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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RIA/Res non verba

부도덕한(?) 진보주의자의 불온한 욕망과 예술 - 최경태



2001년 5월 30일, 최경태는 ‘여고생-포르노그라피2'란 이름의 전시회를 열었다가 결국 이 문제로 6월 2일 간행물윤리위원회로부터 검찰에 고발되었다. 서울고등법원에서 진행된 재판은 “단순한 누드가 아니고, 여고생의 오랄 등 보는 이로 하여금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기에 충분하다”는 판결문과 함께 화가에게 벌금 200만원, 음화로 지목된 작품 31점의 압류 소각 결정이 내려졌다. 2002년 8월 음화 전시판매, 음란문서 제조 교사 판매 반포죄가 적용되었고, 대법원 상고는 기각되었다.

2003년 01월 03일 오후 01시. 여고생 그림(음화) 31점 압류 집행, 소각예정, 종로경찰서 형사 4명이 충북 음성 작업실 겸 집을 방문. 눈이 이렇게 오는데 ... 자식들을 보내자니 마음이 아픕니다. 나 혼자 ... 소주 한 잔 합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창 밖 눈을 보며 홀짝 홀짝, 음악은.....
에디트 피아프.... 2차 대전 프랑스 지하카페 분위기입니다. - 최경태

생각해보니 그 무렵 인사동 거리를 걷다가 우연치 않게 최경태의 '여고생-포르노그라피'란 전시회 포스터를 발견하고 허탈하게 웃은 적이 있었다. '이제 벗겨먹다 못해 여고생까지 팔아먹냐?'란 것이 아마 그 무렵의 내 생각이었던 듯 싶은데, 다른 한 편으론 이 작가의 작품 세계가 과연 거리에서 발견한 포스터 한 장으로 즉흥적으로 몰염치한 인간으로 매도해도 좋을 만한 사람인가 궁금해지기도 했다. 역사 이래 훗날 진지하게 다시 살펴보아야 했던 예술치고 당대에 사회적 물의가 아니었던 적이 또 얼마나 있었던가.  


- 그의 작품들은 대중의 평가 이전에 법에 의해 평가받았고, 결국 소각되고 말았다. 위의 작품은 인터넷에 유포되어 있는 작품으로 중요 부위가 모자이크 처리 되어 있으나 도리어 그것이 부도덕한 사회의 단면을 두드러지게 보여주는 듯 하다. 


최경태가 이런 사건의 주인공으로 떠오르기 전까지 그를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가 과거에 활동했던 경력을 통해 이른바 '민중화가'의 면모로서 기억하는 이들이 좀더 많았으리라 생각한다. 그가 참여해왔던 그룹전들을 살펴보면 그의 이런 면모는 더욱 두드러진다. '작업동인1984', '인간시대동인전', '리얼리즘동인전', '젊은의식전', '한강목판화전', '메시지와 미디어전', '오늘의 삶, 오늘의 미술전', '동학혁명, 새야새야파랑새야전', '한강미술관10년전', '독립예술제', '02조국의산하전','굿디자인페스티벌', 'NO CUT전', '죽음앞에 선 인간전', '10인의 모색전', '오늘의 청년전', '여기는 한국전', '형상미술제', GIRL'S DON'T CRY 시부야전', '커버스토리전', '신나는 만화세상, 움직이는 미술관전', '국가보안법폐지전', '불량아트(섹스는 정치다)전' 등이 있다. 최경태는 인천대학교 미술학과를 졸업하고, PROJECT SPACE 35(뉴욕), 여고생-포르노그라피2(보다갤러리), 코리아판타지(도올갤러리), 금호미술관, 한강미술관 등을 비롯해 13회의 개인전을 가졌다. 에로티시즘 21C(아트선재센터), 금기의 아름다움(두산아트센터), 굿티아인페스티벌(코엑스), NO CUT(갤러리 사비나) 메시지와 미디어전(관훈미술관) 등 10회의 그룹전과 14회의 커버스토리전을 가졌다.

미술평론가 김종근은 그의 작품들이 소각되어 버렸다는 최경태의 참담한 소회를 읽고 "기억 속에 그와 함께 보냈던 1980년대를 회상했다. 20년 이상 화가와 비평가로서 그와 만났던 순간들을 기억하면 더욱 알 수 없는 분노와 슬픔이 함께 겹쳤다. 80년대 초반 그 시절 누구나 그렇듯이 팔리지도 않는 그림들을 그리면서 초라하고 궁핍한 시대를 살았다. 나는 <인간시대> 그룹 동인을 만들어 예술을 통한 인간성 회복을 호소했고, 그는 우리 시대 민중들의 슬픔과 억압과 자유 그리고 민주화 시대의 희망에 대하여 노래했다. 당연히 그 그림들은 팔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눈치 보는 사람들>, <전사>, 그리고 <소주 한 잔> 등의 목판화를 통해 소외받은 사람들에 대한 뜨거운 애정을 놓치지 않고 그려냈다."라고 회고한다.

- 최경태_소주 한잔에 웃을 수 있는...,_목판화_26×35cm_1994 (이미지 출처 : neolook.com)


그의 작품들이 불타 사라진 뒤에도 작가는 여전히 스스로 난 여전히 포르노그래피 중독자다. 그리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고, 이를 여러 사람과 공유하고 싶다”며 과거 음화로 지목받았던 스타일의 작품들을 그리고 있다. 과연 그의 작품들은 쓰레기처럼 소각되었어야 마땅한 작품이었을까? 우리는 브레히트의 시 <분서>를 기억한다.

분서(焚書)

위험한 지식이 담긴 책들을 공개적으로 불태워 버리라고
이 정권이 명령하여, 곳곳에서
황소들이 끙끙대며 책이 실린 수레를
화형장(화형장)으로 끌고 왔을 때, 가장 뛰어난 작가의 한 사람으로서
추방된 어떤 시인이 누락된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그는 화가 나서 나는 듯이
책상으로 달려가, 집권자들에게 편지를 썼다.
나의 책을 불태워 다오! 그는 신속한 필치로 써내려갔다. 나의 책을 불태워 다오!
그렇게 해다오! 나의 책을 남겨 놓지 말아 다오! 나의 책들 속에서
언제나 나는 진실을 말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이제 와서 너희들이 나를 거짓말쟁이처럼 취급한단 말이냐! 나는 너희들에게 명령한다.
나의 책을 불태워다오!
<全文>


최경태의 작품들이 한 군데 모여 불타는 동안, 한때 그가 속했던 진보진영의 예술가들이 그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며 나의 작품도 함께 불태우라고 외치는 목소리는 내가 둔감했던 탓인지 잘 들리지 않았다. 1980년대 엄혹한 독재 통치 기간 중 압수된 그림들은 수없이 많았지만 이들 정치적이고, 선동적인 작품들에 비해 최경태의 음란(?)하게 정치적이고, 자극적으로 선동적인 작품들에 대한 압수와 소각 조처에 항의하기엔 특히 명분이 약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여전히 불편한 그림들을 그려대고 있는 최경태가 1996년 이후 제도권으로 들어와 이제 막 명예와 부를 누리게 된 민중미술 화가들을 불편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최경태 자신도 과거의 흔적이나 과거 자신이 했던 작업들의 공로로부터 스스로 멀어지려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혹시라도 자신의 여고생 포르노그라피 작업들이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을지 모를 정치적 의도, 정치성이라고 생각할지 모를 오해(?)에 대해 멀어지려 한다.

“내가 ‘여고생’을 그림의 소재로 선택한 건 깊은 뜻이 있는 것은 아니야. 나는 단지 성숙되지 않은 여고생의 깔끔한 성기가 좋을 뿐이지. 물론 대한민국의 모든 여고생들의 성기가 그렇게 깨끗한 것은 아니겠지만 아직도 대다수는 성적 경험이 없을 테고, 아저씨들은 그 ‘처음’같은 느낌을 갈구하고 있지 않나 싶어 실재로 그녀들은 그것으로 경제 활동을 하며 물질적인 욕구를 채우고 있고, 또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아저씨들은 그녀들에게서 그 처음 같은 느낌을 사고 보상을 해주고 있지 그게 뭐 잘못된 거지? 왜 그녀들과 아저씨들을 단속하는 거지? 미성년자가 아닌 여성들과의 매매춘은 괜찮은 건가? 단지 ‘미성년자’라는 이유만으로 여고생들의 경제 활동을 규제하고 있는 이 땅의 도덕과 법은 그렇게 자신만만한가? 그녀들도 핸드폰을 가져야 하고 이쁜 것이 최고가치인 사회에서 그녀들도 이쁜 옷과 악세사리를 사야하는데 어떻게 하니? 가진 거라곤 ‘풋풋한 몸뚱아리’ 밖에 없으니...."


그는 이들을 그리면서 스스로 포르노 작가이자 포르노 중독자로 규정하고 있으며 도리어 그렇게 되길 희망한다. "여고생 매춘이 만연한 사회, 그 나체에 성적 호기심과 흥분을 느끼는 나 자신과 우리들을 풍자한 작품이다. 우리 사회 자체가 싸구려 포르노와 다르지 않다. 포르노 그림은 인간다운 삶이 상실된 시대를 견뎌내는 내 절망의 표현이다." 그는 자신의 성적 호기심과 흥분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작품 창작에 있어 성적 호기심과 흥분보다 더 큰 동기는 바로 '절망의 말 걸기'라는 사실이다.
화가 최경태는 항소하였으나 2002년 5월의 항소심 결과 역시 피고인의 그림은 지나치게 사실적이어서 예술로 승화되지 못한 점이 인정된다는 등의 사유로 항소마저 기각당한다. 화가는 이를 다시 대법원에 상고했으나 기각 당했고, 2003년 1월에는 ‘여고생-포르노그라피2’ 전시회의 작품들은 모두 압류 후 소각처리 되었다.


- 구스타프 클림트의 제자이자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화가 에곤 쉴레의 작품 <검은 머리의 소녀(
Girl with Black Hair)>, 1911, Watercolor and pencil on paper, 56.2 x 36.7cm.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 Gift of Galerie St. Etienne.


- 에곤 실레, 꿈 속에서 보다, 1911, 수채와 연필. 하긴 오늘날엔 중요한 예술작품으로 평가받는 에곤 실레의 작품들 역시 당시엔 불태워진 적이 있다. 에곤 실레에 대해서는 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 에곤 실레(http://windshoes.new21.org/art-egon.htm)편에 좀더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여고생의 오럴섹스를 묘사한 최경태의 작품은 음란하다, 그것도 지독하게. 하지만 여기서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최경태의 포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음란하다고 지목하고 불태우는 음란한 사회에 대해서도, 여기에 뭔가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근엄한 음란에도 동시에 저항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고생들은 시니컬하다. 술자리 음담패설에 등장하는 닳고 닳은 창녀의 한 마디, '귀찮으니까 빨리 싸고 나가'줬으면 하는 그런 표정 말이다. 어떤 이는 이것만으로도 그의 작품은 관객과 사회의 관음증적 시선에 도전하는 것이며 그러므로 이 작품들은 음화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그 정도 수준에서 타협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다. ‘여고생들의 보지가 아름답더라, 그렇게 말하면 정말 안 되는 거냐?’고 그렇게 반문하는 것처럼 보인다.


- 최경태 / 'ADARASI FANTASY' 연작 중에서(2008)


포르노(porno)라고 약칭되기도 하는 포르노그래피는 그리스어로 창녀를 의미하는 ‘포르네(porne)'와 ’쓰여진 것(graphos)’의 합성어이다. 로마인의 시조들이 이웃 나라인 사비니 여성들을 "약탈" 혹은 "강간"하여 그네들의 로마를 만들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전설 혹은 역사다. 하기사 로마의 건국자가 헬레네를 납치했던 전력이 있는 트로이 출신이란 걸 고려해보면 이런 여성 약탈이 로마인들에게 새로울 것도 없을 거다. 굳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인류 최초의 포르노그라피"란 저런 개선문, 승리를 표현하기 위해 제작된 개선문의 조각들에서 비롯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대노예제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가 어느 정도였을지는 모르겠으나 여성은 전쟁의 가장 뛰어난 전리품 중 하나였다. 영화 트로이에서 영웅 아킬레스와 아가멤놈의 주된 트러블 중 하나가 전리품으로 탈취한 여성의 소유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것이 우연은 아니다. 전쟁은 아무리 고대 사회에서 일어난 것이라 할지라도 전투에 참여하는 이들은 죽을 수 있다는 걸 전제로 한다. 그런 젊은이들의 용맹을 고취시키기 위해 고대 공동체는 젊은이들의 용기를 북돋는 다양한 장치들을 준비한다. 물론 교육적인 측면까지 고려되었을 테지만, 궁극적으로 제시된 것들은 약탈과 살인, 방화 그리고 강간이었을 거다.


속된 말로 예비군복을 입은 남자들이 군복의 힘을 빌어 평시라면 절대 할 수 없는 행동들을 과감히 해치우고 마는 것, 가령 노상방뇨, 주정, 희롱 따위를 하도록 만드는 것은 그 사람의 인간됨이 그런 탓도 있지만, 고대 사회 이래로 전사들에게 허용되던 일탈행위의 전통이 고스란히 전해진 측면도 있다. 고대 사회는 그런 젊은이들의 만용을 부추기기 위해 개선문 혹은 승리의 장식들에 강간의 이미지, 약탈의 이미지들을 자랑스럽게 새겨넣는다. 그것이 인류 최초의 포르노그라피이다. 개선문에서 하늘로 곧추선 남성의 이미지를 읽어내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은 것처럼, 마야 린의 전몰자 기념비에서 대지에 드러누운 여성의 이미지를 읽어내는 것 또한 어렵지 않다.


- 최경태_눈을 떠라!_캔버스에 유채_112×145cm_1990(이미지 출처 : neolook.com)


많은 사람들이 예술의 의미에 내포된 의미 중 하나가 '사회적 금기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의미가 생성된 것은 예술의 장대한 역사에 비추어 보았을 때 가장 최근에 두드러진 일부의 현상일 뿐이다. 예술의 출발 자체가 원시시대엔 사회적 통합과 주술적인 의미였고, 중세와 근대에는 지배권력의 각광받는 사생아였을 뿐이다. 예술이 사회적 금기에 도전하고, 지배권력을 풍자하는 또다른 의미가 있다고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것 혹은 그런 의미를 부여받기 시작한 것은 극히 최근의 현상이다. 그 이전 시대에는 극히 불우한 몇몇 예술가들의 사례가 있을 뿐이다. 그나마 불우한 예술가들의 경우조차 정치적 의도가 앞선 결과이기 보다 그들의 충동이 사회적 통념과 배치된 결과라는 것이 좀더 사실에 가깝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 속에 포르노그라피적인 요소가 들어있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나도 그런 것은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포르노그라피를 그리면 안 되는 것이냐고 되묻고 있는 것이다. 포르노로 소비하든, 작품으로 소비하든 대중이 알아서 그냥 소비하도록 내버려두면 안 되겠느냐고 말이다. 인터넷으로 '최경태'를 검색하다보니 이런 말이 있었다.


"최경태라는 분이 여고생 교복을 입힌 모델을 대상으로 포르노그라피를 그렸다가 기소당해서 그림 31점을 소각당하고 벌금 200만원을 낸 적이 있다고 한다. 그림들을 보고 싶은데, 글만 무성하고 그림은 별로 없다. 게다가 그림에 모자이크 처리라니 헐..."


촛불이 새로웠던 것은 대통령이나 의회, 정당이 결정하여 통보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민주공화국의 주체라는 것을 일깨워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술 감상의 주체는 누구인가? 최경태의 작품을 개인적으로 좋아한다거나 싫어한다는 차원에 앞서 그것을 불태웠다는 것에는 반대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한국사회에서 '진보' 혹은 '좌파'는 어느 순간부터 공자왈맹자왈하는 도덕재무장론자들이 되었다. 이래 가지고는 '뉴타운'에 이길 수 없다. 도덕적 당위로서의 건강한 삶은 개인의 선택으로 존중받을 만 하지만 이것으로 대중을 설득하려는 사람은 늘 그 당위로 인해 발목을 잡히게 마련이다. 만약 진보진영이 계속해서 그와 같은 방식만을 고수한다면 결국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랜드 앤 프리덤>처럼 노땅들만 좋았던 과거를 서글프게 회상하는 엔딩씬을 찍을 수밖에 없다.


20대는 왜 거리에 나오지 않느냐고 야단치는 단단한 대갈통을 부수고, 그들에게도 진보가 어떤 이득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 진보적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알려줄 수 있을 때 진보는 멋진 세상을 꿈꾸는 희망이 된다. 도덕은 본래 위선하기 좋아하는 보수주의자들의 것이니 그들에게 돌려주자! 나는 내가 일한 만큼 즐거울 자유, 막 살고 싶은 자유와 권리를 누리고 싶을 뿐이다. 다만 그것이 당신이 본래부터 누려야 했을 자유와 권리를 착취하거나 당신이 그걸 누릴 수 없을 만큼 불평등한 사회시스템이 원인이라면 나는 당신과 함께 싸우고, 지지하겠다.  


좀더 부지런하고, 좀더 도덕적으로 살아서 좀더 부유해지고, 좀더 풍족하게 살기보다 조금 더 가난하고, 조금 덜 쓰면서 살아도 내 삶을 곰곰이 반추하며 천천히 나 살고 싶은 데로 살아갈 수 있다면 나는 자본주의의 냄새나는 경쟁시스템으로부터 탈락하고 싶다. 근면성실로 성공한 엘리트 대신 부도덕하고 게으른 진보주의자를 꿈꾼다. 우리들 각자가 내 돈 내고 생수를 사먹는, 나만 안전한 시스템 대신, 누구나 안심하고 수돗물을 마실 수 있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는 것이다. 

"돈이 모든 가치에 우선하는 이 시대에 여고생 몸 팔기를 누가 규제하고 누가 감히 돌을 던질 수 있지? 그녀들이 그녀들의 몸을 가지고 ‘알바’를 하든 말든 그것을 규제할 '도덕'이 지금 우리사회에 존재하니? 티 없이 깨끗하고 탱탱한 피부. 누구의 손도 거치지 않은 듯한 핑크빛의 유두 아직 다 자라지 않은 골격과 음모, 처음인 듯 한 성기를 난 그리고 싶어 단지 그 이유 때문에 여고생을 그리지 나는 솔직해지고 싶어."

한나라당에서 최고의원까지 지냈던 허태열 의원이 지난 2010년 11월 3일 같은 당 정희수 의원이 주최한 국회경제정책포럼에서 이날 강사로 함께 나온 최중경 청와대 경제수석에게 "의료까지 곁들여 그 안에서는 뭐든지 할 수 있는 획기적인 관광지 조성이 꼭 필요하다"면서 "관광사업을 육성하기 위해 ‘섹스 프리’하고 ‘카지노 프리’한 금기 없는 국제관광특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부끄럽지만 우리는 일본과 국교정상화 이후 1960년대~70년대 외화를 벌어들인다는 명목으로 이른바 '기생관광'을 중요한 관광소득으로 삼았던 적이 있다. 그래도 그때는 우리가 모두 가난했다는 변명거리라도 있지만 그로부터 50여년이 지난 지금 돈만 벌 수 있다면 또다시 그러한 것들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집권당 국회의원의 목소리를 들으며 우리 사회는 진정으로 음란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누가 최경태에게 돌을 던지랴!

* 트위터를 비롯해 인터넷의 여러 장소에서 허태열 의원의 '섹스 프리, 카지노 프리'란 발언을 두고 여러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오갔는데, 그가 이토록 조롱거리가 된 이유는 아마 '어륀쥐' 정권이라 불릴 만큼 정권 초반부터 영어에 대해 구설이 많았던 집권 여당의 국회의원님께서 정작 간단한 영어표현조차 제대로 알지 못해 멋대로 콩글리쉬를 구사한 탓일 게다. 

그의 본래 의도야 '섹스(매매춘)와 카지노(도박)'을 자유롭게 허용하는 관광특구를 조성하자는 주장이었겠지만 '섹스 프리(sex free) 특구'를 만들자 했던 그의 주장을 영어로 해석하면 'tax free' 같이 'without(~이 없는)', 다시 말해 '섹스 없는', '카지노 없는' 특구를 만들자는 주장을 한 셈이니 말이다. 물론 웃자고 하는 얘기지만 그런 이유에서 허태열 의원의 발언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가 틀렸다는 농담도 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이건 퇴폐적인 것이 아니라 너무 지나칠 정도로 금욕적인 표현이라 도리어 문제가 된다. 아무리 정부가 제멋대로라고 해도 남녀간의 섹스 문제까지 나서서 특정지역에선 섹스를 금지하다니 도대체 말이 안 되는 거다.


만약 그가 '프리 섹스 특구'라고 했다 한들 쪽팔리지 않았을까 싶기는 하다. 이 경우에도 문제는 생기기 때문이다(물론 애초부터 그런 발상 자체가 문제지만). 그래도 '한나라(우리나라를 말하는 거 아니다)'를 대표한다는 국회의원께서 주장한 바를 살펴보면 '섹스 = 매매춘'이란 등식이 자동으로 성립되는 셈이니 머릿속에 온통 이런 생각만 입력해놓고 살아가는 분이라면 당장이라도 발목에 '전자발찌' 채워드리고, 화학적 거세처리 해드려야 할 만큼 위험천만한 분이다(물론 물증은 없고 단순히 심증뿐이지만). 

만약 그의 주장이 본래 의미한 것이 섹스에 대한 규제 없는 특구, 그곳에선 무엇을 하든 규제하지 않는 지역(치외법권)을 의미한다면 그곳은 청소년은 물론이고 길거리에서조차 공공연하게 벌이는 애정행각이든 뭐든 규제하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가 된다. 이쯤되면 가히 '소돔과 고모라'의 한국적 재현이 될 터인데, 그래도 명색이 교회 장로님 출신 대통령을 두 분이나 배출한 이 나라의 국격에 그것이 가당키나 한 말인가.


한나라당이 지난 10년을 '잃어버린 10년'이라 규정하고 단죄해 온 이유가 고작 자유로운 매매춘을 규제하고 금지한 '매매춘 단속' 때문이었을지 모른다는 의심을 품게 만든다면 이건 정권재창출을 위해서도 좀 곤란하다.

** 이처럼 음란한 사회에서 최경태의 포르노그라피(?)는 너무 성스러워서 도리어 성스러울 지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