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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RIA/Res non verba

바네사 비크로프트(Vanessa Beecroft) - 그녀의 몸들

바네사 비크로프트(Vanessa Beecroft)는 지난 2004년 9월 천안에 있는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그녀의 몸들 : 신디 셔먼 Vs 바네사 비크로프트> 전과 2007년 2월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렸던 바네사 비크로프트 레트로스펙티브(Retrospective)전, 전시회 며칠 전에는 신세계백화점 본점에서 퍼포먼스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의 일반 대중에게 바네사 비크로프트는 그다지 낯익은 예술가는 아니다.


1969년 이탈라이 제노바에서 영국인 아버지와 이탈리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3살 때 부모가 이혼한 뒤로는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일찌기 페데리코 펠리니가 그러했던 것처럼 그녀 역시 이탈리아 소도시의 가톨릭적인 엄격한 분위기 속에서 스스로를 이방인처럼 여기며 살았다. 이와 같은 성장 배경은 그녀의 작품 제작의 밑바탕에서 전반적으로 느낄 수 있는 소외의 감정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느낌이다.  



image - 01
Vanessa Beecroft, Vogue Hommes, 2002(Teil 1 von 2)



image - 02
Vanessa Beecroft, Vogue Hommes, 2002(Teil 2 von 2)



실제로 G8 정상회담이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진행되는 동안 제노바를 방문한 비크로프트에 대해 지역언론들은 자기 지역 출신의 예술가인 바네사 비크포로트를 극진히 환대하며 '귀향'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는데, 비크로프트 자신은 도리어 이런 표현들에 대해 거부감을 느껴 흑인들을 모델로 선택해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이것은 그녀 자신이 제노바에서 이방인처럼 스스로를 느꼈던 탓도 있지만 당시 이탈리아의 사회 문제가 되었던 아프리카 이민자들의 차별 문제에 대한 항의의 뜻도 함께 담고 있었다. 남성 중심의 정상회담 장소였던 이탈리아 제노바의 듀칼레 궁전에서 성기만을 아슬아슬하게 가린 흑인 여성들이 등장한
(2001) 퍼포먼스는 분명히 파격적이었을 것이다.


image3~4 : performance VB52(2003)


1993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선보인 첫 퍼포먼스
는 바네사 비크로프트 본인의 이름 이니셜을 딴 것이다. 비록 본인의 이름이긴 하지만 신디 셔먼의 '무제(untitled)'시리즈처럼 현대문명의 익명성에 도전한다는 점에서 역설적인 작명법이기도 하다. 속옷 차림의 여성들은 퍼포먼스 중에 조용히 포즈를 취하고 있을 뿐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노출된 여성들의 몸은 구경꾼들의 눈요기 대상이지만 그들을 훔쳐보는 관음증적인 시선 자체도 바네사 비크로프트의 퍼포먼스에서는 의도된, 의도되지 않은 예술 행위의 일부이다.


"나는 내가 의도했던 것과 실제 구현된 것 사이의 차이에 흥미를 느낀다."



첫 번째 전시회 이후 뉴욕으로 건너간 그녀는 여성의 나체와 음식, 속옷 등을 퍼포먼스의 주된 소재로 사용하고 있는데, 일견 헬무트 뉴턴의 작업들과 흡사한 인상을 받기도 한다. 여성의 나체를 이용한 퍼포먼스 아트에 대해 대개의 평단의 평가는 대체로 두 가지 중 하나일 때가 많은데, 하나는 여성의 신체를 성적 욕망의 대상에서 '몸'으로 승화시킨 페미니즘 예술이라는 평과 단순히 지식인용 고급 포르노에 불과하다는 평이 그것이다. 어떻게 보느냐는 것은 각자의 평가에 맡길 일이다. 



실제로 거식증에 시달렸던 바네사 비크로프트의 개인적인 체험이 녹아있는 퍼포먼스였다. 바네사 비크로프트의 퍼포먼스에 참가하는 모델들은 대부분은 자원봉사자들로 구성되는 편인데, 비크로프트는 이 때 자신의 친구들을 비롯해 예술대학의 학생들, 거리에서 캐스팅한 여성들이다.
퍼포먼스에는 32명의 모델들이 자원해서 참가했는데, 옷을 입은 나이든 여성부터 옷을 거의 입지 않은 젊은 여성들은 투명한 테이블 위로 베이지색 양복을 입은 남성들이 제공하는 초록색, 빨간색, 오렌지 색 등 음식을 받는다. 무려 5시간에 걸쳐 진행된 이벤트 동안 여성 모델들은 음식을 먹을지 먹지 않을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여 행동했다.


'여성의 몸은 전쟁터'라고 선포했던 바바라 크루거 이후 음식은 신체에 에너지를 공급하고, 신체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몸을 아름답게 꾸미는 물질로 전환되었다. 사람들은 매일 운동을 하고, 음식물을 조절하면서 아름다와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표출한다. 그 때문인지 몰라도 한국을 방문했던 바네사 비크로프트는 매우 날씬하고 아름다운 몸매의 소유자였다. 어쨌거나 날씬하고 아름다워야만 대접받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여성들은 먹는다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여자는 꾸며야 한다가 아니라 꾸며야 여자가 되는, 아름답지 않은 여자는 거리에 나오지도 말라는 거대한 강박 속에 여성의 신체는 전쟁터이자 동시에 가장 매력적인 상품이다.



image - 5 : Barbie Army


어쨌거나 가나아트센터에서 전시회가 열리기 며칠 전인 지난 2007년 2월 26일 서울 신세계백화점에 그녀의 퍼포먼스가 열렸는데, 여성의 신체노출에 대해 한 편으론 매우 관대하면서, 다른 측면으론 매우 엄격하다는 점을 잘 아는 주최측의 부탁으로 이 퍼포먼스에 참가한 모델들은 살색 옷을 걸쳤었다. 바네사 비크로프트는 모델들에게 "섹시하게 보이려고 하지 마라"는 요구 이외에는 서있다가 쉬고 싶으면 쉬는 것도 퍼포먼스의 일부라고 한다.



그녀의 작품들은 1회성이라는 퍼포먼스 특성상 직접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겐 사진과 비디오만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는데, 그녀 자신은 이것이 이벤트의 증거이긴 하지만 가장 재미없는 감상이라고 말한다.



image - 6 : white madonna with twins, 2006


마지막 사진은 어쩐지 베네통사의 광고를 역으로 패러디한 느낌이다.



살아있는 신체를 전시하는 행위와 인간(특히 남성들)의 관음적인 시선이 그려낸 완벽한 몸매의 마네킨, 바야흐로 죽은 것이 살아있는 것을 대체하는 living dead의 시간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말씀하시길, "아름다울 지어다, 아니면 말구."하셨으면 좋았을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