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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금진

최금진 - 웃는 사람들 웃는 사람들 - 최금진 웃음은 활력 넘치는 사람들 속에 장치되어 있다가 폭발물처럼 불시에 터진다 웃음은 무섭다 자신만만하고 거리낌없는 남자다운 웃음은 배워두면 좋지만 아무리 따라해도 쉽게 안 되는 것 열성인자를 물려받고 태어난 웃음은 어딘가 일그러져 영락없이 잡종인 게 들통난다 계층재생산,이란 말을 쓰지 않아도 얼굴에 그려져 있는 어색한 웃음은 보나마나 가난한 아버지와 불행한 어머니의 교배로 만들어진 것 자신의 표정을 능가하는 어떤 표정도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웃다가 제풀에 지쳤을 때 문득 느껴지는 허기처럼 모두가 골고루 나눠갖지 않는 웃음은 배가 고프다 못나고 부끄러운 아버지들을 뚝뚝 떼어 이 사람 저 사람의 낯짝에 공평하게 붙여주면 안될까 술만 먹으면 취해서 울던 뻐드렁니 가난한 아버지의 더러운 입냄.. 더보기
최금진 - 끝없는 길, 지렁이 끝없는 길 - 지렁이 - 최금진 꿈틀거리는 의지로 어둠속 터널을 뚫는다 덧난 상처가 다시 가려워지는 쪽이 길이라고 믿으며 흙을 씹는다 눈뜨지 않아도 몸을 거쳐 가는 시간 이대로 멈추면 여긴 딱 맞는 관짝인데 조금만 더 가면 끝이 나올까 무너진 길의 처음을 다시 만나기라도 할까 잘린 손목의 신경 같은 본능만 남아 벌겋게 어둠을 쥐었다 놓는다, 놓는다 돌아보면 캄캄하게 막장 무너져 내리는 소리 앞도 뒤도 없고 후퇴도 전진도 없다 누군가 파묻은 탯줄처럼 삭은 노끈 한 조각이 되어 다 동여매지 못한 어느 끝에 제 몸을 이어보려는 듯 지렁이가 간다, 꿈틀꿈틀 어둠에 血이 돈다. 최금진, 『새들의 역사』, 창비, 2007 * 내일모레 내 나이 마흔. 사회적인 까닭이겠지만 남자의 마흔은 최승자가 노래한 여자의 서른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