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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과학/생태

가이아 : 살아있는 생명체로서의 지구 - 제임스 러브록 | 홍욱희 옮김 | 갈라파고스(2004)

『가이아  : 살아있는 생명체로서의 지구』 - 제임스 러브록 | 홍욱희 옮김 | 갈라파고스(2004)


신화가 죽은 것을 산 것과 동일시한다면 계몽은 산 것을 죽은 것과 동일시한다. - T.W. 아도르노


세상 모든 믿음의 시작은 자연을 섬기는 것에서부터 출발했다. 한정된 수명을 지닌 인간은 끊임없이 순환하며, 사라지는가 하면 다시 나타나고, 죽었는가 하면 되살아나는 힘을 지닌 자연의 놀라운 생명력에 경외심을 품었다. 인간의 신화적 상상력은 지구가 하나의 거대한 신이란 생각에 이르렀고, 고대 그리스인들은 신화 속에서 ‘대지의 여신'을 일컬어 대지모신(大地母神), 즉
“가이아(Gaia)”라고 불렀다. 만유인력을 발견한 뉴턴은 인간의 엄지손가락이 지닌 복잡한 기능만 보더라도 신의 존재를 믿을 수 있다고 말했는데, 만약 그가 불안정한 지구의 대기가 이루고 있는 절묘한 균형과 유지방법을 알았다면 그는 지구 자체를 하나의 신이라 불렀을지도 모른다.

“가이아 이론”이란 영국의 과학자 제임스 러브록은 1978년 「지구상의 생명을 보는 새로운 관점(A New Look at Life on Earth)」이란 책(『가이아 - 살아있는 생명체로서의 지구』)을 통해 주장한 하나의 새로운 과학적 가설이다. 러브록의 가설에서 ‘가이아’란 지구와 지구에 살고 있는 생물, 대기권, 토양, 대양까지를 포함하는 하나의 범지구적 실체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대지모신의 이름을 빌어 사용한 말이다. 그에 따르면 지구는 생물과 무생물이 상호 작용하는 마치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임을 강조한다. 가이아 이론이 처음 등장했을 때 많은 과학자들은 ‘가이아’라는 이름 때문에 지구를 하나의 인격체로 취급한다는 오해를 했다(러브록은 도리어 그 반대의 측면에서 지나친 환경주의를 경계하며, 철저히 과학적으로 사고하고자 노력한 과학자였고, 과학에 대한 낙관적인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그의 이론을 과학을 빙자한 유사과학으로 취급하고, 이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고자 했으나 지구 온난화 현상 등 지구의 환경 생태 문제와 관련해 가이아 이론은 더욱 큰 힘을 얻고 있다.


▶ 제임스 러브록 박사


제임스 러브록은 1950년대 후반 전자포획기라는 새로운 물질 분석장치를 발명해 과학자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전자포획기를 이용하면 지구상의 어느 곳이라도 대기에 섞여있는 미세한 원소를 분석해낼 수 있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은 러브록에게 화성탐사우주선 바이킹호에 탑재할 생명체 탐지장치에 대한 자문을 구했다. 러브록은 화성의 대기를 분석한 결과
“화성에 생명이 존재하는지 알고 싶다면 굳이 탐사선을 보낼 필요가 없어요. 여기서도 알 수 있지요. 화성은 광물처럼 완전히 죽은 존재”라고 단언했다. 러브록이 이렇게 단언할 수 있었던 것은 화성의 대기를 분석한 결과(화성을 비롯한 천체들은 빛의 스펙트럼 분석을 통해 화학적 조성을 알 수 있다)였다. 분석 결과 화성의 대기는 대부분 이산화탄소로 구성되어 있고 산소는 거의 없었다. 무수한 생명체가 살아가고 있는 지구의 대기에 산소는 21%나 되었고, 이산화탄소는 1% 미만이었다.

생명체가 호흡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산소는 실제로는 매우 불안정한 기체로 다른 물질들과 반응성이 크고, 잠재적인 폭발성까지 가지고 있다. 산소에 의한 산화작용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지만 세포를 늙게 만들고, 불이 계속 타오르도록 하며, 쇠를 녹슬게 만든다. 호흡도 녹이 스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주 느리게 진행되는 연소현상(산화작용)이다. 즉 인간의 호흡은 자신도 모르게 불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구상에 산소가 생겨난 이래 그토록 오랫동안 갖가지 산화작용, 연소 반응들이 진행되어 왔다면 마땅히 지구상의 대기 속의 산소 역시 닳아 없어졌어야 할 것이다. 지구상의 생명체들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산소나 암모니아와 같은 공기 중의 기체들은 언제나 적당한 수준으로 유지되어야 하고 만약 이런 수준에서 약간만 벗어나더라도 생물들에겐 치명적인 결과를 빚을 수 있다. 그런데 무엇이 지구의 산소 농도를 수억 년이 넘도록 일정하게 유지시켜 왔는가? 지구상의 모든 생물체들이 이루고 있는 하나의 거대한 생물권(biosphere)이 지구의 다른 부분들과 복잡한 상호작용을 통해 절묘한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

가이아 이론의 핵심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외부 환경으로부터 자유 에너지를 섭취하여 자기 생존에 맞게 조절하는 능력(자기조절능력)을 지녔고, 살아있는 지구는 지구의 생물권, 대기권, 대양 그리고 토양까지를 포함하는 하나의 복합적인 실체이며, 가이아는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을 위하여 스스로 적당한 물리적·화학적 환경을 조성(항상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피드백 장치나 사이버네틱 시스템(cybernetic system)을 구성한 총합체”라는 것이다. 그 결과 러브록은 지구를 생물과 무생물이 상호 작용하는 생물체로 설정한 가이아 이론, 지구가 생물에 의해 조절되는 하나의 유기체라는 가설을 펼쳤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단순히 주위 환경에 적응해 간신히 생존하는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지구의 물리 ․ 화학적 환경에 영향을 주는 능동적인 존재로 규정한 가설을 담은 것이 이 책 『가이아 - 살아있는 생명체로서의 지구』이다.

가이아 이론의 핵심인 자기조절능력은 인간의 체온(36.5℃)이 주변 환경의 변화나 급격한 열량 소모 등으로 체온이 급격히 오르거나 내려갈 수도 있지만 신체대사를 조절하는 기능을 통해 생명을 유지할 수 있도록 자신의 체온을 조절하는 것처럼 지구 역시, 아니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이 서로 협력하고 공존하는 방식으로 지구의 산소량과 대기의 온도를 유지해왔다는 것이다. 그것은 러브록이 지구의 모든 것(지구의 생물권, 대기권, 대양 그리고 토양 등)을 이르는 복합적인 실체로서의 지구를 은유적으로 가이아라고 표현한 데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결과다. 지금까지 우리가 발견한 은하계의 어떤 행성도 지구처럼 생물권 전체가 하나의 유기체처럼 행동하며,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낸 곳은 없다. 어떤 행성도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에 의해 조절되는 절묘한 환경조절 메커니즘, 사이버네틱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 그러나 인간은 살아있는 생명체로서의 지구를 죽은 것으로 간주해 이용과 정복의 대상으로만 취급해 왔다.




그 결과 지구는 점점 자기조절능력을 잃어가고 있다. 인류는 가이아의 파트너이자, 가이아의 일원 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자기들의 농장으로 간주해왔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지구를 살아있는 생명체로 바라보는 일은 칼 G 융이 주장하는 인간 영성의 회복으로 나아가는 것이기도 하다. 러브록은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들어 우리에게 말한다.

대부분 정치가들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경제성장과 교역증대이며 환경문제는 기술적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다. 이런 사람들의 일반적인 낙관론은 내게 2차 세계대전 직전의 런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그 당시 나는 독일군의 공습을 피하기 위해 어느 한 방공호 속의 공기의 적합성 여부를 평가하는 일에 종사했다. 그 방공호는 템스강을 따라 진흙탕 속에 조성된 과거의 하수관 시설이었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나는 좀도둑들이 그 폐기된 하수관의 접속 철판 부분에 조여진 볼트를 풀어 훔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만약 그 풀어진 이음새 사이로 강물이 침범하게 된다면 순식간에 온 터널이 물바다가 될 판이었다. 하지만 그 터널을 방공호로 이용하는 지역 주민들은 자신들이 진흙탕 속에 묻혀버릴 수도 있다는 위험가능성에 전혀 개의치 않는 듯 했다. 그들은 공습 경보와 폭탄의 폭발음에 더 놀라는 것처럼 보였지만 내게는 그 방공호 속이 훨씬 더 위험해 보였다. 어떤 점에서는 현재의 우리도 역시 그 방공호 속의 런던 시민들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여전히 하수관의 이음매 볼트를 빼내어 팔아먹고 있으면서도 지금 당장 아무런 일도 발생하지 않는 것에 만족하여 정작 우리가 무슨 일을 저지르고 있는지 확인조차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본문 29~30쪽>

러브록은 우리가 부주의하여 고래를 멸종으로 이끌면 그것은 분명 일종의 종족학살(genocide)이며, 또한 게으르고 완고한 국가관료주의에 빠진 결과라고 경고하면서 마르크스주의자나 자본주의자를 막론하고 인류는 이 같은 범죄의 심각성을 깨우치지 못했다고 말한다. 한나 아렌트는 “더불어 사는 사람들을 세상과 자연, 우주에 대해 함께 기뻐할 가치가 있는 존재라고 여길 때 비로소 우리의 인간성이 유지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말은 수정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세상과 자연, 우주가 우리와 함께 살아있는 존재라고 여길 때 비로소 우리의 인간성도 유지될 수 있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