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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문화

공광규 - 나를 모셨던 어머니 나를 모셨던 어머니 - 공광규 늙은 어머니를 따라 늙어가는 나도 잘 익은 수박 한 통 들고 법성암 부처님께 절하러 간 적이 있다 납작 납작 절하는 어머니 모습이 부처님보다는 바닥을 더 잘 모시는 보살이었다 평생 땅을 모시고 산 습관이었으리라 절을 마치고 구경삼아 경내를 한 바퀴 도는데 법당 연등과 작은 부처님 앞에는 내 이름이 붙어 있고 절 마당 석탑 기단에도 내 이름이 깊게 새겨져 있다 오랫동안 어머니가 다니며 시주하던 절인데 어머니 이름은 어디에도 없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평생 나를 아름다운 연등으로 작은 부처님으로 높은 석탑으로 모시고 살았던 것이다. 출처 : 『황해문화』, 2008년 여름호(통권 59호) * “눈에 밟히다”라는 표현이 있다. 이런 말을 흔히 관용구(慣用句)라 하는 데, 관용구란 본래.. 더보기
이 모든 무수(無數)한 반동(反動)이 좋다 - 계간 『황해문화』, 2007년 봄호(통권 54호) 권두언 이 모든 무수(無數)한 반동(反動)이 좋다* 버드 비숍여사(女史)를 안 뒤부터는 썩어빠진 대한민국이 괴롭지 않다 오히려 황송하다 역사(歷史)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歷史)라도 좋다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 나에게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追憶)이 있는 한 인간(人間)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 ― 김수영, 「거대한 뿌리」 중에서 입춘 지나 따뜻한 남쪽에는 철모르는 목련이 피었다는 소식을 듣는 깊은 밤, 문득 일어나 김수영의 「거대한 뿌리」를 읽는다. 시인 김수영(金洙暎, 1921. 11. 27~1968. 6. 16)은 밤새 술을 마시고 깨어나는 아침, 뱃속으로 시냇물이 졸졸 흘러가는 그 느낌을 사랑했던 시인이었다. 그는 공복상태에서 오는 정신의 맑음, 답답했던 머릿속을 헤집고, 맑은 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