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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과학/생태

다시 태양의 시대로 - 이필렬

다시 태양의 시대로/ 이필렬 지음 / 양문 / 2004년 7월

"푸른 바다 저 멀리, 새 희망이 넘실거린다~"라는 노래가 흘러나오면 지금도 저절로 기분이 흥겨워진다. 지난 1982년 12월부터 매주 화요일마다 방송되었던 "미래소년 코난". 이 작품은 잘 알려진 대로 알렉산더 케이의 "남겨진 사람들(The Incredible Tide)"이란 작품을 원작으로 한 TV 애니메이션 작품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 작품에서 세기말적인 상상력을 발휘해 화석 에너지가 고갈된 미래의 지구를 그려내고 있다. 물론 작품 속에서 미래의 인류가 에너지 고갈 상태에 빠지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제3차 세계대전 때문인 듯 보이지만 그 3차 세계대전의 원인은 아마 화석 에너지인 석유를 누가 지배할 것인가를 놓고 벌어진 전쟁이었을 거다. 이라크 전쟁의 원인에 대해 이런저런 명분을 가져다 붙이지만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이 전쟁의 궁극적인 원인으로 석유를 지목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지난 150년간 그리고 이필렬 교수에 따르면 향후 50년간 인류사에 있어 보기드문 제2의 화석시대를 살고 있다. 백악기와 쥐라기의 공룡, 거대 양치 식물들이 만들어 논 화석연료를 불태우며 만든 화석 문명 시대 말이다. 사실 석유시대의 종말을 예언하고 다른 대안을 모색하자는 주장을 펼친 책이 "다시 태양의 시대로" 하나만은 아니다. 이 책의 저자 이필렬 교수는 지난 2002년에도 "석유시대, 언제까지 갈 것인가"란 책을 낸 적이 있는데, "다시 태양의 시대로"에서 담고 있는 주장, 이야기와 별반 다르지 않은 이야기를 그때(불과 2년 사이에 이 분야에 경천동지할 무슨 일이 벌어진 건 아닐 테니)도 했었다. 그런 점에서 "다시 태양의 시대로"는 "석유시대, 언제까지 갈 것인가"의 자매품이라 할 수 있는데, 두 책이 차이가 전혀 없다는 말은 아니다.

"석유시대, 언제까지 갈 것인가"가 특별히 어렵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환경에 대한 우리 사회 일반의 인식이 비교적 낮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약간의 난이도가 있는 편이라면, "다시 태양의 시대로"는 이 방면에 대해 사전지식이 거의 없는 이들도 손쉽게 읽을 수 있는 난이도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미래 소년 코난"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물론 인류가 화석에너지를 연료원으로 삼기 이전에도 인류는 문명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자연을 개조하고, 극복하려는 시도를 해왔고, 일부분 성공했다. 그러므로 석유 자원이 고갈된다면 다시 범선을 타고 다니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상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마치 하이하바가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의 욕망, 그리고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끝도 없는 욕망의 부추김을 통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절제의 미덕은 환경에너지의 개발이란 주장 만큼이나 밑도 끝도 없는 도덕론자들의 주장으로 폄하되기 일쑤다. 인간의 소비는 극적인 파탄을 맞이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이필렬 교수 이하 현대문명비평가들의 일관된 주장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세기말은 20세기가 아니라 21세기에 비로소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

19세기 말부터 2003년까지 생산된 석유의 양은 모두 1조 배럴 가까이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 매장량이 2조 1000억 배럴이므로 2003년 현재 매장되어 있는 석유의 양은 1조 1000억 배럴쯤 된다. 거의 절반 가까운 양을 퍼낸 셈이니, 인류는 석유 생산이 최대값에 도달하는 시점, 그리고 동시에 석유 생산이 줄어드는 시점에 가까이 다가와 있는 것이다. 석유 자원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계산에 따르면 이 시점은 2010년 즈음에 닥칠 것이라고 한다. 그 자음부터는 석유 생산량이 매년 2-3퍼센트씩 감소할 것이라고 한다.
<본문 18쪽>


어떤 이들은 그러므로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에선 원자력 발전을 많이 해야 한다고 주장할지도 모르겠다. 과연 그럴 듯한 말이다. 고갈된 운명을 피할 수 없는 데다가 지난 1970-80년대 버블경제의 덕으로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룩한 일본조차 다국적 석유기업 가운데 속하려는 시도가 실패할 만큼 완고한 국제 석유 자본의 장벽을 뚫을 수도 없고, 현실적으로 그런 국력을 가질 수 없는 우리 현실에서 원자력은 가장 적절한 대안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필렬 교수는 이것도 부질없는 시도라고 말한다,

현재 전세계에는 430여개의 원자로가 있다. 여기에서 현재 연료로 사용될 수 있는 우라늄은 50년이 지나기 전에 고갈된다. 원자로가 1000개로 늘어나면 원자력의 사용연한도 반비례해서 줄어든다. 20여 년으로 줄어드는 것이다.거기에다 원자력 발전은 위험한 방사능을 내뿜는 폐기물까지 내놓는다.
<본문 39쪽>


그렇다면 원자력도 대안이 될 수 없다. 이필렬 교수는 그 대안으로 무엇을 주장하고 싶은 걸까? 이미 책 제목에도 드러나 있는 것처럼 그는 '태양에너지'를 주장한다.

태양에서 1년 동안 지구로 오는 에너지는 인류가 1년간 사용하는 에너지의 1만 5000배나 된다. 사하라 사막에는 햇빛이 아주 강하게 내리쬔다. 1년 동안 내려오는 햇빛이 제곱미터당 2100kWh에 달한다. 사하라 사막 4만 제곱킬로미터, 그러니까 가로, 세로 각각 200km(남한의 절반 정도의 면적)에 1년간 비치는 햇빛에 담겨 있는 에너지는 전세계 인류가 1년 동안 사용하는 에너지와 같다. 거기에 들어오는 햇빛의 10퍼센트만을 전기나 열로 바꾸어 쓰면 면적은 가로, 세로 각각 700km가 된다, 재생 가능 에너지원이 충분하다는 것은 부정하려야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것이다.
<본문 41-42쪽>


중국도, 러시아도, 일본도 그리고 우리 한국도 미국의 이라크 전쟁이 잘못된 전쟁이란 사실은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나라들이 군소리없이 있는 까닭은 석유 때문이다. 미국에 밉보이면 향후 석유 자원 수급에 막대한 차질을 빚을 수 있고, 석유 자원 수급에 차질을 빚는다는 건 정권 안보 차원이 아닌 국가 안보 차원에서 심대한 타격을 빚는다. 게다가 우리나라가 현재처럼 에너지를 사용한다면 앞으로 15년 후엔 세계 최고의 에너지 소비국인 미국처럼 될 것이란 사실은 불문가지다. 미국은 전세계 가솔린 소모양의 42%를 차지한다.

이필렬 교수는 이 대목에서 매우 재미있는 주장을 하는데,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할 때 독일이 끝까지 반대할 수 있었던 현실적인 힘은 독일의 주요 석유 수입원이 중동이 아니라 러시아나 북해 유전이기 때문이며, 독일이 석유로부터 자립해나가기 위한 장기 계획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란 거다. 그러면서 "한국도 에너지 고갈과 기후변화로부터 벗어나려면 두말할 필요 없이 덴마크나 독일처럼 재생가능 에너지로 넘어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지금 한국 사회는 이런 에너지 전환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두려워한다. 아니, 그보다는 "지금까지처럼 석유와 원자력을 계속 사용했으면 하고 생각하고,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그러면서 이필렬 교수는 다시 한 번 미국에 대해 비판을 가한다. "미국은 이 길을 택한 것 같다. 우선 미국은 기후변화를 역제하기 위한 교토 협약에서 탈퇴했다. 이 조처는 화석에너지 이용을 줄이지 않겠다는 뜻으로 계속해서 석유 의존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라크를 침공해서 석유를 확보함으로써 (완전히 성공할지는 두고 보아야겠지만) 수십 년은 에너지 걱정을 안 해도 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한국도 이라크 파병을 결정함으로써 미국을 따라가고 있다."고 말이다. 이 부분이 꼭 잘못되었다기 보다는 약간의 보충이 필요할 듯 싶다. 우선 이 글의 문맥만 살펴보면 미국이 교토 협약을 탈퇴한 것이 화석에너지 사용을 줄이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은 맞다. 그러나 미국이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석유에 대한 의존도를 확대해가겠다는 뜻은 절대로 아니다. 미국이 실제로 교토 협약을 탈퇴한 것은 화석 에너지 소모를 줄이지 않겠다는 뜻이긴 하지만, 교초 협약에 가입하지 않은 미국조차 대안 에너지 개발 문제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감소시키기 위한 용도의 예산 확보와 지출면에서는 다른 나라들에 결코 뒤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미국은 현재 화석 연료에 대한 주도권을 계속 장악한 채로 대안 에너지 분야에서도 지속적으로 우위를 점하고자 하는 것이다. 미국이 어떤 나라인데, 21세기에 대한 계획이 없겠는가? 이럴 경우 문제가 되는 나라는 한국이다. 우리가 지금처럼 살아가는 동안에도 다른 선진국들은 21세기 대안 에너지 기술과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경쟁과 국익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이 분야에서 우리나라가 뒤처지는 걸 원하지 않을 텐데도 불구하고, 그런 점에 대해서는 눈감고 있지만 말이다. 이필렬 교수와 같은 이들이 환경적인 대안 에너지를 주장한다고 해서, 그가  "하이하바" 같은 원시적인 풍력 사회를 주장한다고 짐작한다면 그것은 대단한 오해이다. 이필렬 교수가 주장하는 대안에너지는 바로 현재의 물질문명이 가지고 있는 장점들을 고스란히 유지하면서도 화석 에너지가 고갈되었을 때를 대비한 과학 기술의 축적에 의한 대안을 모색하자는 주장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그것을 알려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