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나는 1년간 김병익 선생에게 배운 적이 있었다. 개설된 과목 이름조차 기억이 희미하지만, 당신이 졸업을 앞둔 우리들에게 내어주었던 과제명만큼 확실히 기억한다. 그것은 "왜 글을 쓰는가?"하는 것이었다. 늘 그렇지만 "왜?"라는 질문은 "어떻게?" 혹은 "누가?"란 말로 시작되는 질문보다 어렵다. 그것은 "왜?"라는 질문이 대개는 근원에 대한 정직한 성찰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종종 솔직(率直)과 정직(正直)을 구분하지 못한다. 사전적인 의미에서라면 이 둘은 같은 뜻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좀더 파고 들어갔을 때 "거느릴 솔"에는 '경솔하다, 신중하지 못하다, 대강, 대체로, 보기 좋다' 의 뜻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솔직하다는 표현에서는 어쩐지 다변(多辯)의 뉘앙스를 받게 된다. 솔직하다는 것은 늬 묻지 않았으나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을 말하고, 정직이란 것은 누군가에게 요구 받았을 때 불이익을 감수하고라도 자신의 속내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을 말한다. 솔직하기는 쉬워도 정직하기란 그래서 어려운 법이다. "왜"라는 질문은 그래서 늘 정직함을 요구받는다.
김병익 선생은 우리들에게 "왜 글을 쓰는가?"라는 단도직입의 질문을 통해 자신의 고통에 대해, 혹은 자신의 암담하기 그지 없는 미래의 포부에 대해 정직하게 고백하는 자술서를 요구했다. 그때 나는 대충 고민한 끝에(말은 대충이라고 하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나는 내가 왜 글을 쓰고 싶었는지 알고 있었다) 원고지 10여장 내외로 리포트를 써서 제출해 버렸다. 그리고 십여 년이 지난 뒤 나는 당신은 잘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의 제자로 당신과 술집에 앉았다. 원래 처음 뵈올 무렵에도 이미 백발이었던 지라 십여 년이 지난 뒤 다시 만났을 때에도 당신은 그닥 많이 노인이 되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당신은 내게 오래전에 이미 큰 어른이었던 것이다. 나로 하여금 글쓰기에 매달리게 했던 근본 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그 모든 걸 한 마디로 응축하기란 지금 생각해도 난감한 일이다. 스스로에게 정직하기란 타인에게 솔직하기 보다 백배는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나는 그때의 내 심정을 한 마디로 "자기 혐오"의 느낌으로 정리한 것 같다. 나는 사물이나 인생, 세상이 무엇이냐고 알려고 대들기보다 우선 그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늘 먼저 관심을 두어야 했다. 그만큼 나는 살아가는 것, 생존 자체의 문제가 언제나 급박했기 때문이었다. 먼저 어떻게든 살아남으면 세상이 무엇인가도 알게 되리라고 믿었다. 그런 까닭에 나는 내 또래에서 언제나 매우 영악한 아이였다고 주변 어른들에게 기억됨과 동시에 스스로에게는 매우 열악한 어린이라는 열패감에 시달려야 했다. 세상엔 슬픈 일이 기쁜 일보다 언제나 많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은 깨달음일까? 아니면 선택일까?
사람들은 종종 글 자체보다는 글쟁이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는데, 거기엔 동양의 오랜 전통, 글이 곧 사람이라는 판단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살면서 경험으로 느낀 바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이 쓰는 글과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아간다. 성직자가 제 아무리 성서에 나오는 이웃사랑을 주장하지만 실제로 이웃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교사가 아이들에게는 제 아무리 올바른 삶을 가르치려 말한다고 해도 실제로 자기 자신은 그렇게 살아가지 못하는 것처럼... 글은 종종 위선이고, 실제로도 그럴 수밖에 없다.
이 책은 근대를 살아간 우리 작가 12인의 이야기이다. 각자에게 한 권씩의 분량을 할당한다 할지라도 부족할 사람들을 한 권에 다룬다는 것은 분명 과욕이다. 하지만 근대라는 폭력적인 시간대를 살아낸 까닭으로 그들이 살았던 흔적조차 망실되어 찾을 수 없는 지금의 우리들에게 그들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이 책은 유효적절하다. 우리는 근대적 풍경 속에서 스스로를 소설가이기 보다는 지식인으로 자리매김하고 싶었던 춘원 이광수의 야심과 그가 그토록 찾아헤매던 아버지라는 대상의 상실이 그를 얼마나 유약하게 만들었는지 이 책을 통해 그 한 풍경을 엿볼 수 있다. 우리는 근대의 풍경 속에서 만석꾼의 자식으로 태어나 한없이 오만했으나 말년엔 생활고에 시달리다 급기야는 친일작가로 낙인찍히고 마는 김동인을 발견할 수 있다. 김동인을 바라보며 날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던 것은 그가 일본에 아부하고 싶어했지만 그 방법을 몰라서 천황모독죄라는 죄명을 썼었다는 사실이다.
이 책에는 현진건, 나도향, 최서해, 염상섭, 채만식을 비롯해 자신에게 얼마간의 돈을 꿔준다면 땅꾼들을 고용해 뱀을 잡아먹고 기운을 차려 잘 팔릴만한 몇 편의 소설을 쓰겠다는 편지를 썼던 김유정을 발견할 수 있고, 뛰어난 재주를 지녔으나 그 어디에서도 인정받지 못했던 이상을 만날 수 있다. 이 책은 그동안 문학평론가들의 '작가론'에 가리워져 보이지 않았던 인간으로서의 작가들을 만날 수 있게 해준다. 우리는 이 책에서 그 험난하고 어려웠던 민족 수난기에 일가족이 모두 침대생활을 하고, 만주로 질좋은 커피를 찾아갔던 작가 이효석을 만나게 된다. 하수상한 시절 언제나 권력과 가까이 지냈던 작가 김동리를 만나게 되고, 사슴 같은 눈망울을 굴리던 작가 황순원을 만나게 된다.
난 이들의 이야기를 책을 통해 읽으면서 새삼 "왜 글을 쓰는가?"하는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왜?" "왜 이들은 글을 썼을까?" 글을 통해 애써 위선을 가장하고자 한다 하더라도 글쟁이는 필연적으로 글을 쓰는 동안 자신과 글을 다 쓴 뒤 그 글을 읽고 있는 자아 사이의 간격을 발견하게 된다. 이 순간 어떤 글쟁이도 정직해지지 않을 수 없다. 결국, 글이란 자신과의 치열한 대면이다.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눈 앞에 바짝 들이대진 거울이다. 우리는 글을 통해 타인을 속일 수는 있지만 자기 자신을 속일 수는 없다. 어쩌면 글쓰기란 이런 자기학대의 과정을 거친 이들만이 경험할 수 있는 카타르시스가 아닐까? 지금 우리 문학은 그나마 잘 나간다는 작가들조차 "1쇄 작가"를 면하기 어렵다고 한다. 문학이 위기라고들 한다. 어쩌면 그런 까닭에 지금 우리 사회는 절실하게 문학을 필요로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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