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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정호승 -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내가 사랑하는 사람 - 정호승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 정호승의 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처음 읽을 때 만해도 나는 이 시를 받아들이기가 참 곤란했다. 그만큼 내가 날이 서 .. 더보기
정호승 - 마음의 똥 마음의 똥 - 정호승 내 어릴 때 소나무 서 있는 들판에서 아버지 같은 눈사람 하나 외롭게 서 있으면 눈사람 옆에 살그머니 쪼그리고 앉아 한 무더기 똥을 누고 돌아와 곤히 잠들곤 했는데 그날 밤에는 꿈속에서도 유난히 함박눈이 많이 내려 내가 눈 똥이 다 함박눈이 되어 눈부셨는데 이제는 아무 데도 똥 눌 들판이 없어 아버지처럼 외롭고 다정한 눈사람 하나 없어 내 마음의 똥 한 무더기 누지 못하고 외롭고 쓸쓸하다 * 아버지 없는 손자 녀석을 바라보며 할머니가 제일 많이 했던 말 중 하나는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일어나지”라는 말이었다. 혀를 끌끌 차며 쏟아내던 당신의 무거운 한숨이 이마에 솜털도 가시기 전에 내 어깨를 내리 눌렀다. 비빌 언덕 하나 없을 내 앞의 삶이 외롭고 쓸쓸할 것이라는 걸, 해가 뜨.. 더보기
정호승 - 벗에게 부탁함 벗에게 부탁함 - 정호승 벗이여 이제 나를 욕하더라도 올봄에는 저 새 같은 놈 저 나무 같은 놈이라고 욕을 해다오 봄비가 내리고 먼산에 진달래가 만발하면 벗이여 저 꽃 같은 놈 저 봄비 같은 놈이라고 욕을 해다오 나는 때때로 잎보다 먼저 피어나는 꽃 같은 놈이 되고 싶다 * 개인적으로 정호승의 시가 90년대 들어와서 휠신 더 천연덕스러워졌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위와 같은 말이 그의 진심일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더욱 도지는 지도 모르겠다. 에이, 저 꽃 같은 놈! 하긴 꽃도 꽅 나름이라 이 사쿠라 같은 놈이라고 말하면 그건 욕이다. 욕도 이만저만한 욕이 아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사쿠라 꽃을 보면서 욕봤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전에 아마 이달의 영화로 '친구'를 추천했다가 그 추천을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