고립과 소외 속에서 각자도생의 처절한 몸부림을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황해문화』 20주년 기념호의 기획 '20년,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에는 지금 이처럼 어둡고 답답한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2013년을 맨몸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 땅의 사람들의 모습이 날것 그대로 재현되어 있다. 우리는 이 신산스러운 삶의 모습들을 '벌거벗겨진 삶', '추방당한 사람들', '이 땅에 살기 위하여',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등 네 개의 제목 아래 거칠게 묶어 보았다. 그러나 여기 글을 보내준 마흔 여섯 분의 삶을 이런 식의 다소간 상투적인 네 개의 제목 아래 묶어넣는 것은 어떻게 보면 폭력적이다. 이분들의 글을 읽는 동안 우리는 이들의 지난 20년의 삶이 비록 힘겹고 고통스러운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이들의 정신과 나날의 삶까지도 암울한 무채색은 아니라는 것을 강렬하게 느낄 수 있었다. 현실은 늘 명명(命名)을 넘어선다. 현실을 관조하는 자는 결코 현실을 살아가는 자를 앞서지 못하는 법이고 황혼이 되어야 비로소 날개를 펼치는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결코 한낮의 땀과 눈물의 의미를 알 수 없는 법이다. 이분들의 글을 읽는 동안 우리가 편의적으로 또 상투적으로 만든 네 개의 제목들 중에 이들의 삶의 실상에 부합하는 제목은 하나,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뿐이었다. 나머지 제목들은 모두 빈곤한 상상력과 현실에 대한 과잉규정, 혹은 엄살의 소치일 것이다. 삶은 그것이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럽다 할지라도 어떻게든 살아내야 하는 주체의 입장에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유일한 조건이고 소여이기 때문에 그 안에는 최소한의 틈이 있게 마련이고 그 틈이 있는 한 인간은 절망하지 않고 그 틈을 향해, 한 줄기 빛을 향해 나아가게 되어 있다. 그러다 보면 바로 그 틈에서 길이 시작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분들의 삶으로부터, 삶에 대한 태도로부터 희망을 배운 것이다. 독자 여러분도 이 길 없는 곳에서 시작되는 길에, 이 희망 없는 곳에서 시작되는 희망에 감염되기를 기대해 본다.

<『황해문화』 편집주간, 인하대학교 교수>


<목차>

특집 20년,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01. 벌거벗겨진 삶
12 내가 살아온 삶, 그리고 꿈꾸는 미래│김소연
24 아버지의 문패│고동민
39 인간의 얼굴을 한 따뜻한 정의를 꿈꾸며│이지문
49 아른한 서른, 쉰에 보이는 설움│임병구
59 희망의 물리적 근거로 존재해온 장애인운동│박경석
75 노동자의 길, 노동자의 삶│방종운
92 길 위에서 길을 찾아│김동애

02. 추방당한 사람들
110 또 다른 꿈을 찾아 여기에│정영신
122 토건이 죽어야 나라가 산다!│강제윤
131 거기 마을 하나 있었다│신종원
144 북한에서 태어나 20년, 남한으로 이주하여 20년│김형덕
156 탈북자의 길│김성민
163 버마인이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법│조모아
171 한국의 재외국민, 일본의 외국인 주민│이성
183 길 위에 놓인 소설들│유채림
195 화교로서 걸어온 길│담도경
209 63년 전의 월미도 미군폭격, 아직도 피난 중인 원주민들│한인덕

03. 이 땅에 살기 위하여
222 고향 없는 개인이 활동가가 되기까지│공현
235 세상과 싸워 이기는 방법을 배우다│한지혜
244 마지막 페스티벌│김수박
257 난 왜 활동가로 사는가│신유아
268 가치와 의미를 둘러싼 문화운동에 주목하며│오김숙이
283 대안교육과 함께한 나의 청춘, 희망을 품다│손진근
296 노란색에 관한 네 개의 짧은 글│박경주
304 상상하는 대로 그대로│민정연
319 서울대 미대 졸업자의 배다리 '주민되기'│민운기
331 정의를 강물처럼, 서로 위하는 마음 개울처럼│김일회
340 인권운동 20년의 반성│박래군
351 무엇이 나를 여기 있게 하는가│신현수
371 삶의 현장인 지역과 나의 의식변화│김정택
383 ‘나'의 지난 목회 20년 회고│박종렬

04.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398 어느 날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아버지를 위하여│오누리
407 20년, 무거운 리듬을 타고 흐르다│민재기
416 악당 레슬러의 탄생│김남훈
427 변화 없음의 변화│박새봄
437 시간은 아팠던 기억도 무디게 만든다│차형석
447 그때, 내가 본 것의 의미│노순택
462 상흔과 부채의식, 그 이후│이명원
471 또 겨울이다. 봄은 오려나?│홍순천
481 내 신체는 누구의 것인가│김남일
─'국가'에서 '국가 바깥'으로, 다시 '국가 너머'로
492 출판인으로 살아가기│한철희
503 사법개혁에 관한 회고│박시환
515 배다리 헌책방거리│곽현숙
528 지난 세월을 돌아보며│영화스님
540 세상도 변하고 나도 변했지만 열정은 변하지 않았다│이충렬
550 처음처럼, 처음보다 더 큰 꿈을 꾸는 삶을 위하여│김소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