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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문학

깃발 없는 자들의 고독한 촛불을 넘어 - <실천문학> 2008년 가을호(통권91호) 깃발 없는 자들의 고독한 촛불을 넘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시위와 집회가 다시 출현하리란 예상은 누구나 했지만 100일도 안 된 시점에서 이처럼 거대한 촛불의 물결이 만들어지리라고는 누구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난 두 달여 동안 서울 시청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살수차가 뿜어대는 최루액에 범벅이 되어 도망치게 될지도 모른다는, 전경 방패에 내리 찍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을까. 아니면 “헌법 제1조”를 노래하고 컨테이너 장벽을 ‘명박산성’이라 조소하지만 만리장성 같은 장벽, 체제권력을 넘지 못하고 돌아서는 무기력을 반복하는 두려움이었을까. 촛불의 의미는, 촛불 그 이후엔 무엇이 있을까. 대중지성, 촛불시위는 웹2.0의 돌연한 사건인가 “위대한 피플 파워”란 국.. 더보기
최금진 - 웃는 사람들 웃는 사람들 - 최금진 웃음은 활력 넘치는 사람들 속에 장치되어 있다가 폭발물처럼 불시에 터진다 웃음은 무섭다 자신만만하고 거리낌없는 남자다운 웃음은 배워두면 좋지만 아무리 따라해도 쉽게 안 되는 것 열성인자를 물려받고 태어난 웃음은 어딘가 일그러져 영락없이 잡종인 게 들통난다 계층재생산,이란 말을 쓰지 않아도 얼굴에 그려져 있는 어색한 웃음은 보나마나 가난한 아버지와 불행한 어머니의 교배로 만들어진 것 자신의 표정을 능가하는 어떤 표정도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웃다가 제풀에 지쳤을 때 문득 느껴지는 허기처럼 모두가 골고루 나눠갖지 않는 웃음은 배가 고프다 못나고 부끄러운 아버지들을 뚝뚝 떼어 이 사람 저 사람의 낯짝에 공평하게 붙여주면 안될까 술만 먹으면 취해서 울던 뻐드렁니 가난한 아버지의 더러운 입냄.. 더보기
김일영 - 바다로 간 개구리 바다로 간 개구리 - 김일영 창자가 흘러나온 개구리를 던져놓으면 헤엄쳐 간다 오후의 바다를 향해 목숨을 질질 흘리면서 알 수 없는 순간이 모든 것을 압수해갈 때까지 볼품없는 앞발의 힘으로 악몽 속을 허우적거리며 남은 몸이 악몽인 듯 간다 잘들 살아보라는 듯 힐끔거리며 간다 다리를 구워 먹으며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 도시로 헤엄쳐 갔다 출처 : 실천문학, 2008년 가을호(통권91호) * 시가 담아내고자 하는 것 자체가 형상화(image)는 아니어도 형상화되지 못한 시를 보는 것은 괴롭다. 김일영 시인의 가 그런 시란 뜻은 물론 아니다. 나에겐 정반대다. 내 안에서 너무 잘 형상화되어 도리어 가슴 아픈 시다. 우연치 않게 다큐멘터리 전문 채널에서 서바이벌 생존전문가가 사막에서의 생존기술을 보여주는 프로그램..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