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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관

황규관 - 우체국을 가며 우체국을 가며 - 황규관 다시 이력서를 써서 서울을 떠날 때보다 추레해진 사진도 붙이고, 맘에도 없는 기회를 주신다면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로 끝나는 자기소개서를 덧붙여 우체국을 간다 컴퓨터로 찍힌 월급명세서를 받으며 느낀 참담함이 싫어 얼빠진 노동조합이나 제 밥줄에 목맨 회사 간부들과 싸우는 것이 마치 아귀다툼 같아서 떠나온 곳에게 무릎을 꿇은 것이다 밥 때문에 삐쩍 마른 자식놈 눈빛 때문에 이렇게 내 영혼을 팔려는 짓이 옳은 일인지 그른 일인지 왜 그럴까, 알고 싶지가 않다 나는 이렇게 늘 패배하며 산다 조금만 더 가면, 여기서 한발짝만 더 가면 금빛 들판에서 비뚤어진 허수아비로 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것마저 내게는 욕심이었다 이력서를 부치러 우체국을 간다 한때 밤새워 쓴 편지를 부치던 곳에 생(.. 더보기
황규관 - 마침표 하나 마침표 하나 - 황규관 어쩌면 우리는 마침표 하나 찍기 위해 사는지 모른다 삶이 온갖 잔가지를 뻗어 돌아갈 곳마저 배신했을 때 가슴 깊은 곳에서 꿈틀대는 건 작은 마침표 하나다 그렇지, 마침표 하나면 되는데 지금껏 무얼 바라고 주저앉고 또 울었을까 소멸이 아니라 소멸마저 태우는 마침표 하나 비문도 미문도 결국 한 번은 찍어야 할 마지막이 있는 것, 다음 문장은 그 뜨거운 심연부터다 아무리 비루한 삶에게도 마침표 하나, 이것만은 빛나는 희망이다 출처 : 황해문화. 2001년 여름호(통권31호) * “어쩌면 우리는 / 마침표 하나 찍기 위해 사는지 모른다”는 황규관 시인의 말에 나도 모르게 눈썹이 꿈틀했다. 난 삶이 별거 없다고 생각하는, 그야말로 나이브(naive)한 허무주의자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나보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